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학계 주요 현황 분석
- 작성일 2020-01-01
- 댓글수 0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최근 문학계 주요 현황 분석
이민호
1. 문학 단행본 발간 현황
(사)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출판 현황은 다음과 같다.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총 63,476종(2017년 59,724종)이며, 발행 부수는 101,737,114부(2017년 83,656,330부)다. 2017년에 비해 발행 종수는 6.3% 증가하였고(전년 대비 2017년 1.9% 감소), 발행 부수는 21.6% 증가하였다(전년 대비 2017년 5.7% 감소). 종당 평균 발행 부수는 1,603부로 전년(1,401부) 대비 14.4% 증가하였고, 권당 평균 정가는 1만 6,347원으로 전년(1만 6,091원) 대비 1.6% 증가하였으며, 평균 면수는 279쪽으로 전년(284쪽)보다 1.6% 줄었다.(〈표1〉 참조)
이러한 통계를 볼 때 지난해와 비교해 발행 종수의 증가에 비해 발행 부수의 증가 폭이 큰 현상을 보였다. 발행 종수에 비해 발행 부수가 비례 수치를 넘어 증가한 것은 권당 평균 정가의 소폭 증가에도 새로운 책의 출판 욕구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권당 평균 정가의 상승을 볼 때 평균 면수를 줄여 발행 부수를 늘렸다. 책 경량화 추세와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1. 2018년도 출판 현황〉
* 출처 : (사)대한출판문화협회
이러한 출판 상황에서 문학도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간 발행 종수는 2017년 12,904종에서 3.4%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발행 부수는 2017년 15,416,048부에서 7.5% 감소하였다. 출판 종수는 늘었지만 부수는 줄어든 상황이다. 이는 새로운 출판 생산자의 진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소비 욕구는 그에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신간 발행 종수 점유율 21.61%에서 2018년 21.03%로 감소추세인 것에서도 문학도서의 출판 위축을 확인할 수 있다. 신간 발행 종수 점유율의 감소 추세 또한 전년에 18.43%에서 14.02%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문학도서의 평균 부수는 1,086권으로 전년 대비 10.6% 감소했다. 그러나 책값은 평균 12,419원으로 3.5% 증가했다. 종수를 늘리는 데서 오는 출판 부담을 부수를 줄이고 책값을 높게 책정하는 데서 보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 공공 분야 '공유경제 플랫폼' 기획 취지가 창작 활성화와 유통확대에 있는 것에서 볼 때 문학 종수를 꾸준히 늘려가려는 생산 주체들의 성향과 출판 인프라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공유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서정가제와 관련해 출판유통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높은 책값 책정에서 짐작할 수 있다. 독자의 소비 가능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적선의 책값 유통이 플랫폼에서 만들어져야 서로 이익을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철학 도서의 증가율이 전년 대비 19.4%를 넘어 증가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비록 전체 출판 도서에서 점유율이 3.54%에 불과하지만 전체 출판 도서 평균 증가율 6.3%를 훨씬 뛰어넘고 있으며 문학도서의 높은 점유율에 비해도 높은 증가율이다. 문학이 본래 친연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인문학적 바탕임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독자가 추구하는 삶의 문제가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이 이런 현실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지 창작 활성화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문제이다.
2. 문학계 주요 활동 현황
2017년을 대상으로 다른 문화예술 분야와 비교해서 문학계 활동을 살펴보면 위축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한 해 이루어진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상황을 〈문예연감〉으로 묶어 매년 발표한다. 〈문예연감〉은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 분야의 활동상황을 전시, 공연, 출판 분야를 중심으로 조사한다. 시각예술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관련 신문기사와 잡지를 검색하여 전시 내용을 통해 활동상황을 기록한다. 공연예술은 공동, 국악, 양악, 연극, 무용으로 나누어 공연 정보를 수집 기록한다. 이를 위해 공연장, 전문 잡지, 월간지를 대상으로 활동 내용을 검색한다. 문학 분야는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문학 도서를 대상으로 단행본 발간 현황을, 주요 문학잡지를 통해 게재 현황을 검색한다. 더불어 주요 문학상, 문학 행사 등의 진행상황을 기록한다.
지난 2019년 3월 12일자 문화예술위에서 제공한 보도자료(〈표2〉 참조)를 보면 2017년 전체 문화예술 활동 건수는 총 49,382건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문학 단행본 출판 12,155건, 시각예술 전시 14,619건, 공연예술 22,608건이다. 전체 예술 활동 가운데 공연예술이 45.8%의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어서 시각예술 29.6%, 문학 24.6% 순이었다. 통계를 볼 때 문화예술 활동의 영역별 분포는 매년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흐름을 볼 때 모든 분야에서 활동 건수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학은 2016년(+1,920건)에는 큰 증가를 보였으나 2017년에는 전년 대비 370건 증가하여 그 폭이 작았다. 이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져 앞서 살펴본 (사)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442건의 증가를 보였다.
〈표2. 분야별 문화예술 활동 건수 및 비율〉
문학 분야의 도서 유형별 현황(〈표3. 참조〉)을 살펴보면 2017년 총 도서 출판 건수 12,155건 중 국내 도서가 8,877건, 번역 도서가 3,278건으로 나타났다. 국내 도서 중 일반 단행본의 출판 비율이 83.5%로 아동 단행본 16.5%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번역 도서의 경우도 일반 단행본이 64.0%로 높게 나타났다.
국내 도서의 경우 일반 단행본의 증가를 필두로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국내 일반 단행본은 2016년 6,846건에서 7,409건으로 563건 증가했다. 반면 번역 도서는 2017년도에 감소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일반 단행본은 117건, 아동 단행본은 73건 감소했다.
〈표3. 문학 분야 도서 유형별 출판 건수 및 비율〉
앞서 살펴보았듯이 문학 분야가 여타 시각, 공연예술과의 관계는 균형점을 이루며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에서 문학 분야가 세부적으로 약간의 활동 위축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그 위상을 심각하게 상실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예술위원회가 도모하는 '공유경제 플랫폼' 문학장 구축에서 볼 때 문학 생태계의 변화를 유도할 시점으로 보인다. 문학이 시각과 공연예술의 경계를 넘어 통섭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문학 내부의 활동에서 벗어나 문학장의 확대를 꾀해야 할 것이다.
문학 분야에서 도서 유형별 현황을 볼 때 그동안 문학 출판을 선도했던 아동 출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 출판의 확대와 출산율 저하 등 여러 환경 변화에 기인하겠지만 이를 계기로 문학창작 주체와 소비 주체를 다시금 설정해야 할 때로 보인다. 특히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 공유영역 확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경계 허물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3. 문학도서 장르별 발간 현황
2017년 문학 단행본 발간 현황을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자료를 토대로 장르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4.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문학도서 장르별 발간 현황〉
2017년 단행본 시집은 3,411종, 소설집은 5,912종, 수필 및 산문집은 2,382종, 희곡집은 114종, 평론집은 280종으로 총 12,099종이 납본되었다. 2016년 납본 현황과 비교할 때 2.9% 증가에 그쳤다. 시집류의 증가폭은 9.6%로 꾸준히 동일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소설의 증가폭은 시집류에 비하면 눈에 띄게 떨어진 상태다. 2016년 소설류에서는 번역 소설이 국내 소설이 차지하는 비율이 54%였는데 2017년에는 52%로 다소 감소한 추세다. 여기에 아동 소설류가 국내, 번역을 포함 2,288권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국내, 번역을 막론하고 창작의 열세라고 보기보다는 독자층의 축소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희곡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그에 비해 평론의 증가폭은 크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평론의 경우 과거 2000년대 초중반의 흐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수필, 산문과 시집류의 지속적인 증가와 소설류의 위축에서 눈여겨볼 점은 시와 수필류는 창작 주체가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창작 주체가 곧 소비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면 공유경제 플랫폼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학장의 각 주체들이 유연하게 서로 교차해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평론의 위축은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담론의 생산과 소비의 일방적 흐름에서 벗어나 상호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7년 문학 양상을 문학의 하향평준화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수준의 경계조차 허물 상상력이 필요하다.
4. 문학잡지 작품 발표 현황
2017년 발행된 문학잡지의 종수는 1,956종이다. 이는 잡지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권의 종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계간지인 경우 4종으로 계산한 것이다. 2016년의 경우 1,853종이었다. 이를 볼 때 잡지는 지속적으로 새롭게 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류와 비주류를 막론하고 문학장은 변신을 거듭하며 팽창하고 있다는 표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산발적이며 서로 교류하지 않는 폐쇄성이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장의 플랫폼이 시급히 마련되어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함으로써 이 괴리를 해소해야 하리라 본다.
〈표5. 문학잡지의 문인 작품 발표 현황〉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등록 문인 수는 7,189명이다. 이를 〈표5〉에 대입해 보면 2017년 문인 1인 평균 21편의 작품을 생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개략적 추정치이다. (사)한국작가회의 회원은 2,336명이고 (사)한국문인협회의 회원은 14,621명이다. 서로 중복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6,957명 이상의 문인이 현재 활동하고 있다. 이를 대입해 보면 적어도 2017년 한 해 문인 한 사람당 9편 이상의 작품을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별로 작품 발표의 편중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점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분포를 짐작할 수 있는 수치이다.
이러한 통계는 문학장의 평균적 흐름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013년 주요 문학잡지의 문인 작품 발표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2013년 통계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후 〈문예연감〉의 검색방법이 달라져 개별 문인들의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표본으로 삼고자하기 때문이다.
〈표6. 2013년 주요 문학잡지의 문인 작품 발표 현황〉
〈표6〉을 보면 2013년 1인당 문인 평균 발표 작품 수는 13편이다. 2017년의 경우 1인당 9~21편을 발표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균 잡아도 1인당 문인 작품 발표 수는 15편을 기준으로 가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장르별 문인 1인당 작품 발표 수를 보면 2013년의 경우 주요 잡지 77개를 대상으로 하여 시의 경우 평균 4편(시조, 동시 포함), 소설은 1.4편(동화 포함), 수필은 1.7편, 평론은 2.3편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평균 개인 작품 발표 수를 2017년에 적용해 보면 어느 정도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감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적어도 시의 경우 29,000여 명의 시인이, 소설은 2,350여 명의 작가가, 수필은 150여 명의 작가가, 평론은 3,187명의 평론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 더 상회하리라 본다. 여기에 외국 작가와 시인을 제외하면 순수 국내 문인의 면모가 드러날 것이다. 이 수치의 정확성은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문학 공간의 인적 인프라는 예상보다 큰 규모가 아닐 수 없다. 통계수치의 허수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문학에 대한 정부의 공공서비스가 일부 문인에 편중돼 있거나 일부 매체에 국한된 점은 부당하다. 역설적으로 문학의 공공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공유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문학 공유경제 플랫폼을 위한 제언
문학하는 일은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애초에 인간이 노동하려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아우슈비츠 비리케나우 나치수용소 정문에 걸린 구호다. 노동 찬양이 얼마나 진리에서 멀며 자유를 유린하고 위선적인지 깨달을 수 있는 역사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문학하는 일은 유희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문학 공유경제 플랫폼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세 가지가 공유되어야 한다. 첫째, 데이터 공유가 되어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넘어서 문학장에서 생산된 수많은 데이터를 하나의 공간에서 공유함으로써 현재 편중된 부조리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솔루션 공유가 되어야 한다. 공유하는 수많은 문학 데이터를 어떻게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변형시켜 향유할지 해결책을 논의하여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셋째, 이익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문학장에서 일어나는 결과물을 어느 한쪽이 편취하거나 집중해 독점해서는 안 된다. 나눠 가져야 할 것이 있어야 놀이에 전념할 수 있지 않은가.
|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추천 콘텐츠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응원의 방식 -염승숙, 「지도에 없는」 (《문장웹진》2007년 4월호) 조경란(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좋은 소설에 대한 사적인 기준 단편소설 「지도에 없는」을 지금까지 세 번 읽었다. 처음엔 2007년 4월에 《문장웹진》에 수록되었을 때, 두 번째는 이듬해 염승숙이라는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에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앞에 두 번을 읽었을 때는 나도 아직 중견작가라고는 불리지 않을 시기였고, ‘소설’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잘 알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바삐 뛰면서 소설을 쓰던 시기라면 지금은 느리게 걸으며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어느 면으로 소설에 대한 나의 견해나 취향, 좋은 소설에 대한 기준이 약간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눈으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거의 처음 읽는 소설처럼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나는 예전에는 이 단편을 나의 취향이 아니라고 쉽게 여겨 버렸을지 모른다. 이야기나 인물보다는 여러 가지 소설적 요소의 완결성과 미학적인 면에 더 집착하기도 했던 시기였으므로. 소설이 어떤 메스(mess), 즉 그것이 크기와 상관없이 ‘엉망인’ ‘헝클어진’ 상황에 인물이 놓이고 거기서 출발한다고는 여전히 여긴다. 그 메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히 파동하는 미니멀리즘 이야기에 가까우며 메스의 크기가 크면 큰 소동, 리얼리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말했지만, 지금의 나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란 어때야 할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몰두하면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단상을 메모해 두곤 한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조건들은 요즘은 이렇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어야 하며, 그 인물을 둘러싼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일 만큼 세심하게 구축해야 하고, 인물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결말에 그 과정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의미(meaning)가 작게라도 내포된 소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시대를 담고 있을 것. 그런 개인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읽게 된 셈이다. 그래서 놀랐다고 할까, 그리하여 놀랐다고 할까. 당시 첫 책도 내지 않았던 젊은 작가 염승숙은 혹시 십팔 년 후에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십 대 청년들의 삶이 미래에도 변하지
- 관리자
- 2025-07-01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 한창훈,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문장웹진》2007년 5월호) 서경석(문학평론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25년 3월에 2007년을 읽는다. 그 해 에 수록된 소설들. 작품을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김재영, 명지현, 한창훈이 눈에 띈다. 김재영의 소설은 중년 남성의 퇴직 후 삶을 그린 이야기였다. 「달을 향하여」는 『폭식』의 작가가 달나라 땅도 팔고 사는 세태를 작품의 마무리로 삼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돈에 포섭되는 폭식의 세상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읽으니 소설 속 주인공이 퇴직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회현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향처럼 아늑하고 친밀한 장소가 주는 위로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안식처에 대한 추억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하다. 명지현의 작품 「입안의 송곳」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앓던 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나 끊임없이 앓고 있고 세상 속 우리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충만한 삶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한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야생의 인간처럼 뭔가를 계속 씹으며 서먹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저항할 따름이다. 한창훈의 소설 「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진정한 고향 이야기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사람이 전하니 더욱 그러하다. 작가 한창훈은 거문도가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와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낚시를 했으며,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그는 먼 곳, 먼바다를 떠돌다 거문도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삼도는 남쪽 바다의 한 섬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오직 ‘늙은이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지킨다기보다는 떠날 수 없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노인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뿌리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설령 벗어난다 해도 그 몸에 새겨진 섬 생활의 그리움 때문에 곧 되돌아오고 마는 곳이다. ‘고단할지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것은 멀쩡한 배에 구멍을
- 관리자
- 2025-06-01
[커버스토리 리와인드]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기원이 우리의 전부를 ― 조연호, 「저녁의 기원」, 《문장웹진》 2005년 08월호 신용목(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1.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도달할 수 없는 시작의 불가능한 기억으로 구성된 곳이라면 응당 과거의 한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힘의 발원을 일컫는 것이라면, 기원이 꼭 과거로 달려가 맞이하는 마지막 도착점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삶을 담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탱해 주는 것. 끝없이 현재를 보채는 것. 우리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바깥을 어둠으로 채워 놓은 것. 달려가면 달려가는 만큼 따라오는 해와 달 같은 것. 말하자면 기원은 내 몸의 외피에 꼭 맞는 공기이거나 내 기억을 감싼 테두리, 낭떠러지 허공이거나 캄캄한 망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경계의 여리고 연한 막으로 떨리며 우리를 있게 하는 것. 어쩌면 미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불편과 불쾌가 불시에 우리를 깨우며 우리에 대해 묻는 것.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달아나도 멀어질 수 없으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놓여날 수 없으므로. 아무리 깊은 슬픔과 절망 뒤에 숨어도 뚜벅뚜벅 적막한 밤길을 걸어와 끝내 우리를 찾아내므로. 그러나 한 번도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기원으로부터 추방된 채 과거의 바깥이자 미래의 바깥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의 바깥에, 나를 키워 준 고향과 친구들과 학교의 바깥에 있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는 감각. 떠돈다는 감각. 그것으로 우리의 현전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진실에 속해 있지 않고 진리에 속해 있지 않으며 더더욱 사실과 제도와 규칙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존재 자체로서 진실의 낙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진리의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며 사실과 제도와 법률의 울타리 바깥에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굶주린 들짐승일지도 모른다. 머물지 못한다는 것. 나의 바깥에서 나를 찾아서 나의 주변을 서성이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의 기원이자 그 모든 것으로서의 기원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다시 시작하는 일이 결코 시작되지 않는, 아무도 자신이지 못하고 누구도 타자이지 못하며 사랑과 미움이 혼동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며 너와 내가 갈리지 않는, 가장 어둡고 깊고 위험하며 오로지 상실만이 무성한 곳. 상실로서만 확인되고 결정되며 상실을 통해서만 접근되는 곳. 우리를 영원히 상실한 자로 만드는 것. 우리를 매 순간 상실된 자로 만드는 것. 그래서 기원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상실의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질문을 안고 침몰한 곳에 기원
- 관리자
- 2025-05-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