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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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분야 창작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1차 좌담회
참여자 / 황규관 전주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제철소에서 일하며 쓴 시로 전태일문학상을 받고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다. 시집 『철산동 우체국』, 『물은 제 길을 간다』,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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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황규관 한 서너 발자국 멀어지는 일이 당신의 영혼에 가시 울타리를 치는 잔인한 짓이었으면 좋겠다 태풍은 곧 도착하겠지만 휘몰아치는 건 바람이 아니라 싸늘한 불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알아도 안다는 사실을 다 잊을 때 어리석음도 또한 뜨거운 현기증, 당신과 떨어져 있는 지금이 메우지 못할 심연이라면 나의 언어는 머지않아 무너질 테고 당신의 아픔은 끝내 아물지 않을 것이니 내일, 새벽이 번하게 밝을 것이다 허무는 더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그 광휘의 흑점에 눈을 맞출 때 두어 발자국 더 돌아선 내 마음은 당신의 상처 위에 번지는 바람 같은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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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금강경을 옮겨 적다
금강경을 옮겨 적다 황규관 결국 직장에서 팽개쳐지고 밤마다 금강경을 옮겨 적는다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은밀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라면 너무 늦은 일일까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지금껏 내가 보아온 게 모두 허상임을 안다면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다는데 아침에 일어나 다시 뒷산을 걸어도 떡갈나무야, 나는 아직 아는 바가 없구나 분노보다도 슬픔에 익숙해진 이후라야 혼자 길을 갈 수 있을까 가난, 사랑, 바람, 잎사귀, 자벌레 이런 뭉게구름 같은 말들에 마음은 가는가 옮겨 적은 말씀이 가벼웁다 미워하되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되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일 아직 아득하고 괴로운 일이니, 오늘 밤에는 한 줄 더 옮겨 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