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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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무와 나 나무 나
나무와 나 나무 나 김지녀 잎이 돋을 때였다 잎들이 다 떨어질 걸 알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나무, 를 불렀다 새들이 날아갔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나무와 나 나무 나무 사이에 나뿐이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무, 가 된다는 상상이 문학적으로 실패란 걸 알지만 나무, 가 된다면 적어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나무와 나무 나 나무 사이에 나무는 나와 아는 사이 안경알을 닦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잎들이 더 넓어졌다 하늘이 조금 보인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이 장면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무와 나무 나무 사이에 나 나무가 흔들렸다 언제 와 앉았는지 새들이 또 날아갔다 나무, 라고 불렀지만 나무를 말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바닥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나무를 천천히 만졌다 손끝에서 얇은 가지 하나가 쑥 돋아났다 기차가 떠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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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닭과 나
닭과 나* 나희덕 닭과 나는 털이 뽑힌 닭과 벌거벗은 나는 함께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오그라든 팔로도 만질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듯 말라빠진 다리로도 걸어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듯 닭에게 두 날개가 있다면 나에겐 두 유방이 있지요 퇴화된 지 오래이거나 조금은 늘어지고 시들긴 했지만 날개와 유방은 우리를 잠시 떠오르게 할 수 있어요 시간을 견디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힘이지요 닭과 나는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고 서로의 손발이 되어 주고 서로의 바닥이 되어 주고 서로의 방주가 되어 주고 서로의 뮤즈가 되어 주고 서로의 비유가 되어 주고 나의 머리가 점점 닭벼슬에 가까워져 갈 때 닭의 목은 점점 나의 목처럼 굽어져 가지만 닭과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서로를 태우고 앉아 같은 곳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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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1과 나
1과 나 진은영 월요일의 별 화요일의 스프 너는 빨간 광장 빨간 달걀 상자 속의 날갯짓으로, 나는 검은 삼각형 검은 수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