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받은 청첩장
- 작성일 2011-06-27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543
청첩장(請牒狀)은 결혼과 같은 좋은 일에 남을 초대하는 글이다. 흔히 결혼식에는 청첩장을 돌리고, 그 밖의 좋은 일에는 초대장(招待狀)을 돌린다. 청첩장은 보내는 사람도 기쁨으로 띄워야하고, 받는 사람도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청첩장의 의미가 점점 바래지고 있다고나 할까? 청첩장을 받으면 또 고지서를 한 장 받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이들도 있다. 보내는 이는 초대자가 많을수록 좋다며 청첩장을 마구 돌린다. 이것은 허례허식이 뿌리 내려진 우리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몇 십 년 전 들은 이야기다. 미국은 자녀결혼식 등 경사가 있을 때는 초대장을 보내는데 꼭 초청할 친척이나 친지에게 보낸다고 한다. 그것도 청첩장 아래 초대자 참석여부 란에 표시하여 반송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자 수에 맞게 음식을 준비하여 축하잔치를 벌인다. 물론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과연 선진국답다고 퍽 부러워하곤 했었다.
저녁나절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정석곤 교장이지? 나 K여, K여, K, 진안 K여.”
몇 주 전에 두 번이나 온 청첩장 생각이 번쩍 났다. 나는 고등학교 동기인 K인 줄 알고,
“응 응 응, 그래?”
하며 얼버무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정석곤이지? 주소가 덕진동 몇 번지의 몇이지? 청첩장 받았지?”
“응”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한 K는 고등학교 동기인 것 같은데 졸업하고 한두 번 만난 기억이 났다. ‘진안’ K라고 해서 진안에서 근무한 어느 교장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진안에 있는 우리 고등학교나 대학 동기 중에서 K라고 아느냐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궁금증은 더해 갔다.
바로 B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님이 있어서 조금 뒤에 한다고 끊었다. 퇴근할 무렵 B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K선생님한테서 전화를 받았다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K 알지? 진안에서 근무했고 만능 재주꾼이고 자동차도 잘 수리한 선생님, 대학교 1년 선배 있잖아?”
이제야 두 번이나 청첩장을 보낸 분이 K선생임을 확실히 알았다.
몇 년 전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한 언짢은 일이 떠올랐다. 대학교 동기인 한 교장으로부터 자녀 결혼식 청첩장을 보냈는데 못 받았느냐는 책망으로 낯 뜨거운 일을 당했었다. 그때 집에 와서 샅샅이 뒤져서 청첩장을 찾았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축의금을 계좌이체로 전달했다. 자기는 내 경사에 두 번이나 갔는데 너는 왜 안 왔냐며 화낸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K선생님은 같은 학교에서 근무는 안 했지만 처음 진안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냈다. 내가 진안을 떠나온 뒤에 그 선생님도 진안을 떠나 전주에서 퇴임했다고 했다. 그 뒤로 전주 시내에서 어쩌다 한 번씩 만난 적이 있었다. 둘째 결혼식 때 K선생님께 청첩장을 보내 결혼식장에 다녀가기도 했다. 그래도 선생님의 전화는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나도 큰아들과 둘째아들 결혼식 청첩장을 보냈을 때 열에 일곱 여덟 정도 축하를 받은 것 같다. 내가 두세 번 애경사에 참석했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때는 아마 주거지를 옮겨서 그러려니 했지만 아주 서운했었다. 아마 K선생님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고 맞장구를 쳐주어야겠다.
성경에는 잔치를 베풀 때 아예 대접을 못 받을 이웃을 불러서 식사를 대접하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나부터 그렇지 않다. 같은 교회당에서 신앙생활을 한 교우라도 애경사를 품앗이로 생각한다. 먼저 내 애경사에 왔느냐? 앞으로도 내 애경사에 올 수 있느냐 내 뇌리에서는 계산을 한다. 그런데 교회 밖 생활은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낯 뜨거운 일이지만 이번 실수도 약삭빠른 잇속 챙기기에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미풍양속은 친척과 친지나 이웃에 경사가 나면 집에 있는 물품을 나누고 도와주며 즐겼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친척들은 신부의 비단 옷감을 주고 양장을 맞춰 주며 기쁨을 나누었다. 강산이 몇 번 변한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경사 참여도 많이 변하고 있다. 축의금으로서 축하를 해준다. 못 찾아갈 때는 타인을 통해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 축의금을 온라인으로 계좌이체를 하기도 한다. 그것도 전화로라도 축하를 하면 괜찮은데 그저 계좌이체로 끝내고 만다.
나는 K선생님께 청첩장을 두 번이나 받고도 결혼식을 축하해 주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 늦게라도 사연을 이야기하고 축의금을 전달해야 할까. 전주에서 같이 사니까 이담에 만나서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1.6.14.)
댓글신고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본문보기설정
배경 컬러
글꼴선택
글자 크기
줄간격
글을 보는 형태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