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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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강연록] 이성의 등뼈
《한낮의 어둠》에서도 주인공 루바쇼프와 심문관 이바노프가 이에 대해 격론을 벌였는데요, 이 이야기를 잠시 되짚어 볼까요? “멋진 검은 눈동자에 짙은 아맛빛 머리털을 가진 미남으로 약간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으며, “훌륭한 품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지적으로 성숙한 청년” 법학도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왜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던가요? 물론 표면상으로는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가난에서 구하고, 못 다한 학업을 끝마치고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 범행을 했지요. 하지만 이면에는 보다 심각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여 나쁜 방법으로 모은 그녀의 재산을 자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게끔 학비로 사용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 덕분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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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원피스인문학 ― 와포루, 빅 맘, 사카즈키, 호디와 ‘악’
'우걱우걱 쇼크'라는 기술은 먹어치운 것들을 자신의 몸에 구현하는 기술이며(대포를 먹고 손이나 입을 대포로 변형시키는 식이다), '우걱우걱 팩토리'는 먹어버린 것들을 자신의 체내에서 합성시키는 기술이다(이 기술로 두 부하인 '체스'와 '쿠로마리모'를 '체스마리모'로 합쳐버렸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 과정은 '배설'에 불과하다. 체내에서 음식은 분자 단위로 낱낱이 분해되어 재활용된다. 산출이나 합성은 꿈도 꿈 수 없다. 마침내 그는 그 자신을 먹어치운다. "으윽! 요새 좀 쪘나! 그럼 이러면 되지! 우걱우걱 팩토리! 날 먹는다!" "우거우걱! 꿀꺽!"(와포루, 17권 150화) 그러고는 입만 남기고 제 몸을 먹었다가 다시 입으로 날씬한 몸을 토해 낸다. 이 장면은 그리스 신화의 에뤼시크톤, 힌두 신화인 키르티무카를 떠올리게 한다. 허기를 못 이겨 자기 자신을 먹어치운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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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헤어짐을 짓지 않기로
반면에 5월 광장에서 스크럼을 짠 학생들의 집단노래는 “숭고한 심장”들의 힘찬 박동과도 같다. 역행하는 정치와 폭압의 발생지를 향하여 낮은 자리에서 상부로 역류하는, 밀물 같은 힘이다. 하지만 군인의 “진압이 거칠고 신속했기 때문에, 한 곡이 끝까지 불리는 일은 없이”(86쪽) 노래는 도막 난다. 한 덩어리로의 결속은 더디고, 총탄은 그것을 신속히 흩어놓는다. 시민들의 애국가와 군인의 애국가가, 시민들의 나라와 군인의 나라가 동일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점으로 총탄이 날아든다. 작가가 묻는다. 군인들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17쪽) ‘나라’라는 안전과, 군부의 명령과 폭력 사이에 숨은 권력에의 의지, 그리고 그 저지선에 위치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양심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쪼갤 수 없는 생명 덩어리로서 심장과, 국가라는 집단 구성체의 상징물인 애국가를 등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