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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의 자리

  • 작성일 2013-09-30
  • 조회수 381

예목은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산책 중에 사고를 목격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예목은 보통 바깥기온보다 3도 정도는 더 높은 것 같은 방안의 열기를 피하러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정기적으로 집 근처를 산책하곤 하는데, 그날도 그는 어제나 그저께처럼 예정대로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산책하기 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돌아왔을 때 방안도 꽤나 시원해져 있고, 그런 노력을 조롱하는 듯 씻고 나서 가만히 있다 보면 또 덥다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만, 여름이 더운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목이 다니는 산책로는 호수를 옆에 끼고 있는 차들이 적게 다니는 길이었는데, 보통은 그 길로 쭉 걸어가 외딴 곳에 위치한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산 후 올 때와 같은 길로 되돌아가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반값할인을 하기 때문에 단 것 중에서 가격이 싸기도 했고, 게다가 시원하기까지 한지라 아이스크림을 먹다보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예목은 항상 산책을 하게 되면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다시 되돌아가, 그날도 역시 산책에 겸해 마트로 향하던 중, 산책로 중간에서 예목은 트럭이 사람을 들이박는 걸 목격했다.

느닷없는 사태에 당황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치인 사람은 20대로 보이지만 실제론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이었다. 방금 지나쳐갔던 사람이었다. 떠올리려 하니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근처에 사람이 얼마 없던 지라 얼굴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선한 인상의 남자였다.

이렇게 갑자기 죽다니. 예목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사고현장을 바라봤다. 딱히 뭔가를 보려고 사고현장에 시선을 둔 것은 아니었다. 옆에서 신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예목은 안도하면서, 그제야 단순히 현장을 눈에 담고만 있는 게 아니라 트럭에 치인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 살펴봤다.

남자는 가로수와 트럭 사이에 끼여 있었다. 가로수와 범퍼는 어쩜 사람 몸에 저렇게 피가 많을까 싶을 정도로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이곳저곳에 내장의 파편도 보였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트럭은 길을 건너려 갑자기 차도로 들어선 한 중년 여성을 피하려다가, 마침 방향을 튼 위치에 그 남자가 있어서 남자를 들이박은 것이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밞았는데도 그대로 속도에 못 이겨 가로수까지 밀어붙인 것이었다. 죽을 뻔 했던 중년여성은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있었다.

예목은 다시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의 몸은 짓이겨져 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오른쪽 팔은 충돌할 때 떨어져 나간건지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다고는 보기 힘든 상태였다.

예목은 혀를 차고는 다시 산책로를 걸어갔다. 마트에 들렀다가, 마트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막대를 인도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버린 후 가벼운 몸으로 집에 들어섰다.

샤워를 하고 개운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은 후에야 자신의 오른손이 팔꿈치 아래만 남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오른팔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절단면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흘러나올 듯 시뻘갰으나 물기만 번들거릴 뿐 전혀 새어나오는 것이 없었고, 새하얀 뼈에서는 푸르스름하고 기이한 광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목은 기겁하며 오른팔을 내던져버렸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었다. 왜 자신의 손에 저 오른팔이 들려있는 것인지, 저 팔이 진짜 팔인지, 왜 자신의 손에 들려있다는 걸 여태 모르고 방금 전에야 알아차린 것인지, 언제부터 들려있던 것인지, 등등. 머릿속을 떠도는 의문은 당연한 것들뿐이었으나 풀릴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던져버린 팔은 벽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예목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원망스럽게도 이렇게 새파랗게 질린 상태에서도 저 오른팔을 방안에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예목은 숨을 고른 후, A4용지를 한 장 꺼내들고 천천히 접근했다. 자기 피부에 닿지 않게 A4용지로 감싸서 팔을 들어올렸다. 팔은 예전 주인이 비쩍 마른 사람이었는지 뼈만 있다 싶을 정도로 가늘었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그래도 꽤나 무거웠다.

대체 이 팔은 뭐지? 예목은 팔을 자기에게서 멀리 둔 채 마당으로 나갔다. 잡초들이 자란 곳에다가 팔을 내려놓고, 창고에 있던 모종삽을 들고 와 땅을 파고 팔을 묻었다.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걸 들고 있었다고 하면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잘못하면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축축한 흙으로 땅을 덮고 나니, 해가 져 어두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팔을 묻은 자리에서는 뭔가를 묻었다는 티가 나지 않았다. 예목은 한숨을 돌리고 난 후 어두침침한 마당을 뒤로하고 집안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예목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예목은 자신의 오른팔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체 뭐지?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팔은 저녁에 땅에 묻은 그 오른팔이었다. 예목은 오른팔이 스스로 움직이며, 어느새 나타난 종이 위에 뭔가를 쓰는 것을 바라보았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붙들었지만 오른팔은 왼손의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글을 썼다.

무슨 글을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예목은 눈을 떴다.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지?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든 터였다.

자신의 앞에는 반듯한 글씨로 뭔가가 적혀있는 A4용지가 놓여 있었다.

예목은 걱정이었다.

책상에 앉은 기억이 없는 것이 만약 뇌의 문제라면, 단순히 잠든 곳을 착각한 정도가 아니라 심한 건망증 수준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글까지 써놓고 잊어버릴 정도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계약을 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혹시 뇌에 구멍이 생겼나?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길만한 경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짐작 가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약 1년 전에 검진을 해봤을 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었다.

예목은 막 잠이 깨 멍하니 벌려져 있던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친 적이 없건 1년이나 전에 정기검진을 받았건 전혀 넋 놓고 안심할만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아, 혹시 몽유병인가?

눈앞에 놓인 A4용지가 뭔가를 알려줄 거라 생각하며 예목은 글을 읽어나갔다.

글은 짧았다. 용지에 적혀있는 글은 이런 것이었다.

‘놀라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저는 당신의 오른팔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른팔을 빌려 글을 쓴 것입니다.

저는 몇 시간 전에 트럭에 치여 죽은 사람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오른팔로 영혼을 옮겼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예목은 혹시나 해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달라진 건 없어보였다. 만져보고 깨물어보고 두드려보고 여러 가지를 해봐도 그냥 오른팔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른팔에는 역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만화나 소설에서 보면 신체의 한 부분에 뭔가가 깃들면 이상한 힘이 생기기도 한다던데, 그런 건 없었다. 여전히 근력이 없는 팔이었다.

누군가가 상황을 꾸몄을 가능성은 배제하기로 했다. 누워있던 사람을 깨우지 않고 들어다가 책상에 앉힌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예목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면 이 부분의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는 말인데, 만약 정말로 뇌가 이상해진 거라면 자신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상담을 한다면 뇌 단면을 찍으러 가야 하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하나? 예목이 이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시야가 검게 변했다가 밝아지고 책상 위의 용지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안심해 주세요.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예목은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아니, 풀렸다. 의자에 앉아 있어서 주저앉거나 하지는 않았다. 예목이 그런 반응을 보이자 용지는 동일한 문장을 한 번 더 내보냈다. 안심할 수밖에 없군. 예목은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만 떨리고 있었다. 오른손은 전혀 떨림이 없었다.

‘안심하십시오, 예목.’

예목은 용지에 떠오른 문장을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안심하신 것 같군요.’

용지에 재차 떠오른 문장에(그렇다. 그것은 누가, 혹은 무언가가 적었다기보다는 떠올랐다고 하는 것이 어울렸다) 정신을 차린 예목은 물었다. 책상 위 용지를 바라볼지 어느새 연필을 쥔 오른손을 바라볼지 시선이 헤맸다.

“누, 누구야?”

반듯한 글씨가 대답했다.

‘당신의 오른팔입니다.’

그 문장은 장군이 휘하의 충직한 부하에게서 들을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오른팔이 하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거짓말 치지 마. 오른팔이 어떻게 말을 한다는 거야?”

“저는 오른팔이 아니었던 존재였었기 때문이죠. 저의 과거가 저를 말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과거라는 단어보다는 전생이란 말이 더 다가오지 않을까 싶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내 오른팔에……. 아니다. 그게 아니라 대체 넌 누구야? 그래, 아까 어제 저녁에 있었던 사고당한 남자라고 했지? 대체 누군데 나한테 들러붙은 거야?”

‘맞습니다. 제가 그 남자입니다. 제 정체가 뭐였느냐에 대해 답하자면, 시시껄렁한 과거사를 치워두고 표현하자면, 우연히 사고를 당한 네크로맨서, 라는 정도로 설명이 되겠죠.’

말할 때마다 족족 글자가 떠오르니 대화하기는 편했다.

“네크로맨서?”

‘사령死靈이랄까요, 사령邪靈이랄까요. 그런 necromancy를 다루는 주술사죠.’

“그 말은 즉, 내 오른팔이 다른 사람 것이 되었다는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사람이라고 불릴 만큼의 인격체는 아닙니다. 오른팔만 떨어져 나온 것이니 만큼, 오른팔만큼의 사람일 뿐입니다. 본래의 저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오른팔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굳이 말을 고르자면, 독립된 의지를 가졌다, 정도가 되겠군요.’

예목은 거의 기절할 뻔 했지만, 여기서 기절하면 자신의 몸에 대해 오른팔이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간신히 정신을 유지했다.

왼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때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손도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예목은 스스로의 의지로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두려움이 담긴 눈길로 팔꿈치까지 훑어 내려 봤다.

오른손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감각으로 책상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목은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펴봤다.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둡고 무거운 것이 가슴에 응어리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왜 당신한테 들러붙은 건가 물으셨던가요? 물어보셨건 그렇지 않건 대답해드리죠.

다른 것에 깃드는 것, 즉 빙의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조건이 맞는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고 나기 직전의 급박한 순간이었고, 그런 순간에 발휘해야 했던 만큼 대상의 조건이 좋았어야 했죠. 예목, 당신의 오른팔은 적격이었습니다.’

예목은 네크로맨서에 대해선 게임이나 소설로 밖에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오른팔이 왜 적격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의 오른팔은 움직이지 않았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달려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기능이라 봐야 보기 좋다는 것과, 신체의 좌우균형을 맞춰주는 것뿐이었겠죠.’

“그래, 맞아. 예전에 겪었던 사고 때문에 오른팔을 움직일 수 없었지.”

직접적으로 다친 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정확한 이유는 예목도 알지 못했다. 의사에게 듣기는 했지만,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렇게 된 게 몇 년째였다. 그래서 근력이 없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걸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대체 몇 년 만인지.

‘그렇기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겁니다. 부패하지 않을 뿐이지 시체와 다름없는 팔에, 시체를 다루는 게 특기인 네크로맨서가요.’

“일단 네 말은 잘 알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실제로 보고 있으니 네크로맨서라던가 그런 비현실적인 게 현실에 있다는 것도 알겠지만 말이야. 이거, 문제없는 거겠지?”

예목은 여전히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영혼이 시체에 깃들어 움직인다는 점에서 「좀비」라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입니다만,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신체라 무리하면 안 되겠지만요.’

A4용지가 글자로 가득 찼다. 오른팔이 용지를 뒤집었다.

‘제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예목, 당신의 의식은 사라집니다. 제가 움직이면 당신의 의식이 끊어지고, 제가 움직임을 마치면 당신은 의식을 되찾습니다. 이 과정에는 점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지요.’

“문제없는 거겠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사람이 자고 깨고를 하루마다 반복하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닌 것과 같죠.’

어쩌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고 잠은 안 잘 수는 없기에 학자들이 밝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예목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할 말을 골랐다.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을 나름대로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환각을 본다는 것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바로 환각으로 치부하는 건 현실적일지언정 논리적이지는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라면, 이 오른팔은 진짜로 영혼이 깃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기묘한 일이었다.

‘생각은 끝났습니까?’

“음, 좋아. 네가 인간이었다면, 너는 뭘 하려고 하는 거야? 무슨 목적이 있어서 내 몸에 들어온 거겠지?”

‘목적입니까. 그건 나중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음, 숨기고 싶다면 일단 묻진 않을게.”

예목은 오른팔을 움직여 보았다. 오른팔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왼팔보다 가늘었다. 그리고 움직임이 조금 어색했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때처럼, 필사적으로 다른 쪽 팔을 따라해 보지만, 잘 안 되는, 그런 상태였다.

영영 못 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만, 이미 쓰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있던 오른팔이었다. 예목은 빙긋 미소 지었다. 그 때, 책장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알람기능 때문에 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이 나올 시간이었다.

예목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보이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TV프로그램을 보기로 했다.

“일단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그러지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예목은 오른팔의 인격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사생활이 모두 오른팔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응? 별로. 난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다, 네가 내 사생활로 왈가왈부하진 않으니까. 게다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백수가 집에서 놀고먹고 하는 것뿐이잖아.”

자조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오른팔이 사라져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오른팔 덕분에 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서 정상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자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게 둘의 일상은 그럭저럭 잘 흘러가는 듯 했다.

어느 날 오른팔이 말했다.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응.”

‘(정확히는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른 존재입니다만)예전에 저는 네크로맨서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를 발견하신 스승님께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오른팔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예목은 주의를 기울여 글을 읽었다.

‘부모님 몰래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십 년 전에 스승님에게서 독립을 한 후, 저도 나름대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제 연구의 주제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추구하던 일이었죠. 불로불사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다고 해서 그런 걸 바로 이룰 수는 없었죠. 수없이 많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작들이 나왔습니다. 박제된 것처럼 피부부터 몸이 굳는다던가, 죽어도 살아나긴 하지만 이지를 상실한다던가. 뭐 그런 것들이었지요.

지금 그것에 대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뭘?”

‘제 실패작 중 하나인 「좀비」에 대한 것입니다만…….’

문득 예목은 한 가지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 잠깐. 문어체랑 대화하는 게 익숙해서 깜빡 넘어갈 뻔 했는데 말이야. 네가 말줄임표를 쓸 필요가 있어? 상대방한테 호기심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잖아.”

‘들켰군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좀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비? 뭐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도 그냥 픽션에서 본 정도가 다인데.”

‘좀비가 무섭습니까?’

“아, 그거 말인데. 늘 생각나더라고. 떼로 몰려들면 모르겠지만, 되게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니까 그냥 하나 둘 정도는 나도 처치할 수 있겠다 싶지 않아?”

오른팔이 1분간 침묵했다. 갑작스런 침묵에 자기가 뭔가 잘못 말했는지 걱정하며 예목은 오른팔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런다고 뭔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글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겁니다.’

“왜 갑자기? 뭣 때문에?”

‘저는 예전에 연구의 일환으로 열구의 좀비를 만들었습니다. 경과를 지켜보다가 실패작이라 여겨 파괴했습니다만, 거기서 문제를 알아차렸습니다.’

“무슨 문제지?”

‘당신이 보신 좀비 영화에서는 아마 바이러스로 좀비가 만들어졌을 거라 짐작됩니다만. 맞습니까?’

“응, 맞아.”

‘바이러스로 만들었다면 제가 폐기한 것으로 끝났을 테죠. 하지만 제가 만든 것은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영적인 존재?”

‘제가 좀비를 만들 때 쓴 방법은 사령을 빙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령이 깃들어 시체가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좀비를 없애자마자 그 사령들이 사방팔방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던 것을 저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령들은 어떻게 됐지?”

‘그 사령들은 시체에 깃들 수 있습니다. 몸이 파괴되면 움직이지 못하지만, 시체가 있으면 그 시체로 옮겨 깃들어서 다시 움직이기에, 즉 시체가 존재하는 한 계속 존재한다는 뜻이죠. 지금도 어딘가의 시체에 빙의해 있거나, 빙의할 시체를 찾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몸을 얻으면 사람을 공격하겠죠.’

“그, 그래? 그럴 수가 있구나.”

‘시체가 존재하는 한, 이라는 말은 생물이 살아있는 한, 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된다는 현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꽤나 충격적이네.”

‘제가 불로불사를 완성했었다면 시체가 나오지 않을 테니 좀비를 근절시킬 수 있었겠지만, 완성을 못했으니 좀비가 태어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생각은 주객전도네요.’

“시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불로불사를 개발한다니, 과격한 방법이군.”

‘제가 살아있었다면 좀비들을 제어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사고(어쩌면 계획적인 범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로 생명을 잃은 저에겐 좀비들을 제어할 힘은 없습니다.’

“……좀비들을 제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아 맞다, 아까 사람들을 공격할 거라고 했구나.”

‘선대의 지식들과 제가 본 것으로 추론하자면, 좀비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마이너스 감정입니다. 절망, 공포. 고통이 심할 때 흘러나오는 감정, 그런 것들 말입니다. 이성은 잃었지만, 추구하는 것에 대해선 영악한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총이 안 통하니 군대가 동원되어도 소용없고, 가둔다고 해도 영혼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바이러스로 태어난 좀비처럼 감염자를 확산시키지는 않지만, 화력으로는 절대 절멸시킬 수 없지요.

겨우 열구일 뿐입니다만, 절대 죽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사망률이야 화재사고나 교통사고 같은 것보다 못하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정도는 확연히 다를 겁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전부 좀비 대비 훈련을 받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그걸로 해결되는 건가?”

‘네, 원래 움직이지 않는 걸 움직이는 만큼 좀비는 어쩔 수 없이 좀비. 약하니까요.’

“그럼 다행이네.”

‘아니요. 그런 시스템이 제정되기 까지 희생될 사람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죠. 게다가 좀비가 습격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확률적으로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겁니다. 제 죄업을 없애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한 사람의 피해자도 생기게 하기 싫습니다.’

예목은 오른팔의 생각에 감동했다. 망설임은 생기지도 않았다. 이런 이유라면 분명 옳은 일이겠지. 예목은 오히려 자기 쪽에서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데, 너 의외로 착하잖아? 네크로맨서라던가 인체실험이라던가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음씨가 착하네.”

‘아니요, 저도 예전에는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이런 말을 꺼내지 않은 겁니다.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신 덕분입니다.’

“나 덕분이라고?”

‘저는 당신의 오른팔이니까요. 옳은 팔이 되었는데 옳지 않게 될 수는 없지요.’

“다소 궤변이네.”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그래.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되지?”

‘영혼이라고 해도 전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구가 멀리 벗어나려고만 할 경우, 이틀 안으로 모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장기전이 될 겁니다.’

“위치를 확보한 후엔? 죽여도 죽지 않으면 소용없잖아?”

‘그걸 위한 네크로맨시입니다. 도와주신다면 제가 없앨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렇지만, 다른 네크로맨서는 없는 거야?”

‘스승님께서 다른 네크로맨서도 있다는 말씀도 하셨지만, 여태까지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전 세계에 극소수만 남아있다고 하시더군요.’

“도움은 바랄 수 없다고 봐야 하나.”

‘제가 네크로맨서라는 걸, 애초에 제가 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믿게 하는 건 어렵겠지요. 이 일은 혼자 하셔야 할 겁니다. 부탁드리는 처지에 이런 말 하기는 죄송합니다만, 각오는 되어 있으십니까?’

예목은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잣대는 확실하니까.

“응, 내 오른팔이 하려는 일이니까. 옳은 쪽이 가리키는 일인데, 망설이는 건 옳지 않겠지. 자, 뭐부터 시작하면 되지?”

‘먼저 마당에 묻어놓은 팔을 파내십시오.’

예목은 마당으로 나가 오른팔의 말대로 팔을 파냈다. 한여름에 며칠이 지났는데 팔은 멀쩡했다.

“이게 도움이 되는 거야?”

‘무기입니다. 좀비를(사령을) 없애려면 그 오른팔로 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 때린다고?”

‘무식한 방법이죠? 오른팔이 칼이었다면 좀 더 보기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니 뭐, 막 썰고 다니는 건 영화에서는 볼만하지 실제로 봐야하면 내가 못할 것 같아. 그냥 때리는 게 나아.”

예목은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우연찮게 태양과 일직선상에 놓여, 마치 팔에 후광이 드리운 듯 했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것은 예목이 떠올린 생각이기도, 오른팔이 하고자 했던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그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의 행복을 예목과 그의 오른팔은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조금 더 남아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 괜찮아. 오히려 내 쪽에서 미안하지. 당초에 목표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으니.”

둘이 좀비를 모두 처치하는 데에는 열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좀비들이 모두 각자 따로 행동해서 찾는 데나 이동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좀비들끼리 서로 연락할 수 없어 둘의 존재를 경고할 수 없다는 이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드디어, 좀비는 멸망하는가.”

예목은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오른팔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지 않습니다.’

종이 위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 예목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하나가 남았거든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알아서 처치하겠습니다. 예목은 이제 다시 백수로 돌아가니 취업자리라도 구해보십시오.’

“어어, 그래야지.”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예목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하나 남았다는 오른팔의 말이 마음에 걸렸으나,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묻지 않기로 했다.

지평선에서 태양이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침 좀비가 산에 올라가 있어서, 밤새도록 추격전을 펼친 끝에 퇴치한 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예목은 쏟아지는 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한낮에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이제는 먼 옛날일 같은, 오른팔이 사고를 당했던 그날 밤처럼, 꿈속에서 오른팔이 글을 쓴다. 역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고, 잠에서 깬 후에야 오른팔이 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예목은 A4용지를 들어올렸다.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 번, 제가 겉으로는 20대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보다 나이가 많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그건 단순히 동안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크로맨서는 생과 사에 대해 연구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죠. 그 성과중 하나가, 영혼을 다른 사람의 몸에 옮겨서 생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고 해도, 산 사람의 몸을 막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네크로맨서가 깃드는 것은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의 몸, 시체입니다. 그러니 영혼을 옮길 때는 시체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어야 했죠. 하지만 그날 사고를 당하던 순간엔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예목, 당신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오른팔에 깃든 이후로 저는 생각했죠. 이게 단지 우연일까? 단순한 행운일까? 그러나 마침 있던 그 시체나 다름없는 신체는 오른팔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운명이 아닐까. 내가 살아남은 건, 해야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닐까.

지난 열흘 동안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때 제가 당신 덕분에 살아남은 것은 저 자신이 제가 남긴 좀비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라는 걸요.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알리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당신의 의식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오른팔에만 한정되어 있던 제 영혼이, 수면이 수평을 이루려 하듯, 혹은 삼투현상처럼, 혹은 몇 방울의 먹물이 한 대야의 물을 검게 물들이듯, 더 많은 업을 쌓아 더 높은 밀도를 가진 제 영혼은 당신의 영혼을 압도하며 당신에게나 저에게나 불가항력적으로 당신의 영혼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셨을 겁니다.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당신의 의식이 끊기는 현상이 제가 글을 쓰는 시간과 관계없이 현저하게 길어졌다는 것을요. 그것에 점멸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오른팔 분만큼 떨어져 나온 지금의 저에겐 다른 시체로 옮겨갈 지식도, 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신의 의식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행동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울리지 않겠지요. 그보다는, 이 말이 어울릴 겁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저는 좀비니까요.

오른팔은 다시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제멋대로 이용만 하고 떠나는 것 같아서.’

뜨거운 뭔가가 속에서 울컥하고 치고 올라왔다. 그와는 반대로 다리에는 힘이 풀려 예목은 주저앉고 말았다.

오른팔이 떠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런 허탈감이 몰려왔다. 서로 모른 채 지나쳤어도 잘 살 수 있었을 것이지만, 알게 되고나서 잃고 보니 아주 중요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내 삶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워지는 존재가 된 것일까.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오른팔의 예상을 틀렸다. 예목이 A4용지를 들어 올린 손은 오른손이었다. 오른팔이 떠나간 건 맞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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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어떤가요. 제가 어려서 그런지 문장에서 어린 티가 난다거나, 아마추어틱하다거나, 미숙하더간 하는 게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