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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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최고의 사랑
더구나 이 시각에 나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낼 사람이라면, 스팸문자가 아닌 이상에는, 개학날이 내일이라 집에서 뒹굴뒹굴 놀고 있을, 오늘 저녁 수학 과외수업 때 만날 예정인, 속눈썹이 길고 보조개가 예쁜 한결이밖에 없는 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살짝 꺼내 폴더를 열었다. 오늘 숙제 뭐야~~~ 담임 눈치를 보면서 답신 보낼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담임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우리 반 아이들 전체와 일일이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또 드르륵....... 뭐야... 씹는 거야... 예쁜 아이들은 이렇게 인내심이 없다.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 제가 놀고 있으면 남도 노는 줄 안다. 저는 제 맘대로 내 문자를 씹으면서, 내가 씹으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세모눈을 하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을 한결이 얼굴이 떠오른다. 프린트 풀기 얼른 고개를 들고 시침을 뚝 떼려는데, 또 드르륵. 익힘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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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역(逆)겨워’와 ‘역(力)겨워’의 거리
이 작품들에서 그려진 사랑은 한결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 애절함이 더욱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감정은 더욱 낭만적인 빛깔로 채색되었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과 감정이 낭만적일수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은 더욱 커졌다. 이렇듯 낭만적인 사랑의 분위기가 흘러넘치던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려 한다는 「진달래꽃」의 표현은 매우 파격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표현이 가능한 상황을 굳이 유추해 보자면, 도시의 신문물을 접하고 신여성의 매력에 눈을 뜬 기혼 남자가 구시대적인 용모와 풍습에 젖어 있는 본부인을 떠나려 할 때를 가정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1921년 3월의 《개벽》에는 <최근의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을 다룬 글이 실려 있었다. 재판소에서 사건접수 기록을 보면 이혼사건이 반수(半數)나 점하였으니 남녀의 교육이 균일치 못하고 조혼의 악습이 전래하여 오던 오늘날 조선 사회에는 피치 못할 일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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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열여섯, 우리들의 타화상 [1]
다시, 베르테르와 재준 잘 알다시피 베르테르의 슬픔 또는 괴로움(원제의 Leiden은 괴로움에 더 가깝다)은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에 대한 사랑, 즉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비롯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편지 곳곳에서 그의 괴로움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른바 합리성으로 무장된 17세기 독일 시민계급의 규범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다. 한 아름다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가 로테의 남편이자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 알베르트의 권총으로 자살한 것도 상징적이다. 그러나 재준의 죽음은 오토바이 사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토바이라는 아이콘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청소년들의 오토바이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과시와 집단행동의 수단이자 욕구불만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청소년의 자기 표출 수단 중의 하나가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