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시인 ②
- 작성일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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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미국의 현대 시인 ②
― 매튜 딕맨(Matthew Dickman)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
◆ 매튜 딕맨(Matthew Dickman)은?
1975년 8월 20일, 포틀랜드 오리건 주 태생인 그는 미국 시인이다. 2001년 오리건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오스틴 소재의 텍사스 대학 미체너 센터,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프로빈스타운 소재의 파인 아트 워크 센터에서 작가 부문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세 권의 소책자(『친구(Amigos)』, 『검정 스카프에 관한 것(Something about a Black Scarf)』, 『그대가 여기 있기를 바라오(Wish You Were Here)』)와 두 편의 장편 시집을 저술했다. 그가 쓴 첫 번째 시집 『전형적인 미국 시(All-American Poem)』는 2008 아메리칸 포이트리 리뷰지/호닉맨 퍼스트 북 프라이즈 시 부문 수상작이며, 아메리칸 포이트리 리뷰지에서 출판됐으며 코퍼 캐넌 프레스에서 해판했다. 또 같은 책으로 2009 케이트 투프츠 디스커버리 어워드에서 수상했으며, 미국 예술 및 과학 학술원(American Academy of Arts & Sciences)이 주최한 매이 샤튼 상의 첫 번째 수상자다. 두 번째 시집 『마야코브스키의 리볼버』는 2012년 노튼에서 출판했다. 2012년 코퍼 캐넌 프레스에서 출판한 시집 『미국 희곡 50편』은 자신의 쌍둥이 동생 마이클 딕맨과 공동 집필했다.
▶ 매튜 딕맨(Matthew Dickman)
◆ [시인 소개] 시의 마법사, 매튜 딕맨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자신의 책 『새천년을 향한 여섯 가지 메모』에서 문학을 “삶의 무거움의 반작용으로 가벼움의 추구”라고 정의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는 바람에 메두사의 피로 페가수스가 탄생하게 된 신화처럼, 마치 돌의 무거움이 그 반대로(하늘을 나는 말로) 바뀐 것처럼 시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꿀 수 있다. 매튜 딕맨의 시는 비극, 우울증, 사회불안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런 주제의 특징이 유머와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축전으로 바뀌었다. 그는 재발명을 하는 위대한 시인이며, 주로 사물, 사람 혹은 관계를 계속해서 포개어 수많은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그의 시 「죽은 내 여자 친구에게」는 시간증에 관해 해학적으로 풀어냈지만, 궁극적으로는 화자의 외로움과 지인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는 마음에 관한 시다. 작품의 뮤즈로 인간의 비극과 향수를 사용한 다른 훌륭한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과 함께 재미있고 은밀한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슬픔을 통한 작업의 한 방법이며, 그 점에서 비록 시가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또한 인간의 고난이라는 일반적인 상태로 침입한다.
미국 내 수많은 MFA 과정에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공들여서 시를 잘 쓸 수 있게끔 마련해 놓은 장소와 시간이 아예 없다. 예전에는 기술적인 가치를 근간으로 편집장들이 대체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시에 관해 가장 일반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은 “위험한가?”이다. 더 이상 자신을 시에 담아내는 시인은 없고, 더 위험해지도록 시를 쓰는 시인도 없다. 위기와 긴급상태의 수많은 틈이 있으며, 페르세우스의 신화처럼 여전히 딕맨은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어둠의 무거움을 견뎌낸다. 그 점에서 딕맨은 시란 건축가이자 일종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기교와 기술 그리고 마술이 있다. 아마도 이 점이 매듀 딕맨을 미국의 40세 미만의 시인들 중 가장 유명하지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분열을 초래하는 시인으로 꼽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 주제는 형의 자살, 정신병, 그리고 사회적 배제를 포함하고 있다. 주제별로 그의 시의 혈통은 1950년대 고백 시 그룹(예를 들면 앤 섹스턴, 로버트 로웰, 실비아 플라스)으로 곧장 올라갈 수 있는 반면, 그의 기벽과 초현실주의의 사용 및 가벼움은 뉴욕 스쿨 시인들(프랭크 오하라, 케니스 카치)과 흡사하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두 집단은 심미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반됐다. 사람들이 여전히 편을 짜라고, 충성을 맹세하라고, 그리고 특정한 심미적 행을 따르라고 자주 요구하는 한 장르에서, 딕맨은 범주화를 거절한 시인이다. 그의 작품의 힘은 테크닉이나 신조가 아니라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 즉 마음과 공감이다.
포틀랜드로 이사간 내 친구 라이언 도날드슨에게 《문장웹진》을 위해 매튜와 인터뷰 중이라고 말하자, “그렇군, 최근에 매튜와 맥주 한잔 했는데. 정말 좋은 녀석이지. 멋진 마음을 가졌어.” 하고 그는 대꾸했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친밀하게 코카콜라를 한잔 나눠 마시는 듯한 인상을 남겼던 프랭크 오하라의 목소리처럼, 딕맨의 작품은 친구와 포틀랜드의 어느 바에서 맥주 한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나눌 때의 그 따뜻함을 지녔다. 당신이 시인을 두려워할지라도 가끔씩 당신이 포옹을 나누기 위해선 시인이 필요하다. 시인은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죽은 사람에게 마법을 걸지만, 가끔은 시인 역시 사람이다.
글 _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매튜 딕맨의 시
1. 죽은 내 여자 친구에게
너는 더 이상
2. 재낵스
그때 나는 빛 속에 있다
3. 죽은 내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발가락 열 개
출처 : Wish You Were Here by Matthew Dickman. Published by Spork Press. |
◆ 인터뷰
에리카 라스토브스키테(이하 EL) :당신은 십대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매튜 딕맨(이하 MD) : 몇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맨 처음 사건은 고등학생 때 시작됐어요. 같은 반 여자애한테 홀딱 반했는데, 그 여학생이 시를 좋아했어요. 내가 시를 읽고 쓰기 시작한다면 그 여학생이 나랑 사귀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를 썼어요. 물론 우리는 학교에서 시를 읽었지만 우리가 읽은 시는 전부 죽은 백인 놈들 것이었죠(에밀리 딕킨슨은 빼고요). 나는 앤 섹스턴이 쓴 책을 집어 들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어요. 앤 섹스턴의 시를 읽고 완전 감동받았죠. 시 속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혹은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들을 당신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그녀의 시 중에서 정말 나쁜 버전들을 써서 그 여학생에게 보냈어요. 그 여학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때 일어난 엄청난 사건은 내가 정말로 시를 사랑하게 됐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또 술주정뱅이 이웃과 폭력을 일삼는 불쌍한 주민들로 득실대는 주에서 자랐기 때문이기도 해요. 내가 자랄 때 살던 집은 안전한 장소였지만, 이웃은 그렇지 않았죠. 이웃에는 스킨헤드 족들도 있었고, 예술은 없고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시는 내 경험을 쓸 수 있는 혹은 내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어요.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내가 그 사건을 시로 쓴다면, 더 잘 통제했다거나 또는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고등학생 시절, 시 쓰는 것을 격려해 주신 선생님 한 분이 내게 엽서를 주셨어요.
앨런 긴즈버그와 잭 케루악의 사진이었는데, 남자 다섯이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시티 라이츠 북스토어(유명한 서점) 앞에 서 있는 사진이었어요. 이 다섯 명의 남자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죠. 도시 귀퉁이에 서 있는 남자들 무리가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혹은 해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엽서를 보며 놀랐어요. 도시 한 귀퉁이에 함께 서 있는 그들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 사진을 통해 저는 이웃사람들에게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이웃은 내가 늘 싸우고 술에 취해서 여자애들 때문에 완전히 신세를 망칠 거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이 엽서는 내가 여전히 남자가 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해낼 수 있다고 말해 줬어요.
EL : 시인이 당신에게는 영웅이라는 거예요?
MD : 물론이죠!
EL : 당신은 시가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나요?
MD : 네, 틀림없이. 내가 어떤 사람의 십대에 줄 수 있는 기회, 나에게 시집은 중요해요.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그들에게 일종의 예술을 전달합니다. 멍청이가 되기는 쉽고, 스스로 불안정해지는 것도, 사람들에게 무례하고 불쾌하기 굴기도 쉽죠. 보다 인간답고, 보다 열정적이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면서 살기는 더 어려워요. 저는 시에서, 그리고 예술에서 위험한 것들을 생각해요. 그리고 각 나라마다 일부 정권에서 시와 예술을 없애려고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는데, 시 또는 예술이 우리에게 공감을 알려주고, 공감은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모든 사람이 공감대를 공유하면, 정부는 불쌍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시인과 예술가가 이런 사회적 테마 속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어떤 점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삼사 백 명의 독자들과 서점에서 낭독회를 몇 번 가졌는데, 낭독 후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가서 시집을 사십시오. 제 시집을 살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맘에 드는 시집을 사세요. 그리고 시를 읽지 않는 사람에게 보내주세요.” 정부 또는 대통령에게 시집을 보내세요. 시를 지지해 주세요. 왜냐하면 시는 우리를 지지해 주니까요. 시가 행하는 유일한 행위는 저를 포함해 우리를 보다 공감을 느끼게 하고 사물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우리에게 표현을 줍니다. 제가 시를 읽을 때, 시는 내게 내가 느끼고 있는 표현을 줍니다.
EL : 하지만 고작 몇몇 사람만이 진정으로 시를 즐기고, 시 낭독회는 폐쇄된 시인 단체 내에서만 이루어지죠.
MD :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학교에서 시를 가르칠 때 사람들은 시를 퍼즐인 것처럼, 마치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의미가 뭔지 알아내야 할 것처럼 가르치죠. 또 적어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대부분의 영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블레이크, 셰익스피어, 테니슨의 시를 가르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당신들의 정신은 정상이 아니고, 육체는 변하며, 정말이지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당신은 성관계를 갖고 싶거나 싸우고 싶어집니다. 이런 것들로 흥분해 있기 때문에 옛날 시를 들어도 이해할 수 없어요.
EL : 그럼 청소년을 위한 당신의 교수요목은 무엇인가요?
MD :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살아 있는 그래서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인들의 것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첫 번째 시인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매튜 자프루더, 도로시 라스키, 데란스 해이스, 도리앤 라우스 등의 시, 그들에게 중요한 것들, 또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들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세븐일레븐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에 관한 시를 학교에서 읽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강의실에는 세븐일레븐에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아이들이 시를 사랑하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현대시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읽게 됩니다. 거기로 돌아가서 시작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고전적인 방법과 고전적인 텍스트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그것을 고수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것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거나 또는 더 큰 공동체를 가지거나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EL : 당신이 쓴 『마야코브스키의 리볼버』의 한 섹션 전체에 공간의 몇 가지 종류를 다루었고, 그걸 ‘친애하는 공간에게’라고 읽는군요.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몇 가지 종류의 현실을 한 면 한 면 연결해 놓은 것 같습니다.
MD : 이 모든 것이 시이자 저에게 어떤 면에서는 공간이죠. 그냥 대기권 밖의 공간이 아니라 친한 공간, 대중적인 공간과 같은 또 다른 종류의 공간이에요. 그것들이 지금 존재하지만, 내가 그것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내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고 며칠 동안 그 생각만 했어요. 심지어 조사도 했는데 그러면 시를 어떻게 진행할지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냥 자리에 앉아서 시를 썼어요. 나는 영원할 것만 같은 시를 썼지만, 스물여덟 살이 됐을 때, 일종의 정신 마비상태가 되어 며칠간 병원 신세를 졌어요. 그래서 대학원 과정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지요. 8개월간 치료받는 동안 나는 결코 시를 쓸 수 없었죠. 거의 읽지도 못했어요. 단지 오랜 시간 걸으면서 명상에 잠겼어요. 결국 대학원 과정에 다시 들어가 시를 썼지만 그 경험 이후, 자리에 앉았을 때, 전과 같은 식으로 시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나는 머릿속 지능에서 나오는 생각으로 시를 쓰지 않고 그냥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을 씁니다. 바로 이 책, 그 섹션에 죽은 형에 관한 시 한 편이 있는데, ‘커피’라고 부릅니다. 나는 그냥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제목을 ‘커피’라고 적고 커피에 관해 그냥 써 내려갔는데, 그 생각이 다른 생각들로 이어졌어요. 물론 그 생각이 형으로까지 이어졌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아닌 그냥 느낌만으로 앉아서 써진다는 게 겁이 났어요. 제 지적 능력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고, 이제 그냥 개미가 움직이는 방법을 그냥 느끼는 대로 씁니다.
EL : 그래서 매일 사물에서 영감을 얻는 거군요?
MD : 네, 사물과 관계는 어마어마하죠. 철학 시인들은 “제 시는 식민지 이후 시대를 주로 언급하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죠. 하지만 저는 시라는 게 사랑, 슬픔 그리고 사물에 대한 궁금증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하나가 뭐든지 간에 그 하나를 향해 다가가려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EL :이전에 낸 책 제목에는 ‘미국’을 담고 있네요.
MD : 네, 제가 쓴 첫 번째 시집은 『전형적인 미국 시』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때 제 쌍둥이 동생과 저는 이 한 페이지로 구성된 짤막하지만 섬뜩한 희극을 여러 편 썼는데 동생은 그 희극들에 ‘미국 희극 50편’이라는 제목을 달고 싶어했죠. 그리고 가장 최근에 쓴 한 편은 『마야코브스키의 리볼버』라고 제목을 붙이는 바람에 느닷없이 제 출판 역사가 마치 냉전시대인 것처럼 되어버렸지 뭐예요.
EL : 미국의 정체성 물음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왜 그 이름으로 지었나요?
MD : 제가 쓴 첫 번째 시집에 「전형적인 미국 시」라는 긴 시가 한 편 있는데 전부 미국에 관해 썼지만, 전 미국 전체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전 긴 시를 쓰고 싶었고 미국인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미국에 관해 쓰고 싶었어요.
제이크 레빈(이하 JL) : 미국 시와 문학이 세계 문학과 분리되어 있고, 세계 문학이 미국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통속적인 평론가들의 의견이지요. 당신의 작품은 국제적인 영향력을 많이 얻고 있는데, 특히 동유럽인과 러시아인에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하지만 작품은 분명히 미국적이지요. 당신은 베를린과 리투아니아에서 산 적이 있지요. 해외로 진출한 대표적인 미국 시인으로서 기분이 어떤가요?
MD : 미국이 세계 문학과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가 방문한 유럽 일부 지역은 미국 시와 분리되어 있어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번역이 부족하고 두 나라 사이에 대화가 부족해서인 것 같아요. 서로 문화를 교류함으로써 당신은 언제나 더 유명한 시인들을 만날 수 있고, 그건 정말 멋진 일이죠. 비록 가장 유명한 시인이 늘 가장 재미있는 것을 창조하지는 않겠지만, 혹은 그들이 항상 중요한 예시로 보여질 필요는 없지만요.
초기에 저는 나짐 히크메트, 파블루 네루다, 체슬로 밀로츠, 바스코 포파, 넬리 작스, 페드로 미르 외 다른 ‘세계 시인들’과의 관계를 느꼈어요. 그건 그렇다 치고, 미국 시, 유럽 시, 기타 세계 시로 분류해 놓은 게 얼마나 이상하고 영국 예찬주의적인지 몰라요! 위에 언급한 시인들이 지닌 신비함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고, 그 당시 미국 시인에게서는 그 점을 찾아볼 수 없었죠.
JL :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 같지만, 찰스 부코스키가 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하다는 게 특이하지 않나요?
MD : 부코스키는 미국인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을 잘 잡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여기서도 인기가 많아요. 그는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주로 남성 독자들이 들어오는 첫 번째 문의 역할을 합니다. 그는 무신경하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며 이따금 상냥하기도 합니다. 진짜 ‘미국인의’ 목소리는 없고 어쩌면 내가 틀렸다고 그가 입증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군요. 할 수만 있다면, 부코스키를 전형적인 미국인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튜 자프루더의 책 복사본을 보낼 거예요. 자프루더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바로 이 순간 그가 가장 중요한 미국인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자프루더와 도로시 라시키 두 사람이요.
JL : 목소리를 분류하거나 부여하기에 절대적으로 어려운 것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당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에서 마음을 가진다는 게, 또 마음을 탐구한다는 게 뭘 뜻하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그리고 당신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요?
MD :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영혼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과 많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각자 저 사물이 뭔지 추정해 봅니다. 만약 내가 양자물리학 문제를 보고 있다면, 그건 내게 모두 숫자와 부호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이 모두 마음이고 뭔가의 영혼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죠. 나로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황홀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둘 다 무시하지 말라고 바라는 것과 이 두 가지가 같은 장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창조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정말로 내 시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존재인 나이며 나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직’ 또는 ‘신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몸 상태로 궁금해하라는 것입니다.
출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살고 있는 에리카 라스토브스키테(문학 전공 대학원생)가 작가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내용과, 제이크 레빈이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소개 및 글 _ 제이크 레빈(Jake Levine, 시인)![]() 제이크 레빈은 2010~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비롯해 여러 장학금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두 권의 소책자(『삭제의 문턱(The Threshold of Erasure, Spork 2010)』과 『빌뉴스 악령(Vilna Dybbuk, Country Music 2014)』)를 저술했다. 그의 시, 번역물, 에세이 등은 보스턴 리뷰지, 루에르니카, HTML자이언트, 아틀라스 리뷰지, 페이퍼 다츠 외 여러 잡지에 실렸다. 그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토마스 스롬바스의 작품, 『갓/씽(God/Thing, Vario Burnos 2011)』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정희연과 공동으로 한영 번역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전공 박사과정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애리조나 투산 소재의 작은 출판사 스포크 프레스(Spork Press)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
번역 _ 정희연
세종대학교 번역학 박사과정 수료,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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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서경석(문학평론가, 전 문장웹진 편집위원) 2025년 3월에 2007년을 읽는다. 그 해 에 수록된 소설들. 작품을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김재영, 명지현, 한창훈이 눈에 띈다. 김재영의 소설은 중년 남성의 퇴직 후 삶을 그린 이야기였다. 「달을 향하여」는 『폭식』의 작가가 달나라 땅도 팔고 사는 세태를 작품의 마무리로 삼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돈에 포섭되는 폭식의 세상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읽으니 소설 속 주인공이 퇴직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회현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향처럼 아늑하고 친밀한 장소가 주는 위로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안식처에 대한 추억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하다. 명지현의 작품 「입안의 송곳」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앓던 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나 끊임없이 앓고 있고 세상 속 우리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충만한 삶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한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야생의 인간처럼 뭔가를 계속 씹으며 서먹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저항할 따름이다. 한창훈의 소설 「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진정한 고향 이야기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사람이 전하니 더욱 그러하다. 작가 한창훈은 거문도가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와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낚시를 했으며,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그는 먼 곳, 먼바다를 떠돌다 거문도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삼도는 남쪽 바다의 한 섬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오직 ‘늙은이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지킨다기보다는 떠날 수 없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노인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뿌리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설령 벗어난다 해도 그 몸에 새겨진 섬 생활의 그리움 때문에 곧 되돌아오고 마는 곳이다. ‘고단할지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것은 멀쩡한 배에 구멍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자연의 질서와 공동체의 관습, 그리고 어민으로서의 노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향’인 것이다.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세대와, 어떡해서든 떠나야 하는 세대가 완충 세대 없이 맞붙어 버린 경우인데, 하긴, 험한 바다 일은 죽어도 물려주지 않겠
- 관리자
- 2025-06-01
우리의 기원이 우리의 전부를 ― 조연호, 「저녁의 기원」, 《문장웹진》 2005년 08월호 신용목 시인/전 문장웹진 편집위원 1.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도달할 수 없는 시작의 불가능한 기억으로 구성된 곳이라면 응당 과거의 한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힘의 발원을 일컫는 것이라면, 기원이 꼭 과거로 달려가 맞이하는 마지막 도착점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삶을 담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탱해 주는 것. 끝없이 현재를 보채는 것. 우리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바깥을 어둠으로 채워 놓은 것. 달려가면 달려가는 만큼 따라오는 해와 달 같은 것. 말하자면 기원은 내 몸의 외피에 꼭 맞는 공기이거나 내 기억을 감싼 테두리, 낭떠러지 허공이거나 캄캄한 망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경계의 여리고 연한 막으로 떨리며 우리를 있게 하는 것. 어쩌면 미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불편과 불쾌가 불시에 우리를 깨우며 우리에 대해 묻는 것.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달아나도 멀어질 수 없으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놓여날 수 없으므로. 아무리 깊은 슬픔과 절망 뒤에 숨어도 뚜벅뚜벅 적막한 밤길을 걸어와 끝내 우리를 찾아내므로. 그러나 한 번도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기원으로부터 추방된 채 과거의 바깥이자 미래의 바깥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의 바깥에, 나를 키워 준 고향과 친구들과 학교의 바깥에 있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는 감각. 떠돈다는 감각. 그것으로 우리의 현전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진실에 속해 있지 않고 진리에 속해 있지 않으며 더더욱 사실과 제도와 규칙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존재 자체로서 진실의 낙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진리의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며 사실과 제도와 법률의 울타리 바깥에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굶주린 들짐승일지도 모른다. 머물지 못한다는 것. 나의 바깥에서 나를 찾아서 나의 주변을 서성이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의 기원이자 그 모든 것으로서의 기원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다시 시작하는 일이 결코 시작되지 않는, 아무도 자신이지 못하고 누구도 타자이지 못하며 사랑과 미움이 혼동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며 너와 내가 갈리지 않는, 가장 어둡고 깊고 위험하며 오로지 상실만이 무성한 곳. 상실로서만 확인되고 결정되며 상실을 통해서만 접근되는 곳. 우리를 영원히 상실한 자로 만드는 것. 우리를 매 순간 상실된 자로 만드는 것. 그래서 기원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상실의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질문을 안고 침몰한 곳에 기원이 있기 때문이다. 파문과 파도와 파장으로 기록되는 무늬. 무늬를 밀고 가는 저녁 공기와 그것을 완성하는 밤의 지문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기원이기 때문이다. 2. 첫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천년의시작, 2004)에서 자신의 어두운 밀실을
- 관리자
- 2025-05-01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차별 구성 -1차: 책장 업고 튀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일 시: 2024년 12월 7일(토) 17:30~19:30 ㅇ 장 소: 온라인 zoom ㅇ 참여자 -사회자: 김준현(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참여자: 이지용(단국대학교 HUSS사업단 연구교수), 이명현(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염승숙(소설가, 문학평론가), 이어진(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웹문예학과 객원교수, 웹소설 작가 레고 밟았어) 〈개회〉 김준현: 반갑습니다. 사회를 맡은 국립목포대학교 김준현입니다. 먼저 이번 좌담의 기획 의도를 다시 짚어 보는 것을 통해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제도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다양한 ‘콘텐츠’, ‘웹’, ‘크리에이티브’ 관련 전공들이 두 학과 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문학 산실’인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는 점점 다른 교육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대, 교육 현장에서 교강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이러한 체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기획 의도는 이러하고, 이러한 의도를 참가자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맥락에서 제 소개를 드리면, 올해 4월부터 국립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 전 직장은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였고요. 이 기획 의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야말로 학과의 이름에 ‘웹’이 들어가는 학과였습니다. 제가 올해 4월부터 일하게 된 국립목포대학교도 아마 국립대 최초로 문예창작에 웹소설, 웹문예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여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 3년 정도 있었고요.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이지만, 웹소설 특화를 표방한 학과에서 두 학기 정도 일한 셈입니다. 4년 정도를 소위 말해 ‘전통적인 문예 창작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웹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데뷔는 2012년에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사회를 맡게 됐고, 패널로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떠 있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화면이 다를 텐데, 제 화면으로 보기에 제일 위에 떠 계신 분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명현 선생님이십니다. 이명현 선생님 자기소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이명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가르치고 있는 이명현입니다.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016년부터 근무했고,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고전문학
- 관리자
- 2025-03-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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