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시인④] Donmee Choi최돈미
- 작성일 2015-06-02
- 댓글수 0
[기획특집]
미국의 현대 시인 ④
― Don-mee Choi (최돈미)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 미국의 현대 시인을 소개하며 > |
◆ [시인 소개] 최돈미 시인은?
최돈미는 『아침의 소식은 흥미롭다(액션 북스, 2010)』를 저술했다. 그녀는 동시대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도 번역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번역한 시집으로는 김혜순의 시집 『슬픈 치약 거울크림(액션 북스, 2014)』이 있다. 그녀는 화이팅 작가상(Whiting Writer’s Award)과 2012년도 루시앙 스트뤽 번역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는 소책자 『자그마한 선언문(베가본드, 2014)』을 포함하여 소논문 『마음대로 닳아버린』, 『ㅋ=q』, 『& 인종=국가(웨이브 북스, 2014)』가 있다. 그녀는 2013년도 펜 어워드(PEN Award), 시 번역 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 Don-mee Choi(최돈미)
■ [서문] 패자의 시 : 최돈미의 시
우리가 한국 시와 미국에서 출판된 세계적인 주요 문집이라는 틀 안에서 가시성을 높게 인정받은 시를 읽어 보면 제한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아주 드물게, 미국 경제 식민주의와 미 제국의 흔적을 비판하고 있다. 이 제한된 표현의 결과는 미 제국주의 때문에 생겨난 피해이며, 계속 진행 중인 군사점령은 검열된 무죄로 승화된다. 이러한 결백으로 하여금 미국 독자들이 자기네들의 정치적 또는 윤리적 과오는 생각하지 않고, 동떨어진 인공산물로서 한국 문학을 조사하고 발견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끊임없이 시를 제시하는데, 이 시는 아시아 문화, 미 제국주의가 아시아 배경에 배어 있는 정치적인 충돌, 그리고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삶에 녹아 있는 미 제국주의의 과거 유산 및 실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를 문화적 시도에 맞서는 것으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한국 시인은 고은이다. 고은의 시가 한국 시를 대표한다는 게 아니라,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고은의 시가 미국인들에게 가장 쉽게 먹히는 시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고은의 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화적인 가설과 신념에 도전하지 않는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적인 인물로서 고은의 엄청난 관록과 권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된 그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로 인해 서양 사회가 아시아 문화에 대해 지니고 있는 단순한 생각이 대변되고 지지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미국 시 재단 웹사이트에서 발췌한 고은의 시 「귀」(번역: 곽김수지와 김곽순자)를 살펴보자.
| Ear / Ko Un | 귀 / 고은 |
| Someone’s coming | 이 세상 넘어 |
| From the other world. | 다른 세상에서 누가 온다 |
| Hiss of night rain. | 밤빗소리 |
| Someone’s going there now. | 누가 그 세상에 간다 |
| The two are sure to meet. | 꼭 만나리라 |
짧은 행으로 구성된 짤막한 시로, 자연의 감각적이고 목가적인 인상을 담고 있으며, 부처의 지혜에 대한 모순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시는 도전적이지 않지만, 아시아인들의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이 시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하스 로버트라는 시인이 “강단 있고 격렬한 사람…… 회색머리에 맨발의 소작농 차림을 한…… 한국의 전통 북을 두드리고 있는”이라고 쓴 것처럼, 서양 독자들은 이런 유의 시를 아시아 미학시의 대표로 꼽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시선집 ECCO에 대표작으로 실린 한국 시를 들여다보면, 서정주, 김남조, 고은, 한용운 등의 시를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일본 식민주의에 반대하고, 박정희 독재정부에 반대하는 친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지만, 한국 내 미 제국의 지속적인 실재와 역사의 복잡한 본질을 대변하는 시는 없다. 그러므로 선발과정을 통해 한미 관계를 긍정적으로 반영한 친민주주의 또는 일본 식민주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미학적 선택 또한, 아무 말 없이 정치적 검열의 행위를 끌어들이지는 않을까? 이 선집에 포함되어 있는 시인과 시의 형태 또한, 당대의 한국 생활에서 계속 문제되고 있는 더 복잡하며 독재정부라는 최근 역사와 정치 부패 그리고 대기업의 탐욕에 관해 조사하는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일본 식민주의의 중요성을 고양시키려고 맞춰진 민족 주체성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는 또한 미국의 잔혹행위(과거와 현재)는 묵과하는 한편, 일본 식민주의는 악마처럼 만든다. 일제 침략기가 분명히 중요하지만, 세월호 사고와 국민 자살률 같은 현대의 비극을 질질 끌고 있는 일본 식민주의의 영향에 직접적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여기서 요지는 세계 질서와 동등한 것이 아니라 관련 없는 내용으로 국가 정체성에 잘 들어맞는 특정한 시에만 특권을 줌으로써, 이러한 주체성이 세계 권력의 불균형을 다루는 역할을 우리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한제국 또는 한미제국 내에서 최돈미 시의 불안정한 설득력을 논의하기 위한 발사대로 이러한 정체성과 권력에 대한 가공된 구성을 이용해야 한다.
시를 역사의 증인으로 바라본 캐롤린 포르셰와 달리 최돈미의 시는 들뢰즈와 과타리가 노마돌로지(닫혀 있는 내적 공간에서 자기 입장을 견고히 하는 상징과, 반대로 열린 공간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노모스적인 것)라고 묘사된 것에서부터 일어난다. 최돈미의 시는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 적극적인 구경꾼의 필요한 정치적·사회적·언어적 특권을 지닌 목격이라는 유리한 입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최돈미의 언어는 어마어마한 외부로 연결된 진술의 공동 집합체에서 발생한다. 즉, 한 세력은 제도뿐 아니라 제국의 힘의 문법성까지 고발한 순전히 다른 것을 형성시켰다. 미국에 창의적인 글쓰기 과정이 급부상하면서, 많은 프로그램에는 “성공한” 시인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성공한” 직업을 갖는 법, 본인 및 본인의 작품을 “파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돈미의 시는 오류, 혼란, 방해 행위를 기반으로 한 시다. 그녀는 조웰 멕 스위니가 “패자 비술(이는 “낡은 부계제단과 문학유산제단을 여전히 숭배하는 문학의 어떤 개념의 배제”다)이라고 일컬은 것의 일부다. 스위니가 말하길, “문화생산자들 중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고, 돈도 없고 무기력한 시인들이 늙은 성차별주의자와 재산에 강박이 있는 지배층이 소유한 소금광산에서 밤낮으로 작업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최돈미와 그녀의 시, 번역물에서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2012년 랜턴 리뷰지에 게재된 그녀의 인터뷰 내용처럼, 그녀는 자신의 글과 번역물을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간주하며, “내가 초기에 한 번역(및 시 쓰는) 기술은 실패다.”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잡은 주제 문제 때문에, 최돈미로 하여금 우리는『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패자 승리의 사례다”를 제시한 사르트르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서 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제국과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승자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과 한국에 관해 이야기하고 현재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전쟁과 제국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전쟁에는 패자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목표에서 행동을 떼어 놓을 수 있다면, 언어가 표현수단으로 그 후 폭력의 외설물로 만듦으로써 시는 그렇게 하기 때문에, 보들리아르가 제시했던 동시대 전쟁의 과도현실 경험은 괴물 같은 인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들이 시를 통해 폭력을 기록하는 행위는 비로소 기괴한 현실이 된다. 영화와 역사서에서 최돈미가 쓴 잔학행위들을 보여주었지만, 그녀가 쓴 시를 통해서만 그러한 행위들은 충격을 안겨 준다. 우리가 일어난 일을 몰랐던 게 아니라, 해당 언어로 진실을 제공한 방식 또한 거짓말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힘의 문법의 닫힌 논리는 언어를 초월할 수 있으며, 그것은 최돈미가 대처하는 정체성 정치학의 문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상품의 중재 없이 예술작품을 현실적인 관계로 해방시켜 줄 수 있었던 국제시장 너머에 있는 세상을 꿈꾼 마르크스처럼, 최돈미의 시는 고정된 정체성의 닫힌 정치로부터 떼어낸 혁명적인 문법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같은 행동을 통해, 제국의 힘의 굴레를 벗어나려 한다. 그녀는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그녀는 외국어로 글을 쓰는 외국인이다. 우리 모두 그러하다. 국적은 신화다. 고향 같은 건 없다. 배(mother ship)가 어느 행성에 정박해 있다. 모국어(mother language)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글 _ 제이크(Jake Levine, 시인)
■ 최돈미의 시
|
귀화 일기
2002년 8월 8일 38선 이남에 도착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장소는 한 국가의 허리 아래에 있다. 내가 떠나기 전, 제국은 출범했고, 즉, 제국은 위대하다. 나는 그곳의 지형을 따라간다. 멀리서 보면, 허리 아래는 벼를 심어 놓은 논, 채소를 심어 놓은 밭,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골목과 전통 기와지붕이 얹힌 집들이 모여 있는 뭔가 다른 작은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이 광경을 보면 고향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이곳이 내 고향이다.
상세 묘사: 영어로 된 간판이 달린 클럽, 식당, 기념품 가게. 옷 가게, 그러니까 영어는 나보다 먼저 도착했고, 내가 떠나기 훨씬 전부터 여기에 있었다. 파파 산, 러브 숍, 팝스, 골든 테일러, 파운. 이 간판들을 따라가자 헬리콥터 이착륙장인 캠프 스탠리 문 앞에 다다랐다. 그러니까, 언어란 믿는 게 아니라, 따르는 것이며,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70대 여성이 러브 숍 옆집에 살고 계셨다. 이 할머니는 오후에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 번도 허리 아래쪽 나라를 떠나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결국 정부는 이 할머니를 열렬한 애국자로 인정했다. 즉, 할머니는 간판을 따라갔고,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득실대는 이 때문에 고생했고, 미군에게 이를 옮겼다. 난 고향이었던 걸로 기억나는 집들을 따라갔다. 집을 따라가 보니 내 앞엔 또 다른 철문과 철조망이 놓여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이 마이 시스터스 플레이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이 귀향한 해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대통령 암살 소식을 들은 일은 기억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여기 있었고, 나는 여전히 다른 곳에 있었고, 언어 통일은 본질적으로 정치와 관련이 있다. 여자는 자신의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이야기를 하나 해줬다. 손가락으로 거칠게 자신의 입을 가리켰고, 이어서 벌린 다리 사이를, 이어서 뒤를 가리켰다. 미군의 총이 있는 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즉, 절대적인 선택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말해, 가난에 대해 선택은 없었고, 절대적인 선택이 강요됐을 때, 여자는 미군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즉, 제국이 대통령보다 더 위대했기 때문에, 여자는 제국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여자는 따라갔고, 자신의 딸을 이 지형에 남겨 놨고, 자신의 집게손가락은 절대적인 선택에 따라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여자는 고향에 도착했다.
1992년 10월 28일 윤금이의 머리는 코카콜라 병으로 세게 얻어맞았다. 그녀는 죽어 있었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음부에 코카콜라 병이 꽂혀 있었으며, 항문에는 우산이 꽂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제국이 하나의 세상 또는 대통령의 보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제국은 대통령이 집게손가락에 하얀색 소독약을 뿌리기 전후에 안팎으로 문법성을 강요한다. 그 어떤 이도 문법성에 무지할 순 없다.
1999년 9월 10일 어느 여자의 불가사의한 죽음.
그 여자는 출혈이 심했고, 전신에 짙은 멍투성이가 발견되었다. 얼굴은 혀를 쑥 내민 상태로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며칠 동안 세입자가 보이지 않자,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녀는 새 출발의 희망을 안고 클럽 일을 그만뒀다. 미군들이 향수병 때문에 그리고 취미 삼아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해서 이제 여자들을 강간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른 곳에서, 두 달 전에 동두천에서 만났던 한 여성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를 내가 번역한다는 것이며, 식민주의적 거리는 이질적인 향수병 때문에 틈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국이라는 기지로부터 허리 아래쪽의 강 한 줄기를 따라 흐르는 석유와 포름알데히드가 근거가 되어, 식민주의적 2개 국어 구사능력이 아닌 저항력 있는 2개 국어 구사능력이 없다는 게 아니라 지배언어로 인해 정복된 유일한 힘, 모국어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번역이란 추방이자 제국의 한 형태다. 있다 그리고 나는.
2002년 8월 10일 돌아올 적에 돌아올 적에, 나이 어린 군인들이 시청 앞 빗장을 지른 창문이 달린 버스 안에서 점심을 먹고선 낮잠을 자기 때문에 내가 그러한 일들을 말할 때, 사건들은 가까움 중에서도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제국 대사관이 낮잠 자는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실제로 옆방에 있다고 말할 때, 사건들은 가까움 중에서도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돌아올 적에 돌아올 적에, 낮잠 자는 군인들보다 더 크고 장성한 사람들에게 사건들은 작은 것 중에서도 작다고 말한다. 귀여움 그 자체. 돌아올 적에 돌아올 적에, 대통령 플라자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올려다본다. 제국의 대사관이 실제로 옆방에 있었을 때도 스크린에는 아들들의 아들들이 대통령을 위한 축구 경기를 응원했다. 대통령의 자식들이 결국 철회된 비자 목록에 지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는 지원서를 작성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돌아올 적에 돌아올 적에, 내 어린 시절의 골목을 따라가는 동안 둘인 것 중에서도 내 쪽은 조화의 강 위에 놓인 다리를 서성거리고 추방됨 중에서도 추방을, 그리고 제국적인 것 중에서도 제국을 번역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찾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아올 적에 돌아올 적에, 러시아 여인들은 제국의 헬리콥터 이착륙장 뒤에 자리한 숲길을 따라 매일 밤 산책을 하고 모든 간판들이 간판 중에서도 간판이기 때문에 필리핀 여인들은 대낮에 아기를 데리고 쇼핑몰이라는 클럽들 중 스트립쇼를 하는 클럽으로 걸어 내려간다고 말할 때 낮잠 자는 군인들보다 더 크고 장성한 사람들에게 나는 가까움 중에서도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2000년 3월 11일 이 글은 이태원에서 일어난 한 여인의 죽음과 관련된 우리의 관점이다. 32살의 김 씨는 알몸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미군 전용 클럽인 뉴아마존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김 씨는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사망했다. 2월 21일 김 씨를 살해한 혐의로 크리스토퍼 매카시가 체포되었다. 김 씨가 자신이 요구한 변태적인 성행위를 거절해서 그녀를 폭행하고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다. 이른바, 문체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반복된 변형의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문체란 한 개인의 심리적인 창작품이 아니라, 체계적인 진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문체는 불가피하게도 언어 내에서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 글은 의정부시 고산동에서 일어난 서정만 살인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만 66세 서정만 할머니는 피투성이로 바닥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오후 2시 20분경에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서정만 할머니의 눈가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앞니 두 개가 부러져 있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밤 11시 50분쯤 전에 한 미군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이 일어났다고 했다. 어릴 적, 서정만 할머니는 병을 앓다가 청각을 잃어 말을 못 하게 되었는데, 전쟁 당시 가족과 헤어져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사실, 문제는 없다. 답은 늘 결론이 없는 답이다. 누군가는 체계어의 체계어를 만들어낸다. 가령, 아들 중의 아들, 클럽 중의 클럽. 체계어에서, 삶은 죽음의 대답을 답해야만 한다. 체계어 아래에 비밀번호가 있다. 이를테면, 작별 중의 작별, 귀화 중의 귀화.
【참고문헌】 이탤릭체 :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
■ 시인과의 인터뷰
펜(PEN.org)에 실린 인터뷰
- 취재 : 라우렌 케란드(Lauren Cerand)
Q :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 당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가요?
A : 어릴 적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전쟁사진을 찍는 동안, 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내가 쓴 글은 사실 읽기 어려울 만큼 휘갈겨 쓴 글씨와도 같았죠. 난 영어로 글을 쓰는 척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여자애였어요. 아픈 사람들과 부상당한 사람들에게 처방전을 써줬어요. 그리고 내가 영어로 글을 쓴 이유는, 아버지와 늘 떨어져 지냈는데, 어딘가 먼 곳에 계셨기 때문에 난 아버지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크면 우리 아버지처럼 외국인이 되고 싶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로 글을 쓰는 외국인이 되고 싶었던 거죠.
Q : 당신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가요?
A : 프란츠 파농, 제임스 볼드윈, 마로사 디 조르지오, 로버트 왈서, 이상, 김혜순입니다. 사실, 김혜순 작품에서는 그녀의 문체나 그녀의 언어 이상의 것을 도용했지요. 그녀의 시를 번역할 때, 그냥 그녀처럼 썼어요.
Q : 어떤 장소에서 글 읽는 걸 가장 좋아하나요?
A : 우리 집, 제 싸구려 이케아 의자에서요. 제 짧은 다리 길이에 딱 맞거든요.
Q : 체포된 적이 있었죠?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요?
A : 네, 상관없어요. 군사독재정권 시절, 우린 어린 나이였고, 그때 아버지는 한국을 떠남으로써 우리가 체포되지 않게 보호했어요. 하지만 오빠가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시위 운동을 벌여 체포되었어요. 운 좋게도, 오빠는 두드려 맞거나 고문당하지 않고 풀려났죠. 예술 공부를 하러 1981년 미국으로 떠나려는 찰나 한국 정부 관계자가 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 내려서는 “법에 위배되는” 행위는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어요. 그가 한 말의 의미는 반정부/독재정권에 관련된 행동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였죠. 그는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한국 정부가 알고 있다고 했어요. 시인이자 번역가로서 내 글에 묻어나는 정치 심미적 태도 및 관례는 “불법”이며 아마도 그렇게 남겨지겠죠. 내가 체포될지 안 될지, 체포된다면 언제 체포될지 당신에게 알려줄게요.
Q : 강박관념이 영향을 줍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요?
A :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 대학에서 탈식민문학 및 공상과학소설을 가르치는 더갈 맥닐 씨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논문, 「오버랜드를 향한 ”이민, 나의 조국”(2014년 봄)」에 제 강박관념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어요. 최돈미 시에 쓰인 한 소절처럼 “순서대로 강박관념을 따르라. 이 강박관념들은 전쟁, 언어, 번역, 혼란이다.”
Q : 당신이 말로 옮긴 것 중에서 가장 대범했던 것은 뭔가요?
A : 발간 예정인 『전쟁이 일어나자마자(Hardly War)』에서 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대학살에 관한 시를 썼어요. 이 시가 대담한 것이겠지요. 잘 모르겠네요. 대학살에 관해 배우고 나서 악몽을 꿨어요. 제국 전쟁이 한국(남한)처럼 “자발적인”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방식들은 경제, 문화, 정치적으로 진심으로 엄청납니다. 이미 전화(戰禍)를 입어서 큰 충격을 받은 작은 나라에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거죠. 그 작은 나라는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적 폭력을 습득했고, 병력을 지원하는 데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고, 베트남인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행위를 저질렀어요. 전쟁 기간에 한국이 미국을 위한 용병 국가였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그리고 그 과거의 유산은 계속 진행 중인 대 테러전을 지속하고 있지요. “제국은 떠나야 한다!” 내가 낸 첫 번째 시집 『아침의 소식은 흥미롭다』에 쓴 글귀예요.
Q : 작가로서 책임감은 뭔가요?
A : 내가 동경하는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문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했어요. 리스펙토르처럼 우리 작가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아마추어 상태로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딱 한 가지는 빚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 대부분에게 불가능한 생각일 수도 있지요. 내 시간의 대부분은 빚을 청산하는 데 보내고 있어요. 푸코가 이미 지적했듯이, 우리는 시간 또는 일에 단련되어 있기 때문에 얽매임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요. 내게 시간은 돈이 아니에요. 시간은 자유지요.
Q : 사회참여 지식인이라는 개념이 뒤처져가는 데 반해 작가들이 공동의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A : 난 에드워드 사이드가 한 말과 개념을 좋아합니다. “추방된 지식인은 관습의 타당성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담함에 반응을 보이며,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옮겨 다니며 변화를 제시하는 데 반응한다.” 그리고 이 말이 독재적인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 분명히도 이것이 우리들의 공동의 목적의식입니다. 들뢰즈는 이미 우리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전달했고, 그건 바로 우리가 체계어에 저항할 것이라는 겁니다. 르 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항과 변화는 종종 예술에서 비롯되며, 상당히 자주 우리의 예술, 말의 예술에서 비롯된다.”
Q : 작가들을 투옥시키는 정부 지도자에게 어떤 책을 보내주고 싶나요?
A : 라울 수리타의 작품으로, 재능이 뛰어난 시인, 다니엘 보르주츠키가 멋들어지게 번역한 『사라진 사랑을 위한 노래(2010, 액션북스)』를 보내고 싶어요.
Q : 관찰과 감시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나요?
A : 감시는 명확하게 규율과 통제에 관한 것이죠. 관찰은 그 자체가 “불법적인” 경계선이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출처 : http://www.pen.org/interview/pen-ten-don-mee-choi#sthash.AzQYyycu.dpuf)
소개 및 글 _ 제이크 레빈(Jake Levine, 시인)![]() 제이크 레빈은 2010~2011년 리투아니아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비롯해 여러 장학금 및 수상을 한 바 있다. 두 권의 소책자(『삭제의 문턱(The Threshold of Erasure, Spork 2010)』과 『빌뉴스 악령(Vilna Dybbuk, Country Music 2014)』)를 저술했다. 그의 시, 번역물, 에세이 등은 보스턴 리뷰지, 루에르니카, HTML자이언트, 아틀라스 리뷰지, 페이퍼 다츠 외 여러 잡지에 실렸다. 그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토마스 스롬바스의 작품, 『갓/씽(God/Thing, Vario Burnos 2011)』을 영어로 번역했으며, 현재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정희연과 공동으로 한영 번역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전공 박사과정 중이며, 연세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또한 애리조나 투산 소재의 작은 출판사 스포크 프레스(Spork Press)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
《문장웹진 6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소설적 소설과 인간적 인간[문장웹진 다시 읽기] 소설적 소설과 인간적 인간 ― 정영수 「지평선에 닿기」(2016년 7월호 수록) 최예솔 최근 나는 단편소설을 한 편 썼다. 작년 7월에 처음으로 한 문단 정도를 써두었고 그 후로는 내내 생각만 하다가 올해 3월과 4월을 거치며 20매, 50매, 90매로 늘어났다. 매번 소설을 쓰면서 하는 생각이지만 소설은 결코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흘러가지 않는다? 써지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무튼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느냐면 도대체 소설적인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건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라는 어느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처럼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소설이…… 소설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또 괜찮은 일일까? 지금까지의 나는 보통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소설을 생각했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 일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그야 읽는 사람으로 작동하는 나는 ‘즐겜러’처럼 그냥 ‘즐감러’로 존재하니까. 하지만 내가 모든 게임을 마냥 즐겁게 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모든 소설을 마냥 즐겁게 읽지는 않는다. 어떤 소설은 읽고 나서 불편하기 때문에 좋고 어떤 소설은 하염없이 생각나기 때문에 좋고 어떤 소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좋다. 사실 소설은 ‘즐겁다’기보다는…… ‘이상하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나라는 독자가 소설에 바라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는 삶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상하고 또 합리적인 삶. 매사에 지루한 동시에 절절매는 삶. 나는 그런 것을 인간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삶은 그다지 소설적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삶은 매일같이 씻고 먹고 자고 입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잠들기 싫어하며 잠들고 일어나기 싫어하며 일어나고. 출근을 앞둔 휴일에는 미리 울적해졌다가 일하기 싫어하며 일하는 것이다. 그러다 잠깐 웃기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슬프기도 하다. 그것의 반복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반복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소설적’인 동시에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소설은…… 거창하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엔 일상으로 끌어내려지는 소설. 이건 나라는 독자에 한정되어있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왜냐하면 내가 그다지 거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에 오래 골몰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게 뭐야. 그런 생각으로 잠시 멈추기는 하지만 금방 잊고 다른 일을 한다. 내게는 멈추는 마음과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적당히 섞여 있고 가끔은 더 오래 멈추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으니까 어
- 최예솔
- 2026-06-01
문장웹진 기획
게임과 작가[편집위원 기획-Game & Writer] 게임과 작가1) 임가영 예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림이 좋다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이유로 예술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대미술’이 좋았다. 더 정확하게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경계 설정에 관여하는 시도들이 좋았다. 더불어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았다. 위대한 창작자의 숙련된 솜씨와 천재적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시도들이 공감이 갔다. 말하자면 나는 ‘저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현대미술을 택했다. 예술을 하기 전 나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고, 처참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관심이 갔던 과목이 ‘정치철학’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그려(웹툰 어시스턴트와 게임 캐릭터 원화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한 번도 나 자신을 창작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내 그림에서 예술 비슷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서 미대를 들어갔고,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썼다. 미술 갤러리 안에서 카레를 끓여 나눠 먹거나 지역의 경찰과 청소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청소년 범죄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작품들을 리서치하고, 이러한 참여형 미술을 둘러싼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 그랜트 케스터(Grant Kester)의 담론적 논쟁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어렴풋이, 나는 그게 내가 원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역량이 되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인 듯했다.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믿고 예술을 시작했는데, 저자는 좀처럼 죽지 않았던 것 같다. 한 교수는 술자리에서 내게 “너는 아직 작가는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작가는 ‘자기 일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사람, 혹은 그에 준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중심점’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준 다음 그 과정을 포트폴리오에 잘 기록해서 다음 전시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다른 교수는 작가가 에고가 강하고 별나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작가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미술은 일종의 폰지 스킴(Ponzi scheme)처럼 나를 가짜 약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아니면 나는,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을(아무리 이런저런 반작가적 실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담론이 존재한다 해도 결국 제도는 안정적인 창작자–수용자 모델 속에서 지속되며, 이것은 사실 ‘저자의 죽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 같은 걸)
- 임가영
- 2026-05-01
문장웹진 기획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 이태형
- 2026-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