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곡곡] 경북 영주 샘터서점(제1회)
- 작성일 2021-07-01
- 댓글수 0
[책방곡곡]
경북 영주 샘터서점(제1회)
- 모임 / 2021-06-25, 저녁 7시, 샘터 3층
: 동시, 똑똑!
사회/원고정리 : 권화빈
참여자 : 의상대사, 우옥영, 김미경, 우병훈
책읽기 모임 ‘영주시 100인 독서클럽 휴(休)’ : 책을 통해 삶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
권화빈(사회) :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벌써 올 한해도 절반이 다 돼 가는군요. 그 6월 막바지에 “휴”를 만나 책 이야기를 진행할 사회 권화빈입니다. 오늘은 박덕희 동시인의 동시집 『호랑이는 풀을 안 좋아해』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동시집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20년 제3차 문학나눔에 선정된 도서이지요. 다들 잘 읽어보셨나요? 쉬울 듯하지만 생각보다 잘 읽지 않는 책이 동시집일 수 있어요. 어른이 되어 자꾸 닳아져 가는 동심을 생각하니 내가 어쩐지 자꾸 미워지기도 합니다. 이 동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간의 근황을 조금씩 주고받았으면 해요. 아직도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여전히 불안하시지요.
우옥영 : 불안, 초조, 긴장, 된장 간장의 연속! (박장대소)
김미경 : 뭐랄까. 내 생활이 박제된 기분입니다. 하루하루가!!! 그래도 이런 독서 모임이라도 있어서 퍽 다행이지요. 큰 위로와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이런 때를 대비해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 둔 것 같아요. (웃음) 여기 오면 마음이 엄청 맑아지고 내가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
의상대사 : 미경 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갑자기 팔팔해집니다. (웃음 진동)
우병훈 : 저도 그래요. 그냥 숟가락과 젓가락 하나 얹어놓을게요. 세상 그 어느 모임보다 맘 편한 모임인 것 같아요. 천국이 따로 없어요. (웃음)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 자주 해요. 달콤하게 ~~ ㅎ 한 달에 꼭 책 한 권씩 잊지 않고 읽게 하고 문학답사도 가게 하고. 참 행복합니다.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맘속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차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내가 말끔히 정화되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권화빈 : 아이고, 좋은 말씀 다 하셔서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요! 저도 여기에 오는 날이면 왠지 아침부터 맘이 설레집니다. 꼭 금모래 반짝이는 강으로 봄 소풍 가는 기분입니다. 그럼 이제 슬슬 동시집 이야기 좀 하기로 해요. 긴장은 푸시고 맘 편히 동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도록 해요. 이 시집을 다 읽고 마지막 쪽을 덮을 땐 괜히 맘이 애쪼근해지고 한편으론 잔잔한 웃음이 번져나게 하기도 하지요. 갑자기 팝콘 같은 게 떠올라요. 경쾌해진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 같은 게 느껴집니다. 시를 읽는 재미도. 아마 이때가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시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상대사 : 예. 저도 김밥 챙겨 나들이 가는 것 같아요.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멈추지 않아요.
우옥영 : 예. 저는 3일 전부터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심했어요.
권화빈 : 그래요. 지극 정성이십니다. 아마 좋은 이야기 많이 나올 것 분명합니다.
우병훈 : 이 동시집을 읽는 순간부터 좀 많이 끌리더라고요.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생각 많이 해봤습니다. 같이 얘기 하다 보면 좀 더 구체화 되겠지요.
김미경 : 저도 많이 끌렸어요. 자석 같은 게 있어서 마구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어요.
권화빈 : 모두 하나같이 좋은 말씀만 족집게로 뽑아오신 것 같아요. 이유도 한 번 탐색해보도록 하겠습니자. 출 ~~ 발!(다함께 박수)
우옥영 : 그럼 먼저 시 한 편 읽어볼게요. 22쪽에 있는 ‘말이 돼?’라는 십니다.
고양이 보고 / 한 발 들고 / 전봇대에 쉬하라고 / 한다면?//
병아리 보고 / 오리 따라 / 연못에서 헤엄치라고 / 한다면? //
방과 후 / 시소, 그네, 미끄럼틀 / 못 본 척하고 / 학원 버스 타야 한다면? //
흐릿한 저녁별 보며 / 집으로 돌아오는 내가 /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
(일동 박수)
김미경 : 아, 정말이네요. 요즘 아이들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것 같아요. 실감 나게 콕, 집어서 썼어요.
의상대사 : 저는 왠지 슬퍼집니다.
우병훈 : 애처로 와요.
권화빈 : 저도 그렇습니다. 남의 일 같질 않아요. 학교가 갑자기 미워집니다.
우옥영 : 에고~~(긴 한숨) 이런 절실한 표현들이 나를 끌어당긴 것 같아요. 너무 가슴이 저려요.
권화빈 : 이 한 편의 시를 통해서 교육제도의 모순도 발견할 수 있겠지요?
김미경 : 그 시가 자꾸자꾸 내 가슴을 찌르고 들어옵니다. 아이 시절엔 좀 열심히 뛰놀아야 건강하게 잘 자랄 텐데.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우리 교육 풍토와 환경이 엄청 큰 문젭니다.
우병훈 : 맞아요. 교육제도를 많이 바꿔 이이들이 맘 놓고 어울려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의상대사 : 저도 이 시를 읽고 그만 울컥, 했어요. 꼭 이래야 하나! 라고 되뇄습니다. 우선 저부터 반성문을 쓰겠습니다. (웃음)
권화빈 : 좀 맘 가라앉히시고 이번엔 좀 다른 시를 살펴볼까요? 좀 펀(fun)한 것! 없나요? 제가 한 편 소개해 보겠습니다. 함께 읽어봐요. 16쪽입니다. (함께 낭독)
주문을 외웠다
일 분 지각한 벌로
운동장 풀을 뽑았다
고개 내밀다가
뽑힌 풀들
선생님 몰래
화단에 심었다
점심시간
밥 한 숟갈 거름으로 주고
물도 한 컵 주었다
무럭무럭 자라서
교무실 덮어버리고
교실도 운동장도 교문도 덮어 버려라
- ‘주문을 외웠다’ 전문
의상대사 : 우와~ 엄청 재밌네요.
김미경 : 아이의 분노 표출을 이렇게 하는군요. 선생님께 대들 수는 없고 대신에 풀 뽑기를 통해 몸속에 숨어있는 적의?를 객관적 상관물인 풀을 가지고 내 마음을 고스란히 내보이는군요. 아주 재치가 넘치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병훈 : 아이들 시에도 객관적 상관물이 있군요. 말 나온 김에 좀 자세히 짚어봤으면.
우옥영 : 언어유희는 절대 아닌 것 같아요.
권화빈 : 좋아요. 그럼 객관적 상관물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의 표현 기법으로 시 쓰는 이가 표현하려는 자기 개인의 정서나 감정, 사상을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나타낼 때 이를 표현하는 사물과 사건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건을 통해서 객관화하려는 시 창작 기법이지요. 사람의 심리나 정서, 사상을 사물이나 자연물에 의탁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조금 전 읽어본 동시도 풀이라는 자연물을 통해서 아이의 감정 상태를 표현했다고 보면 됩니다. 이처럼 동시에도 자주 쓰이는 방법입니다. 유명한 ‘황무지'를 쓴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에 의해 사용된 개념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시인들이 자주 써먹고 있지요. 우리 말로 하면 감정이입이라고나 할까요. 우리의 민족시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진달래가 바로 객관적 상관물인 셈. 진달래에 화자의 감정을 집어넣어 심리상태를 표현했습니다.
김미경 :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많은 시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걸 알겠군요. 특히 김소월의 시 산유화도 그렇군요. 우리가 지금 동시집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들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겠네요.
의상대사 : 이제 뜻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옥영 : 맞아요. ‘호랑이는 풀을 안 좋아해’서도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겠어요.
권화빈 : 자, 이제 동시란 말의 개념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동시란 무엇일까요?
우병훈 : 아이가 쓴 시!
김미경 : 저도 그런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우옥영 : 저도요.
의상대사 :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권화빈 : 좋아요. 좀 더 구별해보면 동시란 1) 아이가 쓴 시 2) 어른이 아이를 위해 쓴 시로 볼 수 있겠어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는 박덕희 동시인이 쓴 시집이 2)에 해당하고 전에 읽었던 밀양 상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시 모음집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에 실린 시들이 1)에 해당하겠습니다. 그러나 밀양초등생이 쓴 시 모음집은 ‘어린이시’란 말을 써서 ‘동시’와 구분하고 싶어요. 이 말은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이 강조하신 용어지요. 아이들이 어른 흉내만 내려고 하는 데서 좀 분리해 놓으려고 쓴 말이지요.
김미경 : 아, 그렇네요. 듣고 보니.
우옥영 : 어린이시란 말이 좀 더 아이들 세계에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요.
의상대사 : 이제부턴 동시와 어린이시란 말로 구분해요!
우병훈 : 저도 공감합니다. 좋아요.
(일동 박수)
권화빈 : 아이들에게 동시를 쓰라면 힘들어하지만 어린이시를 쓰자고 하면 좀 쉽게 생각하지요. 실제 아이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가지고 쓸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기교만 부리는 손끝에서 나온 시는 죽은 시라고 보면 됩니다.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해요. 교육 현장에서도 이런 용어를 써서 시 쓰기 수업이 좀 더 쉽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는 방향을 좀 바꾸어 각자가 뽑은 시 한 편씩 소개하고 느낌을 나누며 ‘시맛’을 볼까 해요. 누가 먼저?
‘영주시 100인 독서클럽 휴(休)’ 회원들
의상대사 : 많이 궁금해집니다
김미경 : 좀 더 실감 나겠어요.
우병훈 : 실제 감상으로 이어져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권화빈 : 그럼 의상대사 님부터 소개해주세요.
의상대사 : 저는 39쪽입니다. ‘안동댁’ (낭독)
안동에서 태어나
스무살에 시집 와
오십 년 넘게
춘천에 사는 할머니
안동보다
더 오래 춘천에 살아도
안동댁으로 불리는
할머니
안동댁으로 춘천에서
오래 살면 좋겠다
- ‘안동댁’ 전문
김미경 : 한 번 불려진 이름은 정말 고치기 힘들어요. 별나라 가서도 그렇게 불려지겠어요.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납니다. 옛날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요.
의상대사 : 저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소개했습니다. 읽고 나면 맘이 왠지 편안해져 옵니다.
우옥영 : 안동보다 / 더 오래 춘천에 살아도 / 안동댁으로 불리는 / 할머니저는 이 구절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병훈 : 사람은 고유의 색깔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정체성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권화빈 : 모두 멋진 생각을 하십니다. 나름대로 다 보는 시각이 확실합니다. 다음엔 김미경 님께서 소개해주시죠.
김미경 : 저는 ‘만유인력’을 선정했습니다. (낭독)
만유인력
키 크고 싶어
열심히 먹고
틈만 나면 키를 잰다
잴 때마다 그대로인 키
스테이크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초콜릿 케이크 콜라
포테이토 쿠키 스트레스
몸무게만 늘리는 외국어
- ‘만유인력’ 전문
김미경 : 정말 이 시는 그대로 내게 다가왔어요. 요즘 초등학생을 왕창 떠올리게 해요. 제게 감정이입이 된 시입니다. 요즘 아이들 입맛을 알게도 했습니다.
우병훈 : 전 무척 걱정됩니다. 우리 토종 음식들이 홀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워요. 화도 납니다. 우리 음식에 대해 좀 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우옥영 : 우리 음식 중에 떡볶이가 있는데 요즘 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 옵니다. 우리 전통 음식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의상대사 :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봐요. 아이들 입맛도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그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토속음식도 사랑받는 음식으로 많이 알려 아이들이 접할 기회를 얻었음 합니다. 토속음식 전시회 같은 행사도 가끔 했으면 합니다.
권화빈 :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다음은 우병훈 님 차례입니다.
우병훈 : 저는 ‘덕분에’를 읽겠습니다. 69쪽입니다. ( 낭독 )
덕분에
손녀 덕분에
잘 먹었네!
엄마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잘 먹었어요!
우리 집 밥상에서
돌고 도는
말
덕분에
- ‘덕분에’ 전문
권화빈 : 세상이 다 이런 맘으로 생각하며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남에게 늘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 살아요. 잘 안 되지만 (일동 웃음)
의상대사 :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하고 사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졌으면! 틈만 나면 속이려고 하는 세상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옥영 : 그래요. 가끔씩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막을 건너려면 오아시스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 삶도 남을 먼저 배려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김미경 : 맞아요. 정말 덕분에라는 말 중요해요. 역지사지하는 맘으로 서로를 대했으면 해요.
권화빈 : 그래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소년처럼 받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덕분에란 말은 결국 내가 먼저 남을 생각하고 남을 먼저 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말하고 깨우쳐주는 것 같습니다. 동시지만 깊이 있는 주제라고 봅니다. 다음 마지막 차례군요. 잘 선정했겠지요.
우옥영 : 저는 동시에 대한 시를 하나 골랐어요. 77쪽에 있는 ‘전국 동시 세일’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전국 동시 세일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
걸린 현수막
‘전국 동시 세일’
전국에서 모여든 동시들 사이
동시 세 편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한 번도 팔아본 적 없는 내 동시는
몇 퍼센트 세일하면 될까?
동시에 세일하면
동시에 팔릴 수 있을까
- ‘전국 동시 세일’ 전문
김미경 : 아주 재밌는 시입니다. 동음이의어를 잘 구사해서 깊은 의미를 건져 올렸습니다. 동시인의 탄탄한 언어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예가 되겠어요. 상상력이 무척 풍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상대사 : 언어 구사력이 대단해요. 상투적인 듯하면서 그렇지 않아요. 동시에 대한 가치를 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우병훈 : 현대인의 물질 추구에 대한 비판을 읽었습니다. 삶의 가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은연중에 깨우치게 하고요. 무릎을 탁, 치게 하는군요.
“휴” 모임 이야기 책 『호랑이는 풀을 안 좋아해』
권화빈 :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한 분 한 분 돌아가면서 (질러가지 마시고 ㅎ) 한마디씩 하고 그만 끝내도록 해야겠어요. 간식도 먹어야 할 것 같고 녹차라떼 생각도 나고. 요약 발언 듣겠습니다!
의상대사 :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동시를 잊다시피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늘 내 손 가까이 두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내 닳아버린 동심도 이 동시집을 통해 다시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소중한 시간이었지요. 감사드려요.
우옥영 : 이 동시집 제목이 아주 정감있게 다가왔습니다. 친근하면서도 따뜻한 이웃사촌 같은 마음을 맛보았습니다. 시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이고 그 가치를 좀 더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꼭꼭 챙겨 잊지 않을래요.
김미경 : 동시 맛을 제대로 봤습니다. 호랑이가 오늘 밤 내 방문을 열고 찾아올 듯해요! 시어 한 구절 한 구절이 잘 작용하여 시의 감칠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동시로도 충분히 세상을 읽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병훈 : 동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대로 된 동시 맛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어 한 자 한 자가 주는 묘미를 아주 소중한 재산으로 내 삶의 목록에 추가시켰습니다. 갑자기 동시가 친구가 되어 내 굳게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권화빈 : ‘동시, 똑똑’이라는 주제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말 그대로 동시의 門을 똑똑 두드려 열고 신비한 동시의 세계를 양껏 여행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62편의 동시를 감상하면서 시의 또 다른 맛을 마음 깊이 음미했습니다. 주제, 시어를 다루는 솜씨, 절도 있는 리듬감, 이미지의 풍부함은 이 시집의 미덕이라 하겠어요. ‘용기 팝니다’, ‘콩나물’, ‘언니 교복’, ‘황금비율’, ‘차라리’ 등 미처 다루지는 못했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동시들입니다. 이제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이만 여기서 문을 닫겠습니다. 모두 모두 함께해서 고맙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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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읽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
- 독서운동가 권화빈
《문장웹진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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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의 체스 유지혜 생애 처음 체스를 배웠다. 체스는 내 왕을 사수하면서 상대의 왕을 공격하는 전략 게임이다. 내 편에는 총 16개의 기물이 주어진다. 앞줄에는 폰(pawn)이 줄지어 서 있고, 뒷줄에는 왕, 퀸 등 다양한 말들이 대칭을 이루며 자리하며 각 기물마다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 킹(king)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움직임이 적다. 생존이 최우선 인지라 보통 다른 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보존한다. 반면 작은 몸집으로 제일 많이 싸우는 건 앞줄의 작은 말 폰(pawn)이다. 그러나 나는 폰의 쓸모를 무시했다. 한 칸씩만 움직이는 폰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비숍(bishop)으로 판을 압도하고 싶었고, L자로 움직이는 나이트(knight)로는 상대가 시야에서 놓친 구석을 공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근사하고도 빨리 이기고 싶었다. 결국 큰 말을 무리하게 내세우다 졌다. 그때 게임을 같이 두던 상대가 내게 말했다. 폰, 이 쫄병을 쭉쭉 내보내는 것도 중요해. 하찮아 보여도 얘가 뭘 지켜줄지 몰라. 체스판처럼 인생에도 전략과 기세, 무엇보다 여러 번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망하지 말라고, 인생에는 젊음이라는 폰이 주어지는 줄도 모른다. 폰처럼 젊은 날은 가치는 적은 대신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기껏해야 한두 걸음 내딛는 시기. 젊음은 헐값에 좋은 것을 쟁취할지도 모를 기회이다. 하지만 스물엔 그 누구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지 않다. 앞수를 읽는 노련함은 없다. 가장 작은 몸집으로 큰 세상을 향해 나가는 폰의 시점일 뿐이다. 스스로의 위치조차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을 뿐. 좀 더 가면 헐값에 잡아먹힐 것 같다는 불안이 몰려올 수도 있다. 더 대범했어도 되었다는 건 순전히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갓 성인이 된 2011년, 나에게도 스물이라는 핑계로 얼떨떨한 용기를 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첫 애인을 사귀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다. 대신 압구정에 있는 모델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 내게 모델을 권했기 때문이었다. 지망했던 대학에 불합격한 나에게는 아득할 만큼 시간이 많았다. 뉴코아 아울렛에서 5만원을 주고 산 빨강색 게스 구두를 신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의 나는 한쪽 벽 전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워킹을 연습했다. 우리 기수에는 타고난 것으로 먹고 살고자 하지만 그렇다 할 독기는 보이지 않는 이십 대 초반 언저리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없는 건지 분간하지 어려운, 겉멋이 잔뜩 들었지만 그로 인해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발렌시아가 가방을 어디서 제일 싸게 구할 수 있는지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립스틱의 품명을, 이마 보톡스의 효과를 알았다. 그들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이들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다들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 관리자
- 2025-08-01
날마다 한 걸음 고수리 상경했던 날을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나서자마자 길을 잃었다. 인파 속에 덩그러니 나 혼자. 서울 한복판에 뚝 떨궈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삭막한 회빛, 그리고 몹시 추웠다. 눈이 푹푹 내리던 강원도는 사방이 희고도 따뜻했는데. 나는 목도리를 둘둘 고쳐 매고 한 걸음 내디뎠다. 서울은 복잡하구나. 시끄럽구나. 무심하구나. 아무도 웃지 않는구나. 애꿎은 지하상가를 헤매다 얽히고설킨 출구를 빙빙 돌다가 겨우 개찰구를 찾아 전철표를 샀다. 전철을 타 보는 것도 혼자선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전철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노선도를 올려다보았다. 풀빛으로 주욱 이어진 선을 따라 도착할 역사는 ‘온수(溫水)’. 따뜻한 물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위안처럼 스몄다. 온수역에 내려 자취방을 찾아갔다. 대로변 가로 이어진 인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새겨진 해태상을 맞닥뜨렸을 때, 기이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돌아보니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특별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바로 맞은편에는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아니, 이 기이한 기분의 실체는 기시감일지도. 불안하고 난처한 마음 한구석에 익숙하고도 지긋한 체념이 몰려왔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서울과 부천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한 걸음 넘어섰다. 거기에 내가 살 방이 있었다. 내 사정 역시 고학생들의 유구한 상경의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으니, 학교 근처에 가장 싼 방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상경해 처음으로 얻은 방은 월세 18만 원짜리 남녀공용 고시원 방이었다. 한낮에도 침침한 복도를 걸어가 방문을 더듬어 열 때마다, 엄마가 이 방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광등부터 켰다. 창문 없는 길쭉한 방. 방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관 속에 눕는 기분이었다. 얇은 합판을 덧대어 가른 방은 방음이 되지 않았고,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와 통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에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살아 있구나 실감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대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 있었다. 밤마다 돌아가는 고시원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3년을 유학하고, 졸업 후에 잠시 강원도 삼척시에서 지냈다. 삼척은 엄마의 고향이자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도시지만, 거기도 선뜻 내 고향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떠돌며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함구해야 할 사정이란 게 삶을 짓누를수록 나는 가벼워져야 했다. 짐 하나만 꾸리면 잠시나마 살아갈 사람처럼, 짐 하나만 꾸리면 언제라도 사라질 사람처럼. 갑작스럽고 비밀스럽게 떠나며 살아
- 관리자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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