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인터뷰 나는 왜_성동혁 시인편]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 작성일 2015-01-01
- 댓글수 2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_ 나는 왜?(제9회)
최저음부의 풍경을 그리는 소년 사도
- 시인 성동혁 편
정리 : 안희연(시인)
내가 아는 동혁은 살갑고 밝은 사람이다. 늘 뒤에서 살뜰하게 사람을 챙기고,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 자주 농담을 던지는 사람. 혼자 밥 먹기 싫다며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지만 실은 모든 이들의 “옆집”(「나 너희 옆집 살아」)에 기거하며 늘 주변을 돌보는 사람. 만날 땐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귀가 후에는 어김없이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를 잊지 않는 사람.
나는 그의 다정함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런 그가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다섯 번의 큰 수술을 받고 여섯 번째 목숨을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꽤 쌀쌀했던 12월의 두 번째 수요일, 동혁은 ‘카페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노래한 최저음부의 풍경들. 그 첫 이야기는 그가 병실을 나서며 바람을 맞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병실을 나서며
▶ 이영주(이하 이) : 문장 웹진》 연속기획 공개인터뷰 [나는 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행사군요. 아마도 오늘은 [나는 왜] 사상 동료 시인들이 가장 많이 온 인터뷰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 오늘의 주인공인 성동혁 시인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성동혁 시인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6』(민음사, 2014)이 있습니다. [나는 왜]에서 꼭 한 번 모시고 싶은 분이었는데 마침 시집이 나와서 기쁜 마음으로 초대했어요.
▶ 성동혁(이하 성) : 네, 감사합니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네요.
▶ 이 : 그 어색함을 좀 누그러뜨리고자 [나는 왜] 공식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성동혁 시인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시를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성 : 왜 시를 쓰게 됐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저는 사실 특정 시인을 동경했다거나 어떤 작품을 보고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었어요. 독서도 조금 늦게, 고등학교 때 시작을 했고요.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2, 3학년 때 교내 독후감 대회 같은 델 나가면서부터였어요. 사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가 컸어요. 활동적인, 신체적인 운동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대신 정신의 운동을 했던 거죠. 글을 쓰는 일은 제게 레저와 같은 것이었어요. 제 몸이랑 잘 맞았거든요.
▶ 이 : 신체적인 운동이 안 되어서 정신적인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문학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지금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대답이라 아주 신선하네요. 오늘 뭔가 인터뷰가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아무쪼록 우리가 시집을 읽다 보면 그 시인의 현재 상태, 관심사, 세계관 등등 많은 부분을 유추하게 되는데, 성동혁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아픈 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제가 주변 분께 성동혁 시인의 시집을 추천해 드렸더니 그분 말씀이 “이 시인 혹시 아파요? 신체적으로 많이 아픈 사람 같아요. 시가 참 투명하네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집에서 통증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시인의 실제 체험과도 연관이 있겠지요.
▶ 성 : 제가 문학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정화인데요. 이를테면 전문적으로 시를 쓰지 않는 분들도 SNS를 통해 글을 올리면서 감정의 뭉텅이를 내버리고 해소하듯이, 저의 경우에도 문장을 씀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가령 무언가 잊어야 하는 일들(고통)이 있다면 그것을 시로 쓰고, 시가 완결됨과 동시에 상황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시를 ‘썼다’기보다는 시를 ‘털었다’는 생각을 해요. 머릿속에 첫 시집에 대한 형상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털어낸’ 시집이었어요.
▶ 이 : 고통을 털어낸다는 말 속에 절실함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동혁 시인의 고통은 멜랑콜리(melancholy)한 낭만성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어요. 언어를 맑고 투명하게 운용하시는데 이런 시들은 어떤 순간에 탄생하는 것일까요?
▶ 성 : 흔히 사람들은 제가 병실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시를 쓴다고 오해를 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아플 땐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아파야 해요. 병원에서 메모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육체의 고통, 몸이 갈라지는 고통에 당면했을 때 정신을 다잡고 문장을 쓰기는 어려워요. 다만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거지 글을 써야겠단 생각 자체를 못 하거든요.
제가 시를 쓸 때는 그런 육체적인 고통이 한 호흡 지나가고 난 뒤예요. 이를테면 수술 후에 산책하면서 바람을 맞을 때. 병원 실내에는 햇빛은 들지만 바람이 없거든요. 수술을 하면 피가 돌아야 해서 산책을 하는데 그럴 때 엄마와 같이 거닐며 자연풍을 맞을 때 제 안에서 좋은 감각들이 생겨나요. 이렇게 밖으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내가 걷고 있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져요. 시는 주로 퇴원을 하고 나서 쓰죠. 사실 퇴원을 할 땐 기분이 아주 안 좋거든요. 아이들을 병원에 두고 와야 하기 때문에 죄스러움이 들고 힘들어요.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바람을 맞는 과정에서 지나간 고통들을 다시 게워내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병실 안에서 시를 썼다면 그냥 침전된 상태의, 좋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나왔겠죠.
▶ 이 : 고통이 지나가고 바람을 맞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한 템포 뒤의 감각. 그것이 성동혁 시인의 시에서 긴장과 낭만성을 유발하는 원인이었군요. 다음 질문도 그러한 ‘낭만성’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요. 성동혁 시인의 시에는 ‘꽃’이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리시안셔스」, 「꽃」, 「화환」 등 여러 시에서 ‘꽃’이 등장하는데, ‘꽃’의 이미지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너머의 세계, 즉 이데아라든가 천국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시인에게 ‘꽃’이란 어떤 통로일까요?
▶ 성 : 제가 얼마 전에 산문을 쓰면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꽃이라는 건 참 신기한 방식으로 존재해요. 꽃은 죽음 앞에서 삶을 축하하는 방식, 스스로는 죽는 방식이거든요. 왜냐하면 절단해서 주기 때문에요. 가령 화분의 방식은 삶이랑 같이 호흡을 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꽃은 죽음의 끝에서 그 뒤를 보게 하는 방식이에요. 한시적인 것이기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요.
무엇보다 제가 꽃을 정말 좋아해서, 남자치고는 꽃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꽃시장에 가기도 하고, 플라워 레슨을 받아서 만든 꽃을 이모와 엄마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가정적인 남자 같은데 (웃음) 아무튼 꽃을 선물할 때의 기쁨이 있고 받을 때의 짠함이 있어요.
제가 「리시안셔스」라는 시를 썼는데 그 꽃은 부케로도 쓰이는 꽃이거든요. 제가 꿈꾸는 모습 중의 하나가 제 아내에게 그 꽃(부케)을 선물하는 거예요. 저는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없지만 외롭게 죽는 것에는 공포가 있어요. 제가 죽을 때 아내가 옆에 있고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요. 내가 희박해질 때 내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담이지만 「리시안셔스」를 쓰고 그 꽃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아우디」라는 시를 써야겠어요. (일동 웃음) 웃자고 한 이야기고요, 아무쪼록 ‘리시안셔스’라는 꽃을 보면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좋고, 그래서 제게도 참 기분이 좋은 시입니다.
▶ 이 : 그 시를 직접 낭독해 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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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눈을 기다리고 있다 |
▶ 이 : 꽃과 눈의 이미지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였습니다.
▶ 성 : 감사합니다. 이 시는 나중에 결혼할 사람에게 필사해서 주고 싶은 시랍니다. (미소)

붉은, 붉은, 그리고 기도
▶ 이 : 집을 읽다 보면 ‘꽃’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색’에 대한 천착입니다. 특히 ‘붉음’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니신 것 같습니다. 「홍조」나 「붉은 광장」, 「붉은 염전」 등의 작품들이 그러한데, 시에 색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이유가 있나요?
▶ 성 : 제 시에 ‘붉음’이 지배적인 이유는 사실, 살면서 피를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에요. 병원에 입원하면 아침에 채혈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혈관이 막히거나 굳어서 죽을 수 있는 병을 가졌거든요. 제 피는 보통의 묽은 피와는 다르게 진득진득하고 뻣뻣해요.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 뇌가 막히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피가 굳지 않는 약을 먹어야 하죠. 때로는 사혈(瀉血, 치료의 목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얼마간 몸 밖으로 뽑아냄-옮긴이 주)을 하기도 해요. 몸속의 피 중 십분의 일 정도를 일부러 뽑아서 순환을 돕고 몸을 묽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참 그러한 것이, 여러분들도 자기 몸속에 있는 생피를 십분의 일이나 뽑아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주사기로 뽑으면 몇 십 개고, 그게 통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정말 안 좋아요. 저 같은 경우 피를 빠르게 뽑을 수 없기 때문에 피를 받아내는 동안 의사가 옆에서 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그러곤 피를 버리죠. 가끔 저희 엄마가 버리기 아깝다고 하실 때가 있는데, 제가 그럼 싸가지고 가시라고 농담도 하고 그래요. (웃음)
조영술을 할 때 허벅지 쪽을 뚫어 와이어를 넣는데 지혈이 잘 안 되면 출혈이 많이 되는데, 그러면 흰 환자복이 빨개지기 시작해요. 제 시에서, 흰색과 그에 대비되는 붉은색이 자주 쓰이는 이유는 바로 그런 감각, 제가 체험을 통해 실질적으로 강하게 느끼는 감각이 상징화되어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이 : 우리에게는 비일상적인 이야기네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특별한 체험. 가슴 아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망각할 때가 많은데, 성동혁 시인은 늘 죽음의 위협과 싸워야 하고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겠군요. 그러한 실존적 조건이 자주 죽음 너머를 생각하게 하고,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라는 시인의 말을 쓰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울러 성동혁 시인의 시집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성동혁 시인에게 문학과 종교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 성 :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예전에 한 산문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수술실에 들어갈 때의 기억으로 이어져요. 왜냐하면 수술실에 들어가면 철저히 혼자거든요. 엄마도 수술 대기실까지밖엔 못 들어오시니까요. 수술실에 홀로 누워 ‘아, 수술실에는 엄마가 들어올 수 없구나, 나는 진짜 혼자구나.’ 생각할 때, 살을 맞대고 있을 사람이 없으니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게 신(神)이었어요. 수술실 안에서 엄마 생각을 하면 심리적으로 안 좋고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신 절대자에게 생명을 맡기며 기도를 하곤 했어요. “하느님, 저를 데려가실 거면 데려가세요. 대신 살려 두실 거면 건강하게 살려 두세요.” 그런 기도를요. 마지막 순간에 의지할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기도를 통해 어떤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의외로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했고요.
저는 제 시가 하나의 기도문, 하나의 편지였으면 해요. 시를 쓸 때 누군가를 생각하며 쓸 때가 많고요. 전에는 시를 쓰기 전에 꼭 성경 한 장을 필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말씀을 몸에 체화하고 나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 거죠. 성경 구절을 문신하기도 했고요.
▶ 이 : 그럼 이쯤에서 이 자리에 계신 독자 분들께 시 낭송을 청해 볼까요?
▶ 여성 독자 : 「긍휼」이라는 시를 읽어 볼게요. 저는 종교인인데, 그래서 성동혁 시인의 시가 특별하게 읽혔고 시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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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그러니까 대체로 시금치를 데치는 저녁 |
▶ 남성 독자 : 저는 경기도 포천에서 왔어요. 실은 성동혁 시인의 친구예요. 저는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쌍둥이」를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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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정물화는 형이 몰래 움직여 실패했다
우린 나란히 앉아 닮은 곳을 찾아야 했는데
의자에 앉아
세모로 자라는 지문을 사포질하고
형과 함께 배 속에 있었다 생각하니 비좁았다
우린 충분히 달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란히
그것은 월식에 대한 편견이다
모르핀을 맞지 않아도
불을 켜면 자꾸 형이 보인다 |
▶ 성 : 제 주변에는 글 쓰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음악이나 미술 하는 친구들인데, 그래서인지 책이 나와도 ‘그냥 책이 나왔나 보다’ 할 뿐 독자가 되어 주는 친구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 친구는 후배이자 제 시의 독자가 되어 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웃음)


여섯 번째 삶
▶ 이 :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볼까요? 시집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을 텐데요. 다섯 번째 수술 이후의 삶. 그것이 ‘6’이라는 숫자로 코드화되면서 어떤 증폭을 만들어내지요. 여섯 번째의 새 삶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갱생’의 의미를 넘어서는, 시인만의 새로운 지표 같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시인에게 그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 성 : 그 전에 시집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이 시집은 제가 감각적으로 굉장히 공들인 시집이에요. 표지에 ‘미러(거울)’를 만들려고 편집자에게 자필로 세 장이나 편지를 썼어요. 저는 이 시들을 기도문이라 생각하며 썼기 때문에, 그리고 기도문의 호흡이 워낙 천천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시집 표지를 보고 의미를 바로 알기보다는 어떤 감각만 전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 독자들이 시집 안으로 천천히 입장할 수 있게요.
숫자 ‘6’에 대해서라면, 제가 「6」이라는 제목의 시를 두 편을 썼는데요. 작은 수술은 여러 번 했지만 큰 수술은 다섯 번 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수술은 무려 19시간이 걸린 대수술이었어요. 죽네 사네 했고, 수혈을 77통을 받았고요. 제 몸 안에 제 피가 없었던 거죠. 제가 수상소감에 “저는 당신들로 흐릅니다”라는 말을 썼는데 그게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아빠 회사 사람들이 수술 전날 오셔서 채혈을 해주시기도 했죠. 그 수술을 앞두고 정말 두려움이 컸어요. 나에게 여섯 번째 삶이 주어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여섯 번째 삶을 살게 됐고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앞으로 제가 또다시, 그러니까 여섯 번째 수술을 해야 한다면 출혈이 크기 때문에 많이 힘들 거라고 해요. 그래서 다시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 이 : 삶과 시가 너무 가까워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네요. 사실 성동혁 시인의 평소 모습을 보면 정말 잘 웃고 잘 즐거워하고, 밝고 좋은 에너지를 가졌는데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들은 참 무거운 것 같습니다.
한편 시집 전체에 어린이에 대한 지긋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실제로 어린이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어린 화자, 어린이의 응시법 같은 것들이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 성 : 제가 유난히 마음 쓰이는 존재가 어린이이고, 요즘 들어서는 노인에게도 마음이 쓰여요. 몸이 아프면서 노인의 몸과 흡사한 부분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제가 통풍이 좀 심한 편인데 그건 제 나이또래가 일반적으로 겪는 증상은 아니잖아요? (웃음) 얼마 전에도 청바지를 입다가 넘어졌어요. 하체가 튼튼하질 못해서……. (웃음)
아무쪼록 저는 아직도 어린이 병동에서 치료를 받아요. 몸 안이 다 기형이기 때문에, 인수인계가 안 되고 저를 수술했던 의사만 계속 수술을 할 수 있어서 어린이 병동엘 가야 하는데, 그럴 때 아이들을 많이 보게 돼요. 실제로 함께 병실에 누워 있던 아이들 중엔 죽은 아이들도 있고요. 그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하지 못한, 내지 못한 목소리를 내가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아요.
병실에 있을 땐 아이들이 다 제 친구예요.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 아팠던 생각도 많이 나고요. 그중에는 아파도 아프다고 안 하고 독하게 참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성숙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고통의 근원지 같아요. 감성적으로 인격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 이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꾸 울컥하네요. 즐겁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어린이라는 존재가 문학적 상징으로 봐도, 어떤 세계를 통과하기 전의 미성숙한 자아잖아요. 그 안에 원형적인 것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존재.
▶ 성 : 우울한 얘기라고 생각지 마세요. 아픈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게는 그것이 그냥 생활이에요. 단지 몸 안이 조금 다른 것일 뿐 저는 제가 아프고 병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우리가 대체로 못생긴,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가졌듯이. (웃음) 그러니 우울해하지 마세요.


빛이 있는 쪽으로
▶ 이 : 분위기를 조금 바꿔 보고자, 이번에는 성동혁 시인의 일상에 관한 질문을 던져 볼게요. 제가 아는 성동혁 시인은 랩도 잘하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에너지 많은 청년인데요. 시 외에도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 성 : 문학에 인생 전체를 맡기는 분들이 들으시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제가 체력적인 여건이 됐다면 시를 안 썼을 것 같아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웃음) 이를테면 장사나 운동, 여행 등등 발로 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글의 폭을 넓히려고 애쓸 뿐이죠.
저는 옷을 정말 좋아해요. 친구들과 ‘뭇다’라는 브랜드를 런칭(launching)하기도 했고요. 원고료도 거의 옷을 사는 데 써요. 좋은 옷은 빨래를 해보면 알아요. 비싼 옷이 예쁘죠. 저는 새 옷을 입으면 정말 시가 잘 써져요. 각이 잘 산다고나 할까? 재킷을 입을 때의 마음, 스냅 백을 쓸 때의 마음이 다 달라요. (웃음) 만약 좋은 시를 보시고 싶으면 제게 옷을……. (일동 웃음)
음악도 정말 좋아해요. 음악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 체력적인 문제로 꿈을 접었지만, 대학에 와서는 컴퓨터로 프로듀싱 하는 것을 배우기도 했어요. 주로 힙합 음악을 프로듀싱 했고, 공연도 많이 했죠. 음악이 직업이 되진 않았지만 요즘도 가끔 녹음을 해요. 문단을 씹는 랩도 한 적이 있답니다. (웃음)
▶ 이 : 비매품처럼 만들어서 시집에 끼워 팔아도 될 것 같아요. (웃음)
▶ 성 : 여력이 생기면 정말 할 생각이 있어요. (웃음)
▶ 이 : 제가 성동혁 시인이 랩 하는 것을 들어 봤는데 일정 수준을 넘어섰더라고요. 다리 꼬고 앉아서 하는 랩이었는데, 랩이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 분들도 궁금한 것들이 생겼을 텐데, 이제부터는 독자 분들의 질문을 받아 보도록 할까요?
▶ 독자 :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미술적인 것인데, 미술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 성 : 네, 정말 관심이 많아요.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미술관 앞에 있을 때의 정적을 너무 좋아해요.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도 하루에 한 군데의 미술관에 가는 게 일정의 전부였어요. 하루 종일 미술관에만 있고, 미술관 앞 벤치에 혼자 앉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림은 잘 못 그려요.
▶ 독자 : 아까 사인 해주실 때 보니까 글씨체가 멋지더라고요.
▶ 성 : 네. 제가 ㅁ과 ㅎ 쓰는 걸 좋아해요. ㅎ은 꼭 모자 쓴 것 같잖아요. (일동 웃음)


▶ 오창은 평론가 : 성동혁 시인은 세계의 양면을 표현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러니까 형상의 이면, 즉 ‘안 보이는 부분’이 시인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올 때, 그때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 성 : 그런 행들은 보통 퇴원하고 나서, 앞서 말씀드린 미술관 앞에서의 시간처럼, 침묵 안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문장들이에요. 실은 침묵에 대한 감각인데, 어느 정도의 침묵이 답보되지 않으면 그런 행들을 못 쓰죠. 마감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워밍업의 시간이 필요해요. 마감을 앞두고 약속이 잡히거나 하면 호흡이 깨져서 시를 잘 못 쓰게 돼요.
그런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너머를 사유하게 되는데, 저는 그것을 ‘뉘앙스’라는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물이 있지만 그것이 보이는 것의 전부라거나 실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를테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말을 할 때, 그것은 실질적인 대상 혹은 말이 아니라 ‘뉘앙스’ 같은 것이잖아요. 사물의 뉘앙스, 사람의 뉘앙스, 신에 대한 뉘앙스. 그러나 그런 ‘뉘앙스’를 통해 진짜 그것에 다다르는 과정. 그러니 조용히 더 사랑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김이듬 시인 : 제가 성동혁 시인을 너무 좋아해서 빗길을 열 시간이나 달려왔어요. (웃음) 제가 얼마 전에 성동혁 시인의 시를 가지고 서평을 하나 썼는데요. 저는 무신론자, 유물론자에 가까운 사람인데 성동혁 시인의 시집을 읽고, 마침 그 글을 토요일 저녁에 마무리하는 바람에, 다음날 교회를 다 갔어요. 물론 계속 나가진 않았지만요. (웃음) 그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읽은 시가 「나 너희 옆집 살아」인데, 그 시는 마치 랩을 듣는 것 같은 음악성도 있고 독특한 스타일로 쓰였더라고요. 그 시에 등장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질투가 나던데, 그 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했어요.
▶ 성 :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오셨습니다. (일동 웃음) 「나 너희 옆집 살아」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 왜냐하면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는, 실제로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듯 쓴 시거든요.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그러니까 저는 남의 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잖아요.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살려 놓은 삶이기 때문에, 옆 사람들에게 흘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가 외로울 때 다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니다, 나는 네 옆집에, 전화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마음을 담아 쓴 시였어요. 친구들이 제가 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여길 수 있게요.
▶ 이 : 그러지 말고 그 시를 낭독해 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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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희 옆집 살아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소년이 되어서도 이사를 가지 않는 난 너의 옆집 살아 | 너의 집에 신문이 쌓이면 복도를 천천히 걷고 | 베란다에 서서 빈 새장을 바라보며 | 새장을 허물고 사라진 십자매를 기다리는 난 | 너의 옆집 살아 | 우린 종종 같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 같은 소독을 하고 같은 고지서를 받고 같은 택배를 찾으며 || 안개가 가로등을 끄며 사라지는 아침 | 식탁에 앉아 처음으로 전등을 켜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이사를 오며 잃어버린 스웨터를 찾는 너의 | 냉장고 문을 열어 두고 물을 마시는 너의 옆집 살아 | 내가 옆집에 사는지 모르는 너의 | 불가사리처럼 움직이는 별이 필요한 너의 옆집 살아 | 옆집엔 노래하는 영웅이 있고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 두는 소년이 있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올리는 착한 어린이가 있어 || 십자매가 날개를 접고 돌아와 다시 알을 품을 수 있도록 | 알에 묻은 깃털을 떼어내지 않는 | 비가 오는 날에도 창문을 열어 두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복도의 끝에서 더 긴 복도를 만들며 | 가끔 난간 위에서 흔들리는 코알라처럼 | 난 너의 옆집 살아 | 바다의 지붕을 나무에 새기며 | 커튼을 걷으면 밀려오는 나쁜 나뭇잎을 먹어 치우며 | 같은 난간에 매달려 예민한 기류에도 함께 흔들리는 난 | 난 너희 옆집 살아 |

▶ 독자 : 시에 가족이 종종 나오더라고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등등. 그런데 저는 유독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고, 할아버지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 성 :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얼굴을 직접 뵌 적은 없어요. 할아버지를 못 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에 할아버지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아빠와 저를 매개하는 분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은 아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례로 「숲」이라는 시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쓴 러브레터 같은 것이거든요. 그 시는 저희 아빠가 엄마에게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에요.
고모가 돌아갔을 때 쓴 시도 있었고, 할머니 이야기를 시로 쓰기도 했는데, 저희 할머니께서는 말년에 치매에 걸려서 저를 못 알아보셨어요. 할머니가 오래 사시기는 했지만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내진 못했어요. 아마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할머니를 봤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할머니를 생각하면 죄송한 게 있죠.
▶ 이 :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 어느덧 행사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 성 : 저를 ‘소년 사도’라고 불러 주셨지만, 사실 저는 농담도 잘하고 욕도 잘하는 사람이에요. 시집을 낸 것도 호흡을 좀 다지고, 나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의 일환일 뿐,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삶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고요. 되레 시집을 엮다 보니 가족들 이야기나 제 아픈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이렇게까지 시를 썼어야 했나 싶어 힘든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도 시집이 나오고 나서 친구들, 선생님에게 편지를 주듯 시집을 선물할 수 있어서 그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할 때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 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잠만 자던 제가 시인이 됐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만약 등단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인격적으로 너무 괴롭히지 말고, 자기 호흡으로 시를 쓰셨으면 좋겠어요. 등단 전부터 시집 한 권을 생각하면서 좋은 시를 쓰고 있으면 언젠가는 분명 자기 시간이 올 거예요. 시집에 넣을 시라고 생각하고 쓰면 자기 검열도 훨씬 아름답게 하게 될 테고요.
그리고 저는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누구 하나라도 누워 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도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아픈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옆집에 사는 것처럼요. (미소)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유독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었고, 그런 만큼 뾰족하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의 명랑함 속에 감춰진 여리고 환한 속살을 몰래 훔쳐보는 듯했던 저녁.
“시 쓰는 동혁이는 집에 있어요.” 그것은 그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내게 던진 농담의 일부였다. 아마도 나는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왜 그의 시가 그토록 투명할 수 있는지.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슬픔이어서, 그토록 영롱하게 빛이 났다는 것을.
《문장웹진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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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작가[편집위원 기획-Game & Writer] 게임과 작가1) 임가영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림이 좋다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이유로 예술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계 설정에 관여하는 시도들이 좋았다. 더불어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았다. 위대한 창작자의 숙련된 솜씨와 천재적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시도들이 공감이 갔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현대미술을 택했다. 예술을 하기 전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고, 처참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관심이 갔던 과목이 ‘정치철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려(웹툰 어시스턴트와 게임 캐릭터 원화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을 창작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 그림에서 예술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미대를 들어갔고,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미술 갤러리 안에서 카레를 끓여 나눠 먹거나 지역의 경찰과 청소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청소년 범죄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러한 참여형 미술을 둘러싼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담론적 논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어렴풋이,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인 듯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믿고 예술을 시작했는데, 저자는 좀처럼 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교수는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아직 작가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는 ‘자기 일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혹은 그에 준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중심점’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다음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잘 기록해서 다음 전시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교수는 작가가 에고가 강하고 별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작가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은 일종의 폰지 스킴(Ponzi scheme)처럼 나를 가짜 약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아니면 나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을(아무리 이런저런 반작가적 실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담론이 존재한다 해도 결국 제도는 안정적인 창작자–수용자 모델 속에서 지속되며, 이것은 사실 ‘저자의 죽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 같은 걸)
- 임가영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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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 이태형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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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죽어[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모르면 죽어 박서련 근황 얘기에 영 소질이 없다. 웃길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를 박장대소하게 하거나 전혀 어두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소재로 분위기를 망치거나. 요즘은 게임도 그렇게 재미 있지가 않아요. 최근에는 이 말을 좀 자주 했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지만 듣는 분마다 놀라셔서 내가 더 놀랐다. 헉 진짜요? 서련 씨가요? 작가님이요? 그게 그렇게 의외이실까, 약간은 머쓱해하다가 내가 한 말이 왠지 ‘요새 밥도 맛이 없어요’처럼, 그러니까 중증 우울증 환자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음을 조금 의식하곤 했다. 그럼 이제 여가 시간에 뭘 하세요? 요즘엔 뭐가 재미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게임을…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요 재미있지는 않아도 그냥… 해요. 전보다 게임 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습하듯 덧붙이곤 최근에 삭제한 어떤 게임을 떠올린다. 영주가 되어 한 도시국가를 경영하고 연맹의 일원으로서 왕국 간의 전쟁에 참전하는 콘셉트의 모바일 게임이었는데, 삭제하기 직전 확인한 플레이 타임은 대략 700시간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였나, 한국인 유저가 별로 없을 때 시작해서 다국적 연맹에 가입했고 이따금 인도네시아에 사는 여성 연맹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게임에서 아시안 여성 게이머를 알게 되어서 좋아요. 나도 그래요. 연맹원들에게 내가 한국인 여성인 것을 밝히고 받은 메시지는 대체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나요?’ 같은 것이었고, 그 사람과 내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대화도 내가 잘 모르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서 역시 크게 관심 없는 멤버가 탈퇴했다는 소식에 대한 거였다. 상대방이 아주 슬퍼했기에 나는 그 주제에 그리 관심이 없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 며칠 후에 별다른 개연 없이 그 사람이 다른 왕국(이 게임에서 ‘왕국’은 서버를 의미한다)으로 이주했다. 뒤따라 이주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없으니 더는 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성은 연맹 내 등급이 차츰 떨어진 후에 연맹에서 자동 탈퇴될 거다. 그러면 연맹 사냥터 인근 개꿀 자리에 위치한 내 성이, 연맹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물처럼 여겨질 거다. 그럼 연맹원들이 내 성을 공격하겠지. 성이 충분히 데미지를 입으면 왕국 내 랜덤 위치에 자동 이동하게 되니까. 그렇게 되기까지 한 일주일 걸리려나? 길면 2주? 이 게임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기 직전 나는 전투력 1억을 막 넘긴 상태였다. 축하해, piupiu. 아이디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연맹원이 연맹 채팅 채널에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성의 전투력이 그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내 성을 공격할 때 연맹원들은 애를 좀 먹으려나? 아니겠지, 우리 연맹에는 일
- 박서련
- 2026-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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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성 시인님.
가고싶었지만 일이있어 못갔는데, 이렇게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읽을수 있어서 무척 기뻐요.성동혁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떠나고 달이 커졌?다고 한 시랑 정물화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나 너희옆집살아;는 더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