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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누님

  • 작성일 2014-02-25
  • 조회수 306

큰 누님

나는 내 큰 누님 모습에서 언제나 어머니의 모습을 느낀다.

전혀 어머니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데 말이다.

누님 마음속에 숨겨놓은 엄마 같은 마음 그 마음을 나는 읽고 있기 때문이다. 장녀로 태어나서 많은 가정사 곳곳에 알게 모르게 일어난 삶의 흔적들을 누님은 너무 적나라하게 보아오셨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몸소 부딪치며 때로는 해결하기도 하고 울며 감내하며 몸으로 받아 넘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맏이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만일 누님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다면 아마 우리 집은 많은 부문에서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도 달랐을 것이고 어머니는 마음고생 없이 편안하셨을 것이다. 누님은 여자이지만 매사 일처리가 남자 저리가라 여셨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였고 항시 정직하며 어느 것에든 쉬이 기우러지는 성미는 더 더욱 아니었다. 이러니 실재 남자였다면 얼마나 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한 성미로 보아 큰누님은 언제나 자기가 장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무장 고비에게 남편을 빼앗긴 그 모진 세월 앞에서도 친정에 왔어 어린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항시 자기 앞에는 언제나 어린 동생들이 있었고 돌봐야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한시도 아마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누님의 업(業)이며 멍에였으며 누님을 지탱하는 지주(支柱)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가 계시지 않으니 엄마였고 엄마가 계셔도 누님은 엄마였고 누님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였다. 나의 결혼도 누님께서 다 알아서 시켜주셨다 해야 할 것 같다. 아내를 만나게 해 주셨고 결혼식도 부모 있는 자식들 보다 더 알차고 값있게 하도록 해 주셨다. 특히 고마운 것은 아내를 만나도록 해주신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동생 결혼도 장남인 나는 객지생활에 무엇하나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만 누님혼자 이것저것 다 챙겨서 남부럽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나와 동생은 누님은 누님이 아니라 엄마 이상이었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 장가를 간 동생이 재수씨가 아들 둘 낳고 얘들이 어릴 때 위암 판정을 받아 병으로 고생 하실 때 누님의 몸 고생 마음고생은 이루 다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후 혼자 사는 동생의 여러 가지를 돌보고 있습니다. 만 지금도 80이 넘으신 연세에 자기 몸도 운신하시기가 어려운데 동생의 3끼 식사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나는 엄마를 봅니다. 동생 집에 가면 자기 몸이 아프고 가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괴로우니 어느 부모가 내 누님 같은 마음을 가질까? 나도 장남으로 이것저것 마음 켕기는 것 하나 두나 아니지만 그중에도 장남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하고 항시 큰 누님에게 짐만 지워드리는 송구함은 무엇으로 말씀드려도 부족한 것이다.

나는 내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얘기한다. 누님은 시어머니이며 고모는 고모가 아니고 할머니이라고 엄마 돌아가시기 1년 전 어느 봄날 따듯한 마루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 하시다 느닷없이 내 어머님 말씀이

“야야! 니(네) 누부는 나다 나,”내 말 무슨 말인지 알제.

”혹 내 없더라도 내 같이 생각하고 해야 한다.

“어무이 와카는교 알았다 안카는교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알았습니다.)

“이젠 그만 카이소 와 누가 죽기라도 한다. 카든던교?(얘기하던가요)

그 말씀 하신 후 일 년 어머니는 나에게 유언 한마디 남기시지 않으시고 그 말씀이 유언이 되셨다. 어머님은 자신이 평소 원하시던 대로 자는 잠에 가셨다.

아마 자기 자신의 운명을 꽤 뚫고 계셨던 것 같았다. 하느님께서 불러서 가셨지 어떻게 생과부 홀로 두고 가셨겠습니까? 가시는 걸음 인들 쉬 떨어 졌겠습니까?

아마 가시다 돌아보시고 또 가시다 돌아보시고 하셨겠지요?

마당 넓은 집에 노(老)과부 생(生)과부 남편 같이 친구 같이 함께 사시다 노(老)과부 어머님 보내신 내 누님 생(生)과부 슬픔 오죽 하셨을까?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이라 이제 까지 사셨지 살고 싶어 살았겠습니까?

이젠 한 많은 세월도 둑 터진 연못에 물 빠져 나가듯 흘러갔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남은 누님 인생일지 나는 모릅니다. 사시는 날까지 정말 잘 해드리고 싶음 마음입니다만 마음만 같이 못함이 송구 할 뿐입니다. 하느님 저에게 저의 어머님의 유언을 받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