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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_장르소설] 해빙기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해빙기 강경탁(필명 : 알레프) 크로스아이는 문득 빼앗긴 연인, 비비안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남반구의 지배자, 강대한 레비아탄을 떠올리자 상처 입은 겹눈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오래전, 비비안을 빼앗기던 날 레비아탄의 부하들에게 당한 것이다. 그 일로 크로스아이의 왼쪽 눈에는 보기 흉한 십자모양 흉터가 남았는데, 그게 그가 크로스아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비비안에 대한 그리움과 레비아탄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던 크로스아이는 이윽고 티타늄 합금으로 된 거체를 일으켰다. 육중한 몸체에 쌓여 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오랜 휴면기를 가졌기에 활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몸 안의 영구 동력로가 가동하면서 막대한 열을 뿜어냈다. 주변의 눈을 전부 녹여버릴 정도였다. 크로스아이 주변에 직경 5m가량의 맨땅이 드러났다. 만 년 동안 맨살을 보인 적이 없는 처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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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_시] 내 발가락 속에는…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 내 발가락 속에는… 김은희(필명 : 위나) 내 발가락 속에는 뭔가가 있지 오른쪽 엄지발가락 안에는 작은 종을, 왼쪽 엄지발가락 안에는 솜털 구름을, 꼭꼭 숨겨 두고 있지 오른쪽 엄지발톱은 빨간색 매니큐어를, 왼쪽 엄지발톱은 파란색 매니큐어를 발랐지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기고 덮어 뒀지 내가 걸을 땐 종소리가 흘러나와 내가 걸을 땐 구름처럼 몸이 가벼워 햇빛보다 먼저 눈을 뜨는 아침에 구름처럼 가볍게 일으켜 세워 주고 달빛보다 늦게 잠드는 까만 밤에 은은한 종소리로 나를 재워 주지 세상은 나의 종소리를 듣지 못해 구름처럼 들뜬 나를 알아채지 못해 언젠가 내가 지구 반대쪽 노을의 끝을 여행하게 된다면 내 발가락 속 종소리는 파란 하늘 가득히 물결치고 내 발가락 속 구름은 붉은 노을 사이로 피어오를 거야 내 발가락 속에는 뭔가가 있지 꼭꼭 숨겨 두고 오늘도 노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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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_소설] 1995 무너진 식탁
[2014년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 ] 1995 무너진 식탁 김선욱 (필명 : 기운우) 그는 정말 자살을 시도한 걸까? 이 이야기는 20년 전 어느 부자에 얽힌 이야기다. 우선 이 이야기가 허구가 아님을 밝힌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술을 한잔 걸친 날 할아버지는 집 안에 주인이 들어왔으면 전부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로 시작하여 오늘 아침에 끓인 된장찌개에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등등의 특정인물과 전체를 아우르는 세심한 잔소리를 마치 잘 외고 있는 연설문을 읽듯 늘어놓는다. 아빠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은 이런 상황에 대체로 여유로운 편이다. 술이란 평소 품고 있던 불만들이 쌓여 있는 크레모아와 같은 대인지뢰의 뇌관을 건드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누구든 술 취한 폭탄 앞에 서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건 지뢰의 특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