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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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나는 비평가다, 고로 나는 비평한다
타건하려면 먼저 손을 들어 올려야 하는데, 이때는 피아니스트와 초보자 모두 팔꿈치를 구부리는 근육(위팔두갈래근)을 수축시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서 차이가 났다. 초보자는 팔꿈치를 펴는 근육(위팔세갈래근)을 수축시켜서 팔꿈치를 펴고 건반을 두드리지만, 피아니스트는 팔꿈치가 펴지는데도 근육(위팔세갈래근)이 수축하지 않았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피아니스트의 경우 팔꿈치가 펴져 있는 동안 팔꿈치를 구부리는 근육(위팔두갈래근)이 이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피아니스트는 손을 들어 올리기 위해 수축했던 알통을 이완시킴으로써 팔을 중력에 맡긴 채 낙하시켜서 타건하고 있었다.(173쪽) 저자는 이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말하자면 피아니스트는 근육 수축을 위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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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가을의 곡선
직접 전화해 보라고 하니까 밤에는 전화 못 해서 낮에 하는데 안 받으신다고.” “왜 밤에 못 하는데?” 직원이 진송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희한테 그러셨잖아요. 밤에는 회사 일 아니면 연락 안 받는다고.” 홀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리허설 중인 모양이었다. 진송은 살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객석 맨 뒷줄에 조용히 앉았다. 크리스티안은 베토벤을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그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코다까지 나아갔다. 마지막 음이 끝난 뒤 그는 물을 마시고 나서 한동안 천장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다가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치웠다. 피아니스트가 메트너의 회상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진송은 연주회 팸플릿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회상 소나타는 ‘잊힌 멜로디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모음곡 중 첫 곡이다. 메트너는 이 작품을 1920년,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떠나기 전 해에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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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삶이 지니는 신비한 역동성의 탐색
서영은 저야말로 아주 본질적인 차원을 다루고픈 페미니스트죠. 페미니스트는 여성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여성성을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성성이라는 것이 표피적인 페미니즘하고 어느 부분에서 상충하는데, 사회적 제도를 우선시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편협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남성과 여성이 대립해야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죠. 여성이 자기의 평등권을 쟁취하려면 남성보다 우위에 섰을 때 가능한 것처럼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어요. 평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존’입니다. 찢겨진 세상의 육신을 꿰매는 여성성 신영철 협소한 범위의 페미니즘을 넘어서서, 결국은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상생을 원하신다는 말씀이시죠? 서영은 상생뿐만이 아니지요. 여성이 끌어안는 힘은 대지적 힘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