문장웹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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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남자없는 여자들
네년이 나를 떼어먹으니 그렇지 입이 있음 처먹지를 말든가말을 마 거짓말 네놈이 나를 살림을 같이 파먹고 살아서 그렇지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 주둥이를 사 왔다 남편은 비닐봉지를 비집고 나와 내 종아리를 콱 물었다 물고 덤벼도 뭣처럼 나는 척추를 한껏 오므리고, 남편 이에 정수리가 눌린다 뭣처럼 벌어진 입이라고 벌린 입으로 남편은 내 시가 구리다고 했다 들었다고 더럽다고 했다 나는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히고 나 말고 그년은 다시 남편을 향해 맥주 한 병을 더 따고 - 「경진이네―원룸」 일부 처음에 경진은 냉장고에서 식재료 대신 꽁꽁 얼린 남편을 꺼내어 그것을 먹으려 한다. 그러나 남편을 “떼어먹”는 일은 어찌 된 일인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어느새 경진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먹이를 사 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며, 그렇게 애써 마련한 남편은 되려 경진의 종아리를 콱 물어버린다. 끝내 “질겅질겅 씹히”는 신세가 된 쪽은 오히려 경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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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
형수가 빠르게 형광등을 끈 사이, 먹빛 어둠 저편에서 한 아름 가량 되는 풀뭉치 같은 게 돌돌돌 굴러온다. 그게 사람이라는 걸 어둠이 눈에 익고 나서야 알았다. 꽉 쥐어짠 행주처럼 주름진 얼굴과 궁상맞게 옹송그린 등, 가슴에 접어붙인 빼빼 마른 다리. 사람의 형상이 어째 저럴까 싶어 은영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안채에선 밤에도 전등을 못 켜요.” 형수는 공처럼 굴러온 노인의 겨드랑이 속으로 양팔을 집어넣고 번쩍 안아 올리다시피 해서 자리에 앉힌다. 노인을 다루는 형수의 손놀림이 퍽 익숙해 보인다. 대청에서 유정호가 켜든 초의 둥근 불빛이 흔들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안방 문이 이중으로 된 갑창(미닫이 안쪽에 덧끼우는 미닫이)이어서 방은 여전히 어둡다. 누가 집에 불을 지를까봐, 식구들이 실수로 불을 낼까봐, 불이라면 기겁을 해서 밤에도 전등을 켜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노인이 빛바랜 단추 같은 눈으로 은영을 쏘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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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개들의 전쟁
공원에서 마주쳤는데 시커먼 게 정말 송아지만 하더라니까. 얼마나 무섭던지···. 두 팔을 한껏 벌린 영주 엄마란 여자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말이 끝나자 이번엔 긴 생머리를 뒤로 깡똥 묶은 여자가 끼어들었다. 저도 들었어요. 우리 집은 창문이 돌아앉아 잘 들리진 않지만, 그래도 한밤중에 들려올 땐 정말 신경이 곤두서더라고요. 아이들도 짜증을 부리고. 그래도 저는 그러다 말겠지, 했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그러니까 이건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반드시 막아야 해. 아파트는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잖아? 공동생활엔 질서가 있어야 하는 거거든. 그 질서가 뭐겠어? 개보다는 입주민들의 인권이 먼저라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관리실이 매일같이 경고 방송을 내보내면 제가 아무리 철면피라도 무슨 조치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