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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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한강 외 1편
한강 이소연 거기선 아무도 새들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몰려다니며 바지에 흙을 묻혔다 스무 살의 한강에선 좀 더러운 일이 많았지 따귀를 처음 맞았고 목을 졸렸다 고환을 걷어차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 콩콩콩 뛰는 걸 보면 작고 푸른 곤충 같아 나를 죽이려던 사람이 맞을까?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일은 더러운 일이어서 나는 자주 손을 씻었다 신호등은 나만 보면 빨간 불 사람들은 나만 보면 화를 내 나는 왜 때리는 놈만 만날까? 새의 안부가 궁금하다 삶이 잠깐 멈춘다 사과 썩는 냄새가 났다 바다에 살던 고기가 강에 와서 죽어 있다 언젠가 내가 버린 것들이 생각나서 그게 깜박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올까 봐 애인의 낡은 벨트가 물뱀처럼 돌아오거나 커다란 손바닥이 강가를 치며 돌아올까 봐 바다를 미리 보고 슬퍼하는 나는 조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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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한강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
우리의 삶도, 한강의 소설도, 그러므로 아무것도 완결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길 위에 있고, 진실은 길 위에서만 드러난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 가라』는 한강이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걸어왔는가를 증명한다. 더딘 걸음이어서 그녀가 얼마나 걸어갔는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면, 이 소설을 읽을 것을 권한다. 2010년에도, 한강의 바람이 분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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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한강대교 북단에서 남단 방면 여섯 번째 교각에서
한강대교 북단에서 남단 방면 여섯 번째 교각에서 주영중 당신의 얼굴은 범람의 흔적이 묻어 있다 아니 당신의 연주는 범람의 흔적이 묻어 있다 아니 모든 게 사라지고 어느 순간 당신의 기타에 범람의 흔적이 묻어 있다 아니 당신의 기타 소리에 범람의 흔적이 묻어 있다 ─ 로이 부캐넌(Roy Buchanan), ?The Messiah Will Come Again? 에 대한 불가해한 변주 얼굴에서 막 떠난 얼굴이, 무한의 기울기로 잠긴다 공중에서 잠시 정지한 물방울들, 격전을 위해 아주 잠시 조준점을 정렬하고 각도를 바꾸며, 하늘을 뒤덮는 그 무수한 점들 홍수 통제소의 긴박한 움직임과 잠수교의 수위, 그리고 이런저런 댐들의 범람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전하던 노란 우비를 입은 리포터, 노랑은 위험 노랑은 순수, 노랑은…… 범람, 강이 게워낼 노란 토사물들, 뒤집힐 퇴적물들, 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