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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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터뷰-텍스타일 아티스트 정희기 ‘기억에서 멀어지는 대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
정희기는 인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천을 만지게 되었는데, 천 자체가 늘 우리 몸을 감싸고 있기도 하고, 사람과 물 다음에 가장 많이 닿는 게 천이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 자체라고 볼 수도 있고, 조금 과장하면 한 사람의 삶 자체, 신체의 일부에 가까운 물성을 갖고 있으니까 삶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는 소설 속에 ‘도록을 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라고 쓴 대목에 대해서 내 작업을 하면서, 내 가족의 추악한 면을 들춘다거나 모른 척하지 않겠다, 에 방점을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그러했는지 물었다. 정희기 역시 첫 도록을 쓰면서 개인사를 꺼내게 되었는데,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유년 시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게 성장하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덜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유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 결코 단절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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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
그것은 조각조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퍼즐을 맞추듯이 이어 붙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덩어리로, 육체와 분리된 사유가 아니라 그것들의 총합인 몸으로 현현한다.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배제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신뢰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강석원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증거란 언제든 조작 가능하다. 오히려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문학이 추구하는 세계가 바로 그 곳이다. 이성의 언어를 질료로 삼되 이성의 화법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너머를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놓여 있는 문학의 세계다. 그렇다면 정희는 어떻게 그 너머를 드러내는가. 강석원이 구축한 논리의 틈새를 드러내며 상반된 논리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증거는 조작될 수도 불에 타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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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비주류 생존기― 여성의 호명과 자리들
무엇보다 정희 고모의 돌봄은 남성권력 사회와 사법의 정의 윤리가 거듭 타자화한 개인의 삶에 대한 친밀성과 책임으로의 윤리적 실천이자 정의의 실천이다. 어쩌면 “타인의 삶을 찢고 들어가는”(110쪽) 일은 그렇게 구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희 고모의 자리는 ‘정상적 삶’의 문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상’이란 단어야말로 주류의 안전망으로, 그 망을 벗어난 것들은 혐오와 멸시를 배태하며 주변부로 밀려나기 십상이다.8) 정희 고모의 뚝심은 중심부에서 배제된 한 여성의 자리를 끝내 끌어안는 것으로, 생존의 서열을 바꾸는 민주화 투쟁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정희 고모는 “우리끼리의 말”(162쪽)을 찾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고고리 섬에서, 타이프라이터 앞에서 고뇌했는지도 모르겠다. 정희 고모의 타이핑은 속죄로 출발한 정화의식이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이며 조각난 세계를 재배치하는 꾸준한 준비이면서 실천을 위한 구체적 발음들을 담은 사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