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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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그래픽노블 이미지 텍스트에서의 색의 의미
심지어 해원이와 산호가 커플 셔츠를 입고 노랑과 파랑의 세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한 그날의 점심 급식 메뉴는 ‘카레’다. 카레는 해원의 노랑, 산호의 노랑과 같다. 누군가는 그래픽노블 읽기를 ‘글과 그림의 춤’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의미의 엇갈림과 합일을 발견하는 것이 그래픽노블을 읽는 즐거움이다. 첫사랑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장면에는 독자를 급습하듯이 또 다른 노랑이 등장한다. 221면의 달걀 프라이 장면은 대표적이다. “오오, 되고 있어!”라는 문장과 더불어 해원의 달걀 프라이가 프라이팬에서 익어간다. 그러나 곧 달걀이 팬에 들러 붙어버리고 독자는 노른자가 터질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해원과 산호의 사랑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무심하게 등장하는 엄마의 핸드백이 노랑인 것은 엄마가 이 사랑을 방해하지 않는, 암묵적 조력자일 것임을 예감하게 만들면서 독자를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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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호텔 해운대
아나운서 출신의 진행자는 정확한 발음과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로 수많은 고정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옆집 언니처럼 사근사근하면서도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적당히 지적으로 보였다. 가끔씩 멘트 실수를 하거나 광고를 잘못 보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귀엽고 사랑스럽게 승화시켰다. 음악퀴즈가 나오면 지각이다. 라디오 방송은 보지 않아도 되는 시계와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광고가 나오고 음악이 흐르며 게스트가 등장했다. 엄마는 왜 아침부터 시끄럽게 라디오를 켜놓았냐며 잔소리를 하지만, 수정에게 그것은 출근준비를 안내하는 사내방송과 같았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땡땡땡 푸른 밤 그 별 아래······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땡땡땡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노래가 나온다. 익숙한 멜로디에 수정은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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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까롭까
선원 두엇이 대령에게 보드카를 먹이고 두 발을 놀려 춤을 추게 만들었다. 셈이 재빠른 요리사가 제 앞으로 우리들을 끌어다 놓았다. 춤이 점점 빨라져 갔다. 눈 속에 눈물을 담고 서서히 두 팔을 올리는 대령의 주변으로 선원들이 한꺼번에 몰려갔다. 어깨를 들썩이며 한 발 한 발 제자리걸음을 하던 대령이 다가서는 이들을 모두 안아 주기라도 할 듯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신이 난 인간들의 춤이 더욱 격렬해지며 대령의 몸 가까이 바투섰다. 갑판 위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대령의 가지에 목화 봉오리가 만개했다. 그 봉오리 위에서 대령의 목이 툭, 떨어졌다. 인간들이 더욱 요란한 춤을 추며 몸에서 막 뿜어져 나오고 있는 핏물을 짓이겼다. 목화 봉오리가 서서히 핏물을 머금었다. 그 위로 대령의 의자에 걸터앉은 흰 손이 하얗게 겹쳤다. 나는 뚜껑을 활짝 열고 그들의 춤이 잦아드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대령의 배는 돌아오지 않았고, 바다로 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