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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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능소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틈만 나면 구두를 벗고 두 발을 어루만지며 발과의 행복한 귀향을 꿈꾼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어 왁자지껄한 잡답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마음 사랑만한 수고로움이 어디 있으랴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 지쳐 끝날지도 모르는 일 마음속 하늘 치솟은 처마 끝 눈썹 같은 낮달 하나 걸어 두고 하냥 그대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 미련하다 수고롭구나 푸른 가지 둥그렇게 감아 올리며 불타는 저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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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시월,궁남지
시월, 궁남지 강은교 시월, 궁남지에 가면 보아 두게 시드는 것의 위대함을 지는 것의 황홀함을 저무는 것의 눈부심을 푸르르 푸르르 어둠이 오는 소리 들어 두게 보아 두게, 애인은 찬란하다 순간은 찬란하다 절망도 찬란하다 궁남지에 가면 보아 두게 구불거리는 길로 가는 한 사람, 저물녘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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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童話
童話 장석남 산으로 가면 무지개를 만드는 공장이 나오지요. 님을 만드는 공장이 나오지요. 재를 삼킨 하늘 아래 꽂감을 숨긴 호랑이가 나오지요. 정관수술을 하고 산 속 집으로 가던 홀아비는 오랜만에 삼겹살을 사고 상추를 뜯어 행궈 입이 터져라고 싸 먹으며 허공만 바라보죠. 산으로 가면 무지개 공장이 나오지요. 님 공장이 나오지요. 재를 삼킨 하늘 아래 꽂감을 숨긴 호랑이가 나오지요. 허공을 낳는 허공이 나오지요. 《문장웹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