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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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3월호 픽션 기술자들과 그들의 시대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수갑과, 더 많은 선글라스와,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각목과, 더 많은 상상력이 필수적일 터.”(177쪽) 고아이자 문맹이며,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애인 김순희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을 소망하고 있는 택시기사 나복만을 정남운은 “더 많은 수갑과, 더 많은 선글라스와,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각목과,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 방대한 간첩 서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낸다. 정남운이 만든 픽션에 따르자면 나복만은 1953년 월북한 후 대남 공작원이 된 아버지와의 운명적인 만남, 아버지의 의식화 교육을 통해 깨닫게 된 미제의 신식민지인 남한의 모순, 미군 부대와 원주 인근 군부대에 대한 정찰, 자신과 같은 ‘형제의 집’ 출신 고아들에 대한 세뇌 공작과 이적 단체 결성, 월북과 노동당 입당, 원주 지역 지식인들과 연계한 혁명 전선의 구축 등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특급 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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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출판기획자
그는 덧붙여 철학자 니체의 말을 적절히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포함한 사람들로부터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빼낼 수 없는 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말은 ‘옳고’ 동시에 ‘틀림’이다. (옳으면서 동시에 틀릴 수 있는 것이야말로 책의 세계에 어울리는 역설이라고 그는 말한다) “니체의 이 말을, 자기 안에 잠재되어있는 어떤 것을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는 것으로 이해”하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던 어떤 것을 포함해서, 책은 기존의 상식과 주장을 뒤집어엎는 데에 본디 기능이 있다.” 고 역설한다. 책과 관련하여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최재봉 기자를, 또 다른 기자가 인터뷰한 글에서(<한겨레> ‘문학소년 최재봉, 문학기자 최고봉되다’_ 김미영 기자. 2005.12. 26일자 게재)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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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살아남은 자의 아름다움
쥐가 소탕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그’는 쥐를 소탕하는 최전선에 섰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가 전처를 죽이고 주인여자를 칼로 찌른 것은 ‘그’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적(私的)으로 휘두른 폭력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는 유진과의 술자리에서 전처가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지웠다는 얘기를 듣는다. 전처에 대한 ‘그’의 배신감이, 그리고 이 배신감이 도화선이 되어 불붙은 전처에 대한 애증이 오랫동안 ‘그’를 사로잡은 자기혐오의 한계점을 넘어서며 전처를 살해하게 만든 결정적 동기라면, 이 폭력은 쥐를 소탕하기 위해 일삼는 폭력과도, 노숙자들이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감염자로 의심되는 노숙자를 포박해 쓰레기 소각장에 버리는 폭력과도 다르다. 내가 나를 혐오하는 고통이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거울 속 남에게 혐오를 증오로 바꿔 고통을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