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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사람의 꿈을 먹고 사는 짐승과 봄밤을 노닐다」

  • 작성일 2014-04-23
  • 조회수 1,954

안상학, 「사람의 꿈을 먹고 사는 짐승과 봄밤을 노닐다」




당시(唐詩) 읽는 봄밤
담비 초(貂)자 궁금해 옥편 뒤적이다
발 없는 벌레 치(?) 부에서
짐승 이름 맥(?)자를 보았다
곰 비슷하게 생겨먹은 것이
코는 아래턱 덮고도 남으며
코끼리 코처럼 굴신 자유자재하는 것이
일설에는 구리, 쇠 등을 먹고 산다고도 하고
혹은 사람의 꿈을 먹고 기운 돋운다고도 한다


가족과 헤어져
서울 마포나루 근처에 방을 잡고
잠도 오지 않는 봄밤 당시를 뒤적이다가 나는
그 꿈이라는 것이 내 잠 속의 꿈이 아니라 자꾸만
내 삶의 내일에 있어야 할 어떤 희망인 것만 같아서
행여 이 맥이라는 동물이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지는 않나 하여
종래 잠이 오지 않아 나는 또 금쪽같은 봄밤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 시_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등이 있다.


▶남도형 - 성우.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배달하며

꽃이 만발한 봄밤의 독서에는 옛시가 어울립니다. 그중에서도 당시가 제격입니다. 그 운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글자들 사이길이 꽃밭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려운 글자가 나오면 옥편을 찾는 재미 또한 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옥편을 뒤적이는 일은 쓸쓸한 일을 뒤로 미루는 행위만 같지요. 그러다가 저절로 샛길로 빠지기 일쑵니다. 이 글자, 저 글자 사이를 산책하는 한가로움에 봄밤이 짧아집니다.
사람의 꿈을 먹고 사는 벌레도 있었으니 옛날 사람들 참으로 귀엽습니다. 언젠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라는 책에서 ‘맥망(脈望)이라는 벌레는 신선(神仙)이라는 글자만 갉아 먹는다’ 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날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당시가 봄밤을 먹는군요. 꽃이 핍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아배 생각』(애지)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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