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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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최종회
어쩌다 황사가 없는 겨울 하늘을 보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을 너는 모를 거야. 이젠 겨울에도 황사가 온다, 난 정말 황사는 싫은데. 몸속에 먼지가 켜켜이 쌓일 것 같잖아. 내 몸이 먼지에 갇히는 기분, 정말 좋지 않지. 늘어진 검은 자루 같은 내 몸이 병실 창 안에 갇힌 채 안타깝다는 얼굴로 병실에 있는 나를 넘겨다보고 서 있단다. 나는 이제 늙은 것 같아. 가만히 서 있으면 귓속에서 그런 소리들이 왕왕 들려왔어. 그래 나는 맹렬하게 늙어 가고 있는 중이지. 얼굴 한가운데를 차지한 이마의 굵고 깊은 주름 세 개를 보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아. 압도적인 젊은 층의 지지로 당선됐던 전직 대통령의 얼굴 주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는 내 운명을 대통령과 같은 수준으로 포장하곤 했단다. 얼굴 윤곽을 전체적으로 망가뜨리는 흰머리칼 때문에 순간순간 뿌옇고 바보 같은 얼굴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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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동탯국
황사는 눈에 섞여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보이지 않으면 느끼지도 못하는 미세 먼지들처럼 ‘혹시’ 아무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나는 창을 활짝 열고 머리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봄의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 얼굴 위로 눈송이들을 올려놓았다. 저절로 한숨을 쉬게끔 만드는 바람이었다. 4월에 눈이라니, 이제는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커졌다. — 와, 저거 봐라. TV 속 광장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적어도 100만은 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고 있다고 자막은 전했다.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기자가 소리쳤다. 앵커는 국민 여러분을 외치고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전경들이 열을 맞춰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흔히 예상하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다. 다만 모여서 서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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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장풍의 역사
나랑 같이 저기 안 다닐래? 하필 그 찰나에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왔을 중국산 황사가 작은 회오리로 불어 닥쳤고, 그래 봤자 고작 잎사귀 몇 개 떨어뜨리고 말 양의 바람에도 우리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혀끝에서 문득 잘게 부서지는 씁쓸하고 텁텁한 흙 맛을 본 탓이었다. 그 미세한 흙 알갱이들은 언제 입 속에 들어온 것이었을까. 맞는다는 건 윗니와 아랫니의 맞물림을 끈질기게 방해하는 모래알 같았다. 밥알 속의 돌멩이처럼 이젠 괜찮겠지, 방심하는 순간 씹게 마련이었다. 생선살을 씹을 때마다 목구멍에 꽂혔던 가시의 통증이 되살아나듯 쉽게 잊히지도 않았다. 사실 제대로 맞은 것은 한 번뿐이었다. 그 뒤로는 내내 맞지 않느라고 힘들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애들은 A동에 살았다. A동은 C동보다 세 배쯤 넓었다. 절반 남짓쯤 되는 B동이라면 모를까, C동 아이는 A동 아이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B동이라고 해서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