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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속 숟가락

  • 작성일 2008-07-26
  • 조회수 360

냄비속 숟가락

 

비가 오는 날이면 가락의 마음에도 먹구름이 깔린다. 비가 내리면 두부배달 일을 하기도 힘들었고 어디 있을지 모를 사람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고 했는가. 비오는 것이 나쁜 일이라면 좋은 일도 생길 터였다.

그날도 비가 왔었다.

하늘엔 원래 태양이라는 게 없는 듯 빛 한 점 스며들지 않았다. 어두운 먹구름은 짐승처럼 으르렁 거렸고, 유릿조각 같은 빗방울은 어린 가락의 온몸을 두들겨 뎄다.

아이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집도 가족도 비를 막아줄 우산도 가락에게는 없었다. 아이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비 피할 곳을 찾아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거리를 헤매었다.

아이에게는 가족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아버지였다. 가락은 지금 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일까?

아이의 아버지는 새벽 일찍 집에서 나가 해가 지기 전 돌아왔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은 일하러 나가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사람들은 목수 김씨라고 불렀다. 그런 아버지가 언제 부턴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일을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다리를 절기 시작한 이후 부터였다.

가락이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콩나물 국밥집 안이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국밥이라는 음식에 기쁠 따름이었다. 가락은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국밥의 맛은 잊지 못한다.

달았다. 너무 달고 맛있었다. 피죽도 아닌 수제비도 아닌. 콩나물에 흰쌀밥을 말아먹는 것이 새로 껍질을 깐 껌 한 조각 보다 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국밥을 먹지 않았다. 아이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리라.

“OO야 아부지 이름이 뭐꼬?”

아버지가 물었다.

“OO야 아부지 이름이 뭐꼬, 말해 보그라.”

“OOO예”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다. 가락은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 그게 아부진기라. 근데 이제 그걸 잊어뿌라. 알긋나? 잊어야 한데이?”

“와예?”

“그른거 뭇지 말고. 알았제? 자 아부지 이름이 뭐꼬?”

“OOO입니더.”

아버지의 언성이 조금 올라갔다.

“잊으라 안카나. 누가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그라. 자, 아부지 이름이 뭐꼬?”

“모르겠심니더.”

“그래. 그래 대답해야 한데이. 그라고 이거 받그라.”

아버지는 누런 봉투 한 장을 내밀었다. 고이 품속에 넣어 놓은 듯 잔주름 하나 없는 봉투였다.

“이거 잘 들고 있어야 한데이. 절대 이자묵으면 안돼. 알겠제? 누가 니가 누군지 물으면. 아부지는 누군지 모른다 카고. 이 봉투를 주그라.”

“알았심니더.”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연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심스레 떨려왔다.

“그라믄, 내는 이 앞에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야한데이. 아까 준거 잊어먹지 말고.”

그게 아버지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이는 국밥집에서 잠시 갔다 온다던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래 기다리지 못했다. 국밥집 아줌마는 아버지가 계산을 하고 나갔다며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는 국밥집 옆에 쭈그려 앉은 체 밤을 지샜다.

아이가 비를 맞으며 간곳은 시장 옆 도랑다리 밑이었다. 그 곳이라면 사람들이 구정물에 몸을 담근 쥐새끼처럼 알아내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쥐새끼와 같이 취급했다. 가까이 오면 병균이 옮을 것처럼, 빗자루도 매질하며 쫓아냈다. 그런 쥐새끼가 있을 곳이 도랑 밑이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선 비 때문에 아파하지 않아도 됐다. 더 이상 하늘은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다리 밑은 다리 밖보다 오히려 밝다. 먹구름 보다 회색빛 다리가 밝았고 비는 아이를 때리지 않고 눈앞에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리 밑에는 주워온 나무때기로 만든 듯한 판자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명이 기어나온다.

“아이고, 비 봐라. 이래가꼬 묵고 살겠나?”

그는 길고 헝크러진 머리를 대충 이어붙인 비닐 노끈으로 동여매고 말라붙은 몸은 남루로 대충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는 그 얼굴 따위는 볼틈이 없었다. 그가 빗자루나 몽둥이를 들고 있는 지를 살폈다. 그러나 그는 망치로 수십 번은 두드린 것 같이 생긴 양은 냄비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니는 뭐꼬?”

아이는 품속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둔 황색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아이와 같이 불대로 불어있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않은체 봉투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의 봉투를 받아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낸다. 그 속에는 커다랗게 글씨 몇 자가 쓰여 진 종이가 들어있었다.

“이게 뭔 글자고? 나는 글자 읽을 줄 모른다. 니는 말할 줄 모르나?”

“압니더.”

“근데 왜 말은 안하고 종이만 딸랑 주노.”

아이는 씩씩 거리며 말했다.

“우리 아부지가 누가 니 누군지 물어보면 그거 주라 캤습니더.”

남자는 조금 뜸을 들이곤 말했다.

“그래. 느그 애비는 어디갔노?”

“모르겠심니더. 그냥 기다리고 있으랬는데. 그 뒤엔 모르겠십니더.”

남자는 종이 속에 비치는 글자를 비오는 하늘로 한참을 비춰봤다.

“내가 글은 몰라도 숫자는 안다. 이게 니 생일이가? 음, 1961년? 니 7살이가? 그래, 이름이 뭐꼬?”

“아부지가 이름 물으면 대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더.”

아이는 자신을 떠나기 전 아비가 한 말은 잊지 않았지만 기억은 벌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남자는 젖어서 끝이 조금씩 찢어진 봉투에 조심스럽게 종이를 다시 넣었다.

“이 봉투 잘같고 있으라. 잊아묵으면 안된데이.”

“아부지도 그랬심니더.”

“그래 그면 여기서. 비나 피하고 있어라. 비 그치면 같이 밥이나 얻으러 댕기자.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요즘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어 자식새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는 아이를 판자집으로 데려갔다. 남자는 그래도 비에 맞아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른 아이를 내놓을 수는 없었다. 아니면 그때부터 이놈을 내 자식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 했을 지도 모른다.

판자집 안은 어디서 줏어 왔는지 모를 잡동산이로 가득했다. 구멍 난 냄비, 휘어진 숟가락도 보였다.

“임마. 니, 봄이라서 그렇지 겨울이었으면 벌써 얼어 죽었을 기다. 니 목숨은 니가 챙겨라한디. 요즘 애들 죽어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안카나.”

남자는 투덜거리며 기름때 묻은 천 조각 들로 아이의 머리를 닦았다. 아이는 머리를 닦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잠이 들었다. 가락은 아버지를 잃은 후 처음 잠을 자본 게 그때라고 기억한다.

그 비는 이틀간 더 내렸고 두 남자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판자집 안에 꼭꼭 박아둔 밥 덩어리로 간신히 끼니만 유지해 갔다.

비가 그친 날부터 아이는 남자를 따라 나섰다.

“자, 이 냄비하고 숟가락하고 받그라. 니는 이거 두들기면서 내만 따라 댕기면 된데이. 그라다가 사람들이 먹을거 주면 냄비에 받고, 알았제? 잘 따라온나.”

아이는 냄비를 꽹과리 마냥 신나게 두들기며 남자를 따랐다. 남자는 집, 시장 가릴 것 없이 거리를 누볐는데, 사람들은 그를 거지새끼 혹은 냄비라 불렀다.

냄비를 치며 남자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먹을것이 생긴다는게 아이는 신기했고, 굶지 않고 도망다니지도 않는게 즐거웠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고 않고 또 왔네.”

남자는 항상 이런 노래를 불러댔고 언제부턴가 아이도 같이 따라 불렀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일일이 구걸을 하고 다녀도.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이놈저놈 전부다 쫄쫄 굶었소.”

아이가 뒤를 따라 부른다.

“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삼월이 되니 아비를 잃고

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사지가 전부다 비실비실.”

아이가 그렇게 몇 달을 남자와 함께 지내며 얻은 이름은 숟가락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냄비보다 숟가락 이놈이 더 잘하네.’ 라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는 목이 터져라 각설이 타령을 부르고 냄비에 구멍 날 정도로 숟가락을 두들겨 댔다.

“오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오지랄 넓은 부자님들 밥이나 한술 더 주소.

육자나 한번 들고나 보오소. 육두문자나 내뱉지 말고.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소.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품바 허고 잘도 한다.”

냄비를 아는 사람들은 가끔 아이가 누구 애냐고 묻기도 했는데, 남자는 그때마다

“아이구. 내 아들이다 아니가. 다리 밑에서 주었으니께 내 아들이지.”

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거지에게 겨울은 죽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그때 숟가락도 다른 아이들처럼 감기에 걸렸다. 겨울이라 구걸하기도 쉽지 않고 문짝 없는 판자집은 있으나 마나였다.

아이의 열이 바깥 날씨와는 반대로 높아만 가고 아이도 이제 죽는 건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판자집에 들어왔다. 그는 남루 깊숙한 곳에 고이 접은 약 종이를 꺼냈다.

남자는 숟가락으로 눈을 한술 떠 손이고 입김이고 간에 전부 동원해 그것을 녹이고, 거기다 약 종이에 곱게 쌓인 가루약을 털어 넣는다. 남자는 때가 잔뜩 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입으로 빨고 빨아 침에 불어 쭈글쭈글 해 질 때 까지 손가락을 씻어 대더니, 그제야 녹인 눈과 약을 뒤섞었다. 그러고 나서야 숟가락을 아이의 입에 넣는다.

“써도 뱉지 말고 삼키야 된데이. 절대 뱉으면 안돼. 숟가락에 있는 거까지 빨아 묵으라. 이거 양약이라서 한 숟갈만 묵어도 완전히 낳을 끼다. 니가 나아야 나도 빌어먹고 살거 아이가.”

아이는 남자의 말대로 숟가락에 남은 가루 한 점 없이 약을 먹었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다음날 감기는 씻은 듯이 나았다. 딱 한 번 먹을 양의 약이었지만, 그토록 효능이 좋을지는 가락도 몰랐다.

가락은 남자가 어디서 이 비싼 약을 구했을까, 어디서 훔쳤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그 성격에 훔치지는 못했을 거고 약국 앞에서 통곡을 하며 빌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됐다.

봄이 오자 남자는 잘 웃지 않았다. 죽음의 여신 같던 겨울이 끝나고 이젠 옷 속에 넣은 지푸라기들도 꺼낼 정도로 따뜻해 졌지만, 남자의 각설이 타령은 신이 나지 않았다.

“숟가락아. 니, 내랑 갈 데가 있다. 몇 일 걸어가야 되니까 준비 단단히 해리.”

“어디갑니꺼?”

“가면 아니까, 그냥 니는 따라 오기만 하면 된다. 그 가면 꼬박꼬박 보리밥은 먹을 수 있을기다.”

아이는 보리밥이고 뭐고 간에 남자를 따라 떠났다. 두 사람은 일주일간 걷고 구걸하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남자는 자는 아이를 깨웠다.

“왜그랍니꺼?”

“빨리 정신 차리라. 바쁘다. 정신 챙겼나?”

“야.”

아이는 대답했다.

“그라믄. 니, 내말 잘들어리. 니, 끼니 안 굶고 꼬박꼬박 먹고 싶었제. 그렇게 해 줄 수 있으니까 내말 듣고 똑같이 해야 된다. 알았제?”

“야. 이 밤에 구걸하러 갑니꺼?”

“아이다. 니, 고아원이 뭔주아나?”

“몰라예.”

“그기에 니 같은 애들이 많은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다. 그 가면 니 구걸 안 해도 된다. 내가 지금 니 그기에 데리다 줄테니까. 아, 니 그 종이 아직 갖고 있제?”

“뭔 종이예?”

“니 원래 이름하고 적힌 종이 있다 아이가.”

“야. 가지고 있십니더.”

“그 가서 그 종이만 가따 주면 니 먹여주고 재워줄끼다. 그기에 뭐 거지하고 살고 구걸했다 이런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아빠 잊아묵읏다고 해라. 알아듣겠나?”

아이는 1년 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는 아버지란 사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싫습니더. 그냥 구걸하면서 살랍니더.”

“니 제정신이가? 겨울에 또 감기 걸리면 어떻할라꼬? 니 그라다가 진짜 죽는다?”

아이는 완강하다.

“안 죽십니더. 절대 안 죽으니까 내 버리고 가지마이소.”

“야가 와이라노? 내는 어차피 니 애비도 뭐도 아이다 이이가. 그라니까 여서 니는 잘 묵고 잘 살믄된다. 우리 있는 데는 니가 거지라꼬 안받아줄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있어라.”

남자는 아이를 업고 고아원 문 앞까지 갔다.

“니. 내 따라 오면 진짜 죽는데이. 아침까지 여 있다가 사람 나오면 그 종이 주고. 그라고 절대 거지였다고 하지 말고 알아 들었제?”

남자는 아이의 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남자의 기세에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한 체 남자를 바라 볼 뿐이었다.

남자는 아이를 내려놓고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남자는 아이가 따라오는지 우는지 확인 하지도 않으며 앞 만보고 걸었지만, 아이의 눈에서 사라지기까지 세 네 번은 멈칫거렸다.

해가 밝아오고 고아원에선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은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고 아이는 종이를 꺼내지 않고

“지는 숟가락입니더. 숟가락.”

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가락은 지금도 그 고아원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이제 80년대에 들어서고 가락의 나이도 스물이 넘었지만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일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가락은 두부 배달 일을 하고 있었다. 두부를 자전거에 가득 싣고 시장이면 시장, 주택가면 주택가 안가는 곳 없이 두부 배달을 다녔다.

두부배달을 마치면 고아원에 돌아 왔고 그곳에서는 큰형으로 불렸다. 고아원에 같이 있던 친구들은 주로 파란 눈의 부모에게 안겼고 가락은 원장의 성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한가락’으로 불리고 있었다. 고아원장은 벌써 60이 넘은 할머니였지만 고아원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엄마였다.

힘든 일을 마다 않고 꿋꿋한 가락이 원장은 마음에 들었고, 가락은 더 이상 다른 부모를 만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지내왔고 오늘은 또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두부배달은 곱절 힘들어 졌다. 바닥은 미끄럽고 비닐로 동여맨 두부와 가락의 몸은 그것만으로도 지탱하기 힘들었다. 특히나 오늘은 봄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유리조각처럼 가락을 때리고 있었다.

가락은 두부판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페달을 밟는다. 시장에는 두부가 가장 많아 팔려 최대한 많이 실어야 했다.

검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줄기는 가락의 비옷을 사정없이 두들겨대, 가락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눈에도 빗물이 자꾸 들어가 앞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가락은 고아원 동생들을 생각하며 더 세게 페달을 밟았다.

비가 너무 내려 시장도 한산하다. 노점상들은 돗자리도 펴지 않았고, 천막 있는 가게들도 장사를 접은 곳이 많았다.

가락은 자신이 항상 배달하던 반찬가게, 식당을 돌며 배달을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장사가 시원치 않다며 평소보다 두부를 덜 사들였다. 그렇다보니 평소보다도 조금 적게 들고 나온 두부는 반판정도 남아있었다. 그것도 두부를 퍼주다 비에 맞아 부서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락은 무거운 몸으로 한결 가벼워진 자전거를 끌며, 장사꾼도 손님도 없는 시장을 걸었다.

그 시장골목 한 구석 찢어진 천막을 두른체 비가 질퍽거리는 시장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 앞에는 구멍나 빗물도 고이지 않는 낡은 양은냄비와 휘어진 숟가락 하나가 놓여있다.

가락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아무생각 없이 몸이 움직였는지 그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남자 앞에 쭈그려 앉는다.

“아저씨, 오늘은 비가 와서 동냥도 안 될 테니 다른 곳으로 가이소.”

남자가 고개를 든다. 천막으로 몸을 가렸지만 그의 얼굴에선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흰머리가 뉘엿뉘엿한 기름진 장발을 비닐노끈으로 묶고 있었고, 주름 가득한 얼굴은 물에 젖은 수염이 뒤덥고 있었다.

“거지가 갈 데가 어딧다고 그라노? 하늘 있는 곳이 집이지. 안그렇나?”

“그럼 여기 말고 건물 같은데 들어가 계셔야지예.”

“알만한 젊은이가 왜 그라노. 물에 빠진 늙은 쥐를 맞아줄 곳이 어딧다고. 그라고 여기 있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거 아이가?”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사람들도 안다닙니더.”

“원래 구걸이란게 가만히 앉아서 챙겨 묵는 게 아이다. 찾아가서 빌어먹어야지.”

남자는 가락에게서 눈을 때지 않았고 가락도 그러했다.

“그라믄 아저씨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겁니꺼?”

“니는? 니, 무슨 일을 하는데?”

“두부배달 하고 있었십니더.”

남자는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그 천막 위의 물도 들썩였다.

“밥은 먹고 사는 가베? 똑같다. 사람 하는 게 다 묵고 살라고 하는 거 아이가? 내도 묵고 살라고 이라고 있는 기고. 근데 뭐 묵을 것 좀 없나? 하루 종일 굶었드만 속이 안좋네.”

가락은 자신의 자전거의 비닐을 벗기고 온전한 두부를 하나 꺼낸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두부가 꺼내가마자 날카로운 빗물에 일그러지고 있었다.

남자는 냄비속의 숟가락을 꺼냈다.

“이 냄비에 좀 담아도.”

가락은 냄비에 물을 따라 버리고 그곳에 새하얀 두부 한 모를 담는다.

“여기 있습니더.”

남자는 꺼낸 숟가락은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 으로 두부를 집어 먹는다. 맨손으로 두부를 집어 먹기는 쉽지 않았고 남자는 빗물과 함께 두부를 마셔버린다.

“끄윽. 아으. 참 맛있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두부고?”

“한 모 더 드립니꺼?”

“아이다. 이거면 충분하다.”

남자는 자신이 덥고 있던 천막을 뒤로 넘기더니 한손엔 냄비를 한손엔 숟가락을 들고 일어섰다.

“이제 가시는 겁니꺼?”

“에헤이. 거지가 뭘 얻어먹었으면 노래라도 한곡 뽑아야 되는거 아이가. 니 장단 좀 맞출 줄 아나? 각설이 장단 말이다.”

남자는 가락이 대답하기도 전에 냄비와 숟가락을 내민다. 가락도 먼저 그것을 받은 후에 대답했다.

“각설이 장단이 뭐 별거 있습니꺼. 그냥 두들기면 되는거지.”

“맞다. 니 말이 맞다.”

가락은 냄비와 숟가락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꾀꾕 꾀꾕 퀘퀘퀘켕.”

냄비 소리는 거센 빗소리 보다 더 크게, 그리고 넓게 천둥소리 마냥 퍼져 나갔다. 남자는 땅에다 가래침 한번 시원하게 뱉더니 소리를 지른다.

“어헐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두부 먹어 배부르고.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냄비소리 울러퍼져.

이놈의 노래하나 들어나 보소.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가락은 남자의 소리에 맞춰 냄비를 더욱 세게 두들긴다.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일천만리 세상 땅이 이렇게나 좁구나.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이것저것 생각 말고 풍악이나 즐기세.”

남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빗물이 고인 시장바닥에서 온 사방에 물을 튀기며 덩실거린다. 가락도 그에 따라 신이나 물위를 뛰었다. 그리고 노래 한수를 읊는다.

“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삼년 지나고 삼십년 지나도.

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사람 팔자 어디가리 거지 팔자 어디가리.”

다시 남자가 이어받아 부른다.

“오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오죽하면 인생살이 무상하다 했겠는가.

육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육지에 사는 짐승 중에 가장 불상한게 사람이네”

가락은 냄비를 치던 숟가락으로 저전거위의 두부를 한술 퍼 입에 넣고 입속 두부가 사방에 튀게 소리 지른다.

“칠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칠대도 없는 숟가락은 두부 팔아 먹고살고.

팔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팔자에 적힌 거지인생 여기서 노래나 할 팔자.”

“얼쑤 좋다. 구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구할 수 없는 내 인생에 숟가락 하나는 구했으니.

십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오소. 십년이 지나 두부 한모는 퍼먹는 구나.”

둘은 이제 같이 소리 지른다. 각설이 소리가 시장에 퍼졌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냄비하나와 숟가락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어허이 품바가 잘도 헌다. 품바 허고 잘도헌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비싼 것은 가락지 접는 것은 손가락

부르는 건 노랫가락 걷는 것은 발가락.

사람 삶은 거지가락 장단 맞춰 숟가락

품바 품바 잘도 헌다. 품바 품바나 잘도 헌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품바허고 잘도 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