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 목포의 빛, 봄날의 길
- 작성일 2014-05-14
- 댓글수 0
[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목포의 빛, 봄날의 길
― 목포 문학관에서(임철우 소설가, 서영채 평론가)
이은선(소설가)

“꽃이 핀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봄꽃이 끝나는 곳에 목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문장으로 목포 문학관에서 열린 〈백년의 봄, 죄의식을 응시하다〉를 시작했습니다. 봄꽃이 한창이었고, 때마침 식목일이었습니다. 예년보다 보름은 일찍 피었다 진 꽃들을 곳곳마다 기념하는 축제의 행렬로 전국의 도로가 꽉 막혔고, 목포에서도 역시 ‘꽃 축제’가 열리던 때였습니다. 강연을 위해 버스를 타고 오던 서영채 선생님으로부터 “30분쯤 늦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전화를 받은 다음이었지요. 목포는 물론이거니와 해남과 서울, 전국 곳곳에서 오신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고, 그 전날 막차를 타고 내려와 유달산에서 밤을 보냈거나, 첫 차를 타고 내려와 이 시간만을 기다린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선후배들이 행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여 명쯤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이미 이백여 명이 넘게 와 있던 시간이었지요. 시간이 지나도 행사가 시작되지 않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각자의 시계와 앞에 서 있는 진행자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행사를 이끌어야 하는 진행자와 연출의 입장에서는 무척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봄꽃을 보며 목포로 오던 그 전날의 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돈 데 기리기리 돈 데 기리기리라고 주문을 외치던 만화 주인공 ‘돈 데크만’이라고 아시나요? 아니면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H, 혹시 기억나십니까? 할 수만 있다면 돈 데크만의 순간 이동법과 H의 축지법이라도 빌려오고 싶은 심정입니다.” 모두 웃었지만 앞에 나와서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던 저는 자꾸 흐르는 식은땀을 주체할 수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차를 타고 내려와 있던 후배 유성원의 도움을 받아 터미널에서 30분 늦게 도착한 서영채 선생님을 택시로 ‘납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포 문학관이 워낙에 크고 넓은 곳이라서 혹시 입구를 찾을 수 없을지 모르니 문학관 입구에 나가서 선생님을 맞아달라는 저의 부탁에 그 노련하고도 몸이 재빠른 후배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목포 터미널로 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한 날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리무진 기사처럼, 특검 받으러 떠나는 국회의원의 호송을 맡기라도 한 것 같은 준엄한 표정의 목포 택시 기사님과 후배 유성원이 서울에서부터 달려온 목포행 버스 옆에 택시를 세워둔 채 대기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일 등으로 뛰어내린 서영채 선생님을 곧바로 ‘capture’ & ‘납치’하였고, 총알처럼 내달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택시 기사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행사 시작 직전에 도착한 쾌거를 이루었지요.(고맙습니다, 기사님 그리고 후배 유성원!)
서영채 선생님을 기다리던 그 삼십 분이 세 시간 같던 날이었지요.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자리에 서영채 선생님이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등장하였지요. 그래도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객석이 정리되었고, 늦게 온 분들이 자리를 찾기 위해 우왕좌왕하지 않고 모두 다 착석한 상태에서 시작을 하니 훨씬 더 집중하여 오프닝 멘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납치하느라 고생했던 후배의 얼굴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보았고, 그의 땀이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저는 행사를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다, 는 말의 의미를 저는 거기서 다시 한 번 깨달았지요.
요산 문학상 수상작인 임철우 소설가의 『백년여관』을 중심으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죄의식이라는 테마로 소설이 짚고 있는 6·25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 사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들을 임철우의 화법으로 다 같이 듣고, 읽어보았습니다. 극단 해인(이양구 연출)의 배우들이 『백년여관』의 세 주인공을 연기하는 동안 그것을 쓴 작가는 급기야 울고 말았고, 관객들 모두 배우들의 열연 속으로 빠져 들어간 삼십여 분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전날 그 배우들과 함께 전남 영암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리허설을 위해서는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기에 전날 미리 올 수밖에 없었고, 영암 월출산 밑 숙소에서 배우들이 『백년여관』 낭독공연 리허설을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곳에서 그 배우들은 오롯이 『백년여관』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소설 『백년여관』이 이 배우들을 만난 건, 그 소설의 행운이겠지요. 덕분에 그곳에 모인 모두가 『백년여관』 속 주인공들의 절절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먹먹해진 가슴으로 배우들을 무대에서 떠나보냈고, 저는 객석 한쪽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임철우 소설가를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어쩜 그렇게 친구 ‘박효선’의 목소리와 닮았느냐며 다시 한 번 가슴을 감싸던 임철우 소설가가 눈물을 다 닦지도 못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고, 곧바로 ‘딱 15분 미니데이트’가 이어졌습니다.
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란 임철우 소설가가 섬과 대도시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방황을 하고, 소설 「사평역」을 쓰기까지 곽재구 시인과 맺은 인연, 그리고 이십 년 넘게 한신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하면서 겪은 이러저러한 이야기들까지! 15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그의 진솔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세밀한 감성을 가진 작가였기에, 소설에서 그렇게 큰 주제를 다루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놓치지 않았구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 분 동안의 쉬는 시간에 그에게 구름떼처럼 몰려든 ‘여고생 팬’들의 사인 공세에 작가는 무척이나 행복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옆에서 제자들의 인사를 받고 있던 서영채 선생님은 그제야 숨이 놓인다는 표정으로 오래간만에 만난 이들과의 시간을 한껏 즐기는 듯이 보였습니다.
문학평론가 서영채라는 이름으로 〈두 죽음 사이의 윤리〉라는 강연을 준비했지만, 그 무대에서만큼은 중견 문학평론가가 아닌 ‘열혈 청년 서영채’였어요. 서영채 선생님이 준비해 온 열사들의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있는 어떤 ‘자유로움’에 대하여 상기했고, 시간의 더께에 묻혀가던 그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호명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랄 것 없는 어떤 죄의식이 표명하는 이름과 시간 속에 가리어진 이름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들의 일화를 이야기해주던 서영채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임철우 소설가 역시 자신의 소설이 가리키고 있는 무언가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 시간을 견디고 계셨습니다. 강연자나, 소설을 쓴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다 고통스러운 시간인 듯했습니다. 상처의 맨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본 이의 표정으로 서영채 선생님의 강연이 끝났고, 목포 덕인고등학교와 혜인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100초 토론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백년여관』의 주인공이라면, 내가 『백년여관』을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자리였지요. 목포의 고등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전날 밤새 만든 각자의 영상을 가지고 와서 상연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임철우 선생님은 ‘러브’가 들어간 이야기를 만들었던 1번 학생을 지목하였고, 서영채 선생님은 2번 학생을 지목하였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각각 ‘여행용 비누 세트’와 ‘덴티큐 칫솔 세트’가 선물로 돌아갔습니다.
삼자 토크가 시작되었고, 저는 얼마 전에 『인문학 개념정원』을 출간한 서영채 선생님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인문학이라는 폭 넓은 개념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예쁘신 분들은 책 안 읽어도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데이트할 적에 무식이 드러나면 곤란하니까, 가끔 읽어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녀 작가는 책 안 읽으셔도 됩니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저는 서영채 선생님의 명확한 답변에 무척이나 행복해졌습니다. 소설 『백년여관』과 소설 『봄날』을 쓰던 때의 임철우 선생님의 모습을 회고하는 서영채 선생님의 말 속에서 그들의 진한 우정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지요. 누군가를 오래 지켜본 사람 특유의 여유 있는 농담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무겁지 않게, 울고 있는 임철우 선생님을 따뜻하게 달래려는 듯이 관객들 모두를 쥐락펴락했던 서영채 선생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겸연쩍게 웃으며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던 서영채 선생님.
OX퀴즈와 오자토크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답변 문항 중에 “나는 외모와 글 솜씨 중 외모에 좀 더 자신이 있다”는 질문에 두 분 모두 O를 선택하는 기염을 토했고, “신비주의 미녀 소설가, 오래간만에 봤더니 진행 솜씨는 물론 외모도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코너에 한 분은 O(서영채), 다른 한 분은 O와 X를(임철우) 둘 다 들어버리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답변도 돌아왔습니다. “오늘 어땠어?”라는 오자 토크에는 “생각보다 짱!” “나도… 그래요”라는 답을, 문학카페 유랑극장의 핵심적인 질문 “미녀 작가 짱?”에는 “진짜진짜 짱”(임철우)이라는 당연한 답변과, “환장하겠네”(서영채)라는 뜻 모를 답변을 남기고 무대를 내려간 두 분.
맨 처음에 임철우 소설가를 모시고 소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적에 우리는 과연 그의 소설 세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것도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말입니다. 평소에 진지하고 말씀 하나 하나에도 조심성 있게 하며 사는 작가를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보다 편안하고 쉽게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에 관하여 여러 차례 논의를 해보았습니다. 스태프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임철우 소설가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우리의 장난을 잘 받아주셨고, 서영채 선생님은 무거운 강연 내용과는 다르게 무척 밝고 재기 있는 답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았습니다. 〈백년의 봄, 죄의식을 응시하다〉라는 얼핏 무거워 보이는 주제가 그 무대를 만나 ‘아하, 그렇구나! 그랬구나!’로 바뀌는 순간이었지요.
목포 문학관 학예사님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 무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는 말을 여러 번 다시 해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목포와 나주는 물론이고 서울과 경기도에서 목포 문학관의 행사를 보려고 와준 모든 관객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선후배들, 그리고 이 행사를 널리 알려준 모든 분들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 무대에서 진행자와 초대 작가, 강연자로 만났지만 우리는 그 이전에 사제지간이라는 엄청난 인연으로(혹시 그분들에게는 악연인지 모르겠지만) 만난 사이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행사 시작 전에 그분들과 저와의 관계를 밝혔고(!) 혹시나 객관적인 진행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마음 넓은 목포의 관객들은 저의 장난과 선생님들의 편안한 웃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고,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직까지도 그날의 관객들에게 저는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모인 자리이고, 게다가 졸업을 한 친구들은 선생님들을 뵐 수 있는 자리가 무척 드물었기에, 임철우 선생님의 예순한 번째 생신을 기념하는 조촐한 시간도 가졌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을 한쪽 벽면이 모두 꽉 찰 정도의 큰 플래카드에 담아온 후배 김새봄의 노고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딱 61년만 더 살아주세요!”라는 플래카드도 애교 있게 덧붙였지요. 모두가 웃었고, 목포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행사의 뒤풀이까지 마무리한 그날 밤에 저는 몇몇의 일행들과 해남 대흥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소설 『봄날』과 『백년여관』을 쓰던 때의 임철우를 다시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흥사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에 계엄군에 쫓긴 시민군들이 숨어들었던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그곳 사람들은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해먹여가며 그들의 싸움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고도 합니다. 광주에서 그 일을 겪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휴학생 임철우가 홀연히 찾아든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그가 추운 줄도 모르고 겨울 숲을 헤매고 다니거나 스님이 다비식을 하던 곳에 홀로 앉아 죽어간 이들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되짚어 보기도 했던 장소입니다. 훗날 제자들을 이끌고 간 문학기행에서는 두 팔을 벌려 밤길을 걷게 하기도 한 곳입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몇몇 일행들은 대흥사 진입로 숲길을 걷겠다고 나섰습니다. 끝끝내 그 시간을 견딘 한 사람의 처절한 기록이, 그가 남긴 문장들이 숲길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지요.
그 밤을, 거기서 우리는 또 그렇게 지나오고야 말았습니다.
봄날, 목포에서의 일입니다.

《문장웹진 5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민들레 수상자 나주탐방 동행기] 민들레와 쪽빛의 힘[민들레문학상 수상자 나주 탐방 동행기 ] 쪽빛의 힘, 민들레의 빛 이은선(소설가) 나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꽃샘추위가 몰아닥치기 직전의 푹한 봄날. 오래간만에 나들이 가는 티를 내느라 아침 일찍 서둘러 의사 선생님 얼굴 한번 보고 말 몇 마디 주고받은 후에 출발한 길이었다. 볕이 더워 자동차의 창문을 여니 기침이 나왔고, 창문을 닫자니 땀이 흘렀다. 민들레 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들을 태운 버스는 이미 경기권역을 벗어났다는 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안성 휴게소부터 길이 막혀, 정안 휴게소를 지날 때가지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입은 바짝 마르고, 속도 끓었다. 배도 고프다 못해 쓰리고, 콧물과 기침은 쉴 새 없이 나왔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어서 아침에 만난 의사 선생님의 의술을 살짝 의심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나주로 가기에도 다급한 와중에 광주에 들러 시인을 태웠다. 나주 기행에 기꺼이 동참해 주겠노라 약속했던 시인이었다. 제대로 된 인사와 안부, 그간 어찌 지냈느냐는 말들은 나주에 도착해 밥이라도 좀 먹고 나서 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시인에게서 ‘얼굴이 핼쓱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다섯 시간을 내리 도로체증에 시달려 온 탓이었다. 기분이 좋아 시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려던 찰나, ‘얼굴만 그렇고 몸은 그대로네’라는 직선적인 말이 날아왔다. 그제야 나는 시인을 트렁크에 태웠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에서 나주가 지척인지라 그나마 그만큼만 싸우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국밥집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금성문’을 보았다. 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호라는 그 객사? 우선 금성문도 밥을 먹고 나서 봐야 제대로 보일 듯했다. 50년 원조 국밥집에 들어서자마자 “두 분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테이블에 앉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물 한 잔 마시기도 전에, 국밥이 나왔다. 나주 국밥집의 신속함이 눈물겨웠다. 허겁지겁 국밥을 먹는 나를 보며 시인이 물었다. “민들레 문학상이 올해 몇 회째야?” “(볼멘소리로) 그것도 모르고 왔수?” “다시 자세히 알려줘.” “아, 목 아픈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몸 속 깊이 박혀 있는 친절함을 어찌하지 못해 민들레 문학상의 취지와 확대, 그리고 수상자들이 어찌하여 나주 기행을 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말과 동시에 국밥도 국물 하나 남김없이 내 뱃속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시인은 내 말을 듣느라 밥을 절반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시인을 이끌고 민들레 문학상 수상자들이 모여 있다는 나주의 커피 명소 ‘예가체프’로 향했다. 그제야 비로소 금성문이, 나주의 거리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쭉
- 2015-04-02
문장웹진 기획
[문학카페 유랑극장 리뷰]제주의 바람과 원주의 응시[문학카페 유랑극장 리뷰] 제주의 바람과 원주의 응시 ― - 상반기 문학카페 유랑극장의 막을 내리며 이은선(소설가) 가장 먼저 저희를 맞아 준 것은 제주의 바람이었습니다. 마음이 그 바람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지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마지막 행사를 하기 위해 제주에 간 길이었습니다. 원주에서 처음 쏘아올린 공을 서울과 양평이 받았습니다. 다시 대전과 목포, 진해와 경주까지 ‘핑, 퐁, 핑, 퐁’ 하며 발랄하게 쳐올릴 수 있을 줄만 알았지요. 목포 행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유랑극장의 문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비단 우리만의 마음이 아니기에 묵묵해져야 했지만 다소 감정적이 되었던 시간도, 안타까움에 무대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찾을 수 있기를, 이제 그만 바다에서 나와 주기를 하고 말입니다. 매일같이 뉴스를 검색하고, SNS의 발 빠른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진해와 경주를 지나 제주까지 왔던 것입니다. 세찬 바람이 유랑극장 스태프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간신히 붙들고 갔던 마음의 어떤 결들이 바람을 따라 일어났고, 그 바람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현기영 선생님을 뵈었지요. 바다를 등지고 형형한 눈빛으로 바람을 맞고 있던 현기영 선생님의 눈빛이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유랑극장 마지막 무대의 주제는 “형이상학적 죄로써 무병과 지속 가능한 화해”였습니다. 형이상학적 죄와 국가란 무엇이며, 그들이 자행한 야만적인 행태들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지요. 현기영 선생님과 이재승 선생님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올라와 담담하고도 나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야만적인 국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가진 수장의 책임과 그 모든 행태들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국민들의 뼈아픈 시간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다시 남은 어떤 물음.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 어쩐지, 끝끝내 알 수 없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재승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이상학적 죄’ 역시 지금 이 순간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 것은 행사가 시작되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제주에서도 세월호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던 까닭이었습니다. 유랑극장 행사가 시작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담담하게 텅 빈 객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그래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한 갈래는 그리로 보내었음을, 조심스럽게 적어 봅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몇몇 관객들과 유랑극장의 무대는 계속되었지요. 현기영 선생님의 단편소설 「쇠와 살」, 「목마른 신들」을 토대로 형이상학적 죄란 무엇이며 살아남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 2014-06-16
문장웹진 기획
[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고래의 꿈과‘서로’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고래의 꿈과 ‘서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진해 문학관 이은선(소설가)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망자로 밝혀진 분들의 못다 한 생이 안타까워 울었고, 실종자로 밝혀진 분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며 가슴 졸였습니다. 문학카페 유랑극단 연출진은 회의 끝에 예정된 행사를 제때에 치르기로 결정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한 채 진해에서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미리 계획된 행사였고, 취소를 한다는 것조차 그리 간단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 자리를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때에는 ‘기다림’이라는 ‘희망’의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꼭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상상하기도 싫었습니다. 모두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정일근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고래를 기다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기다려 본 자, ‘자유’와 ‘햇빛’을 기다려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잔잔한 어조로 한 문장 한 문장 힘주어 말을 하였지요. 홍윤기 선생님은 정일근 시인의 저작 중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시집 세 권만 빼놓고 모두 읽은 후에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에 대하여 말을 건넸고, 정일근 시인은 ‘내 시에 그렇게 기다림이 많느냐’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무대를 지켜주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교복을 입은 천진난만한 학생들의 웃음만 보아도 마음 한쪽이 내려앉았어요. 행사 내내 홍윤기 선생님, 정일근 선생님도 그들 쪽으로 자꾸 눈을 두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들도 하나 된 마음으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지요. 천상병과 베케트, 그리고 정일근의, 기다림의 차이와 공통점 그리고 그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홍윤기 식의 해법에 어느덧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습니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것, 또 그 기다리는 사람의 어떤 자세에 관하여 홍윤기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다소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으시고 누구보다도 밝게 웃으면서 그 시간을 장식해 주었지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휴대전화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 구조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세월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더욱 더 말을 삼가던 참에 정일근 시인이 이렇게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기다림, 기다림,
- 2014-05-1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