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남은 그림자
그러고 보니 오늘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시계를 봤다. 변호사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라도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 어쨌거나 나 역시 열성적인 촛불 시민이었으니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탄핵 심판 결과가 방송될 전광판 앞에 섰다. 오전 11시 21분. 광화문에 세워진 전광판에 탄핵을 인용한다는 판결이 뉴스로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온 거리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한때 광장을 뒤덮었던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환호하지 못했다. 대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저 거대한 승리는 나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일까?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에도 은경 씨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회사 건물을 돌아봤다. 멀리 검은색 빌딩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짙은 그림자 또한 드리워져 있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미래가 열렸던 시간들을 위해
그것은 초유의 탄핵과 선거를 통해 ‘개혁 정권’을 창출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그라져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 몇몇 그룹과 담론들이 그때의 해방적 에너지를 매우 축소한 채 나눠 가져 버린 듯하다. 이른바 ‘문빠’로 불리는 맹목적인 팬덤 정치와 ‘공정’의 요구가 그것들이다. 양쪽 모두 너무 깊은 뿌리 때문에 제도적 민주화 이후로도 제거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락을 떠난 시적 발화가 진리성을 잃어버리듯, 팬덤과 공정 역시 이내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에 명확한 한계를 지우는 기능을 수행했다. 팬덤 정치는 촛불로 일궈낸 정권을 무한 긍정하는 태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촛불의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에세이] ‘흔적’이 아닌 ‘숨결’을 느끼다. – 이문열의 부악문원
최근 탄핵정국과 맞물리면서 이문열의 정치적 발언이 화제다. 누구는 시류에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치켜세우고, 누구는 대작가의 씁쓸한 말로를 지켜보는 것 같다고 한탄한다. 이문열 자신, 침묵이야말로 자신의 문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직성’ 내지 ‘결벽성’을 상기한다면, 내면에서 샘솟듯 분출하는 ‘말’을 세상에 토해내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위선과 거짓이 된다. 그에게 침묵은 절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진보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파에게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진보적 우파라고 위치지은 바 있다. 여기서 ‘진보적’이란 ‘합리적’이라는 말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좌우 경쟁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듯이, 문학계에서도 두 성향간의 균형점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껏 작가 이문열은 그 한쪽의 축을 홀로 지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