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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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일본 소설, 한국 시
그럴 때면 “한국시는 사회성이 강하고, 인간의 보편성을 노래하는 시가 많아서, 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고, 가슴에 스며들기 때문”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현재 한국의 현대자유시는 일본에서 하이쿠, 와카, 단카, 센류 등, 전통시를 모두 합한 것과 같은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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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과잉 남성 사회
사회생활의 원리를 정치적 행위와 ‘대표성’의 문제로 의미화해 본다면, 면접관이 찬휘를 향해 꼭 젊었을 적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과 그 ‘과찬’을 “선배님이 더 미남”이라는 말로 돌려주는 찬휘의 대응은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론에 가해지던 또 하나의 비판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청년’세대론이 단순히 ‘남성’의 모습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기성이 한국 사회의 위기에 대한 정치적 필요와 기대로서 ‘청년’을 소환한다는 일관된 주장은 구체적인 ‘남성들’의 얼굴과 만나면서, 보다 더 문제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즉 ‘청년’(아들)은 보편이 아닌, 특정한 집단과 세력(아버지)의 필요에 의해 부각되고 제시된 담론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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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사회적 규범과 폭력
사회는 재일 조선인이라 말하고 스스로는 일본인이라 여기는 모순 속에서 사츠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온 경아를 본가로 부르지 않고 본가 근처 긴자 숙소에 머물게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제 “선명하지 않은 무언가”의 정체에 대해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경아와 사츠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사회적 규범이다. 두 사람이 지닌 한국인 그리고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사회적 규범이 부여한 제약들이 그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한국에 입국할 수 없는 사츠케와 한국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경아는 자신들이 가족이 되어 함께하는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미래, 사랑, 국적, 결혼”(194쪽)을 금기어로 삼아 “선명하지 않은 무언가”를 외면한다. 문제는 이렇게 “선명하지 않은 무언가”를 외면하는 동안 사츠케가 자신이 겪고 있는 폭력과 같은 방식의 폭력을 경아에게 행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