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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풍등

  • 작성일 2011-12-19
  • 조회수 448

 
배풍등
                박재명
 
  가을의 향연은 붉음의 향연이기도 하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대강 노랗게 변하다가 붉음으로 대미를 장식하여 그들의 한 해 여정을 마감한다. 생명을 다하기 직전은 노을빛처럼 정열적이다. 그 붉음의 취하다보면 어느새 잎사귀는 모두 땅으로 내려앉고, 긴 겨울의 여정을 시작한다. 12월의 초, 도심속 공원은 벌써 겨울의 고독이 시작되었다. 옆지기 나무끼리 부대끼던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앙상한 나무들이 외롭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듯 의지하지 않고 제각각의 고독한 사연을 홀로 삭이는가 싶다. 그래서 겨울 공원은 찾는 이들의 마음을 공허롭게 만든다.
 
  겨울비 내리던 날, 공원 한 귀퉁이에서 뜻하지 않게 붉은 열매의 배풍등을 만났다. 올 여름동안 이곳에서 내내 자랐을 텐데 공원의 푸르름에 동화되어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었다. 그 여름 동안 주목나무에 의지하여 키를 키웠나 보았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잎사귀를 떨구었는데, 배풍등은 줄기도 잎도 아직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붉고 영롱한 열매가 나도 가을 단풍이라고 말하고 있다.  붉음이 없었다면 아마 아직 그의 존재를 아직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리라.
 
  배풍등이란 이름을 중얼거릴 때 마다 알 수 없는 정감으로 다가왔는데, 오늘 열매를 직접 대면하고보니 다정다감이 더욱 깊어진다. 처음 만난 것은 수해 전, 한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등산길에서 꽃으로 만났었다. 꽃 피기 전의 꽃망울은 하얀 계란처럼 부풀어 올린 모습이 앙증스럽다. 그러나 꽃을 활짝 피우면 꽃잎을 모두 뒷쪽으로 제쳐진다. 암술의 보호를 외면한 암술만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가는 바람에도 꺽어질 듯 위태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모성애를 자극한다. 그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꽃잎이 진 자리에는 초록색의 열매를 송이송이 맺는다. 이 때부터는 한여름의 녹음綠陰에 묻혀 쉬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잠시 기억에서 잠시 사라진다.
 
  오늘 배풍등의 화려한 변신을 만났다. 낙엽이 진 쓸쓸한 공원의 모퉁이에서 빗물을 머금은 채 영롱한 붉은 열매로 빛났다. 투박하고 딱딱한 다른 열매들의 느낌과 달리 말랑말랑한 윤기가 넘쳐 흐른다. 겨울이 문턱인데도 아직까지 탱탱한 촉감을 느낄 수 있어 묘한 감정을 전해 준다. 한 여름 동안 푸르등등했던 열매가 언제 이토록 멋진 보석으로 변신하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눈으로 바라보는 배풍등의 열매는 색깔만 다를 뿐 진주처럼 은은한 깊이가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껍질 속으로 하얀 씨앗까지 들여다보이니 여리디 여린 여성을 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의 귓불에 달아주고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 나만의 보석이 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붉음에 취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보다 배풍등의 대한 의미를 찾아 나섰다.
 
  누가 보아도 풀인 것 같은데 반관목(半灌木)이라고 하니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반관목은 무엇일까?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라는 뜻일까? 두루두루 알아보아도 생소한 낱말을 이해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어떻게 배풍등이란 이름을 어떻게 얻었을까?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키니 혹시 꽃말에 '배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생긴다. 그러나 한자로 풀어 보니 ‘밀칠 배(排)’, ‘바람 풍(風)’, ‘등나무 등(藤)’이라고 한다. 이 세자를 어떻게 조합하면 제대로 된 해석이 될까. 알아 본 바로, 열매는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풍을 물리치는(排風) 약재로 사용되고, 등나무처럼 덩쿨로 자란다 하여 배풍등(排風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가을의 열매인 산수유, 찔레, 구기자도 제각각 가을의 붉음을 자랑하지만 유독 배풍등에 특별한 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른 별명으로 만추(晩秋)니, 설홍(雪紅)이라고도 한다니, 낙엽지고 갈변한 늦가을의 풀숲에서 혹은 눈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내는 붉은 보석의 영롱함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굳이 열매를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자체로 묘한 끌림이 있다.
 
붉은 것이 모자라
이슬까지 품고
영롱한 보석이 되었다.
 
낙엽 진 허허로운 곳
홀로 붉은 빛 탐스러워
겨울이 되어도 가을은 서럽다.
 
  배풍등의 붉음의 끝은 어디일까? 이후의 과정을 자세히 본 적이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새삼 궁금증이 동한다. 한 겨울 설홍의 아름다움도 영원함은 아닐 것이 자명하니, 새 봄까지 삶의 여정을 위해 변신하는 모습이 보고 궁금하다. 붉음으로 유혹하여 숲속 생물에게 잠시 양식이 되었다가 또 한 해를 머물 곳을 찾아가겠지. 깊은 산속이 될까 아니면 내 이웃 담장 아래일까?  이 겨울을 인내하는 과정부터 새 생명이 움트는 봄까지 배풍등의 겨울 여정을 찾아 보고 싶다. 올 겨울에는 공원을 지나칠 때마다 들러서 배풍등의 안부를 살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