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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rots

  • 작성일 2011-05-15
  • 조회수 169

[단편] yrots

* * *

거북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기다렸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입을 열었다.

"소녀, 당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먹어 드리겠습니다."

소녀가, 소녀의 모습을 한 괴물이 기대에 찬 미소를 지었다. 곧 그 미소를 가리듯 깃털부채를 펼쳐 입을 가린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말했다.

"미안해요."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의치 않고 나는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제가 할 얘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어요. 무릇 이야기란 거짓말이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괴물, 이로투스(yrots)에게.

* * *

이로투스는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 내려왔다. 전체적으로는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어깨에는 까마귀의 날개를 달고 있으며 무릎 저변은 뻣뻣한 털이 휘감고 있는 짐승의 발이었다. 흰색 천으로 온몸을 감고 있었는데, 옷이라기보단 떨어져 나온 피부 껍질 같았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건 들고 있는 깃털부채 정도다. 하나, 오히려 그런 점이 어색함을 조장하는 것 같다.
그런 괴악스러운 모습을 한 소녀는 마을 하나를 거점으로 삼게 된다.

"먹을 것을 주십시오."

사람들은 그 정상을 벗어난 모습에 두려워하며 음식을 마련한다. 돼지나 소는 물론이고 과일이나 생선 할 것 없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놓았다. 얼마나 많이 모인 건지 장정 여러 명이 들어야 할 정도의 양이었다. 사람들은 안심했다. 이 정도나 모았으니 그 괴물도 얌전히 있을 거야. 몇 명의 사내가 음식이 든 보따리를 나눠 들고 소녀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걱정되었으나 직접 확인하러 소녀의 집으로 갈 용기는 없었다.

"배고픕니다. 먹을 것을 주십시오."

소녀가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와 그렇게 말했을 때, 누군가가 소녀를 향해 물었다.
음식을 나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소녀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다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아, 그 유일하게 살아 있던 '고기'들 말입니까. 네, 그게 가장 맛있더군요. 앞으로는 그것만 줬으면 좋겠습니다."

소녀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소녀가 사라지자, 울부짖는 유족들과 분개하는 이들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저 괴물을 우리의 손으로 쫓아내자.
마을에 치안대가 결성되었고 그들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손에 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단결력이 마을 내에 생겨났다.
한밤중, 소녀의 집을 습격.
이로투스는 그곳에 있었다. 흰 천으로 감은 소녀의 몸, 까마귀의 날개, 짐승의 발, 깃털부채. 그 괴물은 자신을 퇴치하기 위해 찾아온 13명의 사람들을 기쁜 듯이 바라보았다.
짐승의 발이 움직였다. 13명이 10명이 되었다.
까마귀의 날개가 사락, 하고 흔들렸다. 10명이 7명이 되었다.
사람들이 포효하며 달려든다. 7명이 3명이 되었다.
비명. 3명은 마침내 1명이 되었다.
남은 한 명은 소년이었다. 한 명뿐인 가족을, 아버지를 괴물에게 잃었기에, 이곳으로 온 소년. 복수 같은 게 아니다. 그저 있을 곳이 없었다. 소년 홀로 살아가기엔 그의 삶 앞에 뻗어 있는 길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자포자기? 자포자기.
자포자기했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포자기했기에, 몸에 두른 새하얀 천에 핏물 하나 묻히지 않고 사람의 머리를 오독오독 씹고 있는 소녀의 앞에서 신세 한탄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녀는 소년의 신세 한탄을 다 듣고 나서 말했다, 깃털부채를 펼쳐 자신의 입을 가리면서.

"감사합니다. 최고로 맛있었습니다."

뚜벅뚜벅, 소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겨진 소년은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뿐이다. 어둠 속에서도 소녀를 감싼 흰 천은 똑똑히 보였다. 팔랑팔랑.

* * *

사람들은 처음엔 소년의 말을 믿지 못했다. 오히려 홀로 귀환한 그를 배신자 취급마저 했다. 며칠 후 소녀가 다시 와서 먹을 것을 바랐다.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누군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렇군요. '이야기'가 좋겠네요."

이렇게 해서 아무도 희생당하지 않아도 되는 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로투스에게도, 마을 사람에게도 손해 볼 것 없는 관계가 이루어졌다. 여담이지만, 그 소년은 이런 중대한 발견을 했기 때문에 마을 내에서 각종 우대를 받게 되었다.
어쨌거나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 * *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평화 같은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일정 기간마다 소녀의 집에 방문하여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상대는 삽시간에 자신을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인데.
게다가 소녀는 흥미로운 이야기일수록 '맛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즉,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다면 아무리 흥미로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지루해질 테고,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소녀는 '맛없다'고 느낄 거란 얘기다. 그리고 결국엔, 차라리 사람 '고기'가 맛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맛있는 이야기를,
살기 위해서 만들어내야만 했다.
처음에는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그 책에서는 더이상 사용할 만한 이야기를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그 후로는 각자 아이디어를 모아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계는 금세 드러났다. 애초에 그런 창작 활동과는 무관하게 살아왔고, 기껏 만든 이야기는 비슷비슷했다. 살아온 환경이 비슷한 이들에게는 당연한 귀결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마을 밖으로 눈을 돌렸다. 떠돌이 이야기꾼을 섭렵하거나, 다른 마을에서 이야기 만드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을 고용했다. 물론 그들도 일정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계는 존재했다. 이야기꾼을 정기적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맛있는 이야기가 뜸해지네요."

마을 사람들은 어렴풋이 예상했던 일이 현실에 치달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오히려 소녀의 감성을 무감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 최고급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버리면, 질려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다른 음식에 눈독 들이기 마련이다.
이로투스는 앞에서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을 덥석 먹어버렸다. 썩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 * *

그 소문은 청년에게 닿았다.

'어느 마을에 이야기를 먹는 괴물이 있는데,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이야기를 한 사람을 잡아먹는다.'

청년은 이로투스를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도 그럴게 이로투스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동생이 죽은 뒤에 생긴 소문이기에 더욱 그랬다. 청년은 스승에게 자문했다. 스승은 박학다식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스승은 거침없이 대답해 주었다.

"광신적인 믿음은 현상을 낳기도 해. 종교에서 말하는 기적이 이런 종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물건을 매개로 한 게 가장 흔하다고 했다.
청년은 스승이 말한 대로 동생의 물건 중에 사라진 게 없는지 뒤져보았다.

"……아. 그게 없어."

이로투스의 그림을 그려놓은 종이가 사라졌다.

* * *

청년은 그 길로 이로투스를 찾아 나섰다. 찾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 마을에서 온 듯한 사람이 애타게 이야기꾼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울며불며 마을로 와달라고 부탁하는 마을 사람을 보며 청년은 소문이 사실임을 재차 확인했다. 마을로 향하면서 청년은 이로투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마을 사람은 금방이라도 청년이 떠나겠다고 말할 것 같아 불안불안한 얼굴이었다.
마을은 거의 초토화된 듯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동자에 빛을 잃고 있었으며, 대신 그 자리는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이야기꾼을 보고서도 '어차피 언젠가 죽을 텐데 뭘……' 하는 식이다. 청년은 미안함을 느꼈다. 어떻게 봐도 자신 탓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좌절하고 있는데 자신을 안내한 마을 사람은 왜 이리 필사적인지 궁금해졌다.

"이야기라는 먹이를 발견한 게 바로 저거든요. 일종의 책임이죠."

그리고, 소녀의 집에 방문했다.

이야기로만 접해왔던, 이로투스의 모습을 본 청년은 닥쳐온 현실감에 숨을 삼켰다.
우선, 등 뒤의 날개. 생각보다 크다. 전해들었을 때는 한 뼘 정도라 했었는데 서너 뼘은 되어 보였다. 성장, 하는 걸까. 소녀의 무척 거대한 짐승 발은 상상한 것과 비슷했다. 소녀의 몸에 비해 매우 육중해 보여서 안정감이 있다. 몸에 두른 백색 천. 하얗다고 하기보단 엷은 빛을 내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리고, 소녀의 얼굴.
청년은 그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았다. 그 얼굴은 청년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닮았다. 무서울 정도로.

솔직히 말해서 거북했다.
청년은 생각했다.
아아,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기다렸습니다."

청년의 앞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입을 열었다.

"소녀, 당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먹어 드리겠습니다."

빙그레, 미소를 띠며. 청년은 그 미소를 알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좀 더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것을 허락할 생각이 없는지 깃털부채를 펼쳐 입을 가렸다.
이제, 모든 것을 말해야 할 때다.
청년은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제부터 제가 할 얘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어요."

이 이야기는 틀림없는 진실이니까.
청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이야기의 괴물, 이로투스가 세계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을 잡아먹고, 이야기를 먹으며, 마을 하나를 공포의 수렁에 빠뜨린 잔혹한 괴물의 이야기였다. 또한 그것은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해준 소년이 청년에게 해준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청년이 소녀의 집에 도착하는 부분에 이르렀고, 이제 청년은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이로투스, 당신을 만든 건 바로 접니다.

* * *

"이로투스, 당신을 만든 건 바로 접니다."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소 흥미는 있는 듯 가만히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소녀의 얼굴을 본 뒤, 한숨을 쉬었다.
이다음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걸까. 괴물보다도 잔혹한 이 진실의 이야기는.
각오는 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가까스로 벌린 뒤,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의 속편을 들려주었다.

"제게는 병약한 여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 * *

청년에게는 병약한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부모는 없다. 어머니, 아버지라고 누군가를 향해 불러본 적도 없다. 단지 아버지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있었다. 그의 스승. 어렸을 적 자신과 동생을 거둬주었고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을 때까지 키워주었다.
다만 그것은 청년에게 국한된 이야기.
여동생은 병을 앓고 있어서 대부분 방 안에서 지내야만 했다. 의원을 불러 진료를 했다. 희귀병 중의 하나라고 한다. 정확한 증상은 모르지만,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병. 다행히도 치료할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돈이 많이 들어갔다. 천문학적인 액수.

"정말 미안하다."

청년의 스승은 정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왔다. 청년도, 스승에게 그럴 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지금 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왜 죄책감을 느끼는 건데.
청년은 일하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돈을 모으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동생의 증세가 악화될 때마다 자신의 몸을 더욱 채찍질했다.
그러다 하루는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심심해. 어디 가지 말고 나랑 놀아."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일을 많이 할수록 동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동생의 자는 얼굴밖에 못 볼 정도로. 이른 새벽, 늦은 밤, 이른 새벽, 늦은 밤. 전부 동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동생에게 거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왔다. 여동생은 이야기를 해주면 즐거워했고 청년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주를 구하는 왕자의 이야기, 사람을 골리는 도깨비 이야기, 하늘나라의 천사 이야기, 넓은 바다를 여행하는 모험가 이야기 등등…….

"싫어. 그런 거 말고, 나랑 놀아줘."

기침을 뱉으며 여동생이 말했다. 이야기 듣는 것도 이젠 질려버린 것이다.
청년은 그래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잔꾀. 돌이킬 수 없는 일.

"너랑 놀아 줄 수 없어. 왜냐하면, 나, 사실은 영웅이거든."

청년은 동생에게 이야기를, 거짓말을 한다.
어떤 괴물이 있는데, 그 괴물은 이야기를 즐겨 먹는다. 만일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이야기한 사람을 먹어버린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들려주면 사람들을 먹으러 돌아다닌다. 할 만한 이야기를 전부 소진한 사람들은 유능한 이야기꾼을 원했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다.
동생은 청년이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믿어버렸다.

"와! 괴물 이름은? 어떻게 생겼어?"

이름은 즉석에서 이로투스(yrots)라고 지었다. 어차피 허상일 뿐인 이야기(story)라는, 자조적인 의미를 담아서.
생김새도 대충대충, 자신이 지금껏 동생에게 해줬던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섞어서 만들었다. 다행히도, 동생은 눈치채지 못했다.

"얼굴은 어린 여자아이라고? 나보다 예쁠까……"

네가 더 예뻐, 그렇게 말하며 동생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럼 그려줘. 이로투스를."

여동생은 그의 오빠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과 매일 맞대야 하는 오빠를.
거짓말뿐인 이야기. 언젠간, 이야기의 하나라고 밝혀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의 병이 나은 후, 함께 놀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동생은, 청년이 열심히 일하던 중 죽어버렸으니까.
청년은 이야기의 끝을 동생에게 들려줄 수 없었다. 이로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줄 수 없었다.

그리고 청년은 깨닫지 못했다. 동생이 죽고 한 참 뒤에서야 깨닫게 된다.
여동생은 이로투스의 그림을 꼭 껴안으며, 몇 번이고 자신이 이로투스가 되는 상상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빠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괴물을 부러워할 것이란 사실을. 끝끝내,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이 이로투스임을 굳게 믿어버린다는 사실을.
그 믿음이 현실이 되어 버릴 정도로 절박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년이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소녀의 앞에서 그 얼굴을 보았을 때다.
이제 청년은 말할 것이다.
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제 청년은 말할 것이다.
미안해, 라고.

* * *

"미안해."

나는 내 동생과 똑같은 얼굴을 한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뒤 기껏 그녀의 입을 열고 나온 말은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이로투스. 이야기의 괴물이며, 이야기 자체이며, 이야기가 되려는 자."

내가 동생에게 해주던 이야기 속, 이로투스가 처음 등장하며 했던 말이다.
그녀는 깃털부채를 쥐었다. 하지만 이미 그건 깃털부채 같은 게 아니었다. 투박한, 종이로 접은 부채였다. 이로투스는 내게 눈을 돌렸다. 나는 펴 보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부채를, 종이로 된 부채를 펴보였다.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어설프게 그려넣은 이로투스의 상상화,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럼, 이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이었나요.
이로투스가 내게 묻는다.

이로투스는 내게 죽는다.
나는 이로투스에게 말해주었다.

후 후하 후하하 후하하핫 후하하하핫 후하하하핫 후하하하하핫!

이로투스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웃어대는지 눈물이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누가 보면 우는 줄로 알 것이다.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말이다.

내 눈엔 그것이 우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다가가 내가 만든 거짓말을, 이로투스를, 내 동생의 소원을, 내 동생을 껴안았다.
그리고 단지 미안하다는 말을 되낼 뿐이다. 얼마나 큰 외로움이, 또 얼마나 큰 괴로움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는 것이 두려워서 계속 도망만 친 거짓말쟁이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동생에게 했던 거짓말은 그 정도의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로투스가 흘리는 눈물은 나 때문이니까.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래, 그렇단 말입니까."

내 품에 안긴 채로 이로투스는 말한다.

"어쩐지.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게 기억나지 않더군요."

기쁜 듯이, 슬픈 듯이.

"제가 이야기라면, 당연히 그런 것이겠죠.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오고, 어디에서도 오지 않으니."

그녀는 내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이야기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녀는 가라앉고 있었다. 발부터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이다.
나는 부서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발이 부서지고, 소녀의 몸이 부서지고, 까마귀의 날개도 부서진다. 마침내 머리만 남게 되자, 그녀는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다음번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도 제게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오빠, 하고 나지막이 부르며.
더는 만날 수 없을 텐데도, 그걸 알 텐데도, 천연덕스럽게.
뭐야, 너도 거짓말쟁이였구나.
너도, 나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에 나도, 천연덕스럽게.

"가장 맛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둘게."

그 말을 들은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늘 보고 싶었던, 그런 얼굴이었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허락할 생각이 없나 보다. 폭삭, 하고 무너져 내렸다.
사라진 이로투스 옆에 놓인 종이, 그 종이 속의 그녀도 잔잔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 * *

-오빠. 왜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하는 걸까?
무슨 소리야.
-나는 오빠의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데 결국 끝나버리잖아?
글쎄. 결말이 존재하니까 이야기인 게 아닐까?
-오빠. 끝나지 않는 이야기도 있어. 그러니까 다음번에 이로투스를 만나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 얘기해 줘.

우리 남매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