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마구로
- 작성일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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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마구로
싱싱고에서 꺼낸 마구로를 썰어 쟁반에 거의 다 옮겼을 때에야 아내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왕 자른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작은 그릇에 김과 간장을 담는 수밖에. 마구로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다. 밥은 반 공기 이상을 먹는 일이 없는 아내가 마구로를 먹는 것을 볼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아내의 전생에 대한 거의 존재론적인 의문이라든지, 먹이 사슬로 인해 뱃속에 엄청나게 많은 중금속을 지니고 있다는 참치와 그것에 중독 된 인간 같은 환경론적인 문제까지… 사려 깊은 남편들이라면 곧잘 하곤 하는 그런 생각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날생선은 질색이다. 차라리 날파리를 먹고 말지.
언젠가 내가 자른 마구로를 먹던 아내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에 와서 행복에 관해 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내가 있을 때에도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 고작 그런 날생선 따위를 먹는 일이 행복했다니, 아내 역시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작은 식탁은 소주 세 병과 마구로 한 접시, 김, 간장, 그리고 스팸 한통을 놓자 꽉 차버렸다. 스팸은 내가 좋아하는 안주다. 무엇보다 깔끔하니까. 아무 조리도 필요 없이 그저 캔을 따고, 기름을 조금 따라내고, 숟가락이나 젓가락 혹은 포크 등등 무엇이든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을 들고 퍼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심지어 재활용까지 된다. 아내는 그런 나를 무슨 야만인 쳐다보듯 했지만, 사실 그것은 옳지 않았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참치를 날 것으로 먹는 행위가 훨씬 더 야만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나는 굳이 그것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문명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술을 따른다. 듀오백에 팔걸이까지 있는 내 의자 반대편에는 티테이블용의, 철제 바디에 꽃무늬 쿠션이 달린 아내의 의자가 있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놓여진,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모던한 정사각형 모양의 식탁과 듀오백 의자 그리고 아내의 티테이블 의자.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모든 결혼은 어느 정도는 우스꽝스러운 법이다.
아내가 사라진 것은 역시 한 접시의 마구로를 비웠던 지난 수요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녀 대신 마구로만 남았다. 담배를 문다. 무언가 기묘했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얼려진 채 조각난 참치의 뱃살에 대고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물기만 한다. 왼쪽 어깨에 붙어있는 니코틴 패치가 간지러웠다. 술 한 잔을 비우고 반대편 의자를 바라본다. 영국식 정원에나 있을법한 의자위로는 아내의 얼굴대신 작은 창이 보일 뿐이다. 어느덧 어슴푸레 내려앉은 오월의 어둠. 어두워진 부엌이 조리개가 닫히듯 나에게로 조여들었다. 아내의 티타임은 언제 끝난 것일까?
아내가 사라진지 일주일. 나는 여전히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날을 기억한다. 아직 결혼하기 전인 아내와 내가 회사 휴게실에 앉아 마지막 남은 담배 한 대를 돌려 피우던 날. 그 담배는 내 것이었고, 벽과 벽 사이에 엉성하게 지붕을 놓아 만든 휴게실은 아내와 내가 뿜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문득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 재욱씨, 재욱씨는 담배 안끊어?
- 끊긴 끊어야지요… 근데 그게 어디 쉽나요.
잠시 침묵. 내 손에서 아내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내 손으로 넘겨지는 담배, 하얀 연기.
- 선배, 선배는 결혼 안 해요?
- 나? 결혼은 무슨… 연애나 한 번 멋있게 했으면 좋겠네. 찌질한 놈들이랑 연애하는 것도 지겹다 이제.
흘리듯 말한 아내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라-디-다, 라-디-다, 라-라…
바로 그 때, 나는 내가 아내와 결혼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담배를 꼬나문 큐피드가 시칠리 풍으로 사랑의 총알을 빵 하고 쏘았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담배를 끊는다고 말하는 것은 담배를 피기 때문이고 그것을 끊지 못하는 것 역시 담배를 (다시) 피기 때문이다. 나는 찌질했고 아내도 나도 우디 알렌을 좋아했으며, 무엇보다 우리는 슬슬 결혼할 나이였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결혼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많은 일들은 대수롭지 않은,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이유로 행해지곤 한다는 것을 나는 많지 않은 경험으로 이미 알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것을 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 역시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야 마는 보통 시민일 뿐이었다. 군대를 제대했고, 운전면허도 있다. 아내 역시 운전면허가 있었고, 확신할 순 없지만, 남자였다면 아마 군대를 다녀왔겠지. 죽는 소리 한 번 안하고. 아내는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술을 비우고 아내의 부재를 바라본다. 하얀 참치 뱃살을 바라본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 라고 중얼거리며.
아내에게 청혼한 것은 참치집에서였다. 충무로 극동빌딩 골목에 있는 ‘배부르게 드시고 一人당 15000원’이라는 간판을 붙인 체인점. 같은 돈을 내고 들어간 나는 기껏해야 배부르지도 않은 미역무침 같은 것을 먹을 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내가 먹는 것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접시 가득 담긴 참치를 아내는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빈속에 들어간 미역은 항상 얹혔다. 종종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그런 가게는 어디에나 있었고 그것이 체인점의 몇 안 되는 좋은 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화적 이점이 고작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때론 서글프기도 했지만, 참치는 참치일 뿐이니까.
- 결혼할래?
- 왜 반말인데?
- 결혼해서도 존댓말을 쓰면 아무래도 불편할 테니까.
아내는 피식 웃더니 마구로 한 조각을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느끼한 기름내와 함께 비릿한 생선냄새가 느물느물 풍겼다. 참치는 참치일 뿐이었지만, 차마 그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길고 낡은 갈색의 나무젓가락 끝에서 참치는 유난히 하얬다. 잠시 동안 내 앞에 멈춰있던 그것은 곧 아내의 입으로 들어갔고, 아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의 웃음에서는 참치 냄새가 났다.
라-디-다, 라-디-다, 라-라…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혼에 대해, 인생에 대해.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우리가 결혼에 대해 아는 것이 있을 리 없었고, 인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모두 공허했지만, 몇 가지는 유용했다. 이를테면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기- 그것은 우리 결혼생활의 절대적인 원칙이었다. 그것은 결국 그녀 입안의 참치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내 입에 참치를 집어넣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의자와 식탁은, 그 상징이다.
그리고 우리는 애를 낳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담배를 한 대 더 피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담배 연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은 금방 사라졌으니까. 물론 어머니는 그런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담배 피는 것이 싫으셨는지, 손자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 싫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운이 좋았다. 아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약속이나 하신 듯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암이었다. 아내가 담배를 배운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물론 뇌에 알을 깐 기생충 때문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 니 뱃속에 있는 아이가 담배를 피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끔찍하지 않니?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동시에 아이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말하는 어머니의 화법은 교묘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서양에 뿌려진 중금속과 그것을 먹은 작은 생선들, 그 작은 생선들을 꽤나 먹은 중간 생선들, 그리고 그 중간 생선들을 엄청나게 먹어 대는 커다란 참치들을 생각했다. 그것을 먹는 아내도. 그 상상 속에서 아내의 뱃속에 있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한주먹쯤 되는 커다란 중금속 덩어리였다. 확실히, 그 쪽이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은, 특히 어머니는 아이의 중요성과 아이 없는 결혼의 공허함을 설교하려 들었지만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는 잘 지냈다. 아이가 없는 것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굳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할 일은 많다는 것과, 아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은 없다는 것. 결혼이 공허한 것은 인생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내 인생의 공허를 떠넘기듯 자식에게 넘겨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작은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순 없는 일이니까. 물론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사랑했다.
결혼 후 아내는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상 온 가족이 직업 전선에 발 담굴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 대신 아내는 살림을 했다. 전업주부- 아내는 그것에 만족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아내가 낮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쨌거나 아내의 일이었다. 아내 역시 내가 낮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으리라. 그렇다고 하기에 그녀는 회사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것은 각자의 일이었으니까. 그것보단 차라리 지금, 스팸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랄까.
물론 결혼은 공동생활이었고, 아내와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함께 했다. 규칙적으로. 이를테면 수요일은 술을 마시는 날이었다. 월요일은 영화를 보는 날, 화요일은 쇼핑 하는 날, 목요일은 외식하는 날, 금요일은 산책하는 날… 주말엔 딱히 정해놓은 일정이 없었다. 가끔은 각자만의 시간도 필요했으니까.
솔직히 시간표가 잘 지켜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당연했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지키지 못하는 시간표를 다 큰 어른들이 지키기는 힘든 일이니까. 결혼 초에는 아무 말 없이 영화를 봐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퇴근길에 비디오를 빌려 가는 일을 깜빡하기도 했다. 집에는 안보고 쌓아놓은 디비디가 수백 장은 있었지만,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섹스를 했다. 그야말로 부부생활- 누가 뭐래도 우리는 부부였으니까. 화요일에는 그녀가 먼저 운을 띄웠다. 마구로도, 스팸도, 술도 충분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섹스를 했다.
때로는 내게 얘기치 않은 약속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른답게, 그 모든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술을 마시는 수요일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아내는 마구로를, 나는 스팸을 먹으며 술을 마셨던 것이다. 바로 지난주까지도. 그리고 오늘은, 빌어먹을, 우리의 결혼기념일이고, 지금 나는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어느덧 스팸은 바닥을 드러냈다.
싱크대를 연다. 전적으로 아내의 선택으로 구성된 그곳엔 잘게 나누어진 수납장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열자 스팸 세트가 나왔다. 가벼운 상자 속에 남은 스팸은 한 개. 실망스러운 숫자였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낫겠지.
언제부터였을까, 아내와 내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 아무 말 없이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술을 마시고 또 외식을 하고 산책을 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것은 마치 번개가 치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번쩍, 하는 순간에 모든 일이 시작되었고, 성가시고 요란한 천둥은 언제나 그 다음이었다.
천천히, 담배 한 개비를 식탁에 두드리며 아내와 내가 지난 이년간 살아온 공간을 둘러본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26평형 아파트. 물론 실평수는 그보다 조금 작았지만, 둘이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레자를 댄 이인용 소파와 그 바닥에 깔려있는 ‘이집트 풍’의 양탄자- 사실 ‘이집트 풍’이란 아내의 주장일 뿐이었지만. 월요일마다 영화를 틀어댔던 디비디 플레이어와 29인치의 평면 티비. 아내가 가장 감동했던 영화는 <셸 위 댄스?>였다. 아니 어쩌면, 그냥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화가 없어진 것이 딱히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말이 없어진 우리는 그 대신 섹스를 했다. 소파 위에서, ‘이집트 풍’의 양탄자 위에서, 침대에서. 참 많이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부부였으니까. 말은 구차했고, 섹스는 친밀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 보다는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아내를 안는 것이 내게는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결혼생활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그대로, 그냥 말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혼 생활이란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아내가 사라진 지금, 그 기억들도 함께 흐릿해지고 있었다. 거실에는 그 흔한 결혼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았다. 이곳, 저곳, 그리고 모든 곳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했던 시간을 어렴풋이 떠올릴 순 있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혹 모르는 사람이 이 집을 보고 단순히 혼자 사는 남자가 깨끗하게 하고 사는구나, 라고 생각한대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를 붙잡고 김 형, 아내와 내가 여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시오? 라고 말할 기억은 이미 없었다. 그렇다고 김 형, 아내와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섹스를 했는지 아시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물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지난 삼월, 개구리들이 한참 겨울잠에서 깰 무렵 침대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조용하게.
- 우리, 애 가질까?
한참 달아올라있던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꾸했다.
- 뭐? 애?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눈썹을 약간 찡그린 아내는, 그 표정 그대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이, 우리에게 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고. 사실 생각해보면 어머님 말씀도 맞아. 어른들이라고 틀린 말씀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그 반대겠지. 어쩌면 우리가 우리만 편하자고 잘난 척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고.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잘난 척 어쩌고 하는 말에 나는 조금 비위가 상했기에, 서둘러 아내의 몸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말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순간 죽어버린 페니스는 다시는 단단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어버린 페니스는 꽤나 가련했으니까.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다. 살다보면 여러 일이 있는 법이고 나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부활은 기약없었고, 이대로라면 공식 사망 판정이 떨어질 판이었다.
그 순간 내가 덜컥하고 찾아온 것은, 미안함이었다. 아내에 대한. 그래서 나는 금연을 하기로 했다. 담배가 음경 동맥의 동맥경화를 일으켜 발기부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기억으로. 그 날부터 담배 대신 니코틴을 공급하는 패치가 왼쪽 어깨에서 나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 심리적인 문제지, 그건.
- 어째서요?
- 뻔하지 뭐. 아기를 갖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몸으로 나타난 거야. 왜 아니겠어?
- 그럼 어떡하죠?
- 글쎄, 그건 의사한테 물어봐야지.
아내가 사라진 후 실종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은평 지구대의 김경사의 말. 하지만 그거야말로 사후약방문일 뿐이었다. 물론 친절했지만, 친절이 다는 아니니까. 의사를 찾아가 본댔자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 글쎄, 친구도 없다, 친정도 없다… 이거 원. 어디 짚이는 데도 없지? 일단 실종 신고는 올려놓을게. 하지만 이런 경우는, 스스로 집을 나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조금 기다려 보자고. 그러니까 남자가 밤일을 잘해야지, 젊은 사람이 쯧쯧… 거기 사인 해놓고 가요. 혹시나 돌아오면 연락하고.
다시 술잔을 비운다. 아내의 부재를 바라보자 어쩐지 화가 솟구쳤다. 두 통째이자 마지막인 스팸을 뜯는다. 아내가 있었다면 스팸이 떨어지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어제가 쇼핑을 가는 날이었으니. 하지만 이제 아내는 없고, 스팸도 없고, 오직 마구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마침내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금연 패치 따위는 떼어 버리고. 단계에 따라서 크기가 작아지는 패치는 어느덧 엄지손톱 크기로 작아져 있었다. 차례차례 줄어든 패치는 까만 때처럼 자신의 크기만큼의 접착제 자국만을 남겼을 뿐이다.
첫 모금. 순간 먹먹해지는 머리. 시야가 좁아지고, 보이는 것은 오직 담배 연기뿐이다. 그렇지만 하얀 연기도 아내의 부재를 가릴 수는 없다. 오히려 더 강조하면 모를까. 아내는 마구로를 먹을 때만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고기의 맛을 떨어뜨린다며. 하지만 이제 아내는 없고, 따라서 나는 길게 담배 연기를 뿜는다. 그러니 이제 저 마구로는 버려져야만 하겠지. 매캐한 담배 연기에 축 늘어져버린 마구로. 아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마구로. 그것은 결국 아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아내가 사랑한 것은 내가 아니라 마구로일지 모른다. 버려진 것 역시.
술을 마신다.
마지막 남은 스팸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술은 많다. 아내의 빈 잔에 술을 채운다. 물론 그것은 줄지 않는다. 버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마구로도. 마구로를 두고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마침내 찌질하지 않은 남자라도 찾은 것일까?
어쩌면.
- 그런 생선을 먹는 게 그렇게 행복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
- 그렇다면 지난 일년 동안 다른 일들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야?
어쩐지 기분이 상한 내가 물었다.
- 글쎄, 잘 모르겠어. 당신도, 당신이 하는 말도.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지만, 가끔씩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사실 난 잘 몰라. 이것저것. 모르는 게 많아. 당신도 알잖아? 내가 그렇다는 걸.
아내는 잠깐 말을 멈추고 나를 향해 웃었다.
-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아냐 물론.
아내의 웃음에서는 여전히 참치 냄새가 났다.
- 그래, 나도.
스팸 통을 긁으며 아내의 부재를 향해 말한다.
- 나도 잘 모르겠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리고 어디로, 무엇 때문에 사라졌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어. 그래, 당신 말대로.
어느덧 부엌은 암실처럼 어두웠고, 창으로는 찬 바람이 들었다. 신경질적으로 작은 창을 닫은 나는, 이번엔 아내의 자리에 앉는다.
가느다란 철제 바디는 생각만큼 불안정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불편했다. 반대편에 있는 것은 나의 의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파란색 쿠션에 팔걸이까지 있는 그 의자는 어딘지 우스꽝스러웠다. 문득, 아내가 사라진 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우습게도 그 생각은 나에게 죄책감이 아닌,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상실감.
상실감을 느낄 때면 아내는 눈썹을 찡그렸다. 마구로가 점점 줄어들 때 그랬고, 오르가즘에 닿기 전에 섹스가 끝나버릴 때 그랬으며, 사라지던 그날 조용히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며 술을 마실 때 역시 그랬다.
그 때,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당신은 말하지 않았어.
아내의 술잔에 따라놓은 술을 홀짝이며 나는 말했다.
- 물론 나도 묻지 않았지.
두 대 째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 하지만…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다시 술을 마신다.
다시 마구로를 바라본다. 한때는 대서양을 누볐을 하얀 참치의 뱃살은 이제 완전히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다. 우스웠다. 그 참치는, 자신이 이렇게 될 운명임을 짐작이나 했을까. 아내는, 단단했던 마구로가 이렇게 녹은 채 버려지기를 기다리게 될 것을 알고 있을까.
- 어디 한 번 보라고.
아내의 술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내뱉듯 말했다.
-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마구로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덧 내손엔 포크가 들려있었다. 마치 작살 같은 그것을 들고 나는, 헤밍웨이의 소설에 나오는 노인처럼 생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생선은 연했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포크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나는 쉬지 않고 그것을 찌른다. 포크 끝에 달린 것은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참치의 조각들. 나는 그 조각들을 입으로 가져간다. 생선 비린내가 역하게 풍긴다. 그리고 참치 특유의 기름내도. 입안 가득 그것을 채워 넣은 후에야 씹기 시작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원래는 연했을 생선은, 그러나 물에 빠진 책처럼 질기기만 하다. 꾸역꾸역, 그것을 삼킨다. 닫힌 식도 사이로, 오그라든 위장 속으로 그것을 넘긴다.
나는 마치 식인 제의에 참석한 문명인처럼 억지로, 그러나 필사적으로 그것을 먹는다. 다 먹어 치우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정 삼킬 수 없을 때에는 술을 마신다. 하지만 술도 입안 가득한 기름을 씻어주진 못했고, 그래서 나는 다시금 포크를 든다. 차가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단지 행복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아내가 그러했듯이. 과연 아내는 행복했을까. 이런 것을 먹으며 행복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정신이 든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공기가 희박해지는 듯한 답답한 느낌에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빈 술병과 빈 접시. 빈 접시 위에는 참치의 잔해가 보잘것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내게 다시 아내를, 아내의 부재를 떠올리게 했다. 대서양에 뿌려진 중금속과 그것을 먹은 작은 생선들, 그 작은 생선들을 꽤나 먹은 중간 생선들과 그 중간 생선들을 엄청나게 먹어 대는 커다란 참치들 그리고 그것을 먹는 아내를. 작은 뱃속에 커다란 중금속 덩어리를 품고서 아내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어쩌면 아내는 참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토록 사랑하던, 그 참치가. 그래서 대서양의 바다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그곳에서 중금속을 먹은 작은 생선들, 그 작은 생선들을 꽤나 먹은 중간 생선들을 배부르게 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다시, 원양어선에 잡혀 냉동된 채 조각나 만 오천 원에 一人의 배를 무척이나 부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돌덩이라도 들어앉은 듯 뱃속이 묵직해졌다. 주변의 공기는 마치 벽처럼 단단하게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조금씩,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두터운 벽은 나를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 숨을 헐떡일 수밖에. 벽이 내게로 다가오기를, 그래서 심판이든 구원이든 무엇인가를 행하기를 그저 기다리며.
그리고 벽은 마침내 작은 원통처럼 나를 완전히 조였다. 산소가 희박해지고, 의식은 점점 멀어져갔다. 몸을 움직여보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 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낸 나는 쓰러진다. 아내의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채 나는 무너진 벽의 작은 조각이라도 집어 입에 넣기를, 숨쉴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그것은 그저 나를 짓누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었다. 이대로 공기에 깔려 죽을 수는 없었다. 어쩐지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내도 없는 26평의 서민형 아파트에서 홀로 죽고 싶진 않았다.
나는 천천히 한쪽 팔꿈치를 내민다. 마치 포복하듯 한 팔꿈치, 한 팔꿈치를 힘겹게 내민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또한 논리적 귀결- 죽을 만큼 힘들다고 죽지는 않는다. 죽어버리면 더 이상 힘들지도 못하므로.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를 짓누르는 공기의 잔해를 벗어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이집트 풍’의 양탄자를 지나 내가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꽃무늬 슬리퍼 위를 기어 변기에 닿았다. 마침내 변기를 잡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갑자기 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공기의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나오려는 것 또한. 마치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어가 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스로 터져버리듯,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나왔다.
먼저 대서양을 헤엄치고 다녔을 참치가 나왔다. 그 다음은 녀석이 좋아하던 청어가, 청어가 좋아하던 멸치가, 멸치가 좋아하던 새우가 차례대로 솟구쳐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한참을 쏟아냈지만 녀석들은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뱃속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 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일정한 속도로 두드리는 그 손은 따가웠지만 사려 깊었다. 그 손에 의지해 나는 한 번도 내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뱉어낸다. 손은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리기만 할 뿐이다. 그 손은 누구의 것일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꽃무늬 슬리퍼 속에 들어있는 하얗고 작은 발뿐이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라-디-다, 라-디-다, 라-라…
라-디-다, 라-디-다, 라-라…
라-디-다, 라-디-다, 라-라…
라-디-다, 라-디-다, 라-라, 라-라-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멸치의 떼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변기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자 마침내, 내 속에서 꿈쩍도 안하고 있던 커다란 덩어리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내 작은 식도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참 동안이나, 마치 아이를 낳는 엄마처럼 신음하던 나는 그것이 목 끝까지 올라왔음을 알았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속에 들어있던 그것. 나는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차마 그것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조용히 눈을 뜬다.
하얀 빛이 두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귓속에서는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신음하던 나는 문득, 잠들어있던 페니스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음을 느낀다.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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