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인터뷰 나는 왜/김성규 시인의 자선시] 강 외 2편
- 작성일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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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인터뷰 ‘나는 왜’]
김성규 시인의 자선시 3편
강
김성규
초등학교 입학 전, 강 건너편으로 다리가 놓였다 어머니는 그 강을 건너 식당으로 가고 나는 강 이편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걸었다
강은 내 어머니를 강 건너로 데려가고 우리 형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고 죽은 할머니에게 한척의 배를 마련해주었다
취한 아버지는 젖은 풀밭에 앉아 땀 흘리고 누나들은 송사리떼를 쫓아 공장으로 가, 나는 죽은 채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행복했던가
욕심이 많아 모든 것을 빼앗긴, 죽지 않고 버티다 몇년을 더 살다, 허리에서 잎사귀를 뱉어내는 나무를 보며 이곳에서 걸어나갔는가
뒤안에 구슬을 묻고, 흘러갔는가 그 다리를 건너 어머니가 돌아오고, 죽은 할머니가 화를 내며 건너오라 울어도 홍수에 떠내려간 다리 밑에 서서
웃는 식구들을 본다 삶은 옥수수를 들고 평상에 앉아, 뭉게구름처럼 늙어가는 어머니, 철없이 합창을 하는 어린 누나들
나를 찾으러 올 것이다, 밥 먹으라고, 목이 쉬도록, 내 이름이 메아리로 돌아와 나를 흔들 때까지
글씨를 쓴다, 물 위에, 쪼그려앉아, 처음으로, 어둠이 앞다퉈 몰려와 얼굴을 지울 때까지
이제는 나를 용서하고, 나를 이해해야 한다고, 흙 속의 구슬처럼 우는, 나를 용서해야 한다고……
장롱을 부수고 배를
집집마다 아우성이다 장롱을 부수고
배를 만드는 사람들, 냉장고를 타고 떠내려가는 사람들
쓰레기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길거리
떠내려가는 집에 실려 둥근달을 바라본다
물의 아가리가 전봇대를 씹어먹고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퍼내자
밀려오는 허기, 털벌레들이 몰려와
도로와 마을을 뒤덮듯
허기는 내 몸 어디에 숨어있다 밤마다 나타날까
육각형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토끼처럼
깔깔거리는 창녀들이 유리문 밖으로 손을 흔든다
죽어라, 차라리 죽어, 더 크게 울어도
사내들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녀도
새벽이면 다시 거지와 깡패들이 사라지는 한철
물 위를 떠다니는 쓰레기가 반짝인다
서로의 목을 감으며 사내들이 허우적거린다
어디쯤까지 떠내려가야 배가 멎을까
잠을 자다 빠져나와 보니
모두들 익사체로 인사하는 밤
두꺼비만한 달이 구름을 밟고 기어나와
물속에 잠긴 도시를 비춘다
과자봉지와 죽은 돼지가 진흙에 섞이고
들판의 곡식들이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이면
지상에 꺼진 가난의 등불은 다시 타오르리라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젖가슴을 만지며
사내들이 늙은 창녀들을 밀어내던 방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술집과 병원의 간판이,
홍수 속을 떠다닌다 창녀들을 태운 유리배가
보이지 않는 물결 너머로 떠내려갈 때
나도 장롱배를 만들어 타고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잉어사육
이것을, 어머니 왜 보내셨어요?
아이스박스에 살아있는 잉어가 들어있었다
아버지가 옆집에서 몇만원이나 주고 사오셨다
죽이지 말고 잘 키워라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어머니
제 인생이 달라지지도 않아요
칼을 들이대자 그놈은 사람처럼 눈물을 흘렸다
콧구멍으로 콧물도 흘렸다 도로 수족관에 풀어넣자
잉어는 나를 비웃으며 천천히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잉어는 사람의 다리처럼 생겼다
배가 고플 때마다 수족관을 발로 차듯 쿵쿵 들이받았다
너는 지난번의 가물치처럼 나를 죽이러 왔구나
어머니 잉어를 키울 수 없어요
너는 어릴 적 잉어 보기를 좋아했잖니……
잉어가 밤마다 울기 시작했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잉어를 집에서 키우면 복이 들어온다더라
사료를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해진 잉어,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요, 안된다 복이 달아나
이건 잉어가 아닌 것 같아요 잉어는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나요
절대 죽이면 안된다 네 형의 영혼인지도 몰라
툭 하면 우는 게 죽은 그 애랑 똑같구나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네 인생도 좋아질 거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번갈아 전화를 했다
나는 수족관에 소주를 들이붓기 시작했다
잉어는 늙은 어머니의 화난 얼굴로 변해가고
잉어야, 너도 나와 같이 죽자꾸나
잉어의 배에 칼을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잉어를 좋아하는 저를 웃으며 바라보셨지요
내 얼굴에서 콧물이 흘러내리고 이불이
잠을 빨아들이듯 방바닥의 핏물을 삼키며 뚱뚱해졌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누구의
조금만 더 숨죽이고 기다려 보자꾸나,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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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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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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