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 Ready To Die
- 작성일 200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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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 Ready To Die
S: So You Wanna be hardcore?
Notorious BIG(a.ka Biggie)의 앨범 [Ready To Die] 중 4번 트랙인 [Machine Gun Funk]의 첫 번째 구절이다. 해석본을 여기저기 찾아보니 대부분 이 가사를 ‘하드코어가 되고 싶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처음 이 노래를 들으며 ‘강한 걸 원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 곡해에는 물론 내 모자란 영어 실력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직업이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는 나의 고객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묻곤 하는 것이다. ‘강한 걸 원해?’ 그러면 고객들은 강한 긍정이 담긴, 욕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본다. 그년들은 강한 것을 원한다. 물론 처음부터 입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년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내 업무의 중요한 일부분이므로.
나는 매일 밤 그날의 고객과 함께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물론 숙박비는 그년들이 부담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복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할 때면 그년들은 나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년들은 좋답시고 야릇한 숨소리를 벌써부터 낸다. 그런 생각을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년들의 비위를 맞춰주려 앙탈을 떨 뿐이다. 누님, 벌써부터 이러시면 됩니까? 동생, 가만히 좀 있어봐.
룸에 들어서면 그년들의 몸놀림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년들의 우악스런 손길에 셔츠 단추가 떨어져 나가 못 입게 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땅딸막한 몸뚱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랫배 가득 쌓인 비계에서 나오는지, 그년들은 나를 침대로 밀어붙인다. 나는 샤워도 안하냐며 항변해 보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년들의 더러운, 땀과 체액으로 덮인 몸을 핥는 것은 늘 각오해 둬야 하는 것이므로. 콘돔은 늘 끼고 일을 하니 페니스의 건강도 염려가 없는 편이다. 가끔씩, 피임수술을 했으니 괜찮다며, 생살로 해달라며 떼를 쓰는 고객들이 있는데, 그럴땐 어쩔 수 없다. 그저 평소보다 더 공들여 핥아대는 수밖에. 그년들의 지저분한 구멍을.
서로의 옷을 모두 벗기고 콘돔을 낀 뒤 전희가 끝나고 나면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나의 고객들은 주로 후배위나 여성 상위를 선호한다. 그것을 안 나는 오랫동안 창녀촌에서 두 체위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나름의 프로 의식이랄까.
후배위는, 그야말로 ‘개 같은’ 체위이다. 짐승들의 짝짓기 모습과 닮아 있어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일테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개 같다, 고 할 만한 이유가 더 있다. 개처럼 엎드린 고객들 대부분은 자신의 항문을 애무해주기 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객들은 샤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냄새란 지독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나는 빨아준다. 쏟아져 나오려는 역겨움을 참아가며. 고객의 신음소리가 치솟았다 싶을 때면 나는 나의 페니스를 그년의 몸에 삽입한다. 처음에 내 두손은 고객의 양 허리를 잡고 있다.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한손으로는 척추뼈를 따라 등을 더듬고 한손으로는 유방을 주물럭댄다. 절정이 가까워졌다 싶을 때면 고객의 머리칼을 쥐어뜯기도 한다. 일이 끝나고 나면, 고객들은 한 움큼 빠진 머리칼을 보면서도,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내 품에 안긴다. 비즈니스의 여운이 가시고 나면 그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에서 지폐뭉치를 꺼내 내게 던져 준다.
여성 상위는 후배위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여성 상위를 선호하는 여자들은 자신이 잠자리를 리드하기를 바라는 타입이다. 나는 그저 그년들의 리듬에 맞춰 가슴이나 몇 번 주물럭거려 주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그년이 절정에 오르기 전에 내가 먼저 싸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피나는’ 연습을 했었다.
여자를 기준으로, 후배위는 자신을 상대에게 내맡겨 스스로 짐승이 되는 자세이다. 반면 여성 상위는 남자를 깔아뭉개고 자신이 위에 서는, 그런 자세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선호하는 노땅들, 즉 나의 고객들을 보며 생각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둘 중 하나인 모양이라고. 학대를 하고 싶어하거나 학대를 받고 싶어하거나.
나란히 침대에 털썩 누워 있을 때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먹이를 갈망하는 똥개의 그것 같다. 혹은 엄마의 손길을 애타게 찾으며 울다가, 마침내 엄마의 품에 안겨 평온을 되찾은 갓난애의 그것이거나. 나는 그런 그년들에게 품고 있는 역겨움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팔베게를 해준다. 어떤 고객은 세상이 평화롭다는 듯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빠드득 빠드득 이 가는 소리에 나는 미쳐버릴 지경이다.
나는 제비다. 노땅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그 돈을 받아먹고 사는, 제비다. 사람들은 나를 사기꾼, 씨팔놈, 창남 등이라고 욕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별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내가 이런 짓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부당하다는 말은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단지 서비스직에 몸을 담고 있는 것 뿐이다. 내 고객들의-‘사’자 직업이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지녔을-남편들은 대부분, 잠자리에서 가슴 몇 번 주물럭대는 것으로 전희를 끝내고는 삽입 후 몇 번 꿈틀대다가 찍, 하고 곯아떨어지는 그런 류의 남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년들은 욕구 불만이 되는 것이고, 남는 것은 돈이고, 해서 카바레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년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대신 돈을 받아먹는 것이다. 남편들은 아내가 닦달하지 않아서 좋고, 아내들은 성욕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나는 돈을 벌어서 좋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상부상조의 정신.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
해서, 나는 오늘도 카바레로 향한다. 잘 아는 노친네가 운영하는 전당포에서 빌린 악세사리들을 몸에 걸치고. 나의 단골고객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을 나서, 또다른 단골 고객에게서 뜯어낸 스포츠카를 타고. 스피커에선 Deepflow의 [Seoul State Of Mind]가 흘러나온다. 나는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한다. 고객의 몸을 다루듯, 타이어가 내 혓바닥인 듯, 도로가 고객의 등골인 듯 거칠게. 헤어스타일이 망가지면 안 되므로 창문은 열지 않는다.
카바레에 도착하면 나는 그날의 고객을 찾아낸 뒤 속으로 물을 것이다. ‘So You Wanna be hardcore?' 그리고는 그년들의 욕망으로 가득 찬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역겨움을 참아내며, 그년들을 핥는다. 속으로 생각한다. 부디, 돈이나 좀 많이 얹어달라고. 나도 이제 베테랑 다 됐다.
E: Everyday Struggle
[Ready To Die]의 11번 트랙 제목이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특히나 욱신거리는 페니스를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가장 먼저 이 노래부터 틀어놓는다. 애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때면 나는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 것을 참고 화장실 문을 연 채 샤워박스로 들어간다. 한 맺힌 목소리로 이 노래의 후렴구를 질러댄다. “아돈원어 립 노 모! 썸탐즈 아 히얼 덷 녹킹 아 뽄도!” 역시나 모자란 영어 실력 탓에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다. 대충, 졸라 힘들고 뒈져버리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까. 매일 매일 생지랄, 이라는 뜻의 제목이나 가사 내용이나 하나하나 내 가슴 깊이 들어와 꽂히지 않는 것이 없다. 후렴구의 마지막 가사는 다음과 같다. “Another Day, Another Struggle." 잠에서 깨 눈을 뜨자마자 불현듯 이 가사가 떠오르는 때가 종종 있다.
나의 하루는 양분되어있다. 즉 하루를 두 번 산다는 소리다. 나의 첫 하루는 밤 9시에 시작된다. 나는 9시에 눈을 뜨자마자 TV를 켜 뉴스에 채널을 맞춘다. 그리고는 밥을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콘돔이나 향수 같은 자잘한, 그러나 중요한 물품들을 다 챙겨 출근 준비가 다 될 쯤엔 TV에서 스포츠뉴스가 나오고 있다. 나는 TV를 끄고 문을 나선다. 그리고는 카바레, 즉 나의 직장으로 향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이르면 5시, 늦으면 9시쯤에 도착한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Ready To Die]를 CDP에 넣고 재생시킨 뒤 샤워를 한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피곤에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눈을 뜨면 오후 2시가 되어간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하루의 시작이다. 우선은 세수를 한 뒤 가공식품들로 식사를 해결한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클럽으로 가서 운동을 한다. 물론 하체와 허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단련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컴퓨터를 켠다.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찾아볼 때도 있다. 음악을 듣거나 만화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물론 전부 공짜다. 음악이건 만화건 영화건 전부 손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그런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대체 뭘 받아먹고 사는지 모르겠다. 다들 공짜로 이용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짓거리를 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경의 아닌 조의. 오후 5시 30분이 되면 나는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6시가 되면 9시에 맞춰진 알람을 확인하고는 침대에 눕는다.
박인권의 만화 [대물]은 제비가 주인공이다. 나의 관심을 잡아끌기엔 충분했다. 그 만화의 주인공이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자 대통령, 대기업 여회장, 유럽의 공주 등이다. 그야말로 스케일이 크다. 게다가 주인공이 바라는 것은 돈과 같은 물질도, 커다란 권력도 아닌 더욱 고귀한 것이다. 같은 제비이지만 나에게는 그토록 먼 나라의 얘기일 수가 없다. 나는 돈 말고는 딱히 바라는 것이 없다. 오직 돈 때문에, 못생긴 노땅들의 몸을 핥고, 나의 페니스를 굴려먹는다. 오직, 돈을 위해. 그야말로 매일 매일 생지랄이다.
물론 나는 이 만화 역시 다운로드 받아서 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물 간 밴드가 연주하는 조잡한 음악 소리가 귀를 울린다. 그럼에도 나는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으려 주위를 둘러본다. 물론 고객을 찾기 위해서다. 이 짓을 하도 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생겼다. 딱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감(感)이다. 그것이 적중할 확률은 내 경력의 증가와 비례 증가한다. 찬찬히 둘러보던 나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춰선다. 쓸 만한 고객을 찾은 것일까? 아니다. 나의 고객을 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의, 게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이다.
카바레에는 나 같은 제비와 그 고객이 되는 노땅 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땅 놈들과, 그들을 고객으로 삼는 꽃뱀들도 있다. 저 여자도 분명 그런 종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일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다. 꽃뱀과 제비는 서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이곳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것을 어겼다가는 이 바닥을 뜰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잊었다. 내 귀에 들리는 소음들이 점점 멀어져간다. 나의 두 발은 제자리에 붙박였다. 입은 떡 벌어져 있다. 나의 두 눈은 그녀만을 바라본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나는 넋을 놓고 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나는 몹시 아쉽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나는 그녀에게로 걸어간다. 다짜고짜 맞은편에 앉는 나를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본다. 나는 고객들 앞에서와는 달리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녀는 시끄러운 잡음을 뚫고 다가와서 귓속말을 한다. “왜,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숨결이 내 귓가에 닿는다, 나는 심장이 터질 듯싶다. 다시 몸을 뗀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본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러지를 못한다. 그동안 익혀둔 화술들은 이순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설령 써먹을 수 있더라도 그녀 앞에선 입에 발린 소리 따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의 진심을 이 떨림을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로 몸을 숙인다. 그녀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귀를 열어준다. 나는 귓속말을 하려다 말고 멈춰서 그 귀를 본다. 작고 예쁜 귀다. 어루만지고 싶고, 핥고 싶다. 노땅 년들에게 하는 성욕을 위한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내 마음을 담아서. 그녀는 내가 말이 없자 다시 몸을 바로 한다. 나를 보는 눈빛이 점점 더 의아해진다.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걸음으로 출구로 간다. 얼굴을 익힌 웨이터 한 놈은 혼자서 나가는 나를 웬일인가 싶은 눈으로 본다. 나는 용케도 자빠지지 않고 차에까지 온다. 문을 탁, 닫은 뒤 한숨을 쉰다. 젠장, 그리로 가는 게 아니었는데. 무엇에 홀려서는, 내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제비가 꽃뱀한테 반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는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창문을 연다. 바람이 이리도 거셀 줄은 미처 몰랐다. 운전을 하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모습이 바람만큼 거세게 아른거렸다.
[대물]의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고귀한 것이란 바로 사랑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대립하던 여주인공들을 결말에 가서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끌어안고 용서한다. 돈만을 탐하는 것은 삼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한다.
나는 삼류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므로 사랑 같은 것은 나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 왔다. 다이나믹 듀오의 [It's Alright]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인생이란 길이 참 가혹한 건, 누구든 한번쯤은 꼭 사랑한다는 것.” 아무래도 그 가혹함이 내게도 닥쳐온 것 같다.
나는 어서 정신 차리라며, 나 따위가 무슨 사랑이냐며, 나만 다칠 뿐이라며, 나 자신을 타이른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는 듯하다.
나는 고객들과 섹스를 할 때마다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려 애쓴다. 그년들은 내게 평소보다 많은 돈을 얹어준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물 간 밴드가 연주하는 조잡한 음악 소리가 귀를 울린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물론 그녀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나는 한 노땅 놈과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나는 흥분한다.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 출구로 걸어 나간다. 내 지갑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있다. 그동안 내가 그야말로 ‘피땀’, 그리고 정액까지 흘려가며 번 돈들이다. 출근도 하지 않고 사흘 밤낮을 끙끙대며 생각해낸, 그녀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녀의 고객이 되는 것이었다. 주차장 입구에서 내 손을 뿌리치며, 왜 이러냐는 그녀에게 나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쥐어준다. 그리곤 말한다. “오늘은 나랑 자자.” 다소곳해진 그녀와 함께 차로 향한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내가 잡았던 손목이 아픈지 만지작거린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호텔로 향한다. 이번에는 숙박비를 내가 지불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내가 단지 젊기만 할 뿐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노곤한 일상이겠지만.
X: XYZZY
[#!*@ ME] 이것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Ready To Die]의 8번 트랙 제목이다. 이 앨범의 유일한 스킷 트랙이기도 하고, 내가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스킵하는 트랙이기도 하다. 이 트랙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별 것 없다.
우선은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온다. 그리고는 갑자기 여자의 신음소리가 나온다. 긴박한 효과음과 함께. 저 멀리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도 들린다. 여자는 섹스를 하는 내내 저속한 욕설을 마구 쏟아낸다. 절정이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는 커진다. 퍽킹, 애즈, 머더뻑킨, 갱스터 킬링, 어쩌고. 두 남녀는 결국 절정에 이르고, 털썩 하고 드러눕는 소리가 들린다. 긴박한 효과음은 사라진다. 두 남녀는 서로에게 만족했다는 듯 애정 섞인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끝. 그 뒤에 나오는 9번 트랙 [The What]의 비트는 사정 후의 그것만큼이나 몽롱하고 나른하다. Biggie와 Method Man, 두 랩퍼의 묵직한 플로우 또한 그 분위기에 한몫한다.
나는 내가 여자의 신음소리를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겹기도 하다. 이런 암캐의 울부짖음 따위는 업무 시간에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이 앨범의 8번 트랙을 스킵한다. 여자 따위, 여자의 신음소리 따위 지겹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내가 그녀와 함께 처음 자던 날. 서로가 서로의 성(姓)에 관해서는 훤히 꿰고 있는 만큼 상당히 만족스러운 밤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만족감은 단순히 성욕에 관해서 끝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그토록 흔들어 놓은 그녀를 내 품에 안고 바라보자니, 그녀가 그토록 만족하는 것(척일수도 있겠지만)을 보자니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었다. 힘과 테크닉이 아닌 애정을 한껏 감아 섹스를 해본 것이 얼마만인지.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그녀는 유난히 크게, [#!*@ ME]의 여자만큼이나(물론 저속한 욕설은 내뱉지 않았다) 자극적인 신음소리를 냈다. 우리는 동시에 절정을 향해 갔고, 나중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담고 침대에 나란히 눕게 되었다. 역시나, [The What]의 비트만큼이나 나른함이 밀려왔다. 그 나른함에는 허무가 섞여 있었다.
일을 마치고 천장을 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해보니 이것은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쯤 내게 얼마나 돈을 뜯어낼 수 있을지 만을 궁리하고 있을 터였다. 허무와 더불어 자책감이 밀려왔다. 사춘기 시절, 자위를 하고 난 뒤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너무 성급한 것 같지만 마땅히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다)하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밖에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한심했고 안타까웠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그 담배가 전부 태워지기 전, 그녀를 또다시 품에 안았다. 그녀는 거칠게 밀어붙이는 나의 성기에 새 콘돔을 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지러운 내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여자를 만족시키는 법을 잊지 않고 충실히 수행했다. 우리는 또다시 절정을 향해 갔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그녀 또한 내 귓불을 물어뜯은 뒤 말했다. 나도, 사랑, 해, 오빠, 흐응. 물론 입에 발린 말이었겠지만, 나는 행복했다.
비록 서울 변두리 카바레에서 노땅 년들 하룻밤 상대나 되어주는 삼류 제비지만,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내 최소한의 생활비를 메우고도 남는다. 그동안 나는 내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재투자 비용으로 적잖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따로 모아둔 돈도 제법 된다. 계산을 해보니, 일주일 여섯 번 출근을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녀를 만나는 데에 써도 생활은 그런대로 유지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다.
거실 장식장 위 스피커에서는 [Ready To Die]의 8번 트랙이 흘러나온다. 평소 같았다면 물론 스킵했겠지만, 몸이 노곤하고 또 그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느라 움직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현재 그녀 생각 밖에 나질 않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내는 것이다. 나는 돈을 내고 그녀와 잔다. 이미 얼굴을 익힐 만큼 익혀, 나는 그녀의 단골 손님이 되어간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며 나의 진심을 고백해도, 그녀는 다만 속으로 코웃음 칠 것이다.
나는 제비다. 그녀는 꽃뱀이다. 제비와 꽃뱀의 사랑이라. 여느 꽃뱀들이 그렇듯 그녀에게도 자신의 뒤를 봐주는 조폭놈이 한명 쯤 있을 것이다. 그녀석이 내 진심을 안다면, 난 끝이다. 나는 그저, 그녀의 고객 밖에는 될 수가 없다.
그녀와 나의 상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좆 같다. 마침 CDP에서는 9번 트랙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후렴구를 따라 부른다. “Fuck The World!" 그래, 이놈의 좆같은 세상 엿이나 먹으라지. 뻑더월!
소리를 한참 지르고 나니 속이 한결 나아지, 긴 개풀.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여전한 제비고 그녀는 여전히 꽃뱀이다. 나는 침대 밑 가방에서 지폐를 한 뭉치 꺼내든다. 차의 시동을 걸어 나의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최근에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질주하는 습관이 들었다. 내 마음속의 혼돈만큼이나 거친 굉음이 내 귀를 파고든다.
나는 그녀를 돈으로 사서 품고 난 뒤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가는 수밖엔 없는 것이다.
Ready To Die
이 앨범의 전체적인 컨셉은 바로 ‘인생’이다. 앨범의 1번 트랙은 ‘탄생’을 암시하고, 마지막 트랙은 ‘죽음’을 암시한다. 앨범의 제목이 [Ready To Die]라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1번 트랙을 재생하면 처음에는 침묵이다가 20초쯤부터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 그 뒤 애기 울음소리와 산모가 용을 쓰는 소리가 들려오고, 누군가는 그런 산모를 격려하고 있다. 그 사람이 "Yeah!"라며 환호성을 하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산모의 비명소리는 끝이 난다. 신나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뒤로 누군가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와 노랫소리가 번갈아 들려오고, 음산한 배경음 위에서 Biggie가 “I got big plan."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트랙이 끝난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17번 트랙은, 누군가가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 짜증을 내는 것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 누군가는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그 위로 비트와 함께 Biggie의 랩이 시작된다. 드럼 외의 악기 사용을 자제한 것으로 보이는 비트는 꽤나 차분하고도 섬뜩한 느낌이다. Biggie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들린다. 갑자기, 여전히 투덜대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지며 Biggie를 다급하게 부른다. Biggie의 랩은 끝나고 단발의 총소리가 들려온다. 탕! 상대방은 Biggie의 이름을 불러대지만 대답은 없다. 어느 순간 모든 소리는 끝이 나고 심장 박동 소리만이 남아 있다. 점점 느려진다. 결국엔 멈춘다. 그리고 앨범은 끝이 난다. 열심히 회전하던 CD는 숨이 멎은 듯 멈춰 선다.
이 앨범에는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Machine Gun Funk]처럼 음울한 분위기의 곡도 있고, [Everyday Struggle]같이 애잔한 분위기의 곡이 있는가 하면, [The What]같이 냉소적인 곡이 있다. 그 ‘다양함’ 또한 ‘인생’이라는 컨셉에 일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앨범과 제목이 같은 6번 트랙에서 Biggie는 외친다. “Yes, I'm ready to die!"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결국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한다. 사춘기 소년들은 모두 자위를 한 뒤의 허탈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집이 비기만 하면 숨겨뒀던 야동을 재생한다.
나의 고객들은 모두 오르가즘이 주는 희열의 순간이 얼마나 짧고도 허망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년들은 자신의 남편들이 벌어온 돈을 들고 나를 찾는다.
나는 그녀와의 섹스 뒤에 오는 자책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노땅 년들에게 몸을 팔아 번 더러운 돈을 그녀에게 쥐어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잘 알고 있다. 내 진심을 그녀에게 고백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Ignito의 [Dreamin']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시작부터 종착지가 정해진 길을 모르는 척 외면하며 걷고 있는 이들.”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만나자는 말을 한다. 그녀는 흔쾌히 승낙한다. 카바레에 가지 않고도 고객을 섭외할 수 있다니, 그녀에게는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약속 장소는 우리가 늘 가곤 했던 호텔이다. 그녀는 먼저 가서 방을 잡아 놓겠다고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그곳으로 향한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수음을 시작하는 사춘기 소년의 심정이다.
초인종을 누르자 그녀가 문을 연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있었는지 가운만을 걸치고 있다. 머리칼은 젖어 있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화장기가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그녀의 표정이 달라 보인다. 얼굴 잔뜩 어려 있는 근심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내게 샤워부터 하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그녀가 시키므로, 나는 그렇게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온다. 아까 처음의 내 느낌이 맞았나 보다. 평소라면 에로틱한 자세를 하고 누워 있었을 그녀는, 여전히 근심어린 표정으로 그저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 옆으로 가 앉아 묻는다.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아니에요, 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나는 본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다시 한 번 묻는다. 무슨 일인지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 싶은데. 라고.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결국 내 가슴에 파묻혀 엉엉댄다. 나는 어찌해야 할 줄 몰라 그저 토닥여줄 뿐이다. 그녀에 대한 동정심과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한다. 우리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맺어졌다는 것은 잊은 지 오래이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그런 생각 따윈 없었지만.
한참을 울던 그녀가 몸을 일으켜 바로 앉는다. 그녀는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화장기가 번져 있다. 그런 모습마저 예쁘다. 그녀가 말한다. “나 사실, 당신을 사랑해요.” 응?
그러니까, 그녀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꽃뱀이, 나를 사랑한단다. 내가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또다른 말들을 울먹거리며 쏟아내기 시작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이 좋았어요. 당신이 나를 선택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난생 처음으로 섹스와 사랑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창녀 같은 년이라고 욕해도 좋아요. 다만, 다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정말이에요.”
나는 어리벙벙 앉아 있다. 그렇게 말없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1번 트랙의 울음소리가 맴돈다.
그녀는 내게 한 고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Ready To Die.
나와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고 한에 맺힌 섹스를 한다. 우리의 신음소리는 8번 트랙만큼이나 거칠고 자극적이다. 동시에 절정에 오른 뒤 우리는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밀어를 나눈다.
[The What]의 비트만큼이나 몽롱한 기운이 우리를 감싼다. 그러나 우리는 잠들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우리는 키스를 나눈다. 10번 트랙 [Juicy]만큼이나 달콤하다.
차가 출발한다. 차창을 열자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머리칼이 흩날린다. 이 기분이 11번 트랙 [Everyday Struggle]만큼이나 애잔하다.
나의 방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쇼파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그녀에게, 음악 들을래? 하고 묻는다. 어젯밤 듣다 만 [Ready To Die]의 13번 트랙 [Big Poppa]가 흘러나온다. 밤의 풍경만큼이나 쓸쓸하고 끈적한 분위기의 이곡은 우리 둘 사이에 에로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화장이 지워진 그녀의 입술이 도톰해 보인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다시 그녀에게 달려든다. 우리는 또다시-.
눈을 뜨니 아침이 밝아 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다. 지금쯤이면 그녀의 기둥서방이 그녀를 찾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녀는 여전히 잠들어 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주방으로 가서 둘이 먹을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나는 믿기지 않는다. 16번 트랙의 제목은 [Unbelievable]이다.
안방에서 그녀가 일어나는지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안방으로 가 기지개를 켜는 그녀를 안아준다. 거의 동시에, 초인종이 울린다. 우리집에 이 시간에 올만한 사람은 없다. 나는 평화가 주는 불안을 느끼며 현관으로 걸어간다.
이제는 17번 트랙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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