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파리 파크와 ‘산 자들’
- 작성일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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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리뷰(소설)]
남편과 사파리 파크와 '산 자들'
- 장강명의 「대기 발령」, 「음악의 가격(~2019)」, 「알바생 자르기」1)
이지은
1. '산 자들'과 '살게 하는 자'
그간 장강명의 단편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처해 있는 조건을 다루어 왔다. 지난 계절 발표한 「대기 발령」과 「음악의 가격(~2019)」 역시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대기업의 자회사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불안과 예술노동의 가격 하락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살게 내버려두거나 죽게 하는' 주권 권력에서 '죽게 내버려두거나 살게 하는' 생명권력(bio-power)으로 통치술이 변화했다는 푸코의 지적은 널리 회자되었다. 기본값이 죽음으로 세팅된 시대, '산 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살게 하는 자', 곧 통치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통치술은 우리에게 어떤 실체로서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성실', '자기 계발', '자기 경영'과 같이 주체가 적극 내면화한 '미덕'이라든가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자명한 사실로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 글은 장강명의 근작을 통해 익숙한 얼굴 속에 깃들어 있는 통치성의 허울을 포착해 보려고 한다.
2. '남편', 누구냐 넌?
「대기 발령」의 사측은 사외보 팀을 미디어 콘텐츠 전담 자회사로 보내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대기 발령을 내렸다. 사측은 '고용승계'와 '더 많은 퇴직금'을 내세우며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든 고용 조건이 나빠질 뿐이다. 어떻게든 버텨 보면 본사의 다른 보직이라도 줄까 기대를 해볼 법도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본사는 앞으로 줄줄이 외주화, 자회사화 할 예정이라 '버티면 된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섯 명은 하나 둘 회사를 그만둔다. 팀원들은 각자의 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배신극의 주인공들도 못 되었다. 그렇게 소설은 악역도 없이 '각자도생'이라는 덤덤한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애초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배가 부른 짓'이었을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 남편이 말했다. 회사가 자기네들 나가라고 몰아세운 건 알겠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변화가 두려운 것도 알겠고. 그런데 회사는 처음에 대안도 제시했고, 대기 발령이라는 게 욕하고 때리는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더 영세한 회사들에는 그런 프로세스도 없잖아.2)
1)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장강명의 단편소설 서지는 다음과 같다. 이하 작품명과 쪽수만 밝힌다.
「알바생 자르기」, 『세계의 문학』, 2015년 여름.
「대기 발령」, 『릿터』, 2019년 4-5월.
「음악의 가격(~2019)」, 『문학사상』, 2019년 4월.
2) 「대기 발령」, 162쪽.
그런가? 조연아는 회사 상황에 관해 남편에게 털어놓고는 했는데, 남편은 "요즘처럼 이직이 잦은 시대에"3) 자회사로 가기 싫은 팀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회사라고는 하지만 고용승계도 약속하고 급여도 1년간 보장했으니 이 정도면 회사는 대안을 마련해 준 것이라 해야 하나? 무슨 일을 하게 될지, 1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시대'니까? 게다가 대기 발령이 욕하고 때리는 것도 아니고, 영세 회사는 이런 프로세스도 없는데 굴욕감 견디는 게 대수일까? 그런데 굳이 편을 갈라 보자면 그는 조연아의 남편이자 직장인이므로 대기 발령자 측에 가까워야 하는데, 왜 철저히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알바생 자르기」를 잠깐 경유하자.
3) 「대기 발령」, 154쪽.
- 그 아가씨도 처음 자기네 회사에 면접 볼 때에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을걸? 성격이야 싹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최소한 근태는 나쁘지 않았을 거야. 그걸 자기가 망친 거지. 지각해도 아무 말 않고, 손님 접대를 안 해도 아무 말 않고, '불쌍한 애'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아무 지적도 안 했지?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된 거야.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 주고 질책을 해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4)
4) 「알바생 자르기」, 298쪽.
「알바생 자르기」에서도 은영이 회사 생활에 곤란을 겪을 때마다 남편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은영의 남편은 더 노골적이고 영악하게 '알바생 자르기'의 묘수를 보여준다. 「대기 발령」과 「알바생 자르기」는 자식이 없는 젊은 기혼 여성이 회사에서 겪는 갈등을 주된 서사로 하는데, 주인공 여성의 곤란한 상황에 대해 남편이 불쑥 나타나 조언이나 논평을 하는 특징을 공유한다. 언뜻 보면 회사 편을 드는 연아의 남편보다 아내의 실리를 따져 주는 은영의 남편이 더 자상하게 느껴지지만, '남편'은 '경영자 마인드'라는 일관된 논리를 고수하고 있을 뿐 차이는 '대기 발령자'와 '중간관리자'라는 아내의 입장에 있다. '남편'은 기업의 논리를 대변하면서 아내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자세를 교정하고 질책'을 하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편'은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논리 그 자체인데,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왜 '남편'으로 재현되느냐는 것이며, 그것이 왜 자연스럽게 읽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아내의 회사 생활에 대해 남편이 훈수를 두는 장면은 '자본주의-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아주 익숙한 재현이자 재생산이다. 소설은 남편이 과연 아내에게 훈수를 할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그의 보직은 '남편'이다. 반면 대기 발령을 받은 연아도 과장인 은영도 남편의 코치를 받는 '아내'라는 점에서 동일해진다. 그러나 '경영자-사원'의 관계가 '남편-아내'에 대응하여 재현된다는 점은 지금 여기의 맥락에서 한 번 더 해석되어야 한다. N포 세대가 가장 먼저 포기했던 것이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라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남편'이라는 존재는 '정상성'을 충족하면서 '합법적'으로 '가정'이라는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이자 경제 공동체를 형성한 '산 자들'의 표상이다. 이는 한 가족의 생계 전체를 부양하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와도 다르다. N포 세대 이후 '남편'은 '일반적인 삶에서 탈락하지 않은 자', '재생산의 기회를 가진 자'라는 의미를 획득했고, 동시에 그런 자들만이 될 수 있는 '보직'인 셈이다. 결혼과 출산이 경제적 표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남편'은 이성애 규범, 젠더와 계급 불평등이 중층적으로 만들어낸 지위다. 따라서 '남편'이 계속해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이며 중산층의 계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경영의 주체'를 뛰어넘어 '가정 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산 자들'의 경계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가정 경영의 주체'의 법을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가(부)장제-자본주의'로 갱신·강화된다.
3. '사파리 파크(safari park)'라는 자연 상태?
「음악의 가격(~2019)」은 소설가 '나'가 기타리스트 '지푸라기 개'를 인터뷰한 메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예술의 형식과 가격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다. 특히 현실적 생계의 문제는 이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소설가인 '나'는 강연료가 주 수입이고, 기타리스트인 '지푸라기 개'는 음악 빼고 음악에 관련된 모든 일 ― 노래방 반주 연주, 레슨, 인강 녹음 등 ― 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예술가들이 처한 상황이나 현재의 경제 상황을 『도덕경』을 통해 해석하려 한다.
이 현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도덕경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 혼자 고루하고 촌스럽네 衆人皆有以, 我獨頑似鄙
나만 홀로 사람들과 다르니, 그저 먹고사는 데 힘쓰리라 我獨異於人 而貴食母5)(강조는 인용자)
5) 「음악의 가격(~2019)」, 202쪽.
인용된 부분은 『도덕경』 중 학문하는 이의 고뇌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도덕경』의 '홀로 쓰임이 없는 고루하고 촌스러운 나'는 「음악의 가격(~2019)」의 예술 노동자인 '나'와 '지푸라기 개'에 대응된다. 흥미로운 것은 인용구 중 '식모'의 해석(의 선택)인데, 왕필의 주에 따르면 '식모(食母)'란 '삶의 근본'이고(食母, 生之本也), 따라서 학자들은 대개 '먹이는 어머니'로서 자연, 곧 '도(道)'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소설의 도덕경 해석은 우리 시대의 '도'가 '먹고사니즘'으로 내려앉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서 나아가 노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자유주의 경제학의 원리로 치환한다.
비단이나 삼베의 가격이 한없이 떨어지기만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그 물건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역병이 돌아 숲의 짐승들이 모두 죽을 때에도 그대로 두는 것이 지켜야 할 도입니까?
역병에는 역병의 역할이 있습니다.
(중략)
내가 이 자리에서 칼을 휘둘러 그대의 목을 베려 한다면 어찌하시겠소? 그때도 무위를 행하시겠소?
제가 무어라 답하든 나그네께서 칼을 휘두를 것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푸라기 검객은 제자의 목을 베었다. 제자의 의연한 자세가 지푸라기 검객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 사실은 제자가 자기 말과 달리 무언가를 추구했음을, 무위가 아니라 인위로 거기에 도달하려 했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제자는 자신의 품위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지푸라기 개에게 음악이 그러하듯이.6)
6) 「음악의 가격(~2019)」, 211~212쪽202쪽.
본디 '지푸라기 개'라는 이름이 『도덕경』에서 따온 것이었으니, 위의 대화는 '도덕경-자유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현자'와 생존의 벼랑에 몰린 예술가 '지푸라기 개'의 대화로 봐도 무방하겠다. 현자가 백성들의 시장에 "임금이 끼어들어······ 법을 만들면 필시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하자, 검객은 역병이 돌고 기아가 발생해도 그냥 두어야 하냐고 되묻는다. 현자는 검객의 항의 섞인 질문에도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다.7) 이에 검객은 현자를 베어버리고, 그가 "무위가 아니라 인위로 거기에 도달하려 했"다는 역설적인 말을 남긴다. 삽화 끝에 서술자 '나'가 개입하여 현자의 '인위'가 '품위'였고, 예술가에겐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현자가 품위를 지키고, 예술가가 예술을 지킨 것이 죽음의 이유였을까? 인위로 도달한 무위란 무엇일까?
사토 요시유키는 『신자유주의와 권력』에서 푸코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논의를 명징하게 설명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시장 메커니즘이란 '자연' 가격을 형성하는 교환인 데 반해, 신자유주의 시장은 '경쟁'이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장의 경쟁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통치에 의한 구축적인 노력의 결과로 산출되는 것"이라는 점이다.8) 신자유주의는 법규, 정책을 통해 경쟁 원리가 가능하도록 시장에 개입한다. 이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방임과도 다르고, 공공투자나 사회보장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에 개입하는 케인스적 방식과도 다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규칙, 조건에 개입함으로써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경쟁을 창출하고, 그에 따라 항상적 통제의 메커니즘을 창출"한다.9)
다시 현자의 숲으로 돌아가 보자. 현자는 만약 "늑대에게 잡혀 먹는 사슴을 하늘이 가엾이 여겨 늑대를 숲에서 몰아낸다면", "사슴이 늘어나 숲의 풀과 나무를 다 뜯어 먹"어 "다른 동물들까지 굶주리게 되고 숲은 황폐해"질 것이니 '무위'를 실현하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10) 물론 우리가 사는 세계는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해 버린, 그러니까 사슴도 잡아먹고 풀도 뜯어먹는 잡식 늑대의 세계다. 그런데 늑대의 무자비한 식성은 차치하고라도, 이 세계가 정말 자연 상태의 정글이긴 한 걸까? 근로시간 단축,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정책, 노동 시간을 유연화하는 정책들은 '삶의 질'이라는 의장을 걸치고 있으나 대부분 사용자들의 노동력 구매에 따른 부담을 줄여 주도록 기능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경쟁'은 훨씬 더 심해졌다. 법(인위)은 경쟁(무위)을 만들고, 개인들은 경쟁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자세를 교정하고 질책'하는 '자기 계발자'들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각종 비리, 꼼수, 불공정에 대한 염증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지금에 이르러선 '공정=경쟁'이라는 의미가 되어버린 듯하다. 경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공정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의미 연쇄 과정에서 경쟁을 심문할 기회는 삭제되고, 경쟁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 가치중립적인 법칙으로 여겨진다.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연 상태의 정글일까? 인위로 만들어 놓은 자연,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남으라고 강요된 사파리 공원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인위'의 자연공원에 차를 타고 다니며 구경하는 것은 누구일까. 공원 곳곳을 돌며 경쟁을 만들어내고, 탈락자를 사냥(safari)하고, 경쟁이 공정한 것이며 그것이 평등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7) 「음악의 가격(~2019)」, 211쪽.
8) 사토 요시유키, 김상운 역, 『신자유주의와 권력』, 후마니타스, 2014, 37쪽.
9) 위의 책, 43쪽.
10) 「음악의 가격(~2019)」, 211쪽.
4. '사연'은 넣어 둘게요
우리를 통치하는 시스템은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익숙한 얼굴을 빌려 우리에게 생존의 룰을 강요하지만, 그 강요는 사회생활 좀 아는 남편의 훈수라든가 선배의 조언으로 여겨진다. 아니꼽긴 해도 냉혹한 세계에서 '다 나 잘 되라고' 해주는 충고인 것이다. 이렇게 통치술은 자연적 소여(所與)로서, 혹은 자명한 진리로서 심문의 자리에서 비껴나 버리고 대신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이다: 「알바생 자르기」의 알바생 혜미는 인대 수술을 받느라 퇴직금을 다 썼는데 발목은 나아지지도 않았고, 학자금 대출 독촉은 독촉대로 받고 있다. 「대기 발령」의 사외보 팀장은 팀원 중 유일하게 본사의 다른 보직으로 발령받았다. "팀장은 늘 어딘가 겁에 질려 있는 듯한 얼굴의 50대 여성이었다. 남편은 암 투병 중이고 대학생 딸이 두 명이 있다고 했다."11) 「음악의 가격(~2019)」의 '지푸라기 개'는 방과후 학교 강사가 되어 기타를 가르치다 기타에 열의를 보이는 재희를 만나 음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재희는 '아버지가 중국인 동포인 문제아'다.
세 소설에는 전형적인 '약자'의 형상으로 그려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각자의 형편은 그들이 처한 문제 상황과 인과관계로 성립되지 않는다. 적법한 해고 절차와 퇴직금, 4대 보험 취득은 알바생의 권리일 뿐인데 권리 요구 끝에 부연된 구구절절한 알바생의 형편은 어떤 인식적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사외보 팀원 모두가 대기 발령이 난 상태에서 팀장만이 다른 보직을 받았을 때, 불현듯 등장하는 팀장의 가정형편은 어떤 의미를 생산하나? 이러한 병치는 가난이나 소수자 정체성을 예외나 특혜로 연결하는 서사를 만들어내기 쉽다. '경쟁=공정'이라는 시스템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경쟁자들은 의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 예술가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세계에서 '지푸라기 개'에게 음악의 가치를 확인해 주는 존재가 굳이 '다문화가정 문제아'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장강명 소설의 리얼리티는 소설의 대상보다 소설의 직조 방식에 있다. 그의 소설은 세계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지푸라기 개'는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버스킹 시위를 하다 이렇게 생각했다. "이미 세계의 질서가 정해졌는데 거기에 맞서는 기획이 얼마나 가망이 있을까. 질서는 시스템이고 기획은 이벤트다. 이벤트는 시스템을 결코 이길 수 없다."12) 그러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일을 사건(event)이라고 한다. 사건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다. 다만 사건은 우리 눈을 가리는 것들을 걷어내고 시스템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될 수 있다.
11) 「대기 발령」, 150쪽.
12) 「음악의 가격(~2019)」,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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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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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5-05-01
네버랜드 탈출기 ― 김희준론1) 최다영 1. 신(新) 아카이브 프로젝트 선행 평론에서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듯 “근원이나 태생에 대한 감각”이나2) “원형 회귀본능”을3) 말하지 않고서는 김희준의 시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현상의 내밀한 원인을 해명하거나 김희준의 시적 작업이 내포한 고발과 대항 의식을 읽어 내기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키워드이기도 하다. 수록작이기도 한 ‘사기(史記)꾼’이라는 제목은 충실한 아키비스트(archivist)이자 교란하는 트릭스터(trickster)라는 상반된 함의를 모두 내포한다. 혹은 아키비스트의 본령이 트릭스터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기(史記)꾼’으로서 김희준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화와 성서, 동화 등 무수히 집적된 공동체적 기억의 편린을 환상적으로 중첩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비틀고 왜곡하는 지점에서 김희준만의 원형적 이미지가 접속 면의 틈을 찢고 출현한다. 그의 시의 근간을 형성하는 태(胎)가 익숙한 공통의 근원 서사에서 발생했을지언정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성교와 번식, 근친과 식인의 모티프는 공포스러운 재생 감각으로 연결되며 그만의 개인적 이미지로 일관되게 수렴하는 것이다. 바르부르크의 언급대로 이미지가 생물학적 필연성의 산물이라면, 김희준이 강박적으로 봉합하고자 한 거대 명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류는 종교,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방법을 경유하여 원초적 두려움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보호하며 종의 계승을 보존해 왔다. 출생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인간도 피해 갈 수 없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보편타당한 종의 운명 앞에서 이를 추상화하고 거리를 둠으로써, 또 사회적 집단 기억을 대를 이어 계승함으로써 두려움을 봉합하고 파토스를 안정시켜 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희준은 그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를 개발하고 반복적으로 중첩시킴으로써 이미지의 기원에 대한 대답을 동시대에 가장 분명하게 제시하며 등장했다. 김희준에게 있어 기원을 더듬는 일은 그 계보를 추적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화적 세계관을 축조하고 공고히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때 감지되는 건 신화와 동화의 알레고리 이면에 자리한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고발과 저항 의식이며 더 나아가 발생과 소멸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엄윤채 (@90r1p) 2. 재생하는 네버랜드 김희준의 시 속에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다. 그것은 주로 ‘소나기’이지만 때로는 “불”이기도 하고(「인류도감」) “아이”이거나 “유성”(「백색소음」), “사내”(「페스티벌」), “밀도 높은 당신” 혹은 “저녁”(「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테트리스 적응기」), &ld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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