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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와 여자의 이야기

  • 작성일 2006-06-21
  • 조회수 222

 

1.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는 사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아주 초조하게. 서두르는 것이 아니다. 긴장되는 것이다. 집 안에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그녀가. 한 번 누르는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있었으면 싶은 걸까 없없으면 싶은 걸까를 알 수가 없는 표정이다. 고개를 들어 호수를 확인한다. 새삼스럽지만 그녀의 집에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초인종은 한번 밖에 누르지 않았다. 약간 길게. 한번 더 눌러보려고 한다. 백팔십은 넘어보이는 장신의 사내가 아주 신중하게 그녀의 가슴을 누르듯 초인종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가져간 순간이었다. 문이 달칵 열리고 무언가 빼꼼 나왔다.  

  “어? 자기? ”

  사내는 말을 잇지 못한다. 기뻐하는 표정인지 슬퍼하는 표정인지 알 수 없다. 반면에 여자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방금 샤워를 마쳤는지 샴푸향이 남아있다. 의외의 손님이 꽤나 반가운 눈치이다.

  “어쩐 일이야? 집엘 다 찾아오고. 앞에서 전화하면 마중 나갔을 텐데. 어머, 내 정신좀 봐. 우리 집 꼴이 엉망이야. 아직 엄마가 돌아오시지 않았거든. 아빠도 늦네. 하하하 모처럼 왔으니 자기 인사시켜 드려야 할텐데.”

  형광등 빛이 눈부시다. 전체적으로 하얀색깔의 집이다. 우중충한 갈색의 옷을 입은 사내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내는 그 사실을 아는 듯 선뜻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지 못한다. 어중간하게 서 있다. 그녀는 그런 사내의 손을 잡아 이끌고 거실 쇼파에 앉힌다. 사내의 초조는 문이 열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시점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푹신한 소파에 불편하게 앉혀 졌다. 등을 어중간하게 곧추 세우고 빳빳하게 굳어 있다.

  “자기 저녁은 먹었어? 아이 참, 엄마는 언제 오시려고 그러지. 배고프면 일단 남은 반찬으로라도 밥 먹을래? 아니면 우리 뭣 좀 시켜 먹을까? 근데 이건 뭐야? 자기 손에 피가 묻어 있어. 어디 다친거야? 어디 좀 봐봐. 음, 상처는 아닌데. 피가 아닌가? 자자, 내가 그럼 저녁을 준비할테니 손 좀 씻고와.”

  여자는 사내를 앉혔 던 것처럼 다시 손으로 그를 이끌어 화장실에 넣었다. 사내는 눈부신 백열등의 화장실에 우두커니 섰다. 앞에 거울이 있는 것이다. 거울은 사내를 비춘다. 흐릿한 이목구비 그리 눈에 띄지는 않는 얼굴. 약간은 검은피부가 그의 존재를 더 지우는 듯 하다. 사내는 느닷없는 거울과의 조우에 놀란 듯 하다. 자신의 표정을 확인하는게 두렵다.

  물을 틀었다. 기포와 섞어 나오는 물이 사내의 손을 적신다.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손을 비벼야 한다. 사내는 생전 처음 손을 씻어보는 사람처럼 어리숙하게 손을 비빈다. 얼핏 물이 붉게 물든 것 같았다. 사내는 다시 거울을 쳐다봤다. 약간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손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시 어정쩡하게 나온다.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특별히 자기를 위한 된장찌개를 끓여볼게. 으음 자주 해본게 아니라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소파 옆에 보면 리모콘이 있으니까 티비라도 보고 있어. 지금은 뭘 하더라? 드라마 하려면 아직 멀었고 ……. ”

  여자는 사내에게는 흥미가 있을 법하지 않은 티비 프로그램에 대해서 계속 중얼거렸다. 사내는 티비를 틀었다. 좋은 음색은 아니다. 잡스런 소리가 들리니까 차라리 마음이 안정이 된다. 사내는 조용하지만 깊게 심호흡을 했다. 또 다시 입술이 들쭉. 할 말이 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사내는 자신의 손을 내려본다. 사내는 정말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예...원아.”

  그렇게 힘겹게 뗀 입술에서 여자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잦아드는 침묵. 사내는 다시 한번 여자의 이름을 부르려다 말고 말을 이었다.

 

2.


  우리집에 도둑이 든적이 있다고 얘기한 적 있었나? 나 평소에 잘 자지 못하잖아. 그 날도 늦게 컴퓨터나 두드리고 있었거든. 요새 나온 게임중에 할 만한거 없나 찾아 보고 있었어. 요새는 그래픽이 정말 장난아니더만. 근데 덜컹 하고 소리가 들리는거야. 나는 게임 동영상에서 나는 소린가 했어. 근데 아니야. 인간에게도 동물적 본능이 남아있다는걸 알게 해주는게 그 때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더라고. 알겠어? 싸-한 기분.

  나는 숨을 죽이고 문으로 다가섰어. 귀를 바싹 갖다 댔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도둑이다 싶었지! 문을 잠그려다가 그러면 들킬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것보다 안방에는 엄마 아빠가 자고 있었어. 평소에 밤귀가 밝아서 내가 컴퓨터하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던 엄마가 혹시라도 일어나서 도둑과 마주치면. 오 맙소사. 난 그걸 상상하고 싶진 않았어. 나는 적지만 도둑이 꽤나 소심한 녀석이라고 믿기로 했어. 웬만하면 나보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나자 소심한 나를 지켜줄 무기가 필요하더라고. 방안을 둘러봤는데 말이야. 나 사실 사내 자식이긴 해도 운동은 영 젬병이거든. 이럴때 그 흔한 야구빳데라도 있으면 좀 좋아. 나는 평생 야구를 안 해서 억울해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도저히 무기가 될만한게 없었어. 드라마를 보면 골프채를 들고 도둑과 맞서던데 아직 학생이었던 내가 골프채가 있을리 있나.

  그 때 구석에서 길고 날카롭게 빛나는 물건을 찾았어. 뭐냐고? 지휘봉. 하! 나 초등학교 때 사실 지휘를 해본적이 있었다. 왜 학예회라면서 합창대회 이런거 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말이야 그 때는 장난 아니었거든. 다들 자기 아들이 좀 더 주목 받기를 원하잖아. 지휘자 경쟁이 정말 치열했어. 입시경쟁 저리가라 할정도로. 거기서 내가 당당히 뽑혔냐고?

  너 아직 날 잘 모르는구나. 나는 경쟁구조를 상당히 싫어해. 어릴 때 부터야. 그러니까 사실 그 흔하디 흔한 밑줄을 맡았지. 자진해서 했다고 봐도 좋아. 음 그러니까 알토라고 해야하나 베이스라고 해야하나. 초등학교때 합창이라고 하면 2부합창이 전부거든. 여자는 윗줄 남자는 밑줄 이런식이지. 근데 말이야. 내가 사실 초등학교때는 음치여서 도저히 그 밑줄음을 내지를 못하는 거야. 뻑하면 삑사리에 혼자서 쌩쑈를 다 했지.

  결국 참다 못한 여선생이 날 윗줄로 넣었어. 근데 윗줄이라고 잘할 턱이 있나. 온갖 불협화음은 내가 다 만들었지. 내 옆에 있던 녀석들도 내 음에 동조해서 음을 죄다 틀렸어. 그렇게 못하면 안 부르면 될텐데. 난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는거야. 오기라고 해야하나. 그냥 몰래 따라 부르면 안 들킬 것도 같았는데 여선생은 죽어라 날 찾아 내더군. 급기야는 나보고 노래를 하지 말고 입만 뻥긋뻥긋 하고 있으래. 금붕어새끼 마냥.

  너 금붕어 좋아하냐? 그런 구워 먹지도 못하는 생선, 냄새도 더럽고 기분도 나쁘고. 어린 나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었어. 그래서 절대 금붕어는 내지 못할 소리로 빽-빽-울어댔지. 뒤의 얘기는 해서 입만 아플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 잘난 여선생이 궁여지책을 낸게 날 지휘자로 내세운거지.

  지휘자라. 솔직히 나서진 않았지만 하고 싶었거든. 그 지휘자만 입는 까만색 양복있잖아. 어린 마음에 그게 상당히 멋있어 보이더군. 그래, 그래서 지휘자를 하게 됬는데. 내가 뭘 얘기하려다 이 얘기를 한거지? 아 그렇지 도둑, 도둑, 나는 일단 지휘봉을 빼들어봤어. 남앞에 나선건 그 때가 처음이어서 추억으로 음악실에서 훔쳐 온거야. 도저히 도둑에게 겁을 줄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것 말고는 책이랑 컴퓨터 밖에 무기가 되어보이진 않더군.

  나는 이 지휘봉이 어둠에서 날카로운 칼처럼 빛나보이기를 기도 했어. 엄마 아빠를 지키기 위한 가족의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야. 그래도 그냥 피투성이에 엄마를 보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 고작 그런 이유로 나는 방문을 열고 도둑에게 뛰어들었다. 지휘봉을 들고. 방금 웃으려고 했지? 난 전혀 우습지 않았어. 진지했다고. 도둑도 진지했지. 도둑은 내 지휘봉이 꽤나 위협적으로 보였나봐. 다짜고짜 덤벼들더라고.

  나는 사실 도둑이 놀라면 점잖게 타협을 하거나 타이를 생각이었어. 우리집 쌀독은 비었으니 이거라도 가져가시요. 오늘 달은 참 밝구려 따위의 말을 건네보려고 했는데 이 도둑, 내 지휘봉을 보더니 눈이 훼까닭 뒤집어 지는거야. 이게 펜싱선수용 칼으로라도 보였나? 그 칼도 끝은 동그래서 별 타격 없는데 하여튼 간에 그 망할 도둑녀석이 덤벼들었다고. 그 도둑 손에 보니 송곳이 들려있어. 송곳으로 설마 죽기야 하는 생각이었지만 찔리면 얼마나 아플거라고 생각해 난 피하려고 발악을 했지. 근데 그 도둑이 내 뒤통수를 찔렀어.

  내가 비명을 질렀는지 어쨌는지는 몰라. 깨어나보니 병원이었거든. 도둑이 송곳을 찔러놓은 채로 도망쳤데. 그 날따라 깊은 잠을 잔 엄마는 아침에 뒤통수에 송곳을 밖고 쓰러져 있는 날 보고 기절을 했다더군. 결국 늦게 일어난 아빠가 쓰러진 엄마랑 나를 보고 119에 신고해서 병원까지 오게 됬다는 거야.

  뇌 검사를 했는데 뭐 어디 어디에 손상을 입은것도 같고 입지 않은 것도 같데. 의사가 하는 말이 다 그렇지. 그래서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네. 근데 일주일이 지나도 별 이상이 없더라고. 나는 그래서 퇴원을 했지. 뒤통수가 약간 통통 부어있긴 했는데 그렇게 아프진 않았어. 그게 그러니까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아무튼 열여섯 열일곱 그 쯤이었을거야.

  근데 수능을 치는 날 아침 말이야. 꽤나 춥다고 생각했는데 내 옆으로 케르베로스가 지나가더라고. 덩치가 짚차만한게 말이야. 시커먼게. 그게 내 옆을 지나가다말고 나를 보더니 나한테 달려오는게 아니겠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 지옥문을 지키다가 말고 이 녀석이 여긴 왜 있나 싶더군. 근데 그렇게 가만히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어. 달려온단 말이야 머리가 세 개 달린 미친 녀석이. 나는 옆으로 피했어.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 평소 운동신경은 젬병인 내가 피해냈으니까 말이야. 오 근데 한두번 피하니까 자신감도 붙더군. 왠지 그 대갈통 세 개 달린 개새끼를 이길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 발로 힘껏 케르베로스를 찼는데

차였어. 검은 개가 뻥하고 날아가더군. 넌 아마 그때 얼마나 기분이 째졌는지 모를거다. 그리고 난 바람처럼 잽싸게 그 녀석에 달려갔어. 그리고 그 녀석의 목을 졸랐지. 두꺼워서 잘 졸라지지가 않았지만 말이야. 애썼어.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 듯도해. 지옥의 문지기는 거품을 물고 최후를 맞이했어.

  성취감에 가득 차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내 앞에 우리 집 폴이 있었어. 아 그러니까 폴이란 녀석은 우리집에서 기르던 검둥이야. 그 내 종아리 언저리에 와서 쫄랑거리던 녀석이 거품을 물고 죽어있는거야. 수능을 치는 날이었어. 나는 서둘러 버스를 타고 수험장으로 갔다. 이상하게 정신은 맑았어. 평소보다 점수가 잘 나왔지. 그래 수능을 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뒤통수 근처가 시큰한거야.

  나는 알았지. 이게 그때의 부작용이구나. 나는 조용히 폴을 뒷동산에 묻고 나서 생각했어. 엄마나 아빠에게 말해야 할까. 근데 그러고 싶지 않은거야. 그거 말고는 별 이상할 증세가 없었으니까. 수능도 잘 쳤고 말이야. 그리고 몇 년만에 나타난 증상이었다고. 한번 더 이런 환상에 붙잡히면 그 때 엄마 아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근데 그 뒤로 잠잠했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럭저럭 대학생활이었지. 여자친구가 처음으로 생겼는데 뭐 꽤나 좋았던 것 같아. 너한테도 얘기한 적 있지. 희경이. 우리가 첫사랑 어쩌구 두둔하긴 너무 늙었잖아? 얘민하게 듣지 말라고. 성격 문제였는지 뭔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깨졌어. 근데 희경이가 나에게 새를 두 마리 주더군.

  난 니가 눈치가 빨라서 좋은데. 그래 그 새 두 마리가 그때는 뭐 불사조쯤으로 보였어. 죽였지. 근데 솔직히 개나 새나 죽이는데 뭐 호들갑 떨 일있나. 희경이란 애도 그때는 질색이었고. 오히려 잘 죽였다 싶은게 창문 밖으로 휙 던져버리고는 그냥 잊었어. 그래 잊었거든.

  그 뒤로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건 아니야. 거기서 끝이었지. 난 나았구나 싶었어. 자연치유능력같은거 있잖아.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어.

  뭐 그게 끝까지 없었다면 좋았겠지. 그러면 내가 이렇게 너에게 이런 얘기 안해도 될텐데. 나 사실 너랑 결혼할 생각이야. 눈치 빠르고 직장있겠다 신부감으로 딱이거든. 니가 제일 좋은 점은 뭐냐면. 뭐든 다 알아서 해준다는거. 나 같은 인간에겐 그게 차라리 낫거든.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이라서 니 취향에도 맞을거야. 우리에게 좋은 얘기라고 생각해. 우리 사귄지 얼마나 되었지? 아마 꽤 오래 되었을거라고 생각해. 결혼 얘기가 나올쯤. 

  나 아직 직장은 없지만 말이야. 좀 있으면 큰 공모전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상금이 1억이야. 1억. 나 그거 타면 너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 하려고. 아까 얘기했지 동물적 감각. 왠지 찌릿-한게 나 그 상 꼭 받을 것 같아. 너라면 믿어줄 수 있겠지. 뭐 이건 그 때 가서 자세히 얘기하고 결혼 얘기하기 전에 내가 너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생겼어.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참 좋지? 난 이렇게 날씨가 개떡같이 좋으면 기분이 안 좋아. 햇빛이 눈부시면 눈부실수록 빌어먹을 기분이 드는거야. 핑- 하는 소리가 머리에서 들리는 것 같고 현기증이나. 토할 것 같아. 햇빛 찬란한 날에 말이야. 햇빛이 찬란하면 먼지도 그 만큼 잘보인다고. 그래 오늘 날씨가 먼지가 백만개는 보일 듯 햇빛이 좋았어.

  그 공모전에 내보낼 글을 쓰고 있었어. 한창 구도가 잡히는 중이었거든. 주인공이 애인을 살해하는 장면을 쓰고 있었던 것 같아. 사랑하는데 왜 죽이냐고? 내가 알아보니까. 사랑할 수록 뭔가 상대를 죽이고 싶은 심리가 있데. 그리고 그 사체를 먹고 싶어지는 거야. 그렇게 해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고 믿는거라던가 뭐라던가. 아마 요새는 이런 잔인한게 먹힐 거야. 하긴 그 실시간 인터넷 뉴스보다 잔인할 수 있겠냐 싶지만 말이야.

  그래 그 때였는데 초인종이 울리더군. 아 초인종은 사실 울리지 않았어. 우리집 초인종 고장났거든. 약이 다됬는지. 뭐 찾아올 사람도 없고. 그대로 놔뒀지. 보통은 초인종이 울렸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눌렀는데도 반응이 없네 하고 그냥 가는데 말이야. 문까지 두드리더군. 어지간히 내가 보고 싶은 모양이야. 그래서 문을 열었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더군. 늙은 아저씨 아줌마 두명이서 나를 쳐다 봤어. 나 집에서는 좀 프리하잖아. 츄리링에 떡진 머리. 그런 내가 못마땅해보이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더군.

  그 노인네들 말이야. 약간 정신이 이상해보여. 다짜고짜 집안으로 들어오더군. 그러더니 책이랑 내 원고를 이리저리 치우더니 자리에 앉았어. 나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하다가 112에 전화를 걸면 전화비가 나올까 안나올까 고민했어. 근데 그 아저씨가 그러더군. 우리 딸이랑 그만만나게. 나는 말했지. 당신네 딸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나달래도 나는 바쁜 몸이라서 만나 드릴 수 없고 그리고 나에겐 여자친구가 있고 장래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아줌마는 기가 차 보이는 모습이었어. 그러더니 그 여자친구가 바로 우리 딸이네. 이러는 거 아니겠어? 내가 믿을 줄 알고. 정말 거짓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하나도 안 닮았었다고 너랑 말이야. 나는 당장 나가달라고 했지. 근데 곧이 곧대로 나가진 않더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너희 집까지 피신을 오게 되었단 얘기야. 근데 이 사진 뭐야? 가족사진? 너희 집도 참 화목한가 보다. 거실에 가족사진을 걸어두고. 근데 말이야. 너랑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닮았냐.


3.

  사내는 잔인한 장면을 쓰기 위해 잔인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30대 시각장애인, 노모 암판정에 비관해 분신

실직으로 정신질환 가장, 두자녀 살해 뒤 자살기도

토막살인 부른 부부싸움…엄마 시신과 함께 지낸 어린 자녀들

강간후 생매장 당한 8세 소녀 극적 구출

형제가 정신지체女 잇따라 성폭행

‘666데이’ 일가족 피살사건

용산 초등생 성폭행후 살해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계속 화면을 응시했다. 그는 초조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가슴에 선뜻 다가오는 살인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쾅쾅.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발로 차는 것 같은 소리였다. 누구세요. 사내는 물었다. 바깥은 잠시 수군거렸다. 이 문 좀 열게. 못 열겠는데요.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나. 자신이 아는 사람이면 이러겠나 싶었다. 사내는 문을 마지못해 열었다. 동공으로 직렬하는 햇빛. 눈이 너무나 눈이 부셨다. 머리에서 핑-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때 사내는 눈 앞에 인류의 적이 와 있음을 알았다. 아담과 하와. 인류를 지옥구렁텅이로 내몬 장본인들이었다. 그가 가장 증오했던 사람이 둘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두사람이었을 것이다. 가죽 옷을 자랑스레 입고 있는 그들을 보자 그는 머리에 피가 솟구쳤다. 인류를 대신해서라도 이 둘은 벌을 받아야 한다. 사내는 그들이 입고 있는 가죽옷을 찢었다. 환상에 파묻힌 사내의 힘은 삼손과도 같았다.

  사내는 아담의 대퇴골을 뽑았다. 그 대퇴골로 하와의 머리를 쳤다. 두개골 함몰로 사망. 다리가 뽑혀나간데 절규하고 있던 아담의 입에 대퇴골을 쑤셔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별 것 아니었다는 영웅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4.


  “응 근데 말이야. 너 아직 부모님이 안 돌아오셨다고 했지? 아무래도 오늘은 못 돌아오실 것 같아. 너희 부모님. 아직 우리집에 누워계시거든. 앉아계시진 못할거야. 다리가 없거든. 미안해. 그걸 전해주려고 왔어.”

  여자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사내를 쳐다봤다. 입을 열어 사내에게 물었다. 

 

  “방금 무슨 얘기했어? 하하, 미안해. 내가 이어폰을 끼고 있었거든. 잘 안들렸어. 뭐 중요한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