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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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 모임 -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김영삼 : 시집의 첫 작품을 읽고 난 후의 인상은 ‘어, 이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소행성이 등장하는 첫 번째 시에서는 사랑과 사람에 대한 불신과 균열이 아주 강하다는 생각이었고요. 다음 시인 「권총과 장미」를 보면 권총의 파괴적인 면과 장미의 아름다움이 갖는 매력이 있는데 그런 것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시를 죽 읽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세 가지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시인에게는 세계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불신. 지구만큼 슬펐다는 구절이 나오는 시가 「슬픔의 자전」인데요. 네 번째 줄에 “반에서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지구만큼 슬펐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지구의 크기만큼 슬펐다. 두 번째는 ‘지구가 슬펐던 것만큼 슬펐다’. 그러니까 애초에 지구가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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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월간 코스모스 6월호 : 특집, 외계문학
옥푸토스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동안 지구에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남용한 범죄자들을 고발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터졌는데 고발된 자들은 일말의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마치 외계에서 온 자들처럼 알아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들을 계속했다. 존재자들은 이에 맞서 연대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들이 손을 잡을 때 저는 뭔가 아름다운 게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있을 때는 없었던 어떤 것이 둘 이상이 되자 갑자기 생겨나더란 말입니다. 나는 그걸 신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요. 그러니까 신이란 건 어떤 순간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더 이상한 건, 그렇게 아름다웠던 게 집단이 되자 갑자기 다시 징그러운 것이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이상한데 하나씩 뜯어보면 아름다워서, 저는 슬펐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지구의 난장판을 지켜본 존재자들은 자신의 후생이 지구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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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오랍 (奥拉)
슬픔은 소년을 쪽팔리게 했다. 슬픔은 아버지란 자가 왜 자식새끼를 죽일 듯 패는가라는 질문을 달고 왔다. 맞고도 그 자리에서 콱 죽지 않는 게 슬퍼서 죽을 만큼 슬펐다. 때리는 몸뚱이도, 맞는 몸뚱이도 맷집이 쎄다는 게 슬펐다. 맞고 사는 게 슬퍼서 가출했다. 세상은 가출한 소년에게 퍽도 다정하게 훈계질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집 나오면 개고생이란다. 가출한 소녀는 순식간에 발라당 까져서 문란해지고, 소년은 세상의 질서를 생까는 양아치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가출한 소년소녀들이 얼마나 가족에 매달리는지 모르고들 하는 소리였다. 오죽하면 가출팸(가출패밀리)이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지겠냐고. 얘들은 시한폭탄 같은 핏줄들이 있는 씨족공동체 가족이 아니라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로 품어 주는 다정한 공동체 가족을 꿈꾸었다. 그런 가족은 영화 세트장에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무엇보다 돈 문제가 걸리면, 서로의 등짝을 보일 새도 없이 흩어지곤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