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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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생일
생일 전영관 아버지는 청양 출신 삼류 투수였다 쓰리볼 카운트에서 직구로 강판을 면했다 지명타자는 종신직이더라도 허탈함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던졌는데 볼이었다 볼넷이 된 아버지는 1남 4녀라는 성적을 만회하느라 손가락 물집이 그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는 아들 볼은 딸이라는 가부장적 편견도 만담(漫談)이 되었다 투수는 자신이 던진 공을 자식처럼 여겨야 한다는 스포츠 정신도 포함되었다 던진 투수보다 받아낸 포수가 죄인이 되는 시절이었다 빈곤, 실직 같은 백네임 붙인 강타자들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선수는 관중이 자신만 보는 것 같아서 자신을 잃고 그들은 자신의 맥주와 치킨을 즐길 뿐이다 홈런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지만 호되게 맞아 멀리 날려간 공인 것이다 개중 불행한 주인공을 받은 셈인데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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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백로 무렵
백로 무렵 전영관 카페 화단의 칸나가 뭉그러지고 코스모스가 피었으니 꽃이 꽃을 지우는구나 삼복 지나 완경(完經)을 겪은 칸나는 검붉었다 걸그룹처럼 허리를 흔드는 코스모스들을 힐끗거렸다 꽃은 천년 고목에서 피어도 어린 요괴다 철지난 능소화가 망하고 컴백한 가수인 양 어린 척했다 천수국이 교복 차림의 여고생으로 모여 있었다 교실은 크고 긴 플라스틱 화분이다 골목 끝 공원으로 가을 마중 나갔다 손사래치고 버둥거려도 올 것은 오더라 검버섯 피어서 눌은밥 같은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어머니 생각에 마음도 눌은밥처럼 흥건해졌다 노인정 앞에 푸르게 힘찬 잣나무를 심어 드리고 싶었다 청설모도 재롱 피울 것이다 목련 만발했던 봄날에 “내가 몇 번 못 본다고 쟤가 저렇게 애쓰나 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주머니에 손 넣는 습성도 줄이기로 했다 자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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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오후의 크로키」외 6편
오후의 크로키 전영관 골목은 길고양이 울음처럼 여러 갈래로 번식했다 모노레일로 도는 듯한 산책에서 돌아올 때는 나갈 때의 감정을 밟고 와야 한다 폭발하는 청춘이었을 텐데 세상이 다 쓴 부탄가스 같이 시시해졌는지 노인들은 장기판에 몰려 있다 이젤에 야쿠르트 홍보문구를 얹고 있는 여자는 미대 졸업생이었을까 예술에서 상술로 전공이 바뀐 이젤은 당혹감에 시달릴 것이다 어깨 넓은 청년도 아니고 힙 업(hip up)한 아가씨도 아닌 할머니가 체육관 전단지를 내밀었다 여기 안 오면 나처럼 낡는다는 경고인지 근육 같은 주름을 곁들이며 내밀었다 태워 준다면 노년의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히치하이킹인 듯 지나는 청춘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스콘(scone) 부스러기를 터느라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걱정거리가 쏟아진다면 그 부스러기만큼 가벼웠으면 싶었다 양지받이인 카페 덕분이겠지만 살리려고 애썼다가 포기했던 베고니아 이파리가 싱그러웠다 햇빛을 받을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