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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일 2회.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

  • 작성일 2019-10-01
  • 조회수 2,248

[기획대담]

 

 

비평가의 일

1회.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2)

 

 

 

4. 비평의 '재미' 지형도

 

장은정 : 그동안 '비평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제부터는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 쪽으로 옮겨가 볼까 합니다. 결국 어떠한 장르는 그 장르를 통할 때에만 가능한 말하기/듣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텐데요. 사실상 자립이 거의 어려운 장르에서 구성원들을 버티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원동력은 아마도 각자의 '재미'가 아닌가 싶어요. 현재 비평가이자 기획자인 여러분들은 요즘 무엇이 재밌다고 느끼시나요?

 

안소현 : 장은정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스코어'란 표현이 재밌었어요. 사실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아주 유연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림이 잘 안 그려지기도 하고 자리만 만들어 놓고 뭐가 벌어질지 예측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 살짝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저는 조금 더 강한 방향성을 가지고 거기 안에서 실험을 하고 싶은 편이에요. 옛날에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채 기존의 없던 걸 무조건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통제하는 바람에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사후에 얻게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 거 말고 아예 파장을 일으킬 만한 기존에 없던 형식을 기획하고 그게 어떤 효과를 낼지 적어도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예측을 하고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사회구조나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관해서 벌이는 새로운 방식들이 사실 저의 관심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전시가 됐건 퍼포먼스가 됐건 잡지가 됐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홍진훤 작가는 비평문을 많이 받는 편이 아니었고, 본인의 다양한 행위를 통해서 자기 관점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점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사실 저한테 익숙한 매체는 여전히 글과 전시지만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설계나 스코어 같은, 약간 작당모의 같은 어떤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장은정 : 《포럼A》가 '비평'이 아니라 '비평적 행위'에 주목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안소현 : 사실 비평적 행위라는 말을 제가 처음 입에 올려 본 게 비평적 행위를 비판하는 자리였어요. 구글맵을 보고 구석진 작은 공간을 찾아가는 게 뭔가 되게 유의미한 행위가 된 것 같고, 그게 텍스트를 대체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자리였어요. 근데 저는 앞부분에 꽂힌 거죠. 예전에는 불가능했는데 그 작은 행위가 일으킨 파장이 되게 크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게 스마트폰을 예찬하는 게 아니라, 중심부에 있지 않아도 관객을 모을 수 있다, 라는 가능성이 어마어마한 힘이었던 것 같고, 그게 지속되지 않더라도 저는 그런 류의 작은 행위들이 일으키는 변화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러면서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도 그때부터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전에는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버거워서 다른 장르까지는 못 가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냥 다른 장르와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 확인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런 점프에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많이 느껴요. 세월호 전시를 기획할 때 공연 등 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이랑 만났는데 그분들이 모여서 벌이는 일들이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근데 각자 일을 벌여 놓고 그걸 같이 보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세월호에 대해서 진상규명이라든가 사회적 의미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겁게 접근했다면, 세월호를 경험한 누군가에 대한 얘기를 특별히 세월호에 대한 언급 없이 하는 작업이 많아졌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비평적 행위라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할 수 있고, 다른 분야와 연결된 게 더 재밌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사실 계속 다른 방식으로 비평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들, 이런 것을 계속 찾고 있어요.

 

홍태림 : 재밌거나 흥미로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던 것 중 하나는 미술시장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미술시장이 지하시장화 되어서 작품이 뇌물이나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고 위작 유통 문제도 정말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면 미술품 양도소득세 적용 범위를 생존 작가까지 확대하여 거래 이력을 총체적이고 장기적으로 쌓아야 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미술품유통법이 위작 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억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고 중요한데 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술생산자들이 관심을 많이 안 두고 있어요. 가령 위작 유통의 경우에는 위작이 진작으로 취급되어 미술사와 미술교육을 엉망으로 만들고 미술관이 가진 공공성도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앞 세대가 뒤 세대에게 폭탄을 돌리는 무책임한 일만 반복되는 거죠. 이외에도 예술가의 지위와 권리, 복지 문제에 대한 논의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안도 중요한데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 당사자들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도 미술시장 문제보다는 관심이 높긴 하죠. 아, 요즘에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네요. 근래에 미술계 온오프라인에서 비평, 번역, 아카이브 등의 성격을 가진 공간들이 생기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요. 3~4년 전후로 만들어졌고 1980~90년대생 필자들이 주축이 된 곳으로는 《집단오찬》, 《90APT》, 《와우산타이핑클럽》, 《미주알고주알》, 《옐로우펜클럽》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곳들은 대부분 활동을 멈췄거나 너무 간헐적으로 글이 올라오더라고요. 다만 이 중에서 《옐로우펜클럽》은 최근에 침체기를 벗어나고자 글쓰기 워크숍, 책읽기 모임, 책 벼룩시장 같은 프로젝트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2019년 전후에 새로 생긴 곳들도 있는데요. 창작자 및 이론가와 협업해 해외에서 생산되는 동시대 예술담론을 번역하는 《호랑이의 도약》이나 재창간 된 《포럼A》 그리고 무빙이미지에 관한 아카이브 플랫폼인 《더 스트림》, 미술 현상과 다양한 시각미디어에 대두되는 이슈들을 선택하고 그걸로 세미나도 진행하는 《웹진 세미나》라는 곳도 생겼더라고요.

 

김신식 : 저의 재미를 '관찰'과 '실천'으로 구분해 봤어요. 우선 관찰 중인 현상을 이름 붙이자면 '플랫폼 자아'입니다. 개인이 플랫폼이 되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관심이 많아요. 비단 유튜브의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사람들이나 이슬아 씨 같은 분들의 기획력뿐 아니라 오늘날 정보 혹은 지식을 수용하는 개인의 신체에 명징하게 직조돼 있는 감각이라고 할까요. (웃음) 플랫폼을 수사의 차원에서 너무 널찍하게 쓰는 걸 경계하고자 잠깐의 관찰기를 꺼내면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요즘 세대는 일을 기획하고 도모하는 과정에서 인력을 비롯해 일에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일이 되어 가는 과정을 매끄럽게 진척시켜 나가는 스킬이 예전 세대보다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아요. 이건 미술계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화두지만 큐레이터 없이도 작가 개인이 자신의 기획력을 활용해 판을 꾸릴 줄 아는 것 또한 제가 '플랫폼 자아'라는 지점 아래 세밀히 들여다보고 싶은 장면이에요. 국내에선 예술계와 독립씬과의 연관성 아래 자기조직화라는 용어를 수용·적용해 오고 있는데, 제가 말하는 플랫폼 자아는 자기 조직화의 양상 아래 문학·예술·문화라는 과업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내장된 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감각의 발현과 닿아 있어요.
그다음 실천. 문학과 미술의 시너지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요즘 지면에 전시를 기획해 보는 상상을 비평의 일종으로 시도해 보고 있어요. 만약 박민정 작가의 소설을 비평한다고 했을 때 작가의 작품을 전시장으로 옮겨온다면 그게 어떤 식의 설치(물)로 바뀔 수 있을까 적어 보는. 김봉곤의 소설을 전시장으로 옮겨왔을 때 어떻게 미적 가치를 띤 사물로 변형될 수 있고 이는 비평적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같은 과정들을 기록해 보는. 그런 식으로 문학작품을 종이라는 물성과 지면이라는 경로를 통해 가상의 전시 기획으로 전환시켰을 때 이 또한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미술 잡지와 《보스토크》를 통해 모색 중이에요.

 

장은정 : 안소현 선생님께서는 사회 시스템에 개입하는 기획으로서의 '비평적 행위'를, 홍태림 선생님께서는 미술시장의 문제와 '비평/번역/아카이브'의 성격을 가진 공간의 출현을 꼽아 주셨습니다. 김신식 선생님께서는 1인 크리에이터 시대의 '플랫폼 자아'와 문학의 지면과 미술의 전시가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제가 비평가 당사자로서의 '재미'에 대해 여쭤 본 것이 자연스럽게 '관심사'에 대한 대답으로 옮겨갔네요. 어쩌면 비평적 재미라는 것은 결국 '무엇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가'의 문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골라 주신 키워드들 하나하나가 좌담 주제가 되어야 할 만큼 큰 덩어리들인데요. 이 좌담은 이와 같은 키워드들을 비평적 의제로 제시하는 '비평지'를 주제로 하기 때문에 키워드들 각각에 집중하기 보다는, 비평적 사유를 가능케하는 '공론장의 조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5. 비평지를 만들어 가는 경험

 

장은정 : 잡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을까요? 현재 비평이 갖는 가치를 담론의 이론적 차원에서 살펴보기보다는 비평지를 만들면서 획득하게 되는 '경험'의 층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안소현 : 글쎄요. 가장 격한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 제목과 하위 카테고리를 만드는 문제였어요. 보통 잡지는 정해진 섹션이 있잖아요. 그것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모두들 너무 혼란스러워하는 거예요. 뭔가를 정리하거나 안정화시키려면 일단 서랍을 만들고 그 서랍에 잘 집어넣어서 뭔가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된다, 가 기본이었는데. 처음으로 그런 서랍 없이 가보자는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포럼A》는 '란'이 없어요. 매 호마다 맞는 성격을 찾고 있고요. 그만큼 머리가 아프고 방향을 좁혀 가기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런 시도를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장은정 : 틀 없이 운영하는 일이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위험부담이 크고 에너지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미리 구획 짓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홍태림 선생님의 경우, 혼자서 오래 운영하고 계시니 조금 다른 경험일 것 같은데요. 《크리틱-칼》을 운영하는 동안 지키려고 했던 지향점이나 만들어 가는 과정 중 그 지향점과 어긋났던 지점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태림 : 《크리틱-칼》이 6년차다 보니까 여기에 글을 써주신 필자를 헤아려 보면 대략 80명이 넘어요. 그리고 그동안 누적된 글들은 320여 개 될 겁니다. 이렇게 한번 헤아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글을 쓰려고 하는 필자들이 많구나, 특히 20~30대 중에서 하고 느끼게 됩니다. 20~30대 필자층이 더 두꺼운 이유는 대학 졸업 후 비평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강 《크리틱-칼》이 이러한 궤적을 그려 오는 중인데요. 먼저 지향점과 어긋나는 부분이 생겼던 사례를 하나 이야기 드리자면, 《크리틱-칼》을 처음 만들 때 공공기금 없이 독자와 매체, 필자 간에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엔진을 만들어서 그 엔진이 어느 정도 규모로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를 실험해 보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이 엔진이 바로 후원금 시스템인데요. 6년 동안 들어온 《크리틱-칼》 후원금이 약 320만 원입니다. 현재 25만 원 정도 남아 있는데, 후원금은 필자들에게 책 선물 드리는 비용과 서버 비용으로 사용해요. 《크리틱-칼》에 들어오는 후원금의 평균을 내보면 1년에 60만~70만 원이에요. 60만~70만 원이면 빠듯하게 딱 1년치 운영비 정도 되고요. 그런데 《크리틱-칼》이 6년 정도 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해서 안정감을 찾은 곳이라고 판단해서 그런지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소액 후원금이 근래에 좀 줄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크리틱-칼》의 작은 엔진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크리틱-칼》은 후원금이 끊겨서 후원금액이 0원이 되는 시기가 몇 개월간 지속되면 운영을 종료하고 그간의 글들을 열람만 할 수 있는 아카이브 사이트로 전환될 겁니다. 그래서 그때가 오기 전에 공공기금을 받아서 《크리틱-칼》을 운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마침 최근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미술비평가와 매체를 매칭해서 글을 연재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크리틱-칼》도 이 사업에 선정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크리틱-칼》도 그 사업에 지원했는데 필자가 3회 연재하면 필자에게 200자 원고지 1매당 2만 원 정도의 원고료가 나오고, 매체에는 발행비를 지원해 줍니다. 만약 이 사업에 선정되면 발행비로 6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은데 이게 딱 《크리틱-칼》 1년치 예산이거든요. 솔직히 후원금이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당장은 괜찮은 대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나 공모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크리틱-칼》의 원래 취지와는 다르다는 게 문제죠. 그래도 《크리틱-칼》의 엔진의 기승전결이 대강 보이는 상황에서 공공기금이 개입되었을 때 매체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한번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게 현 상황입니다. 이어서 웹진을 운영할 때의 리스크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해 보자면 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요. 웹진은 종이 매체 같은 물질성이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보안문제에 굉장히 취약해요. 데이터로 존재하는 웹진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고로 《크리틱-칼》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걸 막을 수 있는 대책으로 데이터 백업을 하고 미러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죠. 최근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크리틱-칼》이 임대한 서버를 가진 회사가 갑자기 랜섬웨어 공격을 당해서 그 회사의 모든 서버가 먹통이 된 적이 있어요. 물론 백업 데이터가 있어서 수작업으로 모두 복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이런 데이터 백업이 없었다면 몇 년 치 기록들이 한 번에 증발해 버릴 수도 있었겠죠. 그리고 제 컴퓨터에서는 증상이 없어서 몰랐는데 다른 독자 분들이 《크리틱-칼》에 들어가면 종종 스팸 페이지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건 때문에 1년 사이에 구독자가 은근히 빠져나가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해 보니 수리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어서 아예 제가 홈페이지를 처음부터 새로 다시 만들고 호스팅 업체도 바꿨어요. 그랬더니 스팸 페이지로 연결되는 증상이 사라지더라고요.

 

장은정 : 공공기금 없이 운영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태림 : 공공기금 없이 웹진을 운영해야겠다는 방침은 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정하게 된 측면이 큽니다. 다른 대안공간들이 그렇듯이 풀도 공공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는데요. 그렇다 보니 전시 전후에 충분히 담론을 발굴하고 정리하여 맥락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 계속 전시만 쉴 틈 없이 돌려야 하는 거죠. 그리고 정치적으로 변화가 생기면 거기에 따라서 공공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예술 공간들은 바로 존폐 위기와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보면서 공공기금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장은정 : 이는 '신생 매체가 자립하기 위해 공공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일 텐데요. 저 역시 최근 문예지지원사업이 신생 매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진 매체만 지원해 주는 거꾸로 된 형태를 비판한 적이 있어요. 이는 예술 제도의 차원에서 더 깊이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비평가의 일' 기획 이후 좌담의 주제이기도 해요. 김신식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까요? 비평지를 만드는 것이 선생님 개인에게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신식 : 비평'지'를 만들었을 때 고충이 늘어나면서도 그만큼 흥미를 느낀 시간이 있어요. 편집동인 각자의 비평적 색깔을 내세우고 주고받으며 《문학과사회》 첫 혁신호의 청사진을 주고받았던 때. 첫 혁신호가 나온 뒤 정작 마음이 헛헛했고 두려웠는데 혁신호를 인쇄하기 직전까지 표지를 뭐로 정해야 하는가 하이픈 표4에 들어갈 문구는 뭐로 해야 하는가 등등을 두고 벌인 갈등도 기억에 오래 남아요.
《문학과사회》 혁신호에 관한 기획·제작 일화를 비평이나 작품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시각적 실천'으로 명명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문예지·비평지라는 성격 아래 디자이너와 함께 텍스트의 시각성을 두고 의견을 자주 교환했던 시간이 지금도 소중히 느껴져요. 당시 혁신호를 만들어 갈 디자이너 면접을 제가 봤어요. 그때 같이 일하게 된 프랙티스 유윤석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문예지의 정체성과 의의, 비평가나 작가들이 놓치고 있는 잡지에 관한 시각적 특색에 대한 견해를 마주하면서 매체로서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어요. 이건 디자이너에게 직접 묻지 않은 지점이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체성에서 《문학과사회》를 하나의 '브랜드'로 설정했을 때 클라이언트인 《문학과사회》 및 문학과지성사라는 출판사가 쌓아 온 인식을 시각성의 차원에서 고려하는 디자인 매뉴얼을 알아 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한편 혁신호를 표방하는 문예지가 일제히 나오면서, 그런 문예지들의 현재와 향후에 대한 라운드테이블이 자주 있었고, 사회를 몇 번 봤어요. 진행을 맡으면서 문예지가 나오는 출판사와 출판사의 구성원, 문예지라는 결과물 사이에서 표출되는 성과의 유형 및 방향이 흥미로웠어요. 일례로 《릿터》. 많은 발언 중 민음사와의 관계 속에서 잡지의 매출·이익이 회사 입장에서 나쁘지 않았다는 서효인 팀장의 발표가 인상 깊었어요. 그러한 발언이 별로라는 게 아니에요. 사회를 보면서 《문학과사회》의 혁신에 대해 내가 나름 잡아 두었던 기대치의 모양은 무엇인지 새삼 돌아볼 수 있었어요. 저의 경우 2008년부터 겪어 나간 편집 활동과 출판편집자 생활을 바탕으로 문예지를 동인들과 함께 내놓았을 때, 《문학과사회》의 상품성·문예지의 시장성에 대한 나름의 기대치를 투영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그러한 기대치를 투영할 때 가용되어야 할 저라는 자원에게 승산의 경험이 축적돼 있는가에 대해선 자신감이 없었어요. 아울러 잡지의 변화가 이 잡지를 내주는 출판사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표출하는 의지와 달리 쭈뼛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결핍된 자신감을 문학 외부의 비평적 기획을 재차 시도하면서 채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물론 자학의 외피를 덧씌워 체험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나는 문예지의 혁신을 통해 무얼 바꾸고 싶었던 걸까, 회의감이 장기간 마음속에 펼쳐졌어요. 나는 시장성이 있는 비평적 기획을 《문학과사회》에 이식하고 싶었던 걸까. 정작 그런 기획을 스스로 꾸려 본 적 있거나 목도한 적이 있나. 나는 편집자 시절 책을 팔아야 했던 감각으로 잡지를 볼 독자의 존재를 두고 숙고해 본 적 있었나, 더 나아가 나는 독자를 싫어하는가, 아니 독자에 관심이 없는가…… 같은. 이런 고민이 저를 괴롭히는, 그렇다고 마냥 잊고 싶지 않은 과제로 남았어요.
이왕 독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보스토크》를 만드는 체험과 독자에 대해 언급하자면 편집동인들과 독자를 상정하는 회의를 《문학과사회》에 비해 자주 해요. 흔히 우리가 독자를 상정하고 논할 때 섀도복싱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내가 쓰는 글이나 만드는 잡지를 두고 비판하는 이가 없는데도 괜히 그런 이를 상상해서 반응을 내보이는. 《보스토크》를 만드는 동안 섀도복싱을 이롭게 쓰는 체험도 겪는 중이에요. 제 개인의 관찰이지만 《보스토크》는 독자에 예민해하고 독자를 무서워하는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잡지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있다고? 같은 자조 대신 독자의 실체에 대해 나름 분석을 해보는 곳이 《보스토크》이기도 해요. 조직의 규모는 작지만 온라인 서점이나 독립서점에서 잡지를 구매하는 세대층과 차이, 돈이 없어서 교보문고에서 포장되지 않은 샘플 잡지를 훑어보며 만족하는 수용자층 등을 관찰하고 데이터로 남겨 보려고 해요. 《보스토크》엔 지지층이나 이 잡지에 대해 애정이 떨어진 언급을 귀담아듣고 그것을 잡지 외 다양한 기획 사업으로도 녹여내려는 활력이 있어요. 그런 활력은 독자를 무서워하는 데서 오는 듯합니다. 이때 무서움이란 독자를 향한 무한한 칭송이기보다는, 이 잡지를 만드는 동인들의 실제 연령대와 잡지를 보는 주요 세대 간의 차이에서 행여나 발생할, 사진을 에워싼 동인들의 감각적 퇴행을 동인 스스로 걱정하고 있다는 점과 이어져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두 잡지를 오가며 '결국'이라는 부사를 접할 때 가장 두려워요. '《보스토크》도 결국…… 《문학과사회》도 결국…….' 공교롭게도 이런 반응을 접하며 스스로 실망하고 때론 억울해하며 개선의 의지를 보이고자 애쓰는 시간이 11년째 잡지·비평지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쌓이고 있어요. 이게 잡지나 비평지와 떨어져 있는 제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어진 시간상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6. 지켜내려는 것

 

장은정 : 정해진 카테고리 없이 매 호마다 새롭게 기획하는 방식으로 《포럼A》를, 처음으로 공공기금을 유입시켜 《크리틱-칼》을 운영하는 새로운 시도를, 독자의 존재를 중심으로 《문학과사회》와 《보스토크》를 기획하신다고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시도해 볼 때, 그 시도를 통해서 지켜내려고 하는 가치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자립이 어려운 비평지를 만들면서 현실적으로 타협해야 하는 지점들이 많을 텐데요, 그런 타협 속에서도 기획을 겸하는 비평가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나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안소현 : 일단 미술에 있어서 예술제도가 작품 내용과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려 하고요. 특정 제도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포괄적으로 속해 있는 구조에 대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시민의 개념을 넘어서는 미술 향유자 개념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는 아무리 민주적이라고 할지라도 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는 시스템 안에서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를테면,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문화예술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투표권이 없어도 문화예술 향유자가 됐으면 좋겠고. 그 시민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제한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미술관에서 일할 때 많이 느꼈는데, 대의민주주의 안에서 시민들을 우상화하면서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덩달아 권력을 과도하게 갖게 되고 그게 문화예술의 어떤 전체적인 권위를 갖는 걸 되게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정치권력에 대한 시민권과 딱 달라붙지 않은 더 넓은 개념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물론 문화예술이 결국은 국가라는 제도를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머릿속에는 그 개념 틀에서만 움직이지 않는 더 넓은 범위의 예술을 얘기해 보고 싶어요.

 

홍태림 : 이것만은 버리지 않아야겠다? 저는 저의 직업상 글을 쓰고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근데 제가 하게 되는 말이라든지 쓰는 글들이, 사람이 다리가 두 개가 있잖아요. 말과 글이 다리 한쪽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머지 다리 한쪽이 말과 글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지는 행동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두 발이 항상 같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뒤로 물러서게 될 수도 있고 제자리에 정주하게 될 때도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데. 그러한 이동의 형상은 어쨌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면서 앞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은정 : 지금 이야기한 '행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홍태림 : 저는 좀 보수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공공 안에서 되게 세속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차원 안에서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는······ 저는 스스로 약간 땜질하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땜질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땜질을 하고, 그렇게 땜질된 게 더 나은 성장을 하는 분들이나 현재에서 치열하게 새롭게 고민하고 송출하는 분들이 그 땜질 안 된 것 때문에 발목 잡히는 게 조금 덜해질 수 있는 역할 정도라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신식 : 예전에 문단 안팎 독자-공동체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요. 그때 누가 물었어요. 신식 씨 요즘 북토크나 강의, 사람들이 왜 온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분명한 인풋을 얻으려고 가는 거 아니냐고 답했더니 아니라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말하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 식의 작은 공동체들에서 분출되는 감정이나 발화의 양상들. 한 겹의 작은 부분으로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문학을 위한 분야로서 그런 공동체들의 움직임을 우리가 다채로이 논해 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 장점과 한계를 챙기면서 나아갈 수 있을까가 첫 번째 관심사고요. 저는 제도의 창출에도 관심이 있는데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비롯해 예술계 성폭력 일을 겪고 나서. 비평가의 무력함을 느낀 동시에 글을 쓰는 활동도 중요하지만 정책과 제도에 관련해서 작가나 문학·예술 전공 과정 학생들, 비평가들의 멘탈을 케어해 줄 수 있는 제도에 관한 안건을 만들어 제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근래 시범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걸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는 형태로요. 주요 문예지들의 페미니즘적 비평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런 타임라인을 근근이 회고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속하는 에너지 차원에서 봤었을 때 작가, 비평가들, 작가를 준비하는 사람들, 예술가를 비롯해서 그런 작업자들이 당황스러운 일을 겪거나 심리적으로 붕괴를 겪었을 때 그 개인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다면 뭐가 있을까. 제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은정 : 각자의 지향점이 다르지만 사회 전체의 시선으로 보면 그 차이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제도의 결함에 집중해서 그것을 수정하고자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성을 사유하며 그것을 해체하거나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을 고민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방식 또한 다양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가지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예술계가 장르별로 더욱 분업화되면서 다른 장르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예술계라는 더 큰 영역 하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이 장르별로 파편화되고 더 확장되지 못한 채로 공회전 된다고 느꼈던 점입니다. 예술정책이나 제도 문제는 각 장르의 특수성을 통해 그 구체성을 획득해야겠지만, 그 구체성을 기반으로 이전에는 가로막혀 있던 다른 공통성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한 기반 자체를 다르게 사유해 보려고 하는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여러 구조들 자체가 장르별로 전문화되어 있어서 그러한 예술 공통의 영역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 개척해야 하는 지점이 있고, 이것이 소위 '현생'을 갈아 넣는 방식 이외엔 쉽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타 분야에 계신 분들과 대화하고 이 대화를 통해 여러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다들 오늘 대화가 어땠는지 후기를 들으면서 좌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신식 : 아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떠올려 본 말풍선 속의 말은 "서로가 서로를 참조한다는 것의 중요성"인 것 같아요. 최근에 문학잡지 만들면서 문학평론가들이 어느 동료의 문헌들을 참조했는지 유심히 보는 편이거든요. 그들만의 리그라는 형태로 보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논의를 많이 신경 쓰고 있구나. 누구를 힐난하기 위한 참조가 아니라 서로가 어떤 식의 목표를 가지고 발화하고 있는데 주석이라든지 본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한편으로는 예전에 서영인 선생님이 연쇄적 독서라고 말했나요. 그렇게 이어 이어 독서하는 형태를 보고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가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것에서 의미와 그 중요성을 곱씹게 돼요. 그런 차원에서 오늘 좌담은 좋은 자극을 받았던 자리인 것 같습니다.

 

홍태림 : 예술 분야가 여러 가지 있는데, 아까 말씀 주셨던 것처럼 분야별로 시차가 약간 있을 뿐이지 겹칠 수 있는 의제들이 있고, 그 의제들이 단편적으로 일정시간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계속 지속되는 의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좀 추려지면 저는 한 분야 안에 비평가들끼리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고, 각 분야의 비평가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공동의제들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게 뭐 문예위에서 운영하는 매체일 수도 있고 다른 재단에서 운영하는 매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각 분야에서 같이 지속 가능한 의제들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한시적으로 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각각의 시차들이 있고 공통된 주제가 있는 그걸 계속 공유해 나갈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안소현 : 반작용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고민을 모두 하는 것 같아요. 다들 변화를 꿈꾸긴 했는데 그게 단순히 있던 것의 부정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얼마 전 어떤 철학자가 갑자기 신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체들끼리 사랑하는 거라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해서 이상했는데 그게 실은 낮은 자들의 연대를 주제로 한 얘기였어요. 그래서 젠더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노동 문제를 다루는 사람하고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그게 세력을 키우기 위한 연대였다면 지금은 같은 고민을 그냥 공유하는 것, 사적인 서사들의 중요성 같은 것들을 얘기하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큰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요즘은 그런 사적 서사의 중요성 같은 걸 절감하고 있어요. 오늘 얘기는 물론 제도에 대한 문제를 포괄했지만, 그 와중에 미시적인 교차점에 대한 얘기들이 중간 중간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문학잡지를 많이 읽게 될 것 같아요.

 

장은정 : 옐로우펜클럽이 주최한 〈문학의 시차, 미술의 시차〉 토크에 참여했을 때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관객과의 대화 코너에서 대화를 시작할 때 "저는 문학 쪽에서 온 사람인데요", "저는 미술 쪽에서 온 사람인데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이었어요. 서로 참조해 온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속한 분야를 밝히는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런 대사를 내가 들어 본 적이 있었나?' 싶어 흥미로웠습니다. 오늘 좌담도 제게는 비슷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의 다름 속에서 공통의 영역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는 이제 시작 단계이고,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끝)

 

 

 

 

 

 

 

 

 

 

 

 

 

 

 

 

장은정

사회 / 장은정

문학평론가. 최근 페미니즘 비평과 매체 비평, 정책 비평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비평적 공론장을 구성할 줄 아는 상상력과 체력을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김신식

참여자 / 김신식

2008년부터 비평지 만드는 일을 해왔다. 한국 사회의 시각문화와 감정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진행한다.

 

참여자 / 안소현

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비평의 가능성을 넓히되 '여파' 없는 글은 피하려 한다. 정치적이 되는 형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이며 비정기간행물 《포럼A》 편집장이다.

 

홍태림

참여자 / 홍태림

우리의 삶 속에서 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미술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을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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