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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너무 많다

  • 작성일 2012-01-24
  • 조회수 1,003

악인은 너무 많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보게 된 이 영화는 2011년 말에 개봉한 영화였다. 비교적 최근 영화임에도 TV 등에서 광고 한 번 본적이 없었다. 영화의 배경은 인천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검색해 보면 인천의 전경이 펼쳐지는 영화라는 소개가 나온다. 배경이 인천인 게 뭐가 중요하겠나 싶겠지만 사실 인천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아마 최신 화만 보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왜 등장하는지 모를 것이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인간이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을 상징하는 장소일 수 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삼을 까닭은 없었다.
영화에 대한 평들을 보면 전문가부터 일반인까지 ‘재미없다.’는 동일한 비평을 내놓았다. 한국적 느와르를 내세웠지만 뒤로 갈수록 맥이 빠진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 마디로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좋고 싫고는 개인의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영화평론가들조차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을 언급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2007년, 이안 감독의 ‘색계’란 영화가 개봉한 후 여배우의 노출신만 화제가 되었다. 그 영화의 스토리가 거장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에서 비롯됐음에도 그런 면을 언급하는 글은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악인은 너무 많다’가 개봉한 후 화제가 된 것은 여배우의 수영복 장면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감독의 순수 창작 스토리라기보다는 ‘차이나타운’의 내용 이곳저곳을 한국(혹은 인천)의 상황에 맞게 비틀어 맞춘 작품이다. 리메이크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이 독창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차이나타운’의 큰 줄기를 제외하고 많은 부분, 심지어 원작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마저 거꾸로 만들어버렸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을 검색해 보면 사이버 필드란 사람이 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그 영화가 극찬을 받았다고 나온다. 직접 읽어본 적이 없는 그 책의 저자는 ‘차이나타운’을 6번이나 봤으며 시나리오가 매우 탄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의 평 역시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내용이 별로라느니 시시하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역시 취향의 문제일 수 있지만 필자 역시 사이버 필드란 사람과 같은 정서를 지녀서 그런지 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영화평을 쓰려고 했을 때는 거의 줄거리 소개에 그치는 수준이라 그만 둔 적이 있다. 아마 영화평을 썼다면 ‘차이나타운’에 대해 사회의 암묵적 욕망이 개인의 욕정을 통해 드러나는 영화라고 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를 지닌 영화는 자칫 교과서적 윤리 의식만을 드러내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자신의 영화 곳곳에 여러 수수께끼와 그것을 푸는 열쇠를 감춰두고 관객에게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에 드러난 개인의 욕정으로써 근친상간이란 죄를 폭로한다.
‘악인은 너무 많다’를 찍은 김회근 감독은 처음부터 ‘차이나타운’에서 비롯됐지만 가급적 다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차이나타운’의 가장 충격적이라 할 만한 부분인 ‘근친상간’의 내용을 아동 성폭행으로 전환하고 그 대신 아버지가 결국 딸을 다시 정복하게 되는 ‘차이나타운’과 반대로 딸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설정으로 바꿔버린다. 딸이 친부와 함께 그의 동업자라고 할 수 있는 시의원을 살해한 동기는 자신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성폭행한 탓이었다. 이 영화가 ‘도가니’와 비교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지만, ‘악인은 너무 많다’는 애초에 아동 성폭행을 다룬 영화가 아니었고, 그래서 결말 부분에 실제로 금괴를 보며 보육원 원장이 야릇한 미소를 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려던 것인 듯한데, 결국 아버지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처벌과 보육원 원장 자신의 물욕,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모두 친부살해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런 설정은 이미 식상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래서 다소 도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실패했다고 즉, 반전을 보여주려 했지만 그 효과가 미약했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 밖에도 ‘차이나타운’의 설정을 뒤집거나 비튼 상황이 있다. 원작에서는 은밀하고 부정한 사업을 캐내려던 탐정(잭 니콜슨)이 괴한들(그 중 한 괴한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에 의해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악인은 너무 많다.’에서는 반대로 주인공 혼자서 잭나이프로 여러 명의 악당을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뒤바뀐다. 그 밖에도 ‘차이나타운’과 비교해 보면서 이 영화를 본다면 감독이 어느 부분에 신경을 쓰고 어느 부분을 놓쳤거나 허술하게 설정했는지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 추격자와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아마 이 영화에 대해 끝까지 그런 기대를 하고 본 사람이라면 혹평을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마치 ‘근친상간’이 빠진 올드보이를 보는 것 같다고 불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영화가 허술하다거나 느슨해져 버린다는 견해도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어 보인다. 가령, 보육원 원장이 했던 거짓말이 단순히 그 보육원에서 일하는 직원에 의해 들통 난다든지(뿐만 아니라 그 여직원은 원장이 병원에서 퇴원할 때 다가가 ‘괜찮으세요 원장님?’이라고 묻는다. 꾀병인 것을 알면서 그랬단 말인가?)하는 설정은 좀 맥 빠지는 면이 있다. 반면에 ‘차이나타운’을 본 사람이라면 혹시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자아이가 보육원 원장과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약간의 암시만 있을 뿐 모호하게 처리해 놓았다. 마치 마지막에 금괴가 등장함으로써 보육원 원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처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모호한 설정이 관객이 명확히 인식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플롯의 전개 속도가 빠른 만큼 영화를 처음보고 알아채기가 좀 어려운 편이다. 그리고 맨 처음에 말한 것처럼 겉과 속이 다른 상징적 공간으로써 차이나타운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런 특징은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전달될 뿐 화면을 통해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원작 ‘차이나타운’의 경우에도 왜 제목이 차이나타운인지 알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작정 그렇게 설정을 해 놓고 관객에게 믿어라 하는 자세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도 실수였던 것 같다.
한 명의 거장이 지나간 후 새로운 스토리의 영화는 보기 힘든데 그런 점에서 이런 리메이크도 어떤 새로운 시도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띠긴 하지만 치밀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어쩌면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몇 가지 내용을 다듬고 주요 맥락적 상황을 좀 더 분명히 제시했다면 원작을 뛰어넘지는 못하더라도 수작은 나올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를 지나치게 비난만 하는 것도 좀 야박하다는 생각은 든다. 단지 예산이 부족해(실제로 저예산 영화라고 한다.) 감독이 의도한 장면을 어설픈 장면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아직 못 봤거나 본 사람이라도 ‘차이나타운’을 꼭 함께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