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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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여름날
여름날 이도원 여름날 대학교 강의실 설계하는 꿈꿨다. 매트릭스처럼 건물을 쌓을 수 있다고 믿었다. 미로 속의 미로 속의 미로 같은 것을 위하여. 늙은 교수 칠판 아래로 침 흘렸다. 분필은 휘어지거나 선풍기는 육면체 같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내가 본 것을 어떻게 말할지 몰랐다. 은희분식 옆에 소나무가 아치형으로 선회하자 그것은 허공(虛空)이었다. 여름날 아파트 층계 오르며 가벼움 있었다. 숏컷 헤어 찰랑이던 이모의 미역국 형태가 없다. 여름밤 댄스파티 참석한 십대들의 자살소동 뉴스에 나오고. 장례식장 입구에서 나는 희망을 선고(宣告)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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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나츠(まなつ)
마나츠(まなつ) 이도원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종로에서 길을 잃었던 과거(科擧) 공사판 소음에 구분되지 않던 현실(現實) 팥빙수 포장하며 보았던 공원의 노인(老人) 바둑알 미끄러지는 여름의 장면(場面)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편의점 앞에 아이스크림 고르는 초등학생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六) … 잠자리채로 체육교사 목덜미 잡고 애정을 갈구한 기억(記憶) 운동장에서 물로켓 발사하다가 잃어버린 미래(未來) 수돗가 뒤편으로 바보처럼 도망치다 하의가 벗겨진 친구(親舊) 초여름 새엄마와 열무국수 먹으며 시큼한 침묵(沈默) 여름방학(放學)과 면접용 양복(洋服) 식당 테이블로 날아드는 파리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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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아귀
아귀 이도원 분갈이를 한 나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파리 끝이 누렇게 마르고 축 늘어져 있다. 제법 굵어진 잔뿌리를 반으로 갈라 두 개의 화분으로 나누어 심었던 것이 한 달 전이었던가, 그보다 더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햇빛이 오는 방향에 따라 화분의 위치를 옮기고 적당한 양의 물을 주어도 보고 영양액도 맞히며 애썼지만 나무는 좀체 생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굳이 파혼한 아들과 별거한 나를 결부 지을 필요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념을 욕망하는 사람처럼 나는 화분 앞에 심란하게 쪼그려 앉아 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베란다에서 나와 거실을 지나 식탁 위에 던져 둔 휴대폰을 집어 들어야 한다는 것이, 잔뜩 흙이 묻은 손을 닦아야 하는 것도 귀찮아 여러 번 벨이 울리는 것을 모른 척하다가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났다. 대도시의 제방공사 현장을 찾아간 아들에게서 걸려 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