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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음악을 써내려가는 소설가

  • 작성일 2018-04-01
  • 조회수 2,798

기획의 말

2018년 커버스토리는 <문학과 일>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음악을 써내려가는 소설가
소설가의 일, 음악가의 일

서희원

※ 위 이미지는 "The Animals - House of the Rising Sun(1964)" 라이브 영상을 인용하였음.

우리 시대에 사라져 가는 직업 중 하나는 DJ(Disk Jockey)이다. 아직도 라디오는 24시간 방송되고 있고, 클럽은 “현대 음율 속에서/순간 속에 보이는/너의 새로운 춤에/마음을 뺏긴”1) 청년들로 불야성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음악적 지식을 통해 다양한 음반에서 좋은 노래를 선별하고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청취자들의 취향을 이끌던 그런 음악 전문가로서의 DJ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방송에 등장하는 라디오 DJ는 선곡보다는 대화와 진행을 위주로 하는 MC에 가깝고, 클럽의 DJ는 여러 가지 노래를 조합해 새로운 브리콜라주적 창작 활동을 하는 뮤지션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한때 방송, 나이트클럽, 음악 전문 카페, 심지어 동네 떡볶이집에 설치된 DJ 부스 안에서 대한민국 청춘들의 음악적 취향을 선도하던 수많은 전문가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고 있는 이유에는 AI의 등장도 한몫하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에 몇 곡을 검색하면 AI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취향과 비슷한 결과물을 제공해 주고 있다. 편리하지만 기계가 떠주는 밥을 먹고 있는 것 같은, 어색한 권유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1) 김완선, <리듬 속의 그 춤을(신중현 작사/작곡)>, 『김완선 2집』, 지구레코드, 1987. 너무 예전의 노래인가? 어쩔 수 없지. 그게 내가 보낸 시간이 내게 남겨 놓은 것들이니.

DJ라는 직업은 사라지고 있지만, 음악을 듣고, 좋은 음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이를 공유하며 영혼의 깊은 유대를 느끼는 일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겐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야말로 완벽한 시간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모든 음악은 두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다른 제목이 알려주는 바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The Sir Douglas Quintet이 1968년에 발매한 음반 『Sir Douglas Quintet + 2 = Honkey Blues』에 수록된 A면 세 번째 곡 <Song of Everything>2)에 함께 병기된 ‘4:04’는 이 노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 4분 4초를 이 음악가들이 여러 번의 중복 녹음을 통해 미적으로 압축해 낸 그들의 시간과 교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각주에 있는 링크를 클릭해 The Sir Douglas Quintet의 노래를 재생시킨다면 당신의 방 안은 1968년 이 음악가들이 보낸 ‘한때’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병 속에 담겨 시간의 바다를 떠도는 편지의 봉인이 풀릴 때처럼, 오래된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가 열리고 그 속에서 숙성된 시간의 향기가 방 안에 퍼지는 것처럼, 음악은 흐른다. 그리고 내 인생의 4분 4초가 사라진다. 아니 오래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나 자아의 내면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격동을 만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발된다.

2) https://www.youtube.com/watch?v=rJvZ6_kBg64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내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효율과 업무로 계산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무용한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시간은 ‘금’이지만 음악은 결코 금이 될 수 없다. 음악이 끝나고 남는 것은 재화가 아니라 환금할 수 없는 감정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서 C. 클라크의 SF 소설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지적인 외계인 오버로드(Overlord)들이 인간들의 특징 가운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로 음악을 지목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버로드는 인간의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어 지구로 내려와 연주회에 참석한다. 그들은 인간의 격식에 맞춰 음악을 듣고는, 작곡가의 “위대한 독창성”에 대한 찬사를 바치고 그 자리를 떠나지만 결코 이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오버로드의 합리적 문화에는 음악이라는 낭비가 자리 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외계인은 이해하지 못했던 이러한 불합리, 시간의 완벽한 치환과 상실이야말로 지구인이 음악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이 음악애호가들의 명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직업군 중 하나는 소설가이다. 흥미롭게도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들려주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에게 소설(문학)과 음악은 분리할 수 없는 삶의 지표이다. 그들은 종종 음악의 리듬으로 소설을 쓴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 수 있다. 하루키는 재즈, 클래식, 스탠더드 팝송 등을 자신의 문장에 자주 삽입하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소설적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한국 소설가 중 이러한 기묘한 열정에 사로잡힌 작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단연 박성원이다. 박성원은 주로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음악의 느낌을 소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박성원 소설 중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은 그가 선곡한 음악이 선명하게 제시되고, 독자에게 읽혔을 때이다. 박성원은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다양한 국가의 작가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짧은 수필을 이렇게 시작한다. “한때 포크음악의 시대가 있었다. Neil Young과 Nick Garrie, Byrds와 Toni Vescoli가 있었다. 물론 내 시대는 아니다. 나는 그 세대로부터 한참 뒤에 태어났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을 떠올릴 뿐이다.”3) 지나가버린 ‘한때’에서 자신의 황금시대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음악은 유일한 시간의 가교이며, 분명 자신의 시간을 ‘한때’의 시간으로 치환해 주는 마법사의 주문 같을 것이다.

3) 박성원, 「한때 있었다」, http://siwf.klti.or.kr/bbs/board.php?bo_table=B_02&wr_id=9&page=2
박성원이 여기에서 소개하는 음악가들의 대표적인 노래를 한 곡씩 소개하면 이렇다.
Neil Young, <Down By The River>( https://www.youtube.com/watch?v=j6PsBm4VeJQ)
Nick Garrie, <Can I Stay With You>( https://www.youtube.com/watch?v=BQETdqOt7As)
Byrds, <Eight Miles High>( https://www.youtube.com/watch?v=J74ttSR8lEg)
Toni Vescoli, <There’s a Bird>( https://www.youtube.com/watch?v=eMTEKnCpP-M)

박성원의 첫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1996)에 수록된 중편 「해 뜨는 집」은 영국 밴드 애니멀스(The Animals)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4)을 메인 테마로 하고 있으며, 가사의 한 구절인 “뉴올리언스에는 해 뜨는 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한 채 있어요. 많은 불쌍한 소년들이 그곳에서 신세를 망쳤죠. 하나님, 나도 그중 하나란 걸 알고 있어요.(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s, they call it Rising Sun. And it's been the ruin of many a poor boy, and God, I know I'm one.)”를 가지고 서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수록된 「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까지 2」는 Zager&Evans의 <In the Year 2525>5)를 서사의 주된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하루』에 수록된 「하루」에서 해고를 통지받는 사내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Ray Materick의 <Savage Season>6)을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노래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사내는 그곳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는 자신의 아파트가 보이는 야산의 벤치에 앉아 내리는 눈을 맞으며 동사한다. 소설에 대한 일종의 메타소설인 『고백』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은 Wallace Collection의 <Daydream>7)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환상과 망상, 몽상과 기억이 뒤엉킨 채로 진행된다. 시간은 오직 음악의 흐름을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을 뿐 하나의 인물에서 출발한 시간과 사건은 때론 분열되어 여러 명의 시간과 서사로, 때론 하나로 통합되어 흘러간다. 제목 그대로 ‘백일몽’ 같은 서사가 진행된다.

4) https://www.youtube.com/watch?v=0sB3Fjw3Uvc
5) https://www.youtube.com/watch?v=yesyhQkYrQM
6) https://www.youtube.com/watch?v=GnCi9djas-4
7) https://www.youtube.com/watch?v=60ejKrj38j8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나 박성원이 공들여 작업하고 있는 이러한 일은 대단히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자는, 서사는, 결코 음악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사를 적는 것과 선율을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는 소설 속에서 음악을 듣는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음악에 대한 정보도 얻어갈 순 있지만 이러한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소설가의 일이 문자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그 세계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들로 가득한 침묵의 공간이다. 소설가가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히 덧없고 무용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활의 감각에 비춰볼 때, 현실의 논리를 감안할 때, 덧없고 무용한 것처럼 보이는 일, 가능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열정을 바치는 사람, 우리는 그것과 그들을 예술과 예술가라고 부르고 있다. 게다가 니체는 노래 부르는 인간을 예술품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노래하고 춤추며 인간은 스스로가 보다 높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표명하고, 걷는 것도 말하는 법도 잊어버린 채 춤추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려 한다. 그가 마법에 감염된 것이 그의 몸짓에 나타난다. 이제 짐승이 말을 하고 대지는 젖과 꿀을 흘리는 것처럼 인간으로부터도 초자연적인 것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자기를 신으로 느끼며, 그가 꿈속에서 신들이 산책하는 것을 본 것처럼 그도 스스로 감격하여 황홀하게 헤매 다닌다. 인간은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며, 그는 예술품이 되어버린 것이다.”8) 한 단어만 덧붙인다면 음악과 소설은,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고양하는 인간은 ‘시간의 예술품’이다.

8)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바그너의 경우/니체 대 바그너』, 김대경 옮김, 청하, 1982,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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