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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 「기차를 잘못 내리고」

  • 작성일 2014-05-28
  • 조회수 2,187

민영, 「기차를 잘못 내리고」




날이 저물어 초저녁인데
사람이라곤 없는 시골 정거장,
모자에 금테 두른 역장이 나와
차표를 살펴보며 말을 걸었다.


손님이 내릴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아직도 몇 정거장 더 가야 하지요.


그런데 역장님,
왜 이렇게 힘이 들지요?
의자가 망가져서 치받는 것도 아닌데……


어느덧 역사 안에 불이 켜지고
난로 위의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역장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철없는 길손이여,
이리 와서 차나 한잔 드시고 가소.
다음 번 열차가 들어올 때까지!





▶ 시_ 민영 - 193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959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에 첫 시집 『단장(斷章)』을 상재한 이후 『용인 지나는 길에』, 『냉이를 캐며』, 『엉겅퀴꽃』, 『바람 부는 날』, 『유사를 바라보며』, 『해지기 전의 사랑』, 『방울새에게』와 시선집 『달밤』을 간행했다.

▶ 낭송_ 송바울 - 배우. 「세일즈맨의 죽음」, 「독짓는 늙은이」 등에 출연. 극단 ‘은행나무’ 대표.




배달하며

간혹 잘못 내릴 때가 있습니다. 난감합니다만 그럴 때마다 나의 일생 또한 너무 일찍 내렸거나 너무 늦게 내린 것만 같습니다. 이 간이역에 내린 길손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내린 겁니다. 그러나 역장님이 마침 친절했고 외로웠습니다. 금세 외로운 동지가 되었습니다.
왠지 이 간이역이 시에 대한 은유 같습니다. 외로운 이가 있고 그 외로운 이를 위해 잘못 내리는 이가 있는 곳. 아픈 승객이 더 참지 못하고,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내린, 아프고도 한적한 시공! 그 따스한 난로 곁에서 주전자 끓는 소리를 같이 듣고 싶습니다. 인생의 답을 들을 것만 같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할 곳이 있다』(창비)

▶ 음악_ 심태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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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김민수10603

    내가 이 시를 선택하게된 이유는 내이야기를 하는것같이 몰입되었고 현재 살아가고있는 많은 현대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시에서 화자가 목적지까지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지치고 힘들었을때 역장이 다음열차가 올때까지 잠깐 쉬어가라며 선뜻 차를 내주는 모습이 내가 지치고 힘들때마다 의지하고 기댈수있는 버팀목같은 존재인 가족이 떠올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3연에 화자가 역장에게 하소연하듯이 물으며 의자가 망가져 치받는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힘드냐고 말한는 부분이 있다. 이부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정확히 힘든 일도없고 누가 뭐라고 하는것도아닌데 하루하루에 치여 지친 나날을 보내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말하는듯하여 기억에 남는다. 이시를 읽고 나서는 마음이 저릿하고 다 읽고나서도 계속 생각나는시였던것 같고 오늘날 느낄수 없는 남에게 선뜻 차를 배푸는 온정을 느낄수있었던것 같다.

    • 2018-10-31 10:58:12
    김민수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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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06김우주

    이 시를 읽고 엤날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학원 끝나고 많이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는데 실수로 버스번호를 잘못보고 다른 버스를 탔다. 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한태 자초지종을 말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아저씨는 내 집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고 중간에 갓길에 내려 주시고 집가지 가는 방향까지 알려 주셨다.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는데, 기사 아저시가 짜증내고 귀찮다는 표정 하나 없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말 따듯하고 달콤한 차한잔과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때는 그 사람에게 따뜻하고 달콤한 차 한잔을 건네야 겠다.

    • 2018-10-31 10:45:16
    10606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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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09류태오

    이 시를 읽으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나도 예전에 이러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할머니 집에 가기위해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깜빡 졸다가 그만 내리려던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었다. 다음 정거장까지는 꽤 남아 있어서, 그대로 간다면 많이 늦게 도착할 것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나는 양해를 구하고 정거장이 아닌 한적한 찻길 가운데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때, 버스기사 아저씨의 실수할 수도 있다며 길을 알려 주며 조심히 걸어가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몇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이 시 또한, 기차에서 잘못내려 다음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역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돋보인다. 나도 경험했기에, 따뜻한 말, 도움 하나는 큰 감동임을 알 수 있었다. 포근한 차 한 잔,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맛있는 한 잔일 것이다. 잠깐의 잔잔한 감동과 정을 느낄 수 있었다.

    • 2018-05-29 13:58:43
    10609류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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