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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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현대시 외 1편
현대시 김산 무언가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공기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고 인파 속에서 고갤 갸웃거렸다 그는 불행히 발견되지 않았다 고로, 어떤 발생도 하지 않았다 모든 빛은 그늘이 남긴 배경이므로, 명백한 저녁을 그린 화가는 없다 실패한 비닐 창문의 구도 사이로 바람의 궁극을 윤문하는 한 마리 새 날개는 결국 장식적이고 현학적이다 그는 쓸데없는 안부를 생략한다 공장 굴뚝은 비약하는 고체의 빗줄기 안개의 기록은 이제 그만 하기로 한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 어떤 그림은 도저한 패국을 완성한다 우체국 직원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퇴근 무렵의 종이박스는 딱딱한 표정이다 몰락을 그리는 화가는 흔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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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주먹왕 - 현대시 외 1편
주먹왕 김산 그의 주먹은 크다. 엉덩이보다 크고 머리통보다 크다. 리어카보다 크고 사장님 흔들의자보다 크다. 마트의 반쪽짜리 수박보다 크고 아프리카코끼리가 싸놓은 똥 무더기보다 크다. 그는 주먹을 버스 손잡이에 넣었다가 목적지에 내리지 못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의 주먹은 어디든 들어가지만 어디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윽고, 그는 주먹을 먹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건초 더미에서 말라 가는 죽은 개똥벌레 맛이 났고 어떤 날은 오래된 서랍 속의 지우개 맛이 났다. 그는 주먹을 쥔 손을 풀고 주먹이 되는 과정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게 했던 어떤 완력이 공기 속으로 분해되었다. 공기는 어떤 슬픔과 분노로 가득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다시 주먹을 천천히 쥐자 세계는 지극히 고요해졌다. 인도 위로 내달리는 불닭집 배달 오토바이의 주먹은 어떤 시간을 그러쥐고 있는 것일까. 주먹을 펴고 담배를 문 손가락 사이로 비로소 주먹의 온도가 흩어진다. 참았던 주먹을 펴자 온 세계가 먹구름이다. 그가 주먹을 펴자 비가 내린다. 당신은 샅이 부러진 우산을 그러쥔다. 주먹을 불끈 쥐고 횡단보도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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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유(引喩)에 대하여
“사이가 배지 아니하고 뜨다”라는 뜻이라는 주장이다. ③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지 않고 두 가지 의미를 다 인정하는 견해 1) 김학동(『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 295면) : ‘듬성듬성한’ 또는 ‘뒤섞여 있는’으로 보고 있다. 2) 김재홍(『한국 현대시 시어사전』,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618면) : ‘하늘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별들이 섞여 얼크러져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해방 후 발행된 『지용시선』에는 ‘드문드문’이라는 뜻으로 ‘성근별’로 표기돼 있다고 덧붙이고도 있다. 3) 이희중(『현대시의 방법 연구』, 월인, 2001, 197면) : ‘성긴 별’이거나 ‘섞은 별’이거나 꼭 이 구절에서 어느 하나이어야 하는 조건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