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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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책들의 전쟁
허균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쓰기 전에 많은 한문소설을 읽었는데, 그중 『삼국지연의』의 가치를 최고로 친다. 『수호전』은 간사하고 책략이 교묘하다고 본받을 책이 아니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서유기』는 불교적 색채가 강해서 억불숭유 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에는 암암리에 금서 정도쯤 대우받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 홍명희는 『수호전』을 좋아한다고 했다. 홍명희는 왜 『삼국지』 대신 『수호전』을 내세웠을까? 『삼국지』는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지배하는, 또는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반면, 『수호전』은 바닥의 백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겠다. 『수호전』을 흉내낸 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이라고 벽초의 가치를 내려깎는 이들도 있다. 『수호전』과 『임꺽정』 비교 연구는 한때 유행이기도 했다. 같은 이야기도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에 따라, 이야기가 굴절되고 만들어진다. 『삼국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 ‘486작가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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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한시적 가족
광산촌 출신답지 않게 매끈한 피부와 동안(童顔)을 자랑하는 홍일점 여인 박은 십여 년 만에 찾아간 고향집과 폐광촌이 돼버린 마을 얘기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그녀는 아이스께끼 회사 공장 사장 딸로 부유한 가정에서 공주처럼 자라던 어린 시절 얘기를 즐겁게 회상했다. 홍일점이 아니었더라면 빈축을 살 수도 있을 만큼 화려한 이야기였다. 웃기고 짠하고 찡한, 온갖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수업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여튼 책상물림 작가의 깜냥이란…….’ 그런 자조의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나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멍석만 대충 깔아 놓으니 수업은 그들에 의해 잘 굴러갔다. 그들은 할 말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그 수업에서 유일한 학생은 나였던 셈이다. 글감만 약간씩 바뀌었을 뿐 수업은 내내 그런 식이었다. 한 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쓰고 이야기하면서 한시적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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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간의 부드러운 손에 떠밀려
대본점에 가서 돈 얼마씩 내고 삼국지 번역본을 빌려서 본다든가 이광수의『흙』이나, 홍명희의『임꺽정』을 빌려서 본다든가 했어요. 그런 데서부터 책을 읽으면서 사실 문학 공부를 어디서 배웠다기보다는 혼자서 한 거고 좋은 선생님들에게서 여러 가지 과목을 배웠지만 문학을 누구한테 가서 사사했다든가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문학은 나 혼자 공부한 것이고 배웠다든가 깨달았다면 독일 문학의 현장에 가서 깨달은 것일 텐데요. 내가 우리나라에서 독일 문학을 할 때 아까 스테판 게오르게나 카프카를 했다라고 했는데 그게 다 어려운 작가들이에요. ‘독일 문학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통감을 했고 그 당시에 우리나라 문학 작품 가운데 특히 시 쪽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현실 생활이 아주 힘든 때라 현실 상황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의외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가 많이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