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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지 않고

  • 작성일 2023-02-01

마주 보지 않고

유선혜


말하자면, 섬과 섬 사이에도 땅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계속 여기에 서 있고


파도가 바다 쪽으로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피가 거꾸로 흐르면 안 되잖아. 심장에 있는 판막은 혈액이 거꾸로 흐르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해준다. 우리는 정해진 방향으로만 서로를 바라보고


나는 우리의 언어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바다는 하늘과 아무래도 다른 채도지만


흐름이 틈새를 서서히 실어 나른다.


섬의 공기는 고막을 뚫고 고요를 만들고. 나무 나무, 풀 풀, 돌 돌, 구멍이 나버린 숲 숲, 그리고 귀 귀


찰랑인다는 말을 고르고 싶지는 않은데 꽤 선명하게 보이는 걸 어떡해. 목소리가 섬과 섬을 가로막고 있잖아. 저기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다.


머리끝까지 젖고 말 테지만.


피는 전승되는 거잖아. 네가 노루의 엉덩이가 하얗다고 말하면 나도 이내 그 말을 알아듣고 노루의 엉덩이를 빤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야. 근데 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해안에는 부서진 조개껍데기와 유리가 흩어져 빛난다. 발이 유리 조각에 맞닿아도 상처가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니니. 굳은살이 시간을 막아 줄 수도 있다. 사이에도 틈이 없을 수 있다. 빛이 제멋대로 번지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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