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아름답던 그 날, 아름답던 그 사람들 : 배삼식 『화전가』
희곡 속에서 죽은 기준을 상징하는 것도 다름 아닌 종소리다. 김 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딸들이 모두 모이는 날, 김 씨는 바람결에 문득 종소리를 듣는다. 마치 먼저 세상을 등진 기준이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듯 느껴지는 대목이다. 희곡 속 인물들 중 김 씨 혼자서만 경험하는 이 청각적 환상은 이 희곡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또한 희곡 「화전가」를 통해 작가가 독자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려 하는 기억은 비단 사람에 대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화전가」에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거의 잊힌 한국의 옛 풍경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나는 극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희곡을 한 번이라도 써본 작가들은 좋은 시와 좋은 소설을 쓰는 것보다 좋은 희곡 한 편 써내기가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직접 몸으로 겪어 봐서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 시와 소설에 매진하다가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맛 본 말년에서야 희곡 창작에 손대는 것도 희곡이 재능만으로 쉽게 쓰여질 수 있는 쉬운 장르의 문학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체험과 인물에 대한 진정성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문학임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단언해서 말한다면 희곡 쪽에도 시와 소설에 견줄 만한 뛰어난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작가들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대부분 숨어 있다.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극작가들이 모두 실력 있는 작가들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상을 많이 받은 작가들이 훌륭한 작가라고는 더 더욱 말하기 곤란하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첫번째 이야기
모든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희곡 창작에 무슨 정답이나 모범답안에 가까운 극작술이 존재하겠는가. 때로는 시 같은, 소설 같은, 수필 같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영화나 구성사진과도 같은 희곡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연극계에 진실로 더 필요한 희곡들은 바로 그러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작품들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최명숙의 희곡 역시 지금까지 존재해 온 천편일률적인 작품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출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비유하자면 머나먼 외계에서 지구로 막 도착한 비행접시와도 같은 낯선 희곡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 낯선 외계인을 친숙한 벗으로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외계 생명체를 사랑하는 열혈독자 지구인들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