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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하러 가는 아줌마

  • 작성일 2007-02-04
  • 조회수 381

 

파마하러 가는 아줌마


 

 평소에 지독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짜게 구는 아줌마들도 가끔 기분을 낼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용실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순간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선뜻 돈을 쓰지 못하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과감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이 사실은 엄마를 통해서 여과 없이 밝혀진다.

 대부분 아줌마라는 말이 어울리기 시작할 때쯤에는 머리 모양이 한결같은 경우가 많다. 짧은 커트 머리에 되도록이면 손질하지 않아도 되는 머리 모양. 화장을 하지 않는 여자라도,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는 여자라도, 거울을 자주 보는 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파마는 아줌마에게 있어 중요한 선택과 상징이 된다. 무심코 그냥 보기에는 다 똑같이 보이는 파마일 뿐이지만 아줌마에게는 앞머리 모양부터 시작해서 파마의 굵기와 정도, 세심하게 따지지 않고는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엄마는 또다시 손거울을 들고 있다. 습관처럼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파마가 다 풀린 것 같지 않니?’라고 하는 말에 내 대답은 한결같다. 내 대답에 조금은 흔들리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엄마는 이윽고 아줌마들에게 인기 있는 미용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곳은 언제나 발 딛을 틈 없이 사람이 바글거린다고 하면서 말끝에는 아쉬운 표정도 빼놓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 딱 한번 엄마를 따라 그 미용실에 간 적이 있다. 정말 그 미용실은 아줌마들로 만원을 이룬다. 내가 보기에는 촌스러운 것만 같은데도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기대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 자매가 하는 미용실은 무슨 이유인지 인기가 정말 좋았다. 내가 모르는 파마의 비밀을 아줌마들은 너나할 것 없이 꽤 뚫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아마 우리 집과 그 미용실이 제법 가깝기라도 하면 엄마는 당장 그 미용실에 갔을 테지만 상당한 거리인데다가 요새 겨울바람을 생각하면 발걸음을 떼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보통 미용실보다는 조금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파마하는 아줌마들의 표정에는 비장함과 더불어 숨겨두었던 화사한 얼굴빛이 군데군데 서려있다. 그것도 모자라 염색까지 하는 경우는 상당히 과감한 아줌마들에게나 해당된다. 붉은 색이나 노란빛이 도는 색으로 염색한 아줌마를 보면 정말 파격적이어서 ‘그건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도저히 말해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화려한 색으로 치장했지만 옷차림은 초라해서 어쩐지 촌스러워 보여도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가끔은 너무 자주 염색해서 머리가 가을 단풍처럼 울긋불긋해져 있는 아줌마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너무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우습게도 해본다.

 조그만 동네 미용실에서는 아줌마를 섣불리 말리지 않는다. 물론 큰 미용실도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내가 파마를 하려고 했을 때 지금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 곳도 있었으니 약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의지하여 말하자면. 내가 어릴 때 엄마를 따라가서 본 기억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라고 부추기는 어른처럼, 미용실 아줌마는 당연히 파마를 해야 하고 염색도 해야 조금은 사람다워질 것이라는 투로, 아줌마를 혹하게 하는 것에 능숙하다. 그래서인지 아줌마들은 잦은 파마에 대한 비용지불에는 좀처럼 물건 깎기를 하거나 인색해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 비싼 듯싶어도 파마를 한번 하면 일년 정도는 풀려도 그대로 다니는 것을 오히려 즐긴다. 반대로 아줌마들은 돈을 아끼려고 시장 구석진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고 적은 돈을 내지만 오히려 횟수로 따지면 그 비용은 더 비싼 편이다. 물론 시내나 큰 미용실에서 파마를 한다고 해서 더 세련되고 멋지다는 법은 없지만 아줌마들에게 있어 파마문화란 그런 것들을 제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줌마들에게는 그 시간이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며 스스럼없이 돈을 내고 여자로서 느꼈던 행복을 되찾는, 다른 사람들과 옹기종기 앉아서 넌지시 대화 나누는 장소를 찾는 용기도 발휘하는, 파마 이상의 것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들여다보고 찾으려 해도 그 밀도 있는 의미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앞머리를 자연스럽게 해주는 미용실은 아줌마들에게는 인기만점이다. 비록 파마가 조금은 덜 나왔어도 용서가 될 것 같다. 우리 엄마의 경우에는 더 그럴 것이다. 내가 ‘그거 일회용 파마 아니야?’ 라고 해도 기분이 좋으면 그만이지. 다음 날이 되면 또 다시 베개에 눌려 엊그제와 같이 되어도 파마약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지기만 하면 그걸로 안심하는, 동심을 가진 아줌마.

 “조금만 다듬을까?”

 저녁이면 엄마는 라면면발같이 보글거리는 머리카락을 하고선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즐거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돈이 아깝다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반찬거리나 살 걸 하고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그 생기 있는 굴곡이 삶에 뒤처져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동네 아줌마에게, 추운 날씨 값싼 미용실을 향해 가는 엄마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오래 가지 않으면 뭐 어때’ 싶다.

 파마하러 가는 아줌마의 뒷모습은 경쾌하다. 종종 걸음에 도착한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아 언제나 여자이지만 또 다시 여자이기를 소망하는 아줌마의 머리카락은 소녀의 재잘거리는 웃음처럼, 여전히 생기발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