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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그리고 이어짐

  • 작성일 2019-10-01

[문학더하기(+)]



이미지 그리고 이어짐 _

박사랑의 소설 『우주를 담아줘』(자음과모음, 2019. 5)와 영화 〈벨벳 골드마인〉(1998)



최선영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다. 종교는 다양성의 전통적 모델이며 성별과 인종의 문제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사랑의 발전사는 그 대상을 규정하고 제외하는 일의 불가능함을 하나씩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이 시대에도 세상은 '빠순이'1)의 사랑에 유독 각박하다. 연애의 하위호환 혹은 예행연습 정도로 귀엽게 넘어가 주는 것도 십대에만 해당하는 특권일 뿐, 성인에겐 가당치도 않다. 아이돌에 대한 호감이야 센스 있는 이야깃거리로 소비되지만 사랑의 진지함을 드러내는 순간, 즉 자신을 '빠순함'을 커밍아웃하는 순간 돌아오는 건 주로 난감함과 어색함이다. 운이 나쁘면 이런 반응을 감내하기도 한다. '쟤는 널 알지도 못해.' 빠순이를 계도하는 전형적인 멘트다.

1) '빠순이'(오빠-순이)에 대한 공식적 정의는 없다. 여성 팬(국립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팬fan이란 '운동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을 자의, 타의로 속되게 이르는 말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빠순이'라 칭할 정도라면 '팬'의 정의에 다소 수정을 가하여 '열광적' 앞에 '심하게'를 붙이거나 자조적인 의미를 담아 '맹목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좋아하는'을 '사랑하는'으로 바꾸는 것도 잊지 말자.


이해는 한다. 아이돌 스타와 빠순이의 관계는 "맞춰지지 않는 함수"요 "맹목적인 애정의 힘"으로만 지탱 가능하다. 더구나 빠순이의 애정은 필연적으로 돈을 수반한다. 그러니까 아이돌 스타는 신처럼 영생을 보장해 주지도, 애인처럼 손을 잡고 걸을 수도, 동물처럼 만질 수도 없는 주제에 돈까지 살뜰하게 쓰게 만드는 갑질의 주범이니 빠순이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밑지는 장사다.


그래서 박사랑의 『우주를 담아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거스르는 미지의 존재, 빠순이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활동은 물론이요 일상과 상상을 뒤덮은 사랑의 마음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에 대부분의 공력을 썼다 해도 좋다. 작가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수많은 주석(이선좌, 막콘, 덕통사고, 일코, 멜림, 폼림, 포카 등등. 이 은어들의 뜻을 잘 알고 있다면 빠순이일 확률이 높다)을 보라. 물론 이 낯선 말들이 예기치 못한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구체적인 상상력의 자원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빠순이가 존재하는 지대의 단단함과 풍족함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우주를 담아줘』의 빠순이 세계는 우아한 문학적 수사로 포장된 독특한 선물이 아니다. 차라리 언어를 통해 그곳을 직접 맛보게 하는 감각의 요리에 가깝다. 이 세계가, 내 사랑이 이렇게 생겼으니 당신 역시 불러도 보고 만져도 보고 남김없이 먹어도 보라는 것. 저들이 나를 모를지언정 내 마음은 이토록 미치게 달콤쌉싸름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님' 혹은 '사랑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이것이 사랑임'을 말하는 정공법이다.


삼십대 중반의 서다영은 자칭 '노약자' 수준의 베테랑 빠순이로, 그 바닥에선 '디디'로 통한다. 열아홉 살 첫사랑 '첵스', 아픔으로 끝나는 사랑을 알려준 '주주', 은은하게 사랑했던 '츄파', 오늘의 다영을 살게 하는 '루이', 혜성같이 나타난 새 아이돌 '겨울이'까지. 다영은 생의 절반을 아이돌로 채웠으며,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십년지기 빠순이 동지인 '얭'과 '제나' 역시 뒤지지 않는 빠순이 이력을 자랑한다. 한편 그들은 회사원(디디)이며, 중학교 선생님(얭), 전문 번역가(제나)로 나무랄 데 없는 이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들에게 '당신들의 정체를 밝히라' 한다면 이구동성으로 대답할 것이다. '나 빠순이오.' 이유를 묻는다면? "오빠2)가 좋으니까, 오빠를 보고 싶으니까!" 세상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2) 오빠는 나이가 아니라 신분이니까 (박사랑, 『우주를 담아줘』, 자음과모음, 2019, pp.264~265.) 빠순이들에게 오빠는 '나이가 많은 남자'가 아닌 '사랑하는 스타'의 다른 말일 뿐이다. 오래된 빠순이일수록 '어린 오빠'를 만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쯤에서 한 번 더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돌은 비즈니스야. 넌 속고 있어.' 맞다. 그들은 우리를 속이고 또 속인다(기만은 다른 문제다). 어제 이별을 했어도 사랑 노래를 부르고 급성 장염이 와도 칼군무를 추고 팬들의 이름도 모르면서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든다. 빠순이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아니, 이 모순의 매력을 아는 자만이 빠순이가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다영은 루이의 콘서트를 본 직후 휘발되는 기억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사실이라기보다는 믿음이었고 믿음이라기보다는 환상에 가까웠다." 그래도, "뭐든 좋았다". 빠순이에게 사실이나 믿음보다 중요한 건 결국 환상이다. 연예계 회사가 기획하고 예쁘장한 소년이 만들어내는 미소 위에 빠순이의 상상과 꿈으로 덧칠하고 또 덧칠하여 완성되는 그 총체적 이미지 말이다.


*



문득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사람의 인생은 이미지야."
조금 오래된 영화 〈벨벳 골드마인〉의 후반부, 어두운 지하 펍에서 커트 와일드가 아서 스튜어트에게 건넨 말이다. 기자인 아서는 10년 전 자취를 감춘 영국 글램록3) 메가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현재 미국의 대중 가수 토미 스톤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된 차다. 브라이언의 옛 연인 커트 역시 그것을 아는 눈치지만, 진실의 자리에 '이미지'라는 대답만 채우곤 펍을 떠나버린다. 『우주를 담아줘』가 빠순이의 환상을 사랑의 작동원리로 다루었다면 〈벨벳 골드마인〉은 스타와 이미지의 숙명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팬과 스타는 이미지를 통해 얽히고설켜 있으며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많은 것들을 세상에 남긴다.

3) 글램록glam rock이란 하나의 음악 스타일, 장르인 동시에 1970년대 초반 특히 영국에서 융성했던 하위문화이기도 하다. 글램은 1960년대 말 프로그레시브 록과 반문화의 진지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으며 이를 확장했다. 원색으로 물들인 머리, 기이한 의상, 두터운 화장 등을 통해 뮤지션과 콘서트의 시각적 연출을 크게 강조했다. 글램에서 음악은 연출에 밀려 거의 부차적이었다. 양성성androgyny과 양성애bisexuality 요소는 글램의 이미지와 호소력을 나타내는 일부였다. 글램 뮤지션 팬들은 히피 복장의 우아함과 스킨헤드의 무정함hardness을 결합한 스타일을 차용했다. (로이 셔커, 장호연 외 옮김, 『대중음악사전』, 한나래, 2012, pp.59~60. 참고.) 글램록이 음악이 부차가 되는 음악 장르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 모순은 글램록의 짧은 생명력의 원인인 동시에 연출의 힘이 장르의 근간을 획기적으로 흔드는 사례이기도 하다.


1974년 3월 16일 런던의 어느 공연장,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록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피격을 당한다. 그러나 피격은 쇼에 불과했고 기만을 당한 팬들은 그에게서 돌아선다. 그렇게 브라이언 슬레이드와 그가 연기한 음악적 자아 '맥스웰 디몬Maxwell Demon'은 차차 세상에서 잊힌다. 그리고 1984년, 미국 헤럴드지 기자 아서는 비어 있는 주말 기사를 채우기 위해 브라이언의 취재를 떠맡게 된다. 영국인인 아서는 한때 브라이언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로 인해 가출까지 감행한 뜨거운 청춘을 보내기도 했다. 영화는 브라이언의 옛 매니저 제리 디바인과 전부인 맨디 슬레이드의 인터뷰와 더불어 뭔가를 숨기는 듯한 아서의 회상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스타의 인생을 회고하는 안정된 흐름을 타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일은 1854년 소년 오스카 와일드의 '장래희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I wanna be a POP IDOL." 이 대찬 선언에 빛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정신은 100년 후 잭 페리라는 왜소한 소년이 상징적으로 계승한다. 여성복, 플랫폼 슈즈, 긴 머리, 우아한 태도, 화려한 화장, 동성애적 분위기의 총체인 그는 "영국의 망신"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런던의 클럽을 점유한다. 지금으로 치면 잘나가는 힙스터요, 유행을 선도하는 강력한 인플루언서인 것이다. 런던이 1970년을 맞이하던 날 밤, 잭 페리의 클럽 파티에 불쑥 나타난 버밍엄 출신의 토머스는 그의 스타일을 은밀하게 '훔친다'. 훔친다는 행위는 중요하다. 몇 년 후, 브라이언 슬레이드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이 촌놈은 가라지 밴드 '더 랫츠'의 커트 와일드의 스타일도 훔쳐버리니까.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성기를 덜렁이며 날뛰는 커트의 스타일은 잭 페리와 극단적으로 달랐고, 그래서 새로운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글램록의 신인 '맥스웰 디몬'은 기자들이 떠들어대는 "로큰롤의 메시아"가 아니라 브라이언이 훔치고 조합하여 창조한 이미지의 피조물에 가까웠다.


실망할 것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멋진 일이다. 이미지 혹은 스타일, 그조차도 아니라면 가면. 어쨌든 브라이언은 그것으로 승리했다. 맥스웰 디몬의 전위적인 스타일과 커트와의 동성애적 퍼포먼스는 글램록을 반항과 변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아서를 비롯한 런던의 젊은이들은 양성애 선언을 해대고, 남녀가 구분되지 않는 총천연색의 나팔바지 아래로 통굽 부츠를 드러냈다. 한 마디로 그들은 글램록 스타일에 한껏 취했다. 70년대 런던은 온갖 색의 글리터로 반짝이는 별천지였다. '먹히는' 이미지를 갖는 자. 그게 바로 팝 아이돌, 팝스타였다.


*


소년 아서가 티브이 속 브라이언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친다. "저게 나예요! 저게 나라고요!" 경악은 고사하고 의미조차 몰라 어리둥절한 부모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을 걸어 잠그고 브라이언의 음악을 듣는 것뿐이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소심한 아서는 음반을 살 때조차 "계집애 같은 로커의 앨범을 산다"며 조롱을 받지만 브라이언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막진 못한다. 아서는 용기를 내어 글램록 스타일의 옷을 빼입고 런던 거리를 걸어 본다. 긴장 때문에 어색했던 그의 표정이 점차 환희로 바뀐다. 스타의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 다시 말해 '그가 되는 것'만큼 팬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설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바치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서가 신문 속 브라이언과 커트의 키스 사진을 보고 수음을 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브라이언이 동성애라는 '악영향'을 끼쳐서가 아니라, 그조차도 일종의 이미지로서 아서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아서가 받아들인 이미지가 '남자에게 키스하는 브라이언'이라면 수음의 대상은 모호해진다. 아서의 욕망은 브라이언을 통하여 결국 커트에게 닿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묘한 삼각관계가 성립될 때까지 아서는 브라이언을 얼마나 깊이, 그리고 진정으로 받아들였는가.


스타의 이미지는 팬들의 몸과 마음, 정신마저 아우른다. 그리고 이는 새롭게 피어나는 이미지의 가능성이 되기도 한다. 런던 거리를 헤치고 등장하는 떠들썩한 글램록 팬들을 향한 영화의 시선을 보라. 카메라는 브라이언의 공연장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스타일을 오랜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보여준다. 반짝이는 화장과 알록달록하게 몸에 달라붙는 옷들, 깃털 목도리,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 만연한 설렘과 웃음은 맥스웰 디몬의 기획이 아닌 그들 스스로 풍기는 활력이다. 경찰의 감시에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꿋꿋이 공연을 기다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84년 현재, 컴컴한 뉴욕 지하철에 말없이 서 있는 어두운 안색들과 대조되어 서글픔과 향수를 자아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여기에도 치열한 피켓팅4) 전쟁에 뛰어든 다영이 있다. 웃돈까지 얹어 가며 쟁취한 루이의 콘서트 티켓이야말로 삼십대 빠순이의 경제력이 빛나는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아이돌에 대한 집착은 그녀에겐 곧 삶의 에너지와 생기로 직결된다. 열일곱의 그녀는 아침마다 불만 일기를 쓰고 자퇴서를 품고 다니는 청소년이었다. 첵스를 발견하고 팬질의 재미를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첵스의 그룹이 해체하자 동시에 다영의 "마음속의 불빛이 꺼졌다". 주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또 그렇게 우울이란 암흑을 홀로 걸어야 했다. 주주가 떠난 아픈 자리에 들어선 일본인 아이돌 츄파도, 생존에 허덕이게 하는 어른의 삶에 한 줄기 오아시스 같은 루이도, 다영에겐 모두 필수불가결한 비상약과 같은 존재다. 이쯤 되면 아이돌이 그녀의 삶을 바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게 나예요!"까진 아니어도 '저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예요!' 정도면 설명이 될까.

4) 피켓팅은 피의 티켓팅의 줄임말이다. 피 튀기게 티켓팅에 참전하고도 피만 흘리며 패배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생긴 신조어이다. (박사랑, 위의 책, p.13.)


그렇다고 해서 빠순이를 '오빠'가 제공하는 이미지의 소비자에 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첵스, 주주, 츄파······ 이 이름들은 사실 다영이 멋대로 부여한 애칭이다. 예컨대 한때 다영이 "나는 주주를 사랑해서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주주'의 탄생 이력은 이렇다. "소년을 보고 떠올린 것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얗고 달콤하고 폭신하기까지 한 궁극의 맛." 그래서 서주 아이스주. 줄여서 주주. 기가 막힐 정도로 사랑스러운 작명이다. 빠순이의 상상력과 감각은 기획된 이미지를 넘어 새로운 '오빠'를 창조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마음을 건드리는 오빠를 말이다. 그래서 아이돌은 빠순이가 꿈꾸는 대로 아름다우며 상상하는 대로 달콤하다. 이미지엔 한계가 없기에 맹목도 가능하다. 빠순이의 사랑은 부어도 부어도 넘칠 줄을 모른다. 들여다볼수록 커지는 게 마음의 빈자리인 만큼 오빠의 자리 역시 언제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표를 더 던지자면, 빠순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 주목하길 바란다. 신자들이 신을 두고 질투하지 않듯 빠순이들은 아이돌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벨벳 골드마인〉이 그랬듯, 『우주를 담아줘』의 빠순이들 역시 그저 함께 달려가는 이들이다. 제나의 파혼 이후 세 사람은 위로할 거리를 찾다가 "빠순이로서의 숙명"처럼 구오빠5)들의 콘서트에 가기로 한다. 그런데 얭이 갑자기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되고, 두 사람은 환불한 티켓값을 부조금에 보탠다. 빠순이의 연대에 '오빠'가 슬그머니 들어와 손에 손을 잡는 이 장면은 그 온기에 뭉클함마저 느껴진다. 그들은 빈소를 빠져나와 드라이브를 하며 못 간 콘서트 대신 "한 평짜리 콘서트"를 펼친다. 상복을 입은 얭을 비롯하여 며칠 전 파혼을 한 제나도, 츄파의 죽음으로 괴로워했던 다영도, 구오빠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빠순이의 사랑은 얼마나 성숙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성숙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빠순이라는 정체가 자랑스러울 만도 하다.

5)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을 일컫는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 그룹, 한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드물어 대개 구오빠 하나쯤은 마음속 깊은 곳에 품게 된다. (같은 책, p.33.)


*


사랑은 때때로 우리에게 기적을 선사한다. 이미지와의 사랑도 그렇다. 이십대의 다영을 살게 했던 츄파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다영은 무작정 휴가를 내 일본으로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츄파의 팬 미우라 켄시로를 만나 츄파의 고향인 나라로 동행한다. 츄파가 살던 동네를 돌아보던 다영은 켄시로의 떨어진 단추를 주우려다가 환상의 마을에 빠진다. 다영은 마치 미니어처처럼 작아진 마을들을 헤매며 어릴 적부터 꿋꿋하게 티브이 속 스타를 좋아했던 과거를 되짚는다. 그리고 어느 골목 끝에서 꿈처럼 마주친 이는, 바로 츄파다. 그를 붙잡고 눈물을 쏟는 다영에게 츄파는 상냥한 말과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을 진정으로 안아 주는 건 다름 아닌 운동화 앞코다.
오래전 다영은 츄파의 콘서트 첫 줄에 선 적이 있었다. 마침 츄파가 정말 가까이 다가왔고 다영은 그의 운동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운동화는 다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듯 가볍게 떠나갔다. 츄파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다영은 바로 그 운동화 앞코를 가만히 만져 본다. 되레 사랑을 받고 있다 느낄 정도로, 어두웠던 이십대를 은은하게 밝혀 주고 세상으로 이끌어 주던 츄파의 따뜻함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나를 믿었어?" 츄파의 물음에 다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믿었어. 믿고 싶었으니까." 이 짧은 문답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츄파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 다영이 받은 위로가 허구가 아니었다는 것, 다영의 마음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 다영의 단호함은 어쩌면 손끝에 남은 감각이 주는 확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영은 그제야 환상의 마을과 츄파를 떠나 현실로 돌아올 용기를 얻는다. 주머니 속 단추의 질감처럼 작지만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우주를 담아줘』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딱 운동화 앞코만큼의 감각을 선사한다. '이미지와의 접촉'. 그것은 그들이 꿈꾸는 이미지가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님을 말해 주는, 소설만이 해줄 수 있는 작은 응원이다.


좀 더 나아가도 좋다면, '이미지와의 밤'을 보내는 이들은 어떨까.
브라이언의 맥스웰 디몬 암살극 이후 글램록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어 간다. 역사로 남을 글램록을 위한 장례식은 잭 페리를 필두로 커트와 맨디 그리고 아서를 한 곳에 모이게 한다. 무대의 커트는 여전히 지르고 날뛰고 쓰러져 버린다. 그에게 스타일이 있다면 맨몸 그 자체이며, 그래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한때 그의 연인이던 브라이언은 그림자처럼 공연을 지켜보다가 떠나버리고 관객석엔 브라이언을 한껏 흉내 낸 아서가 있다. 무대에서 내려온 커트의 시선이 아서에게 향한다. 두 사람은 그날 밤 어느 옥상에서 다시 만난다. 예전날 아서의 수음, 묘한 삼각관계는 그렇게 현실이 된다. 이들의 성교는 아서와 커트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브라이언과 브라이언의 연인이라는, 서로에게 덧씌운 이미지가 벌이는 환상에 가깝다. 말 그대로 '이미지와의 밤'이다. 그들 위로 반짝이는 글리터들이 눈처럼 내린다. 오스카 와일드의 탄생을 축복했던 그 빛이다. 빛은 이미지에 취한 두 남자를 경유하여 쇠락한 무대와 다름없는 금빛 신전에 닿는다. 그곳에서 맥스웰 디몬이 된 브라이언이 온몸을 에메랄드로 빛내며 춤을 추고 노래하다가 샹들리에를 타고 떠나버린다. "허구로 꾸민 멸망한 고대 제국"이자 이미지의 텅 빈 신전만 남겨 둔 채. 그러나 10년 후 브라이언이 흰옷의 멀끔한 얼굴, 레이놀즈 대통령을 찬양하는 대중 가수 토미 스톤이 되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맥스웰 디몬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죽지 않는 이미지로 남는다.


팬은 스타에게 닿을 수 없다. 다영의 표현처럼 "그 꿈의 언저리를 맴돌고 맴도는 행성"일 뿐이다. 이미지를 가지는 건 단순히 그 대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지가 있는 한 그들은 역설적으로 이어진다. 팬들을 향해 츄파가 건넨 "이어져 있다"는 말이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 스타는 이미지이기에 오히려 "대화 속에 기억 속에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속에"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이어져 있다. 아서의 사랑, 브라이언과 맥스웰 디몬 역시 그가 기억하는 한 이어져 있는 존재일 것이다. 커트는 펍을 떠나기 전 아서에게 녹색 펜던트를 준다. 브라이언이 클럽에서 잭 페리에게 훔친, 오스카 와일드의 유산이다. "너의 이미지를 위해서." 아서는 커트가 남긴 말을 떠올리며 웃는다. 펜던트와 다영의 단추는 비슷한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이미지와의 이어짐. 펜던트 너머에는 맥스웰 디몬이, 단추 너머에는 츄파가 있다. 적어도 그것을 믿는 이들에겐 그렇다. 만약 그 이어짐을 다른 말로 표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역시 사랑뿐이다.
















최선영

작가소개 / 최선영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 재학 중.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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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1
점과 획의 시간

점과 획의 시간 ― 한강, 『빛과 실』1)로 『바람이 분다, 가라』2) 다시 읽기 이지연 1. 코스모스의 정원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별의 자녀들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우주(宇宙)’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오늘, 위아래와 사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기원전 4세기경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 이 말은 천지만물(天地萬物)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아우르는 세상의 총체를 뜻하는 것이었다.3) ‘우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에는 스페이스(Space), 유니버스(Universe), 코스모스(Cosmos) 세 가지가 있는데 각각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그중 ‘코스모스’는 혼돈, 무질서를 뜻하는 ‘카오스(χάος)’의 반의어로서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됐다. 1980년 칼 세이건은 천문학과 우주에 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목적으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거기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방영되자마자 전 세계 인구의 3%가 시청했다는 이 프로그램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면서 현재까지 1,000만 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칼 세이건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코스모스』가 처음 한국에서 번역된 것은 원본 출간 이듬해인 1981년이었다. 당시 번역자인 서광운은 ‘Cosmos’를 ‘우주’라고 번역했고, 이후 2004년 홍승수의 번역본에서는 원어 그대로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썼다.4) 그가 번역한 『코스모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5)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한 번에 오가는 ‘모든 것’의 이치가 우주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우주는 ‘스페이스’도 ‘유니버스’도 아닌, ‘질서’를 뜻하는 이름 ‘코스모스’로 불린다. 600쪽에 달하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세이건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나아가 모든 생명체는 그 탄생부터 소멸까지 모두 코스모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일부로서 코스모스의 자손이자 미래이다. 올해 4월, 문학과지성사는 한강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작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진행한 기념 강연의 제목을 땄고, 표지에는 그의 작은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흑백 사진이 실려 있다. 온통 까만 배경에서 유독 흰 사각형의 무늬가 눈에 띈다. 책에 수록된 산문 「북향 정원」에서 한강은 볕이 들지 않는 정원에서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울을 이용해 햇빛을 모아 주어야 한다고 썼다. 거울에 반사된 빛의 형상인 듯한 그것은 &l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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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1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 - 김멜라의 「이응 이응」1)을 읽으며 ‘사랑’을 생각하기 송연정 동그란 이응 “성욕은 만지고 닿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 다를까.”2)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만, ‘사랑 없는 섹스’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든 다르긴 다를 것만 같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무수한 열망 중 하나가 성적인 끌림으로 발현될 수는 있지만. 성적으로 결합했다고 해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다소 난감하다는 쪽이 우리에게는 훨씬 익숙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이러한 태도에서라면 성욕과 사랑 중 우위를 점한 쪽은 아마도 사랑이다. 사실 성욕은 사랑이 아닌 그 어떤 감정과 붙어도 대부분 진다. 적어도 성욕이 순전히 육체적인 충족만을 위해 발동된다는 전제하에서는 말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끌려 마침내 두 영혼이 공명하는 일은 낭만적이며 아름답고 심지어 숭고하지만, 몸과 몸의 결합은 충동적일뿐더러 한때이고 가끔 추잡하기까지 한 것 같다. 몸을 열등한 것으로 깎아내리며 그와 관련한 일체의 욕망을 부정하고 터부시하는 일은 우리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3) 그러나, 만지고 닿고 싶은 마음은? 상대를 만지고 싶고 또한 상대의 손길이 나에게로 향했으면 하는 애욕은, 어쩐지 성적인 뉘앙스를 함의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정서적인 이끌림을 수반하는 것도 같기에 더욱 미묘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김멜라의 「이응 이응」은 ‘이응’이라는 둥근 캡슐을 통해 성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나아가 앞선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마련해 본다. 「이응 이응」의 세계관에서 이응은 공원이나 목욕탕, 미술관이나 도서관, 학교와 주민센터와 병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용화된 기계이다. 사람들은 거대한 물방울처럼 생긴 캡슐 형태의 이응으로 들어가 “손오공의 머리띠처럼 생긴 은색 띠를 머리에 두르기만 하면 됐다.”(32쪽) 남성과 여성 혹은 그 너머의 스펙트럼 속 정체성의 명도를 조절하고, 성적 끌림 대상과 정서적 끌림 대상, 끌림의 크기, 받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곳··· 이외에도 몇 단계의 설정을 완료하고 나면 이응이 작동한다. “근육의 수축과 경련 그리고 이완. 오감을 채워 주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양극과 음극의 전기 자극에 따라 맥박수와 혈압이 상승하고 나중에는 모든 긴장이 풀리며 상쾌해진다. 무의식 상태로 들어서게 하는 델타파부터 휴식과 이완을 주는 알파파까지. 이응은 단계별로 뇌파의 변화를 유도해 우리의 몸과 의식을 열린 상태로 만들어” 주는(30쪽), 그야말로 청결하고도 건강하며 합법적인 성욕 해소 기계인 것이다. 이응의 현자는 바야흐로 새로운 로맨틱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번식과 성욕, 사유재산이 만들어 낸 오랜 통치술의 사슬을 끊어 내고, 진실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친 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반려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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