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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북어」

  • 작성일 2014-03-26
  • 조회수 6,933

최승호, 「북어」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 시_ 최승호 -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그로테스크』,『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고비』,『아메바』등이 있고, 그림책으로는『누가 웃었니?』,『이상한 집』,『하마의 가나다』,『수수께끼 ㄱㄴㄷ』,『구멍』,『내 껍질 돌려줘!』가 있다. 동시집으로는『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1(모음 편), 2(동물 편), 3(자음 편), 4(비유 편), 5(리듬 편)』,『펭귄』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금 설악산 용대리 골짜기에서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수십만 축의 북어들이 말라가고 있겠군요. 지금 또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도 수십만 북어들이 절망 속에서 말라가고 있겠지요. 싱싱한, 싱싱한, 아름다운 꿈이 헤엄쳐갈 데 없는 것이 되어서 바람의 골짜기에서 죽음에 꿰어진 채 말라가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시대가 있었지요.
나는 나의 지느러미를 움직여 봅니다. 옆구리 것을 들썩들썩, 꼬리를 살랑살랑, 등의 것은 빳빳이 세워봅니다. 아직 모두 쓸만합니다. 생각을 좌우로 이리저리 휘어서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 세게 휘면 더 세게 나아갑니다. 나아간다는 것이 생명이고 아름다움이겠죠.
북어에게 ‘너 북어지!’ 이렇게 질책 당하면 안 됩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대설주의보』(민음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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