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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초록빛 모자』중에서

  • 작성일 2014-06-05



“일테면 아주 다른 인생 속으로 헤엄쳐 들어갈 수 있을 듯 했다.”

-김채원 단편「오후의 세계」중에서 -



김채원, 『초록빛 모자』중에서





내 성격이 부서지기 시작하는 걸까. 나는 친구들의 말도 함부로 가로채고, 남이 얘기하고 있는 도중에 벌떡 일어나기도 하며, 혹은 다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발로 장단을 맞추며, 이 노래 참 좋지? 좋지? 들어 봐. 강요하기도 한다. 나오는 노래마다 좋다고 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내 강요에 못 이겨 귀를 기울이다가도 곧 싫증을 내버리곤, 하루종일 집에서 라디오만 듣니? 라고 나를 나무란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은가. 나는 전축도 라디오도 갖고 있지 않다. 작은 카세트 녹음기가 한 대 있었지만 그것은 언니가 퍽 아끼던 물건이어서 언니의 무덤 속에 넣어 주었다. 자주 외출도 하지 않으니 다방에서 유행가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다. 나는 정말 음(音)과는 먼 곳에 살고 있다. 아마 음과는 먼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음에도 민감하여 세상의 모든 노래를 많이 알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나는 친구 애인들 사이에 눈치없이 끼어앉아 있기도 한다. 눈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데에 잔신경 쓰기가 귀찮아서다. 아니, 사실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조그만 일에도 잔신경을 몹시 쓴다. 그럴수록 그렇게 자신을 아끼느라 바들거리는 것이 피곤해져, 함부로 나를 굴리기 시작하고, 그러한 자신에 대해 스스로 가슴이 아파 쩔쩔매게끔 되어 버렸다.
처음, 나는 나의 그러한 행동 - 남의 말을 가로챈다든가, 남의 얘기 도중 일어난다든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든가를 - 충분히 의식(意識)하면서 하는 행동들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그러지 않을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나는 이제 아무리 의식(儀式)이 갖는 미덕의 세계로 들어가려 해도 들어가지지 않는다. 자신을 한겹씩 여미는 일, 부수어 그 파편들을 드러내어 놓지 않고 감싸는 일, 소중히 잘 가꾸어 보는 일, 이런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차츰 깨닫게 되었다.




▶ 작가_ 김채원 - 소설가. 1946년 경기도 덕소 출생. 이화여대 회화과 졸업. 1975년 「먼바다」로 《현대문학》에 황순원 선생의 추천을 받아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초록빛 모자』『봄의 幻』『형자와 그 옆사람』『달의 강』등이 있음. 제13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 낭독_ 전현아 - 배우. 연극 <쉬반의 신발>,<베니스의 상인>,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이 젊은 단편소설의 첫 문장처럼 사람의 정이 몹시 그리워지는 어느 날이면 평소엔 하지 않았던 일들이 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연락도 안 하고 지내던 이의 전화번호를 불쑥 눌러보거나 입고 쓰지도 않을 모양의 옷이나 물건을 사거나, 아니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남장(男裝)을 하고 거리에” 나서보거나.
설령 이렇게 가만히 방안에만 앉아 있어도 무슨 일인가는 생길 겁니다. 그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가 어느 때는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요. 나 자신을 한 겹씩 여미고, 소중히 잘 가꾸는 일처럼. 모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아, 이 세상 어딘가 ‘미덕의 세계’는 정말 있는 것, 맞겠지? 라는 기대가 저절로 들기도 한답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달의 몰락』(청아출판사)

▶ 음악_ The Film Edge - Casual-Every Day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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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원작, 마이클 패트릭 히언 주석,『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어머나, 과일 케이크를 굽기에 좋은 날씨구나!” - 트루먼 카포티, 단편 「크리스마스의 추억」 중에서 - 찰스 디킨스 원작, 마이클 패트릭 히언 주석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메리 크리스마스일세, 봅!” 스크루지가 그의 등을 툭툭 치면서 정말로 진지하게 말했다. “여러 해 동안 내가 자네한테 했던 인사보다 더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일세, 이 친구야! 내가 자네 봉급을 올려주고 자네의 어려운 살림도 도와주려고 노력할 참일세. 그러니 오늘 오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교님 크리스마스 칵테일1) 이나 같이하면서 자네 사정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누자고, 봅! 어서 불을 더 지펴. 그리고 기역자 하나 더 적기 전에 어서 가서 석탄 한 통 더 사오게, 봅 크래칫!.” 스크루지는 자기가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했다.2) 그는 이 모든 것을 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했으며, 꼬마 팀은 안 죽고 살아 있었기에 스크루지가 이 아이의 제2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그는 이 친숙한 도시, 아니 이 친숙한 세상의 그 어떤 다른 도시, 지방도시, 자치도시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벗이자 좋은 사장님이자 좋은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그렇게 변한 걸 두고 비웃기도 했으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 지구상에서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 벌어지면 처음에는 누군가 늘 그걸 실컷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현명하게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어차피 눈이 먼 사람들이기에 이들이 비웃는 눈웃음 때문에 눈을 찡그리는 쪽이 질병 때문에 좀더 보기 흉한 모습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슴속으로 껄껄 웃어넘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더 이상 정령들과 교류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후로는 그런 이상한 경험에 대해서는 완전금주3) 원칙으로 지냈다. 그래도 늘 그에 관해 말할 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아마도 크리스마스를 가장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들 평했다. 이런 말이 우리한테도, 우리 모두한테도 진실로 해당하기를! 그래서 꼬마 팀이 말했듯이,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하나 같이 축복하시기를! 1) 이 크리스마스 펀치 칵테일은 18세기에 인기가 많던 주점의 음료였다. 2) 정령들을 만난 후 개심한, 스크루지의 눈에 띄게 따뜻해진 마음을 보여준다. 3) 여기서 디킨스는 알코올 ‘독주spirits’와 초자연적 ‘정령spirits'을 연결하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 ▶ 작가_ 찰스 디킨스 -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1812년 영국 포츠머스 출생. 지은 책으로 『올리버 트위스트』『데이비드 코퍼필드』『두 도시의 이야기』등이 있음. ▶ 주석_ 마이클 패트릭 히언 - 빅토리아 시대 아동문학 전문가. 지은 책으로 『신화, 마법, 수수께끼』『주선 달린 허클베리 핀』등이 있음. ▶ 낭독_ 오민석 - 배우. 연극 「만파식적」, 「봄은 한철이다」, 「바람직한 청소년」 등에 출연

  •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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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3
앨리스 먼로,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나는 탁 트인 풍경을 좋아한다. 하지만 풍경을 등 뒤로 하고 앉는 것도 좋아한다.” - 거투르드 스타인,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중에서 - 앨리스 먼로,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물 나르기 말고도 아버지를 도와 내가 하는 일은, 우리 사이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명아주며 물꽈리 따위의 풀들을 베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커다란 낫으로 풀들을 베어내면 내가 갈퀴로 긁어모았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쇠스랑으로 갓 베어낸 풀들을 우릿간 지붕에 던져 골고루 덮었다. 여우도 시원하게 지내게 해주면서 햇볕을 너무 쬐면 갈색으로 변하는 여우 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일과 관련된 것 말고는 내게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엄마와 많이 달랐다. 엄마는 기분이 좋으면 온갖 이야기를 시시콜콜 해주곤 했다. 어렸을 때 키웠던 개 이름, 나중에 더 커서 데이트를 했던 남자아이들의 이름, 엄마가 원피스를 입었을 때의 모습 따위의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어떤 생각 무슨 이야기들을 아버지가 남몰래 품고 있었든, 나는 아버지가 조심스러워서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기꺼이 일을 했고 그러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어느 날 먹이 외판원이 우리 쪽으로 내려왔을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새로 고용한 우리 일꾼을 소개하지.” 나는 돌아서서 아주 열심히 풀을 긁어모았다. 좋아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절 놀리시는 거죠? 여자애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 작가_ 앨리스 먼로 - 캐나다 소설가.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시골 마을에서 출생. 웨스턴오하이오 대학 재학 중에 첫 단편 「그림자의 차원」발표.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떠남』『디어 라이프』등이 있음. 2013년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을 들으며 노벨문학상 수상. ▶ 낭독_ 오민석 - 배우. 연극 「만파식적」, 「봄은 한철이다」, 「바람직한 청소년」 등에 출연 문형주 - 배우. 연극 「맘모스 해동」, 「칼리큘라」, 「수인의 몸이야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여우 목장을 하는 아버지를 둔 어린 맏딸입니다. 부모가 목장 일을 남동생에게만 시키는 게, 자신이 딸이라는 이유로 집 밖의 일들에서 제외되는 게 싫은 모양입니다. 인정받고 싶겠지요, 우선 아버지에게.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이 소설은. 모든 가족들, 하다못해 목장의 여우들에게도 각각 이름이 있는데 이 여자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바로 그겁니다.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행복한 그림자의 춤』(뿔, 2010.) ▶ 음악_ The Film Edge - Themes-Concepts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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