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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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둑길」외 6편
둑길 전병호 며칠 전에 시멘트 포장한 둑길 맨 먼저 고라니 발자국이 찍혔다. 고라니도 다니는 길이라고 알려 줬다. 창 밖의 나비 도화지에 나비를 그리는데 형아. 나비다! 갑자기 동생이 소리쳤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창밖에 팔랑팔랑 날아가는 봄 나비. 내가 그리는 나비도 도화지 밖으로 날아가려고 날개를 편다. 가족 사자가 나타났다! 엄마 아빠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둘러쌌다. 삼촌 코끼리, 고모 코끼리는 바깥에 둘러섰다. 쁘아앙~ 아빠 코끼리가 큰소리로 외치자 코끼리 가족이 한 몸 되어 걸어간다. 뿌리 아빠가 웃자란 제라늄 곁가지를 뭉턱 잘라 냈다. 다다음 날 버려진 가지에서 꽃이 피어났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꿈 마지막 힘 모아 피워 낸 것일까. 엄마가 꽃 핀 가지를 추려 꽃병에 꽂으면서 말했다. “뿌리가 내리면 화분에 옮겨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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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테러리스트들
중국집 배달원인 종호는 ‘한 놈만 골로 보낼 거야, 딱 한 놈만’을 입에 달고 살았고, 휴학생 재남은 ‘한 방으로 여러 놈을 쓸어버리는 방법이 꼭 있을 거야’를 달고 살았다. 그들이 여태 아무도 죽이지 못한 이유는, 반드시 저 세상으로 보내 버려야 할 만큼 악독한 한 놈을 찾지 못해서이고, 단 한 번에 여러 명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방위산업체에 다니는 용접공 석우는 ‘너희들이 하면 나도 한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었지만, 지금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이 셋뿐이었다. 보름 전, 한 명이 귀환했다. 일병 정기휴가를 나온 운전병 승준이다. 승준을 이틀 동안 친구들은 먹여 살렸다. 사흘째부터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 피시방이나 만화방에서 함께 시간을 죽였다. 현수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그들은 휴가병이 부대로 복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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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돌
중국에는 ‘산호인간’도 있어. 그 남자는 산호껍질 같은 사마귀가 온몸을 뒤덮어서 사람들이 ‘산호인간’이라고 부른대. 사마귀가 손발에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으로 퍼졌대. 어느 신문이랑 인터뷰로 그 남자가 그랬대. 자기 몸이 돌처럼 굳어가는 것 같아서 무섭다고…….” 거기까지 말한 후 너는 네 뺨을 쓸어내렸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내가 돌이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근데 나는 안 무서울 거 같아. 참 이상해, 난 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아버지랑 억불산에 올라가서도 정상에 앉아 가만히 며느리바위를 보다가 나도 죽어서 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비바람에 쓸리고 패여도 돌은 영원불멸하잖아.” 너는 홍주로 이사 온 후로 한 번도 억불산에 가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조만간 혼자서라도 한 번 내려가 보려고. 어때, 너도 같이 갈래?” 네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꾸었던 꿈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