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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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일상의 닻을 내리다 - 아바나에서 살아가기_2
전남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큰돈을 쓴(모르긴 몰라도 저 케이크는 매우 비쌀 것이다) 아나 아줌마나, 캐나다에 있는 딸을 보러 가기 위해 비자가 나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때가 되면 아나는 새로운 노비오(남자친구)를 찾겠지.”라고 말하는 아스뚜르발 아저씨의 관계가 내게는 오묘하기만 하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만난 지 보름 만에 함께 살고,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만날 당시 아스뚜르발에게는 딸과 아내가 있었고, 아나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난리가 났지만 이십 년을 행복하게 살다가…… 오 년 전에 이혼했다.(이 러브 스토리는 앨범을 보다가 들은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아줌마는 1층에서, 아저씨는 2층 다락방에서. 여전히 사이는 좋다. 접시를 들고 서서 먹는 소박한 식사가 끝나자 음악의 볼륨이 높이 올라간다. 한마디로 이 날은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다들 입이 쩍 벌어지게 춤을 잘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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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퀴어 테크놀로지(들)로서의 소설 – 김봉곤식 쓰기, 되기
"그렇다면 글을 쓰고 싶은 기분, 이 되어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려 글을 써본다, 가 될 수도 있겠어요." 「인터뷰」, 앞의 책, 47면. (실연 후-인용자) 사일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고작 사일이 지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사일이 지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직은 쓸 수 없어-이제는 써야 해, 사이의 어디쯤에서.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아니, 조금은 놓여난 후에, 어딘가 사이쯤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작했다. (「오토」, 184)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소설을 쓰던 중 그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여전히 형섭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에하라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아쉬워한다. 글을 쓰던 어느 날, 형섭이 쿠마를 내게 안겨 주고 떠났을 때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한동안 나는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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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현피
우락부락한 얼굴에 코가 주먹만 한 전사가 바람처럼 나타나 흥분한 행성인들로부터 멱살잡이 당하는 아빠를 구해주더라고. “아, 첫째도 침착, 둘째도 침착하잖께요. 이러면 우리가 고발당합니다. 가택 침입 난동죄로!” 무슨 구호 같은 말 몇 마디로 행성인들을 딱 장악해버리는 그는 정말이지 게임 속에 나오는 영웅이었어! 낮게 뇌까리는 그의 말은 이상한 힘이 실려 있어서 사람들을 움찔하게 하였거든. 물론 뒤늦게 불시착한 행성인 하나가 눈치코치 없이 악을 바락바락 쓰기도 하고, 몇 명의 행성인들이 더 몰려와 소란피우기도 했지만, 새벽녘이 되어서는 다 돌아들 갔지. 아니, 주먹코전사의 위력에 풀이 죽어 분해돼버렸다고 해야 하나. 행성인들이 다 사라지자 이빨을 드러낸 개처럼 주먹코전사는 아빠에게 주먹을 갖다 대며 으르렁거렸지. 엄마 연락처를 대라는 거였어. 짜고 치는 고스톱인줄 다 안다면서! 그럼, 엄마 아빠가 계획적으로 판을 뒤집었다는 뜻? 그건 잘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